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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라이트 노벨 > 앨리스 노벨
· ISBN : 9788960520264
· 쪽수 : 226쪽
책 소개
목차
[05] 음식은 따뜻할 때 먹어야 제맛
[06] 포만감을 주는 메인 요리
[에필로그] 마무리는 달콤한 디저트로
[외전02] 수상한 황녀님
[외전03] 수상한 장난
책속에서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는 듯, 그렇게나 소중히 품에 안고 있던 시계까지 내팽개치고 올곧게 저만 보고 달려오는 아리엘을 본 사이먼의 가슴이 부풀었다. 언제 짜증이 났냐는 듯 들뜬 기분까지 들었다. 그럼에도 마지막 남은 자존심을 지키려 엉덩이를 붙이고 있던 사이먼은 벌떡 몸을 일으켰다. 레지나가 놀라 그를 올려다봤다. 뛰어오던 아리엘이 허공에 발이 걸려 허우적거리는 것을 사이먼이 낚아챘다. 그녀는 놀란 기색도 없이 그에게 매달려 고개를 들었다. 부주의함에 혼을 내려고 무서운 얼굴을 해도 그녀는 마냥 행복한 듯 웃었다.
“역시 교수님이 최고예요.”
끝도 없는 애정에 사이먼은 머쓱해졌다.
“품위를 지키십시오.”
위험하니 뛰지 말라는 뜻으로 나온 말은 딱딱했다. 사이먼은 스스로의 솔직하지 못함에 속으로 혀를 찼다. 그러나 아리엘은 아무래도 상관없다는 듯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마치 신이라도 목도한 것처럼 신뢰가 가득한 아리엘의 얼굴을 보자니 괜히 아래에 힘이 들어갔다. 믿음을 배신하는 여러 가지 방법 중 하나를 시도해 보고 싶어졌다. 귀 끝이 발갛게 달아오른 것을 발견한 유진이 미소를 지었다.
“안녕하세요, 교수님들!”
“오늘도 활기찬 모습이 보기 좋습니다, 아리엘.”
공개적인 장소에 있기에 부적절한 사이먼을 내버려 두고 테이블로 다가간 아리엘이 밝게 인사를 건넸다. 다정한 말로 받아주는 유진과 달리 레지나는 고개만 까딱거릴 뿐이었다. 그녀의 무례한 태도에 사이먼은 인상을 찌푸렸다. 그러나 아리엘은 아랑곳 않고 테이블에 매달려 싱글싱글 웃을 뿐이었다.
괜한 자존심을 세우던 레지나는 자신 따위는 안중에도 없는 아리엘의 태도에 괜히 속이 끓었다. 레지나는 입술을 짓씹으며 그녀를 노려보다가 제게 향한 날카로운 시선에 가슴이 덜컹 내려앉았다. 유진이 둘 사이를 달래듯 미묘한 웃음을 지었다.
“흠흠. 무엇을 드시겠습니까, 손님?”
아리엘은 여전히 분위기 파악을 못 했다. 가라앉은 분위기 속에 끼어든 낭랑한 목소리에 사이먼이 노려보던 시선을 거뒀다. 바닥에 한쪽 무릎을 꿇고 앉아 올려다보고 있는 그녀를 발견한 사이먼의 미간이 구겨졌다. 마치 그녀의 위에 올라선 느낌이 들어 안절부절못하면서도 괴롭히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사이먼은 끓어오르는 정염을 눈에 가득 담고 그녀를 바라봤다.
“안 시키실 거예요?”
처음으로 손님에게서 주문을 받을 수 있으리라 기대했던 아리엘이 시무룩하게 물었다.
“여기서 가장 인기 있는 코스 요리로 부탁해요.”
“네! 잠시만 기다려 주세요!”
능숙하게 그녀를 달랜 유진과 금세 밝아진 아리엘을 번갈아보는 사이먼의 얼굴에 못마땅함이 자리 잡았다. 그러나 조심성 없게 치마를 펄럭이며 돌아서는 그녀를 본 사이먼은 퍼뜩 떠오르는 생각에 손목을 붙들었다.
“잠깐.”
손목을 감싼 손은 커다랗고 또 조심스러웠다. 그곳에서부터 시작된 간지러움에 몸을 떨던 아리엘을 의아하게 바라보던 사이먼이 물었다.
“요리는 누가 하는 겁니까.”
그의 얼굴에는 긴장한 기색이 역력했다. 아리엘은 고개를 갸웃했다.
“요리과 학생들이……?”
“아니, 내 말은……. 아리엘도 합니까?”
아리엘의 당연한 대답은 사이먼이 원하던 것이 아니었다. 그는 말을 고르며 관자놀이를 꾹꾹 눌렀다. 어째서인지 갑자기 피곤이 밀려들고 있었다. 어두운 그의 얼굴을 보던 아리엘이 무언가 번뜩 떠올랐다는 얼굴로 손뼉을 마주쳤다.
“제가 한 게 드시고 싶었구나!”
차마 사실을 말할 수 없어 사이먼은 입을 꾹 다물었다. 매정하다 소리도 많이 듣는 그였으나 순진하게 반짝이는 저 은청색 눈 앞에서는 쉬이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그런데 어떡하죠. 저는 요리하지 않아요. 요리사가 너무 많으면 주방이 복잡하니까 몇 명은 빠졌거든요.”
저도 서운한 듯 아리엘의 답에 사이먼은 저도 모르게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유진이 그것을 알아채고 웃음을 삼켰다.
“어, 쩔 수 없군요.”
“다음에 꼭 만들어 드릴게요. 그럼 금방 가져다 드릴게요!”
귓가에 속살거리는 연인의 목소리에 사이먼의 몸이 딱딱하게 굳었다. 절대 작지 않은 목소리라 전부 엿들은 유진은 얼굴이 발갛게 변할 정도였다. 레지나는 팔랑거리며 주방으로 가는 아리엘의 뒷모습을 보며 신경질적으로 테이블보를 잡아 뜯었다.
“이야. 제법 근사하네.”
“리온!”
굳어 있던 사이먼이 반사적으로 고개를 돌렸다. 어두침침한 그와 달리 상큼하게만 생긴 녀석이 들어서자 아리엘이 반가운 얼굴로 다가갔다. 사이먼은 눈을 게슴츠레 뜨며 바람난 아내를 대하듯 매섭게 노려봤다. 그때 갑자기 리온이 손을 뻗었다. 그의 손이 아무런 방해도 없이 그녀의 머리 위에 닿았을 때 험악하게 일그러지는 사이먼의 얼굴을 본 유진은 낭패감 어린 얼굴로 웃었다. 그것만이 목적이었다는 듯 머리 위의 먼지를 떼어 낸 리온이 손을 거두자 엉덩이를 들어 올렸던 사이먼은 엉거주춤하게 굳었다.
그러나 그가 다시 손을 들어 아리엘의 머리를 쓰다듬으려고 하자 그는 참지 않고 다가갔다. 찰싹 소리가 날 정도로 강하게 내쳐진 손에 리온도, 아리엘도 놀랐다.
“교수님?”
아리엘이 눈을 동그랗게 뜬 채로 돌아봤다. 리온도 지금의 상황을 이해하지 못한 얼굴이었다. 사이먼은 갑작스런 충동을 이기지 못해 벌인 일에 입을 떼지 못했다. 그러나 그냥 넘어가고 싶지는 않았다. 잠시만 한눈을 팔아도 그녀는 자꾸 그 또래의 사내들과 얽혀 있었다. 그 꼴이 보기 싫었다.
“질투하라고 명령하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