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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독일소설
· ISBN : 9788954616294
· 쪽수 : 276쪽
책 소개
목차
포겔장의 서류들 _009
주 _249
해설 _261
빌헬름 라베 연보 _271
리뷰
책속에서
그는 그때 이미 그렇게 생각하고 말할 줄 알았다. 그는 어떤 왕국의 주인이었다.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그 왕국은 이 세상에 속한 곳이 아니었다. 나는 이것을 서류로 갖고 있다. 서류에 걸맞은 양식은 아니지만. 나는 작성되지 않은 것, 기록되지 않은 것, 도장 찍히지 않은 것, 봉인되지 않은 것에서 이 모든 것을 꺼내어 그것들이 사실임을 보증한다.
이 서류들을 오래 붙잡고 있을수록, 이 종이 위에 쏟아놓은 것이 더 분명하고 명확하게 내 감각과 사고 속으로 들어올수록, 윗사람과 아랫사람에게 인정받은 나의 좋은 사무용 문체는 사라져간다! 지금까지 지극히 냉정했던 문체가 이제 허깨비 같은 것이 된다. 서류더미들은 진동한다. 사방 벽에 있는 서류철 속에서 점점 더 위태롭게 진동하더니 기어이 내 머리 위로 쏟아져 내릴 듯한 표정을 짓는다. 나도 어쩔 수 없다. 처음으로 이 책상에서, 그렇다, 이 책상에서 내 손에 들려 있는 펜이 마음대로 움직이지 않는다.
그는 나의 친구였고 나는 그의 친구였다. 나는 그의 인생을 함께 겪었다. 하지만 여기 이 문서들 앞에서, 페이지가 한 장씩 넘어갈수록 그에 대해 말하는 과제를 수행하기엔 내가 역부족이라는 생각이 엄습한다. 나는 내가 이룰 수 있는 모든 것을 이루었다. 그는 세상이 말하는 것처럼 아무것도 이루지 못했다. 그렇지만 속에서 그에 대한 질투심이 솟지 않게 정신을 차려야 한다! 오늘 내가 그의 무덤 앞에서, 나를 포함한 우리 세계에 대한 그의 압도적 승리로 끝난 소송의 무미건조한 기록자가 되는 것 외에 달리 무엇을 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