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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중국소설
· ISBN : 9788954438841
· 쪽수 : 480쪽
책 소개
목차
서문 7
1부 11
2부 135
3부 301
부록
제1회 중국어 도서 미디어대상 수상사 463
제1회 중국어 도서 미디어대상 수상 소감 465
해설 469
리뷰
책속에서
“간단히 말해서 이래요. 리톄쒀李鐵鎖와 페이전 두 집이 뒷간 하나를 함께 쓰고 있어요. 리톄쒀네 뒷간이 무너졌는데 고칠 돈이 없어서죠. 그러고 나서 문제가 터진 겁니다.”
그런데 구체적인 ‘문제’를 말할 때 칭수는 목소리를 잔뜩 낮추고 무슨 비밀스러운 군사기밀을 말하는 듯 굴었다. 가뜩이나 낮은 목소리가 동물들의 울음소리에 눌려버렸다.
관좡 마을의 서쪽은 물에 가깝고 북쪽에는 언덕이 있어 마을 사람들은 주로 양식을 부업으로 삼고 있었다. 당나귀, 산양, 토끼 따위가 땅에서 뛰놀고, 오리와 거위가 물에서 헤엄쳤다. 하늘을 나는 것으로는 벌, 비둘기, 메추리가 있었다. 칭수의 말에 따르면 바로 육해공 삼군을 모두 갖춘 셈이다. 칭수 본인 역시 반쯤은 양식업을 한다고 할 수 있다. 그렇지만 그가 기르는 것은 앵무새, 그것도 사랑앵무새였다. 팔기 위해 기르는 게 아니다. 그저 ‘정신 휴양’을 위해서였다. 칭수는 그의 앵무새 한 마리가 〈활 쏘고 돌아오다 打.歸來〉라는 곡을 부를 줄 알아, 입만 열면 ‘서쪽 산으로 해 떨어지고 붉은 노을이 일면, 전사는 활을 쏘고 관영으로 돌아오네’라고 한다고 했다.
그때 멀리서 당나귀 재채기하는 소리가 우렁차게 들렸다. 판화는 그게 마을의 동쪽 끝 리신차오 李新橋의 집에서 기르는 암나귀라는 걸 알아챘다. 곧 노새를 낳게 되어 잡종을 생산한다는 설렘이 있었다. ‘잡종’이라는 단어가 떠오르자 판화의 마음속에 어떤 생각이 번득였다. 페이전이 볼일을 보고 있을 때 톄쒀와 마주친 걸까? 아니면 어떤
행동? 혹시 톄쒀의 부인 야오쉐어姚雪娥가 볼일을 보고 있을 때 상이와 마주친 걸까? 그런 좆같은 일은 확실히 말하기 좀 그렇긴 하지.
판화는 물을 한 모금 마시면서 어지러운 머릿속을 가다듬고는 물었다.
“그래서?”
칭수는 이때 목소리를 가성으로 바꾸어 아주 가늘게 만들었다. 이게 어디 군인 출신다운 모습이야. 금방이라도 계집애로 바뀔 것 같잖아!
“나중에 페이전이 지랄 같은 일을 발견했어요. 그 말도 안 되는 일은 속옷 때문에 생겼지요. 얼마에 한 번씩은 여자들 속옷이 저녁노을 같아지잖아요. 그런데 적어도 두 달이나 지났는데 톄쒀 부인 야오쉐어의 속옷에 저녁노을이 지지 않았대요.”
판화는 밥그릇을 내려놓고 밖으로 나갔다. 쉐어의 배를 한번 살펴보고 싶었다. 쉐어의 배를 생각하자 판화는 태양이 서쪽에서 떠오르는 것만 같았다.
한 달 전에 향의 가족계획 부서에서 검사를 했다. 그때 계획 밖의 임신이라면 무조건 그 자리에서 잡아 병원으로 보내 그날 밤으로 낙태를 시켜버렸는데, 쉐어가 어떻게 빠져나갈 수 있었지? 페이전이 잘못 본 게 아닐까? 페이전은 당연히 자신이 말한 것처럼 변소에서 문제를 발견했을 리 없었다. 틀림없이 쉐어의 배를 봤을 것이다.
그렇지만 잘못 본 거라면 좋겠네. 만일 쉐어의 배가 정말 불러온다면 문제가 정말 커져. 그건 배가 아니라 시한폭탄이야.
국무원 총리와 마찬가지로 판화의 머릿속에도 줄줄이 이어진 숫자가 들어 있었다. 가장 분명하게 기억하는 것은 여자들과 관련되어 있었다. 관좡 마을 인구는 1,245명인데 다섯 개 그룹으로 나눌 수 있었다. 그중 가임기 여성은 143명이었다. 묶은 사람이 78명이고 애를 낳을 수 없는 4명까지 빼면, 언제고 배가 부를 수 있는 사람은 61명이었다. 그중에서 정책적으로 배 부르는 게 허락된 사람은 37명이었다. 그렇게 제거해내면 24개의 배가 남았다. 이 24개의 배가 바로 24개의 폭탄이었다. 그중 하나가 터진다면 나머지 배가 착실하게 잠자코 있을까? 칭수의 말을 빌리자면 그것은 ‘핵재난’에 비교될 수 있다. 여기에 생각이 미치자 판화의 머리가 찌릿찌릿 저려왔다.
칭수는 문을 들어서자 먼저 서랍을 열어 텔레비전 안테나를 하나 꺼내 손수건으로 위부터 아래까지 닦았다. 그러고는 도표 앞에 서서 마치 지형 모형 앞에 서 있는 장군처럼 가슴을 쭉 내밀고 손을 허리에 댔다. 판화가 “멍청한 짓 하지 말고 빨리 살펴봐줘” 하고 말했다.
안테나는 밀 이삭과 오각별, 달 그리고 낫 사이에서 움직이다가 ‘야오쉐어’라는 글자 아래에서 잠깐 멈추었다. 그러고는 붉은 화살표가 가리키는 방향을 따라 ‘정기 신체검사’란으로 건너뛰었다. 안테나 끄트머리가 움직이면서 어떤 때는 군인이 제자리걸음을 하는 것처럼, 또 어떤 때는 잠자리가 물을 차는 것처럼 이리저리 점을 찍었다. 잠시 뒤에 칭수가 보고했다.
“아주 분명합니다. 임신하지 않았어요.”
“배도 나왔는데 임신하지 않았다고?”
칭수가 의자를 밟고 표 위로 몸을 기울여 살펴보더니 다시 판화에게 보고했다.
“맞아요, 임신하지 않았어요. 석류나무에 앵두가 열릴 리가요. 이상하죠.”
칭수는 의자에서 뛰어 내려왔다. 그는 아주 독특하게 뛰어내렸다. 마치 체조 선수가 안마 운동을 하듯 의자 등받이를 넘어서 뛰어내렸다. 땅에 착지한 이후에 칭수는 곁눈질로 힐끗 천장의 들보를 노려보면서 잠시 생각에 잠겼다.
그러더니 갑자기 서랍을 열고 《해방군 화보》를 한 권 꺼냈다. 화보 안에는 각종 증명서가 붙어 있었는데 윗부분에 모두 ‘왕자이병원’ 직인이 찍혀 있었다. 칭수가 침을 묻혀 빠른 속도로 넘기다가 마지막에 어떤 증명서에서 멈추었다. 기계로 뽑은 쉐어의 신체검사표였다. ‘임신 여부’라는 항목에는 ‘부否’라는 글자가 찍혀 있었다.
판화가 말했다.
“아니야, 이걸로 다른 사람은 속일 수 있을지 몰라도 나는 못 속여.”
칭수가 말했다.
“제기랄, 기계에 문제가 있었네요. 미국의 레이더 유도 폭탄 아시죠? 세계에서 가장 뛰어난 첨단 컴퓨터로 통제하지요. 그래도 문제를 일으키려면 일으켜요. 그래서 마오 주석께서도 미 제국주의는 종이호랑이라고 하셨잖아요.”
판화는 초조해졌다. 초조해지자 거친 말도 쏟아져 나왔다.
“니미! 눈먼 닭 좆같은 소리 하지 말고 빨리 왕자이병원에 가서 문제를 좀 분명하게 파악해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