멜란히톤, 깔뱅 그리고 위그노
류성민 | 가르침
6,300원 | 20210627 | 9791196857936
프랑스 위그노 연구소 연감 세 번째,
멜란히톤과 깔뱅의 서신을 통해 이 세상에서 참된 신앙을 따르고자 고난의 삶을 감당하고 위대한 성도의 삶을 산 위그노를 만날 수 있다.
이 책에서는 종교개혁 초기 중심지인 비텐베르크(Wittenberg)의 대표적 개혁자 멜란히톤(Philipp Melan-chthon, 1497-1560)과 프랑스 개신교 피난민 중 대표적 개혁자 깔뱅(Jean Calvin, 1509-1564)의 서신 교환을 살펴보려고 한다. 두 개혁자들은 29차례의 서신 교환을 가졌다. 당시의 서신 교환은 둘 사이의 개인적인 의사소통을 넘어 공개적이며 공식적인 신학적 정치적 입장선언과 토론과 논쟁과 협의의 수단이었다. 그러므로 서신교환의 의미를 정확하기 파악하기 위해서는 당시의 역사적, 신학적 배경을 파악하는 것이 필요하다. 멜란히톤과 깔뱅의 서신 교환은 1540년대에서 1550년대의 정치적 종교적 상황과 매우 긴밀한 연관이 있기 때문에, 서신의 내용에 더하여 당시의 정황을 가급적 간략하게 소개하려고 한다. 이런 방식의 설명을 통해 종교개혁의 인물들과 신학이 어떤 현실적 배경에서 연결되고, 발전하고 있었는지, 그리고 당시 역사적 신학적 정황에서 어떤 의미를 가지고, 서로 이해되는지를 살펴볼 것이다. 또한 이런 방식으로 그들의 서신 교환을 통해 비텐베르크와 제네바의 신학적 연결고리를 살펴보고, 이와 관련된 위그노와의 연결고리 역시 보여줄 수 있을 것이다.
멜란히톤은 독일 브레텐(Bretten) 출신으로 하이델베르크(Heidelberg)와 튀빙엔(T?bingen) 대학에서 공부하고 철학석사 학위(M.A.)를 취득하였다. 그리고 1518년 비텐베르크의 헬라어 교수로 임용된다. 이후 그는 독일의 대표적인 인문학자이자 교육 개혁자요, 종교개혁 1세대의 대표적 신학자로 활동하였다.
깔뱅은 프랑스 누와용(Noyon) 출신으로 법학을 공부하다가, 개혁자의 길로 돌이켰던 인물이다. 그는 종교개혁 2세대의 대표적 인물로, 독일의 개혁자들의 책을 통해 종교개혁 신학을 배웠다. 그 과정에서 루터(Martin Luther, 1483-1546)와 멜란히톤의 영향은 절대적이었다. 깔뱅은 개혁신앙과 관련된 일련의 사건으로 프랑스를 떠나 난민이 되었다. 그리고 제네바에 정착하여 활동하였고, 개혁파 신학의 대표 신학자로 인정받았다. 특히 프랑스 개신교회를 위해 목사와 선교사를 교육하여 파송하는 큰 역할을 감당했고 위그노를 위해 다방면으로 노력을 기울였다.
위그노(Huguenot)는 프랑스의 개신교를 가리키는 표현이다. 프랑스 개신교는 여러 이유로 우리에게 잘 알려져 있지 않다. 종교개혁의 시작이 독일이었고, 프랑스는 그 영향을 종교개혁 초기부터 받았지만, 중앙집권적 왕권국가에서 가톨릭에 치우친 정권의 강력한 저지로 종교개혁은 상당한 곤란을 겪어야만 했다. 엄청난 고난과 핍박 속에서도 많은 프랑스 개신교인들은 성경에 따른 참 신앙을 지키고, 바른 교회를 세워나가려고 노력하였다. 그런 이유에서 한편으로 프랑스 내에서 그들의 세력은 작을 수밖에 없었다. 다른 한편으로 지속된 핍박 속에서 많은 프랑스 개신교인들은 신앙의 자유를 찾아 결국 본토를 떠나야 했다. 깔뱅이 그들 중 한 명이다. 그러나 그렇게 떠나 새로 정착한 곳에서도 그들이 원하는 신앙생활은 쉽게 이루어지지 못했다. 프랑스 개신교인들은 대부분 개혁파(Reformed)였던 반면, 그들이 피난한 주요 장소 중 루터파(Lutheran) 지역이 많았기 때문이다. 그들은 신앙으로 인해 조국 프랑스에서 핍박을 받았고, 떠난 피난지에서도 상당한 곤란을 겪게 되었다. 이렇게 위그노는 이 세상에서 참된 신앙을 따르고자 고난의 삶을 감당한 위대한 성도의 삶을 살았다. 우리는 그 증거를 멜란히톤과 깔뱅의 서신 교환 중에서 찾게 될 것이다. 피난지에서 위그노들이 어떤 일을 겪게 되었는가에 대한 당시 상황과 위그노의 신앙에 대한 현실적 예를 볼 것이다.
멜란히톤과 깔뱅의 교환서신은 총 29개이다. 이 책에서는 서신들을 시기별로 첫째, 첫 만남, 둘째, 하나를 위한 노력, 셋째, 전쟁 이후, 넷째, 종교평화와 위그노라는 제목으로 나누어 살펴볼 것이다. 멜란히톤과 깔뱅을 통해 종교개혁이 한 국가나 한 도시에 제한된 국지적 현상이 아니라, 유럽의 전체적 사건이며 당대의 정치적 영향뿐만 아니라 신학적 사조의 영향과도 긴밀한 연관을 가진 사건임이 분명해질 것이다. 또한 두 인물의 관계를 분명하게 함으로써 종교개혁의 핵심 주제와 관심, 통일성이 드러날 것이다. 마지막으로 프랑스 개신교인들, 위그노가 종교개혁의 뿌리인 비텐베르크와 어떤 정치적 신학적 관계를 가지는가를 어느 정도 볼 수 있기를 기대한다.
- 서론중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