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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라이트 노벨 > 앨리스 노벨
· ISBN : 9788960525795
· 쪽수 : 260쪽
책 소개
목차
[2장] 마(魔)의 마을
[3장] 새로운 아침
[4장] 환상 속의 재회
[5장] 푸른 마을
리뷰
책속에서
“나를 좀 봐.”
다시 한 번의 요구에 류이의 진지하고 한결같은 눈동자를 바라보았다.
“내가 무엇을 생각했는지 알겠어?”
류이의 손이 내 목에 닿았다. 목이라도 졸리는 것이 아닌가 하고 순간적으로 오해를 하였지만 그게 아니었다.
“내가 어젯밤 무엇을 생각했을 것 같아? 네가 고통스러워하는 사이, 혼자서 죄의식에 사로잡혀 있는 동안…… 나는 분명한 기쁨을―.”
―기쁨이라고?
“멸망이 나라를 뒤덮기 시작할 무렵, 각 지방에서는 폭동과 투쟁이 발발했었지. 피해가 적은 적국들은 이를 계기로 침략을 위해 군대를 보내기도 했어. 나는 기사다. 적병을 퇴각시키기 위해 이런 마을이나 숲에 불을 지르기도 했지. 그때는 허무함밖에 느낄 수 없었는데, 지금은….”
류이의 눈이 과거를 비추다가 그리고 곧바로 현실로 돌아왔다.
“미쳐 버릴 정도로 기쁨을 느끼고 있어.”
“……어? 어째서…….”
“왜냐하면 너는 나와 함께 사는 길을 선택했으니까.”
그게 아니었다. 나는 내가 그 여인처럼 무참한 운명을 맞이하는 것이 싫어서―.
“너는 그들을 희생시키면서까지 나와 함께 걷는 길을 골랐어.”
“류이, 나는.”
괴로웠다.
그런 순수한 감정 따위 가지고 있지도 않았는데. 나는 아무 생각 없이 살아남을 궁리만 했을 뿐이었다.
“결과적으로는 그렇게 된 거다. 네가 양심의 가책을 느껴 괴로워하고 그 죄를 생각하는 만큼 비열하게도 나는 강한 희열을 느꼈어.”
“어젯밤…… 내 뒤를 밟은 거야?”
“그래.”
그렇게 고백하는 류이의 눈에 비열한 빛은 조금도 담겨 있지 않았다. 그저 나를 향한 진심 어린 상냥함과 위로의 마음만이 느껴졌다. 그러면서도 슬픔으로 빛나고 있었다.
“나를 위로해 주려는 거야……?”
“아니. 위로가 아니다. 너의 고통은 내 것이기도 하니까.”
류이는 망설임 없이 대답했다.
“그래서 네가 너의 나라를 잊지 않기 위해 필요한 물건을 찾으러 돌아가겠다고 말했을 때, 나는 순간적으로 너를 막고 싶었어.”
류이의 손이 나의 뺨을 살며시 쓰다듬었다. 금방 그 손은 내 얼굴에서 멀어졌다.
“그렇지만 너의 본심은 네 나라와 연관이 있는 물건을 찾는 것이 아니라 죄에 대해서만 향하고 있더군. 역시 나는 기쁨을 느끼고 말았어. 씻을 수 없는 죄를 앞에 두고 강한 우월감을 품고 있었던 거지.”
류이는 눈을 내리깔며 조용한 동작으로 나의 무릎에 머리를 갖다 대었다. 내 앞에 넙죽 엎드리기라도 하는 듯한 공손함이 있었다.
“네가 죄의식에 사로잡혀 괴로워하는 만큼 내 마음은 만족으로 가득 차. 너를 고통 속에서 빠뜨려 허우적거리게 만들고 싶지 않다고 생각하는 반면, 이렇게 함께 있는 것을 원했다. 나에게 있어서 이 광경이 보여 주는 죄는 깊고 검은 환희의 모습 이외로는 보이지 않았어.”
“그건 류이가 계속 혼자 있었고, 지금은 나를 잃는 것이 무서워서…….”
시간이 지나 냉정함을 되찾으면 생각이 바뀌게 될지도 모를 일이다.
내가 말로 잇지 못한 부정의 부분을 듣기라도 한 듯 류이는 얼굴을 들며 작게 고개를 저었다. 다시 곧바로 나의 무릎으로 머리를 묻었다.
“아니. 앞으로도 누가 곁에 있더라도 나는 더 이상 변하지 않을 거다.”
“류이.”
“이건 나의 죄이기도 해. 나도 그들의 희생을 받아들였으니까.”
“아니! 내가 전부 죽인 거야. 류이의 기분도 생각 안 하고!”
그때 보인 류이의 눈동자 색을 여전히 잊을 수가 없었다. 경외감과 공포감. 그 감정의 경계 따위는 그저 사소한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면 제게도 당신의 죄를 짊어지게 해 주세요.”
“무,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괴로움을 함께 나누고 싶다고 말한 건 당신입니다. ……가까이서 목소리를 듣고 싶다고 말한 사람도.”
나의 무릎에 뺨을 갖다 댄 채로 류이는 시선을 들어 올렸다. 나는 배에 힘껏 힘을 주어 몸속 깊은 곳에서 솟구쳐 올라오는 충동을 필사적으로 억눌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