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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일본소설 > 1950년대 이후 일본소설
· ISBN : 9788946418431
· 쪽수 : 312쪽
책 소개
목차
제1장 각각의 여름밤 | 7
제2장 받을 수 없는 편지 | 67
제3장 양떼구름의 한숨 | 113
제4장 거짓말의 열매 | 163
제5장 편지지에 피는 꽃 | 209
제6장 다정한 바다 | 247
제7장 바람 바람 불지 마 | 279
제8장 당신에게 | 295
제9장 공기 같은 말 | 299
옮긴이의 말 | 307
리뷰
책속에서
에지는 아주 조금 고개를 움직여 요코 쪽을 살짝 본다. 천장을 가만히 응시하던 요코의 눈꼬리에서 물방울이 주르르 넘쳐 귀까지 흘러내린다. 에지는 그 모습을 못 본 것으로 하고 자신도 천장으로 시선을 돌린다.
가슴 안쪽에서 넘쳐나는 여러 ‘생각’들이 열을 품기 시작한다. 하지만 그 어떤 ‘생각’도 말이 되어 나오지 않는다. 만약 준비되지 않은 채 ‘말’로 바뀐다면, 한없이 ‘안녕’에 가까운 울림을 동반할 것 같다.
에지는 잡은 손의 온기에 마음을 담았다.
요코의 손이 에지의 손을 살짝 맞잡은 순간, 여태까지 줄곧 붙잡고 있던 에지 안의 가느다란 실이 뚝 끊어졌다. 갑작스레 눈꼬리에서 물방울이 주르르 넘쳐 귓속으로 흘러내린다.
딸랑.
요코가 좋아하는 풍경이 울린다. 두 사람은 늘 보아 익숙해진 천장에 시선을 준 채, 이불 속에서 가만히 손을 잡고, 소리 죽여 울었다.
“유치우편으로 보내는 편지, 지금 여기서 받는 건 불가능한지…….”
“죄송합니다만, 고인의 희망에 따르는 것이 저의 본분인지라……. 요코 님이 의뢰하신 대로 나가사키 우체국에 유치우편으로 발송하게 됩니다.” 죄송스러운 표정을 지으면서도 사사오카 미네코의 어조는 사무적이고 단호했다. “이 편지는 오늘 돌아가는 길에 우체통에 넣게 되는데요. 유치우편을 받을 수 있는 기한은 도착 후 열흘간입니다.”
“그렇다면……, 그 편지가 우스카 우체국에 도착한 후 열흘 이내로 찾아야 한다는?”
“네, 그렇습니다.”
그 말은……. 나는 머릿속으로 날짜를 계산했다. 오늘 우체통에 넣으면 내일 수거해간다. 그렇다면 우스카에는 빨라도 모레 도착할 것이다. 내게 주어지는 유예기간은 불과 12일.
“저기, 혹시 말입니다만…….”
“네.”
“제가 만약 우스카에 안 가면 그 편지는……?”
“우편물은 반송하게 되어 있지만 그때는 저희가 소각 처분합니다.”
“소각 처분?”
“의뢰 내용이 그렇습니다.”
“내가 읽기 전에 태워버리는 겁니까?”
“네, 그렇습니다.”
무심코 꿀꺽 하고 침을 삼켰다. 요코는 무슨 일이 있어도 나를 우스카에 보내려 한다.
내가 요코의 뼈를 부술 수 있을까. 불안감이 머리를 든다. 분골을 업체에 맡기는 사람의 마음이 이제야 이해된다. 하지만 요코의 유언은 반드시 내 손으로 이루고 싶다. 마음을 담아, 철두철미하게, 나 자신의 손으로.
“요코…….”
쉰 목소리로 문득 이름을 불러보았으나 그다음 말이 나오지 않는다. 그저 요코의 미소 짓는 얼굴이 언뜻언뜻 뇌리에 떠올랐다가 사라질 뿐이다.
“요코…….”
다시 한 번 부르며 유골을 응시한다. (……) 나는 일단 쇠망치를 내려놓고 양손을 뻗어 주머니 위로 유골을 가만히 쓰다듬었다. 거친 뼈의 감촉에서 일말의 온기를 찾으려는 나 자신을 느낀 순간, 척추에서 힘이 쑥 빠져나가는 듯했다. (……) 요코의 뼈가 하얀 주머니 안에서 부서져 순식간에 작아져간다. 이때 알았다. 슬픔보다도, 허무감보다도, 상실감보다도, 오히려 고마움이 눈물샘을 자극한다는 사실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