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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라이트 노벨 > 앨리스 노벨
· ISBN : 9788960520295
· 쪽수 : 362쪽
책 소개
목차
[2장] 해적선 안의 밀담
[3장] 황혼 무렵의 붉은 만행
[4장] 노예들의 약의 천사
[5장] 예언자의 눈물의 진실
[6장] 해적 공주의 배의 탐험
[7장] 꽃은 잠긴다
책속에서
“……죽임. 그만.”
몸을 완전히 돌린 가르시아가 눈썹을 살짝 찌푸렸다. 사사라는 조금 웃었다. 역시 안 돼, 같은 말밖에 나오지 않아. 갑자기 머리가 좋아질 리가 없지.
무섭고, 괴롭고, 역하기만 하지만, 어떻게든 사람을 지키고 싶은 마음은 진짜다. 몇 번이고 되풀이하면 위선에도 의미가 생겨난다. ―아니, 이 사람들을 지키고 싶다기보다는 해적들 손이 더는 피에 젖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렇다면 초지일관이다. 죽을 만큼 부탁할 테야!
“가르시아, 용서!”
“―사사라, 아직도 그 소리냐.”
“쉽게 죽일 수 있으면 구할 수도 있잖아. 부탁, 죽임, 싫어.”
갑판에 주저앉은 자세로 깊이 머리를 숙이고 부탁한다.
“사사라, 무서워. 이런 거, 이제 싫어…… 무서워, 보고 싶지 않아.”
가르시아. 구해줘. 잔혹한 짓을 하는 사람은 가르시아인데 도움을 청하는 상대도 가르시아라니, 잘 생각해보면 기묘하다.
“과연. 그렇게 목숨을 구걸하는 건가?”
머리 위에서 내려오는 가르시아의 목소리는 조용했지만 지금까지와 다른 종류의 감정이 담겨있었다.
용기를 내서 고개를 들어본다. 가르시아가 팔짱을 끼고 냉정하게 사사라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명계의 꽃은 말이야, 뭔가―.”
문득 젤드가 기괴한 물건을 보는 것 같은 눈으로 끼어들었다. 사사라가 시선을 돌린 순간, 젤드는 어째서인지 뺨을 실룩이며 자신의 머리카락을 덥석 잡았다.
“뭔가, 머리 아파.”
망설이며 젤드를 보고 있자 왕이 떨어트린 작은 한숨에 생각하기도 전에 어깨가 흔들렸다. 사사라는 가르시아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짐, 훔침, 끝나. 충분. 이 사람들을, 죽임. 없음.”
목적이었던 짐은 손에 넣었으니 죽일 필요는 없다고 말하고 싶다.
별로 말을 나눈 적이 없는 해적 간부 중 한 명이 가르시아를 신경 쓰면서도 이리로 다가오려고 했다. 사사라는 순간적으로 ‘오지 마!’라고 목청을 돋웠다.
필사적으로 양손을 펼쳐 위협한다. 앉아서 그렇게 하니 볼썽사납긴 하지만.
허세를 부리는 사사라 앞에 가르시아가 몸을 굽혔다. 또 맞는 걸까. 그런 두려움이 치밀어 온몸이 경직된다. 하지만 여기서 손을 내리면 진다!
술을 꽉 깨물고 가르시아의 시선을 받는다.
“죽임, 안 돼. 사람, 울어. 그러면 분명 바다도 울 거야.”
짧은 이세계어와 일본어가 뒤섞여 뜻이 잘 전해지지 않을지도 모르지만, 분위기로 어떻게 알아차려 줬으면 좋겠다.
“사사라― 대단하군.”
가르시아는 입술 끝을 작게 들어 올렸다. 사냥감을 조준하는 눈이다. 한기가 든다.
“절대로 죽이지 말라는 거지?”
고개를 끄덕이고 싶은데 몸이 얼어붙는다. 가슴이 마구 두근거렸다.
“그럼 같은 처지가 되어보겠나?”
“……어?”
“그래, 너. 노예의 안부에 대해서도 신경을 썼지. 죽이지 않기를 바란다면, 이 사람들을 노예로서 일하게 하도록 하지. 너도 같은 처지가 되어보겠나?”
넋이 나갔다. 가르시아가 팔을 뻗어 우습다는 듯 눈을 가늘게 뜨고, 사사라의 머리카락을 만진다.
“어떻게 하겠나? 우리에 들어가고 싶나? 변변치 않은 음식밖에 먹지 못해. 아름다운 천도, 자유도, 태양 빛도 없지. 제멋대로 행동할 수도 없어. 지금까지처럼 예뻐하지도 않는다. 견딜 수 있나? 있는 대로 사치를 허락받던 네가?”
도리어 사사라의 마음에 말의 칼날이 꽂혔다.
“그걸 참을 수 없다면 입 다물고 있어.”
순종하면 지금까지처럼 허용받은 범위 내에서 좋을 대로 행동하게 해 주지. 그렇게 말하고 싶은가보다. 또 선택을 강요한다. 이번에는 사사라의 위선을 저울에 잰다.
눈을 감고 생각한다. 어떻게 할까. 지금의 생활을 포기한다고?
펼치고 있던 팔을 내리고 무릎 위에서 꽉 주먹을 움켜쥔다.
“……응.”
온 힘을 다해 어리광을 부리고 싶은 마음을 억누르며, 자신을 납득시킨다.
“모두를 구해줘, 가르시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