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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으)로 1,683개의 도서가 검색 되었습니다.
9788982183706

난잎에 베이다 (박찬순 장편소설)

박찬순  | 강
13,500원  | 20251025  | 9788982183706
난잎에 어린 세 겹의 이야기 삼십대 중반의 여성 주인공 ‘나’(서홍화)는 10년 동안의 서울 직장 생활을 접고 경북 안동 낙동강 상류 마을로 내려와 농가 일손을 돕는 ‘마을인턴’과 래프팅 강사로 일하며 새로운 삶의 길을 모색한다. 그러던 중 인근에서 춘란연구소 다윈농장을 운영하는 소심, 세엽 남매의 부탁을 받고 ‘난(蘭)’에 얽힌 비밀스런 세계로 발을 내딛게 된다. 남매의 아버지 류포의 춘란연구소 소장은 생후 3개월에 독일로 입양된 인물로 세계적인 원예학자가 된 뒤 20여 년 전 한국으로 돌아왔다. 국산 춘란의 향기가 미미한 것을 안타까워하던 그는 생모에 대한 그리움으로 춘란에 향기를 입히는 일에 전념하다 의문의 죽음을 맞는다. 서홍화는 소심, 세엽 남매와 함께 류 소장의 마지막 동선을 뒤쫓고 그가 사망하기 전날 만났던 사람들을 찾아다닌다. 그러는 과정에서 서홍화는 류 소장이 죽기 전 되짚어가던 장소들이 모두 조선 후기의 풍속화가 김홍도와 관련되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사건에 얽힌 이야기는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확장된다. 서홍화는 류 소장의 금고에서 발견된 일기와 오래된 아기 옷에 수놓인 난초 문양을 단서로 세엽과 함께 독일 뮌헨 근교의 수도원으로 향한다. 그곳에서 두 사람이 발견하게 되는 것은 오랜 시간 동안 감추어져 있던 그림 「난향을 맡는 소녀」의 청아하고도 은은한 비밀이다.
9788982183683

희주

박향  | 강
13,500원  | 20250627  | 9788982183683
『희주』는 ‘몸’에 대한 이야기이며, 동시에 세 명의 ‘희주’에 대한 이야기이다. 소설은 1인칭 화자 희주를 통해 유방암 진단을 받은 중년 여성의 투병기를 사실적으로 전한다. 질병을 진단받는 순간, 그리고 항암과 방사선 치료를 반복적으로 받는 과정에서 겪는 신체적 고통, 그 고통이 불러일으키는 부대끼고 무너져가는 내면 풍경이 면밀하게 그려진다. 일상은 나를 간단하게 배반했다. 삶의 질은 떨어졌다. 자주 화장실에 드나들어야 하고, 오래 앉아 있어야 소변이 겨우 나왔다. 빈속이나 밥을 먹은 후나 상관없이 오심을 느끼고, 설사와 변비가 번갈아 왔으며, 음식의 맛을 제대로 느끼지 못했다. 손톱과 발톱이 시커멓게 변하고 급기야 덜렁거리는 것도 생겼다. 그러니까 온통 발진 같은 꽃들이 앞다투어 피어나 기름 속에 떨어뜨린 물처럼 튀어 오르고 야단법석을 떨었다. 꽃이 핀 몸이 말을 하기 시작했다. 여기가 아프다고, 걷지 못하겠다고, 밥을 못 먹겠다고. 마취약이 몸속에 들어갈 때의 선뜩한 느낌에서부터 주렁주렁 달린 갖가지 종류의 수액들의 이야기가 나온다. 수술 후 통증, 얼굴이 퉁퉁 부으며 끊임없이 시달리는 구토와 음식에 대한 혐오증, ‘온몸에 젖은 이불을 둘러씌운 듯한’ 나른함과 무력감, 두통과 불면…… 머리카락과 눈썹을 비롯해 온몸의 털이란 털이 죄다 빠져 나가는가 하면 마침내는 발톱마저 덜렁거리며 떨어져 나간다. 작가는 화자의 입을 빌려 이 모든 상황과 증상을 치밀하게 재현해낸다. 투병기가 소설의 겉껍질이라면, 이 소설의 비의는 더 깊은 곳에 있다. 기억의 지층에 파묻힌 상처를 추적하는 시간 여행이 이 소설의 속살이다. 호미로 땅을 조금씩 긁어내고 솔로 흙가루를 털어내는 집요한 작업 끝에 묻혀 있던 고대의 토기를 발굴하는 고고학자처럼 작가는 조금씩 조금씩 상처의 단서를 지상으로 끌어올린다. 입원한 화자는 어느 밤 환청 같은 두 살짜리 여자아이의 목소리를 듣는다. 그 목소리의 주인은 화자와 같은 이름의 ‘희주’이다. 그 아이는 화자가 기억의 심층에 파묻어버린 어린 시절의 상처를 환기시키고 헤집는다. 두 살짜리 희주는 화자 희주가 태어나기도 전에 죽은 친언니이다. ‘희주’와 ‘희주’의 만남 속에서 묻혀 있던 비밀이 하나씩 드러난다. 소설 속에는 또 다른 ‘희주’도 나온다. 화자의 딸인 유미다. 화자의 엄마는 딸에게 냉담했던 것과는 달리 외손녀에게 병적인 집착을 보인다. 엄마의 고통 속에선 외손녀가 첫딸 ‘희주’가 되었다. 유미는 엄마를 건너뛰어 할머니와 애착 관계를 형성하는 듯 보였지만, 자신을 늘 ‘희주’로 부르고 죽은 딸의 그림자를 끊임없이 손녀에게서 찾는 할머니에게서 역시 상처를 입었음을 고백한다. 다르게 보면 이 소설은 ‘희주’라는 이름을 고리 삼은 모녀 삼대의 가족 서사이기도 하다. 미술을 전공한 유미는 ‘희주야!’라는 이름의 행위미술전을 열어 할머니에게서 입은 유년기의 상처를 드러내고 스스로 치유에 나선다. 그것은 상처 입은 엄마를 위로하고 치유하는 기제이기도 하다. 살아 있는 이를 위한 씻김굿이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화자는 언니 ‘희주’와 딸 ‘희주’의 도움으로 서서히 유년의 상처를 치유할 힘을 얻는다. 이 소설은 화자 자신과 엄마의 대립과 갈등, 딸과의 간극, 남편과의 이혼, 시력을 잃어가는 친구의 아픔 등 여러 가지 상처를 밀도 있게 교직하면서 우리 누구나 마주칠 수 있는 남루하고도 아픈 삶의 대목을 풀어놓는다. 그리고 단추를 꿰듯 하나씩 하나씩 정면에서 응시하고, 성찰하며 화해와 용서의 방법을 찾아 나선다. 그리고 끝내는 치유와 해방의 길로 독자를 이끌고 있다. 그렇게 보면 이 소설은 상처와 치유, 굴레와 해방에 관한 이야기라고도 할 수 있겠다.
9788982183638

모경의 빛 (박형숙 연작소설)

박형숙  | 강
13,500원  | 20250521  | 9788982183638
연작소설 『모경의 빛』에서 우리가 반복적으로 만나게 되는 것은 지난 연대 서울 변두리 산동네에 터를 잡은 한 가족의 초상이다. 도장업(‘뺑끼쟁이’)으로 일곱 식구의 생계를 책임진 과묵한 아버지, 빈한한 살림일망정 자식들의 교육에 열성이었던 품 넓은 어머니, 그리고 1남 4녀의 자식들로 이루어진 가족의 이야기는 산업화와 민주화의 시대를 거치며 급속하게 변화해온 한국 사회의 한 전형을 담고 있다. 빈곤 탈출, 계층 상승의 사다리를 향한 열망이 사회 전체에 들끓었던 시기의 핍진한 이야기는 세목 세목에서 뭉클하고 착잡한 시간의 아우라에 둘러싸여 있다. 그런데 『모경의 빛』이 지나간 시간의 작은 실타래들을 기억의 힘으로 정밀하게 복원하며 하고자 하는 일은 그 변화하는 사회적 배경 안에 있으되, 끝내 해소되지 않는 개인적이고 실존적인 물음인 듯하다. 연작소설의 중심 화자는 집안의 막내딸이라고 할 수 있는데, 소설에서 일인칭의 ‘나’, 이인칭의 ‘너’로 등장하거나, 때로는 ‘인해’, ‘세경’과 같은 이름을 부여받고 삼인칭으로 나오기도 한다. 작가의 분신, 페르소나로 짐작되는 이 인물에게 닥친 실존적 위기의식이 ‘가족’과 스스로에 대한 질문으로 이어지면서 아홉 편의 ‘가족 이야기’를 낳고 있다.
9788982183652

꿈결에 시를 베다 (손세실리아 시집)

손세실리아  | 강
13,500원  | 20250530  | 9788982183652
2001년 『사람의문학』 『창작과비평』 등을 통해 작품 활동을 시작하며 연민과 위로, 희망의 언어로 시를 써온 손세실리아 시인의 두번째 시집 『꿈결에 시를 베다』가 도서출판 강에서 양장 개정판으로 새롭게 출간되었다. 소외된 존재들을 돌아보는 시인의 시선은 속 깊은 자성의 언어 속에 섬세하게 감싸여 있다.
9788982183669

기차를 놓치다 (손세실리아 시집)

손세실리아  | 강
13,500원  | 20250530  | 9788982183669
2001년 『사람의문학』 『창작과비평』 등을 통해 작품 활동을 시작하며 연민과 위로, 희망의 언어로 시를 써온 손세실리아 시인의 첫번째 시집 『기차를 놓치다』가 도서출판 강에서 양장 개정판으로 새롭게 출간되었다. 세상의 슬픔을 곡진하게 노래하면서도, 시인은 어둡고 좁은 터널의 반대편에 있는 구원의 가능성을 놓치지 않는다.
9788982183614

봉준호 되기 (봉준호를 만든 교과서와 스승들)

남다은, 정한석  | 강
18,000원  | 20250310  | 9788982183614
모두가 기다렸던 방식으로 ‘봉준호’를 말한다 “부끄럽지만 이것이 나의 지난 이야기다. 과거의 마침표이자 미래의 출발점으로 삼고 싶다.” 봉준호(영화감독) 2025년 3월 현재 봉준호 감독의 신작 〈미키 17〉이 개봉되어 관객들과 만나고 있다. 봉준호는 이제까지 일곱 편의 장편을 선보였다. 대부분은 비평적 찬사를 받았고, 네 편은 광범한 대중적인 성공을 거두었다. 그의 영화를 눈여겨봐온 사람이라면 알겠지만, 그는 한 번도 전작의 성공 공식에 기대 다음 작품을 만든 적이 없다. 실제 미제 사건을 미결의 범죄스릴러로 재현한 두번째 장편 〈살인의 추억〉(2003), 불과 110억 원의 제작비로 괴수가 단 125숏에만 등장하는 희귀한 크리처 영화 〈괴물〉, 아들의 살인죄를 숨기기 위해 목격자를 살해한 엄마가 관광버스에서 춤추는 장면으로 끝나는, 떠올리기조차 힘든 괴이한 범죄스릴러 〈마더〉, 유명 할리우드 배우들을 대거 기용한 대형 국제적 프로젝트 〈설국열차〉(2013)와 〈옥자〉(2017), 그리고 다시 한국적 상황으로 돌아와 초대형 세트에서 홍수의 재난을 만들어낸 〈기생충〉에 이르기까지, 봉준호는 자신을 탈진시킬 정도로 모험적인 프로젝트가 아니라면 도무지 흥미가 없다는 듯, 도전적인 작업을 계속해왔다. 어떤 영화를 본 뒤에 그 영화를 만든 감독의 머릿속을 열고 들여다보고 싶은 충동을 느낄 때가 있다. 아마도 그 영화가 예상치 못한 지적 감정적 충격을 주었거나, 작품의 화술과 기예가 너무도 경묘해 찬탄을 불러일으켰을 때일 것이다. 이 책의 필자들에겐 봉준호가 그런 감독이다. 〈괴물〉(2006)에서 송강호 가족이 합동 장례식장에서 바닥을 뒹굴며 난동과도 같은 합동 오열을 할 때, 〈마더〉(2009)에서 취조 형사 송새벽이 뜬금없이 세팍타크로 강의를 늘어놓다 돌연 용의자 원빈의 입에 물린 사과를 돌려 찰 때, 〈기생충〉(2019)에서 피와 땀이 범벅된 지하실 남자가 벽에 머리를 박다가 충혈된 눈을 부라리며 “리스펙”이라고 소리 지를 때, 이 예측 불가능하지만 너무도 현실적인, 동시에 우스꽝스럽고도 위협적인 장면을 어떻게 떠올릴 수 있었을까? 무엇보다, 온갖 이질적인 것들이 모여 있는데도 어떻게 그토록 조밀하고 유연하고 단단한 하나의 덩어리를 빚어낼 수 있었을까. 영국에서 봉준호와 대담을 진행한 감독 라이언 존슨(〈나이브스 아웃〉, 2019)의 표현대로 그의 “미친 두뇌(insane brain)”가 궁금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 책의 제목 ‘봉준호 되기’도 존 말코비치의 두뇌 속으로의 가상 여행을 다룬 〈존 말코비치 되기〉(스파이크 존즈, 1999)에서 힌트를 얻었다. 물론 봉준호 감독의 머릿속을 온전히 이해하는 건 불가능하다. 창작 과정에서 창작자의 두뇌가 작동하는 비밀스런 메커니즘은 분석적 접근이 불가능한 마법에 속한다. 하지만 적어도 지금까지 알려진 것보다는 조금 더 깊은 곳을 들여다볼 수는 없을까. 이런 호기심이 이 책의 출발점이었다. 봉준호는 어떤 감독보다 다양한 텍스트들에서, 혹은 뜻밖의 텍스트들에서 영감을 얻는 창작자이다. 그리고 그 영감의 원천들은 어떤 다른 감독의 경우보다 더 직접적으로 작품에 새겨져 있다. 이 책의 필자들은 그에게 더 많이 물어서 그 영감의 원천들을 더 넓게 더 깊이 알고 싶었다. 두 필자는 이 책을 위해서 봉준호 감독과 모두 여덟 시간에 걸쳐 네 차례의 대화를 가졌다. 그의 영화적 교과서와 스승들뿐만 아니라 구체적 텍스트로 환원될 수 없는 환경과 기질과 취향도 물었고, 봉준호 감독은 친절하고 세심하게 답해주었다. 봉준호 감독은 고등학생 때 성당 간행물에 그린 일곱 쪽짜리 만화(김동인의 단편소설 「거지」의 결말을 충격적으로 바꿔 그렸다)를 포함해 여러 유용한 시각 자료도 제공해주었다. 어린 봉준호를 영화의 세계로 이끈 TV라는 ‘시네마테크’/‘이야기 상자’, 만화와 애니메이션, 불안과 서스펜스의 범죄스릴러 세계(추리소설)와 관련된 흥미로운 이야기들은 이 책의 1부 ‘TV소년 준호’ ‘미래소년 코난’ ‘만화의 광맥’ ‘소설과 불화한 추리광’ 장에 녹아들었다. 독자들은 여기서 봉준호 감독의 영화적 뿌리와 원천만이 아니라 ‘걸출하고 개성적인 이야기꾼’의 탄생 과정을 지켜볼 수 있을 것이다. ‘이야기꾼’으로서의 봉준호 감독에 대한 주목은 그가 가장 존경하는 알프레드 히치콕 감독과의 영향 관계, 두 감독의 공통 유전자에 대한 논의로 확장되면서 히치콕의 창조적 계승자로서 봉준호 감독의 고유한 영화적 인장과 비밀에 다가간다(1부 7장 ‘히치콕이라는 거대한 그림자’). 봉준호 감독의 본격적인 영화 수업기인 대학 시절, 그가 체감했던 시대의 부조리는 ‘부조리와 욕망의 스승, 김기영과 이마무라 쇼헤이’ 장에서 봉준호 영화의 곳곳에 스며 있는 설명하기 힘든 정념의 장면들, 아이러니한 영화적 수사학과 함께 조명된다. 2부 ‘봉준호와의 대화 : ‘나’라는 텍스트를 말한다’에서는 봉준호 감독의 육성으로 그 자신의 영화적 원천과 영화 수업 과정, 영화적 영감과 영화 만들기에 얽힌 흥미로운 이야기들과 함께, 불안과 강박에 얽힌 개인적인 고백도 접할 수 있다. 3부에는 봉준호 감독을 매혹시키며 그를 영화의 세계로 이끈 할리우드 장르 영화의 목록들을 생생하게 탐사하고, 봉준호 감독이 꼽은 여러 ‘베스트 목록’을 선보인다. ‘봉준호의 이 한 장면 : 베스트 신 10’에서는 그에게 지속적으로 영화적 영감을 주는 영화의 신(scene)들을 구체적인 장면 설명과 함께 보여준다. (1부에는 그가 좋아하는 애니메이션, 만화, 추리소설 베스트 목록을 담았다.) 부록으로는 동시대 일본을 대표하는 하마구치 류스케 감독의 강연록 ‘하마구치 류스케가 봉준호에게 배운 것’을 수록했다. 하마구치 감독은 봉준호 감독의 영화에서 받은 충격을 진솔하게 고백하면서 〈살인의 추억〉의 명장면들을 예시로 봉준호 영화의 힘을 감동적으로 풀어낸다. 그는 “〈기생충〉을 보고 난 후, 저는 알프레드 히치콕을 잇는 유일한 존재가 봉준호 감독이라고 생각했습니다”라며 강연을 마무리하고 있다. 이 책은 봉준호의 영화 세계에 관심을 가진 독자들과 영화 창작자를 꿈꾸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쓰였다. 그리고 봉준호의 영화 세계를 형성하는 데 바탕이 되고 영감을 준 텍스트들, 달리 말해 봉준호만의 영화 교과서를 정리해보고 싶다는 의도에서 만들어졌다. 하지만 이 책에 실린 봉준호의 영화적 원천을 되새기면서, 사회성과 정치성과 장르성에 관심이 모아져온 그의 작품들에서, 시청각적 표현들이 영화 서사의 중핵을 이루는 소위 ‘순수영화’적 자질 그리고 이질적 혼종성과 역동적 응집성이라는 성격이 더 깊이 재조명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도 있다. 이 책이 봉준호의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들, 혹은 그로부터 배우려는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9788982183676

플라나리아

전상국  | 강
19,800원  | 20250610  | 9788982183676
『플라나리아』에 수록된 전상국의 작품들에서 사람들은 거듭 떠나거나 사라지거나 숨는다. 가령 「너브내 아라리」에서 쏘가리 최씨는 반공포로라는 그의 이력이 불러오게 될 사회적 박해를 피해 장항리라는 오지 마을에서 철저히 고립된 삶을 살아가고, 제목부터가 「실종」인 소설에서는 30년 이상의 시간적 격차를 둔 두 실종 사건이 겹쳐지면서 실종이라는 테마에 내장된 문제성의 집요함을 암시한다. 또 「이미지로 간다」에서 미지라는 인물의 죽음으로 형상화된 실종의 테마는 상실의 고통과 이것에서 벗어나려는 의지 사이의 간극이 펼쳐내는 정신적·물리적 공간 속에서의 방황의 몸짓을 낳기도 한다. 이보다 단순하게 「온 생애의 한순간」 「플라나리아」 「소양강 처녀」 등의 작품들에서 실종의 테마는 사귀거나 같이 살던 여자의 떠남이라는 직설적 행위로 구체화되고, 「물매화 사랑」에서 그것은 「너브내 아라리」와 비슷한 은둔의 형태를 취한다. 이렇게 『플라나리아』에 수록된 거의 대부분의 소설들은 그 서술과 형상화의 방식이나 의미화의 구조를 달리하면서도 하나같이 실종의 테마를 중심으로 한 동심원을 이루고 있다. 작품들의 발표 연도를 볼 때 1997년에서 2004년에 이르는 7년여의 짧지 않은 세월 동안 실종의 테마는 전상국의 글쓰기를 이끌어온 예인선이었던 셈이다.
9791172246884

조현진  | 북랩
12,600원  | 20250613  | 9791172246884
마음 깊은 울림을 따라 잃어버린 시를 찾아 나선 여정 무의식 저편, 사랑의 감정을 조용히 노래하는 목소리 흐르는 강물처럼, 말보다 먼저 마음이 지나갔다. 그리고 그 자리에 시가 피어났다. 이 책은, 마음의 강을 따라 흘러온 언어의 기록이다. 시인은 삶의 가장 깊고 어두운 물줄기에서부터 사랑과 증오, 고통과 해탈, 기억과 상실의 물결을 차례로 건너며 이 한 권의 시집에 다다른다. 삶은 때때로 소용돌이처럼 격렬하고, 어느 날엔 신기루처럼 허망하다. 그러나 시인은 멈추지 않고 흐른다. 어디에도 머무르지 않고, 때로는 갈대처럼 흔들리며 때로는 거대한 강줄기처럼 모든 것을 끌어안고 흘러간다. 이 시집은 단지 ‘시’에 머물지 않는다. 그 안에는 인간과 우주의 운명을 되묻는 철학, 신성과 현실의 모순을 끌어안는 사유, 무너진 신념과 되살아나는 사랑이 뜨겁게 교차한다. 읽는 이는 문장의 끝에서 자주 멈추게 된다. 시인의 고백이 곧 내 이야기 같기 때문이다. 우리가 잊고 지낸 것들, 감히 꺼내지 못한 말들, 견디고도 말하지 않았던 모든 감정이 이 시를 통해 다시 떠오른다. 『강』은 그렇게 우리 각자의 내면을 흐르는 또 하나의 강이 되어 묻는다. “그대는 지금 어디를 향해 흐르고 있는가.”
9788982183690

내 영혼 그대의 몸속으로

박설호  | 강
11,700원  | 20250702  | 9788982183690
불가능과 가능 사이의 소망은 시간의 잔해, 과거라는 시간의 타자성을 향해서도 열린다. 어쩌면 ‘빙의의 시학’이 가닿고자 하는 가장 간절한 지점이 이 어름일지도 모르겠다. 시인의 시에는 ‘늘픔’ ‘돌꼇잠’ ‘살매’ ‘는실난실’ ‘고수련’ ‘그느른’ 등 사라져가는 모국어가 많다. 그것은 그 단어들이 품고 있는 오래된 시간에 대한 사랑이기도 할 것이다. 시인의 시학에서 모국어의 속살과 ‘그대의 몸속’은 둘이 아니다. 박설호의 시집 『내 영혼 그대의 몸속으로』의 시어들은 버려지고 망각된 것들을 향한 기나긴 그리움 속에서 자라나온 것이다. 거기, 사랑이 있다고 시인은 조용히 말하고 있다. ‘발문’에서_ 정홍수(문학평론가)
9788982183645

더 헐렁하게 사랑하든지 (이사라 시집)

이사라  | 강
10,800원  | 20250508  | 9788982183645
이사라의 여덟번째 시집 『더 헐렁하게 사랑하든지』에는 이 세상의 끝에 다다른 자의 감회가 도저하다. “우리들 함께 살았는데/그들이 떠나고/당신이 떠난다”(「유언」) 우리가 함께했던 날들은 이제 기억 속에서만 건재하고 어느새 이별은 삶의 형식이 되었다. “곧 우리 생의 화면은 깨지”(「종교적」)고 나는 사라질 것이다. 한 생이 마감을 염두에 두고 있다. 그런데 “밖은 이미 어둡고/저 무지개 너머의 세상은 더 이상 없다고/느낄 때” 바로 그 순간 시인은 “이렇게밖에 할 수 없어서/나에게 미안해//겨우겨우 살아내서 미안해”(「안에서 만져지는 몽글몽글한 슬픔」)라고 느닷없는 자책을 쏟아내고 있어 주목을 요한다. 1981년 『문학사상』으로 등단한 이래 시업 40여 년을 넘어서는 동안 심연 속 상처를 시의 표면 위로 불러내는 데 인색했던 ‘미학적 슬픔’의 대가는 이번 시집에 이르러 그동안 접어두고 억제해온 슬픔의 주름을 풀고 ‘몽글몽글한’ 회한의 감상 덩어리를 끄집어내 거침없이 만지고 또 ‘만진다’. “새 풀과 새 물이 필요해요/언제나 건조해요/정착했는데 아닌가 봐요”(「유목」)라고 원하는 것을 분명하게 요청하는가 하면, “너와 사는 동안/순간순간/울컥했다”(「울컥」)고 직접적으로 고백하고 “그게 다 사랑 때문이야/누가 무어라 해도/그래!”(「그게 다 사랑 때문이야」)라고 격렬하게 감정을 토로하기도 한다. 에드워드 사이드가 말하는 ‘말년의 양식(late style)’이라고 할까. 예술가들의 노년에 종종 발견되는 비타협, 풀리지 않는 모순, 구조적 불협화음 등을 안정감이나 삶의 연륜, 지혜 등과 대비시키는 사이드는 조화와 해결의 징표 대신 예술가가 이제까지의 기존의 사회 질서와의 원활한 관계를 포기하고 과감하게 뜻밖의 관계를 새롭게 형성하는 지점에 주목한다. 소위 ‘자발적 망명’으로 규정되는 노대가의 지배체제와의 비타협적인 면모가 성숙한 예술의 지양된 형식보다 예술의 실체에 부합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사라의 이번 시집에서도 우리는 이러한 면모를 확인할 수 있다. 물론 이 시집에는 2000년대 이후 시인의 작업, 이를테면 『시간이 지나간 시간』(2002), 『가족박물관』(2008), 『훗날 훗사람』(2013), 『저녁이 쉽게 오는 사람에게』(2018) 등의 여운이 없지 않으며 그것들을 심화하고 갱신하려는 의지도 두드러진다. 특히 과거, 현재, 미래로 이어지는 일직선적 진화론의 시간관에서 벗어나 시간을 과거와 미래가 동시에 현재로 출몰하는 ‘진흙 덩어리’이자 파편 같은 ‘토막’, 그리고 그 토막들이 서로 엮인 ‘사다리’ 같은 것으로 감수하는 지점은 여전하다. 그러나 이번 시집이 그동안 엄숙하게 고수해온 미학적 절제에서 벗어나 나이 들어가는 자의 감정을 자유롭게 직설적으로 분출하는 대목은 새롭다고 할 만하다. 형이상학적 주체에서 몸의 실존으로 옮겨가는 정체성의 재구성 과정이 슬픔의 눈물을 통해 타자와 공감하는 장면도 돋보인다. 무엇보다도 이 시집이 나와 너의 공감의 가능성에 문을 열어놓고 있지만, 완전한 합치의 전체성에는 격렬하고 냉소적으로 저항하는 부분도 흥미롭다. 이 ‘헐렁한 틈새’의 시학은 말년에 이른 이사라의 시의 또 다른 출발이라고 할 수 있다.
9788982183577

우리는 오로라를 기다리고 (서정아 소설집)

서정아  | 강
13,500원  | 20241230  | 9788982183577
2024년 부산소설문학상을 수상한 서정아의 세번째 소설집이다. 서정아는 이번 소설집에서 가족 제도, 사랑의 환상을 집요하고 정밀하게 탐문한다. 「거미줄」은 가족이 배타적인 동일성의 악력을 행사하는 어떤 이념의 결사체라는 것을 선명하게 보여주는 소설이다. 거미줄은 거미의 ‘집’이면서 동시에 먹잇감을 낚아채는 ‘덫’이기도 하다. 그러나 여자는 그것이 안전한 집이라고만 여겼을 뿐 먹잇감을 노리는 덫이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 집(삶)이면서 덫(죽임)이기도 한 ‘거미줄’은 온전하고 안락한 가족이라는 환상을 통해서 그 내부의 구성원들을 규율하고 약탈하는, 요컨대 가족이라는 체계의 역설적인 이중성을 적확하게 표현하는 상징이다. 체계는 정태적인 하나의 실체가 아니라 복잡한 배치와 생성하는 관계들의 연결로써 작동하는 어떤 망이며 흐름이다. 마찬가지로 여성 역시 본질적인 실체가 아니라 상호적인 관계와 맥락 속에서 만들어지는 어떤 과정이기 때문에, 고정된 하나의 정체성으로 매끄럽게 규정될 수 없다. 요컨대 여성을 여성으로서 규정하는 것은, 가부장적인 체계가 조장하는 정체성의 정치일 뿐이다. 여성은 하나의 실체로 환원될 수 없는 차이들로서, 저 배타적인 동일성의 체계가 압박하는 가운데서도 끈질기게 살아온 유연한 생명이다. 그러므로 여성을 누군가의 딸이자 아내이자 어머니로서, 그렇게 이름을 빼앗긴 익명의 존재로 환원하는 것은, 그야말로 살아 있는 한 생명을 상징적으로 말살하는 폭력인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여성들 간의 서로 다른 ‘차이’를 부각시키고 있는 「서로에게 좋은 일」과 「개미」는, 그 차이의 선명한 부각 자체로 바로 그 가부장적인 동일화의 폭력을 문제화한다. 이 두 소설에서 그 차이는, 특히 계급(계층)적인 것으로서, 자본주의와 가부장제의 제휴가 여성들 간의 우정과 연대를 어떻게 균열내고 또 분열시키는지를 인상 깊게 보여준다. 그러니까 자본주의적 가부장제는, 여성들 간의 고유한 차이들을 그들이 보유한 자산 역량의 격차로 환원하여 분류함으로써, 가진 자와 없는 자의 대립 속에서 적대와 적의의 정동을 발생시키고, 결국은 모종의 불신과 함께 서로를 등 돌리게 만든다. 「우리는 오로라를 기다리고」는 사랑의 불가능성, 다시 말해 ‘성적인 관계는 없다’는 라캉의 언명처럼, (우리가 기다리는) ‘오로라는 없다’는 것을 이야기한다. 화자인 서인은 불어로 인연이라는 뜻의 ‘Lien’이라는 이름의 음악감상실에서 인경을 처음 만났다. 인경은 그동안 만나왔던 남자들과는 결이 다른 사람이었으며 차이들을 무시하거나 단순화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의 복잡함을 섬세하게 읽어낼 줄 아는 감수성을 지니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랬던 그로부터 갑자기 연락이 끊어졌고, 몇 달 후 그의 아내로부터 걸려온 전화에서 인경이 죽었다는 것과, 그동안 그가 말해왔던 것들의 대부분이 거짓이었음을 알게 된다. 그리고 일종의 애도를 위한 것이었을까. 서인은 인경, 아니 그 사랑의 실존에 대한 의문에서 헤어나지 못한 채 혼자서 노르웨이로 여행을 떠나왔다. 오로라의 실체를 확인하기 위해서. 이 여행은 실존했는지조차 헷갈릴 정도의 충격을 주었던 사람(사랑)의 실체에 대한 번민 속에서 이루어진 것이었다. 그래서였는지 서인은 노르웨이로 향하는 비행기에서 “꿈과 몽상과 잡념”에 시달리고, 버스를 타고 달리는 동안에도 온통 하얀 눈으로 뒤덮인 차창 밖의 풍경을 바라보며 “다시 현실 감각이 무뎌지는 것”을 느낀다. “잘 안다고 자신했었는데, 누구보다도 그를 잘 아는 것은 나라고 확신했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그에 대해 안다고 여겼던 것이 과연 무엇이었나 싶었다.” 작은 차이를 무시하는 무신경한 사람이 아니었다고 믿었던 그 사랑은, 알고 보니 현전하지 않는 흔적일 뿐이었다. 그러므로 자신의 믿음을 배반당한 서인은, 현상 너머의 실체에 대한 형이상학적 의문에 휩싸인 채, 기어이 오로라를 찾아서 떠나와야만 했던 것이다. 인경이 했던 이 말을 기억하면서. “아름다운 건 언제나 위험을 내포하고 있잖아. 그걸 알면서도 들끓는 마음을 어쩌지 못해서 자꾸 욕망하게 되는걸.” 누구를 탓할 것도 없이, 형이상학의 치명적 매혹, 그 환상의 유혹에 빠져든 것은 서인 본인이었다. 「황벽나무 노란 속껍질」, 「최초의 부고」, 「유실물」은, 세속의 어떤 상처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그것 때문에 가능한 희망의 역설을 이야기한다. 「황벽나무 노란 속껍질」의 여자 역시 깊은 상처를 갖고 있다. 그리고 그 상처는 누구에게도 전혀 이해받지 못했고, 그래서 치유되지 못한 채 오래 방치되어 있다. 그런 여자 앞에 불현듯 나타나 살고 싶다는 의지를 불러일으킨 사람이 무경이다. 그는 이야기를 채록하고 연구하는 사람이었다. 어둑시니를 만나거든 올려다보지 말고 내려다보라고, 그리고 그 눈을 똑바로 바라보라고, 그러면 결국 그것이 사라져버리게 된다는 무경의 이야기에 여자는 눈물을 흘린다. 무경의 언어는 엄마의 술주정이나 상도의 욕설과는 전혀 다른 것이었다. 그렇게 자기를 이해해줄 수 있는 사람을 만났지만, 지금 여자의 현실에서는 무경의 존재와 그 언어에 닿기 어려웠다. “그의 언어에 닿고 싶고, 그것은 너무나 먼 곳에 있고, 나에게는 시간이 필요하다.” 여자는 고대의 불경이 황벽나무 노란 속껍질 속에서 변질되지 않고 천년의 시간을 견딜 수 있었다는 이야기에서처럼, 그 무해한 숙성의 시간이 갖는 힘을 깨닫는다. 여자는 무경이 떠나며 선물로 준 그의 책을 통해서, 어둑시니를 이겨내고 스스로 행복하게 될 수 있는 힘을 기르리라 다짐한다. 「유실물」은 파국을 암시하는 종말론적인 묵시록의 분위기 속에서 간절한 구원의 열망을 그려낸 소설이다. 지아와 조는 상실의 아픔을 앓고 있는 사람들이다. 책에서 진통(鎭痛)을 찾으려고 했는지는 몰라도, 둘은 같은 독서 모임에서 책을 읽다가 만나서 사귀게 되었다. 지아는 고통스런 기억의 원체험을 중층적으로 겪었고, 몸에 담뱃불을 지지는 자학을 통해서야만 겨우 안정을 얻을 수 있을 정도로 병리적인 주체이다. 조는 군대에서 가혹행위를 겪고 전역한 뒤에 스스로 목숨을 끊은 동생을 책임져주지 못했다는 자책감 속에서 살고 있다. 지아와 조, 상실과 결핍이라는 공통의 상처를 갖고 있는 두 사람은, 교감과 공감이라는 소통의 힘으로써 그들을 사로잡고 있었던 죽음의 충동을 삶의 의욕으로 반전시키려고 한다. 그러나 그들은 세상과의 소통에서 소외되어 상처받았던 사람들이었음에도, 가난하고 늙은 여자(할머니)의 말을 신뢰하지 못했고, 절실한 그 예언의 목소리를 듣지 못했다. 그들은 충분히 세심하지 못했다. 그러니까 역시 그들마저도 그렇게 무신경하고 말았던 것이다. 작은 차이를 알아채는 그 세심한 인식의 역량이란 구원의 힘이기도 하다. 결국 예언처럼 폭우의 재난이 닥치지만, 구조를 요청하는 지아의 연락은 조에게 가닿지 못한다. 뒤늦게 연락을 확인한 조는 상실의 수난 속에서 지옥 같은 삶을 살아본 사람이기에, 다시는 소중한 것을 잃지 않겠다는 의욕을 갖고 지아를 구조하러 달려간다. 자기에게 몰두하다가 유일한 안식의 자리가 되어주었던 진경을 잃어버린 여자(「거미줄」), 계급적인 차이의 안락함 속에서 보연을 거부해버린 수진(「서로에게 좋은 일」), 표면으로 이면을 속이고 은폐하려 했던 유선의 그 계급적 욕망이 결렬시켜버린 경주와의 만남(「개미」), 그리고 마침내 그런 형이상학의 환상에서 깨어나 지금의 현실을 응시하게 되는 서인의 여정(「우리는 오로라를 기다리고」). 무경과의 만남을 통해서 희망의 도주로를 발견해낸 여자(「황벽나무 노란 속껍질」), 사랑이란 아니 모든 만남이란 어떤 고립무원의 상황에서도 포기하지 않는 소통의 결실이어야 한다는 것을 알려주는 선아와 재이의 관계(「최초의 부고」). 그리고 재난의 위기 속에서 자기들의 부주의한 실수를 깨닫고, 상처 받은 자들의 소통과 연대를 통해서 드디어 또 다른 희망의 새날을 기대할 수 있게 해주는 지아와 조(「유실물」). 상처의 원체험을 애도하지 못하고, 누구에게도 이해받지 못한 가엾은 자기의 상(像)에 고여 있다는 것은, 그 자체가 이미 그 상처의 병리적 증상이다. 피해의식에 사로잡힌 취약한 주체는 그 상처의 형이상학적 기원을 해체하는 과정을 통과해야만, 비로소 이해받지 못했다는 끈질긴 자의식에서 벗어날 수 있고, 마침내 스스로를 이해하고 또 다른 누군가들마저 이해해줄 수 있는 주체로서 거듭날 수 있다. 그러니까 서정아의 소설은 저 공고한 상처의 기원을 파고들어가, 그 병리적인 환상을 떠받치고 있는 정신의 틀(형이상학)을 해체하려고 하는 필사적인 노력이라고 할 수 있겠다.
9788982183621

웃음과 울음의 원무 (허택 소설집)

허택  | 강
13,500원  | 20250328  | 9788982183621
허택 소설에서 몸과 욕망의 문제는 지속적으로 변주되고 있는 테마이다. 그런데 이번 소설집을 통해 새삼스럽게 눈에 들어오는 것은 그 변주의 소설적 방법들이다. 허택 소설의 관심은 현실의 반영과 모사 못지않게 현실의 재구성 쪽에도 있는 것 같다. “허택의 소설은 실재하는 현실과 작가가 만들어낸 인공의 현실을 동시에 껴안고 있는 이중성의 세계를 보여준다”(정호웅, 『몸의 소리들』 해설)는 비평적 언급은 이 점을 정확히 지적하고 있다. 여기서 ‘인공의 현실’은 작가의 세계 해석이 적극적으로 개입하는 현실의 변형과 재구성을 가리킨다고 보아도 될 것 같다. 허택 소설에서 알레고리, 그러니까 ‘다르게 말하기’의 화법이 두드러지는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을 테다. 그렇다면 허택 소설에서 ‘몸’과 ‘욕망’은 테마이며 동시에 이야기의 형식이 아닐까. 선명한 대립 구도를 말해볼 수 있을 것 같다. 한쪽에는 도덕, 윤리와 무관하게 자신의 욕망을 날것 그대로 추구하는 인물이 있고, 다른 쪽에는 그로 인해 상처 입은 인물이 있다. 허택 소설의 많은 이야기는 이 구도로부터 시작된다. 이번 소설집을 여는 「마른장마」의 중심인물 정주와 명희는 고교 동창인데, 명희가 재수를 해서 정주와 같은 대학에 입학할 정도로 단짝 친구였다. 그러나 명희는 정주의 남자 친구 민석을 빼앗아 결혼하고 두 사람의 관계는 파탄 난다. 이후 명희는 비교적 성공적인 길을 달린 남편과 함께 번듯한 가정을 꾸려가고, 정주는 배신의 상처를 안고 고립된 삶을 살아간다. 비슷한 구도는 「상실의 흔적」에서도 반복된다. 여성 화자 ‘나’는 대학 시절에 만난 ‘훈이’와 결혼했고, 표면적으로는 무난한 가정을 이루어왔다. 그러나 두 사람 사이에는 남편의 절친인 고교 동창 A가 있었고, ‘나’는 세 사람이 함께했던 대학 사진반 여행에서 A로부터 성폭행을 당한 사실을 숨기며 살아왔다. 우정을 짓밟고 폭력적으로 틈입한 몸의 기억은 끊임없이 ‘나’의 평온을 뒤흔드는 트라우마적 상처로 남게 된다. 가혹한 생존경쟁의 논리를 내면화한 남성 가부장의 일그러진 욕망이 아내나 자식들에 대한 폭력적 억압으로 표출되는 이야기들도 있다. 「웃음과 울음의 원무」, 「N번째 살인미수 사건」이 그런 경우인데, 가족 내에서 이루어지는 가해와 억압의 또 다른 선명한 대립 구도를 보여준다. 남근적 욕망의 자기 파멸의 서사를 환상적 우화로 그려낸 「야차 LC」, 남편의 성적 착취에 맞선 아내의 끈덕진 처벌을 담아낸 「붉은 비닐 노끈」에서도 가족 관계에서 내연하고 있는 대립 구도의 변주된 양상을 읽어내기는 어렵지 않다. 「영도와 여의도 사이」에서는 집과 경제 관념을 둘러싼 세대간 대립 구도가 뚜렷하다. 물론 대립 구도를 풀어내는 방식은 작품마다 다르며, 가해나 억압의 세부적 양상 또한 단선적이기보다는 중층적으로 뒤얽혀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 같은 대립 구도의 반복적 활용이 얼마만큼은 현실에 대한 작가 나름의 해석적 프레임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게 되는 것도 사실이다. 그리고 이 점이 허택 소설을 통상의 리얼리즘과는 다른 소설적 좌표로 이동시키는 것 같다. 허택 소설은 세부적 현실의 재현으로부터 하나하나 이야기를 쌓아가는 방식을 취하지 않는다. 그보다는 인물이나 상황을 압축하는 환유적 표현에 힘을 기울이면서 그 환유의 수사학을 소설의 전체적 구도, 전언으로 확장하려고 한다. 이때 소설의 서사는 환유의 수사학을 중심으로 구축된다. 가령 「마른장마」에서 자신의 욕망에 거침이 없는 명희라는 인물을 그릴 때, 작가는 명희의 ‘높고 날카로운 목소리’에 주목한다. 소설에서 명희의 목소리는 ‘소프라노 솔 음’이라는 환유의 수사학으로 표현된다. 비슷한 수사학의 예는 ‘집’에 대한 생각을 둘러싼 부자 세대간의 갈등을 다룬 「영도와 여의도 사이」에서도 만나게 된다. 노년의 문턱에 이른 ‘나’와 아내에게 ‘집’은 영도 산동네의 자그마한 재개발 아파트가 전부라고 할 수 있다. 그 집은 ‘나’가 고등학교 2학년 때 아버지가 해상 사고로 세상을 뜬 후 어머니와 함께 힘겹게 장만한 것으로, 영도 조선소에서 ‘깡깡이 아지매’로 일한 어머니와 대학 진학을 포기하고 곧장 생활전선에 나서야 했던 ‘나’의 고단한 세월이 담겨 있는 곳이다. 그 집은 ‘나’에게 어릴 적부터 오르내리던 ‘달빛 아래 벚꽃 가로수길’로 기억 속에 남아 있다. 「N번째 살인미수 사건」에서 우리는 대립 구도의 자기 분열/증식을 본다. 이 작품에서 소설화자 ‘나’가 거듭 죽이려고 시도하는 존재는 생존경쟁의 내면화, 폭력적인 남성 가부장의 허위의식 속에서 ‘괴물’로 변해버린 자기 자신이다. 혹은 괴물이 되어버린 내면의 욕망이다. 소설에는 거듭 ‘놈을 죽여야 한다’는 표현이 나온다. 평범한 중산층의 삶을 벗어나고 싶었던 ‘나’는 은행원으로 일하면서 주식투자에 빠졌고, 주식에 중독된 채 삼십대를 보냈다. 그러는 동안 집안의 경제를 책임지고 자식들을 키운 것은 아내였다. ‘나’는 음악을 하고 싶어 한 아들의 뜻을 마구 짓밟기도 했다. 이 소설에서 흥미로운 지점은 ‘나’의 자기 분열, 자기 대면이 피해자이기도 한 아내의 적극적인 조력을 통해 이루어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번 소설집에서 허택 소설의 개성적 구도와 화법이 가장 집약적으로 표현된 작품은 표제작인 「웃음과 울음의 원무」다. 평생 집안의 폭군으로 군림했고, 함께 입사한 절친을 배신하면서까지 직장에서 최고의 지위에 오른 소설화자 ‘나’는 허택 소설의 전형적인 남성 인물이다. 소설은 2년 전 세상을 떠난 아내의 추도식 날 하루를 담고 있다. 어머니의 사고와 죽음에 아버지의 책임이 크다고 믿는 아들과의 관계가 특히 좋지 않지만, 권위적이고 억압적인 아버지에 대해 두 딸도 소원하기는 마찬가지다. ‘나’가 막내딸의 8개월 된 외손녀를 이날 처음으로 보게 된 상황에 ‘나’를 둘러싼 가족의 현재가 압축되어 있다. 아내가 떠난 후 ‘나’가 군림해온 집이라는 성채는 기실 ‘공허’와 ‘적막’뿐이었다는 게 드러난다. 추도식 날 가족들로부터 소외된 ‘나’는 자신만의 철옹성이라 믿었던 서재에 고립된다. 구원의 계기는 외손녀로부터 찾아온다. 서재로 들어온 아기가 할아버지를 보고는 울음을 그치고 방실방실 웃음을 짓는다. 아이의 웃음이 ‘나’에게 뜻밖의 몸의 반응을 불러일으킨다. 스스로를 가혹하게 다그치며 앞만 보고 질주해왔던 ‘나’는 눈물을 모르는 삶을 살아왔다. 그런데 아기의 ‘너무도 깨끗한 웃음’에 대한 ‘나’의 첫 반응은 자신도 모르게 흘러내리는 눈물이다. 눈물은 그렇게 잊었던 몸의 기억을 일깨우며 찾아온다. 몸의 기억은 연쇄적이다. 허택 소설은 예의 ‘몸의 시학’을 통해 ‘나’에게 찾아온 반성과 구원의 계기를 포착하려 한다. 허택 소설에는 전쟁통에 태어나 힘겨운 시대를 살아낸 어떤 세대의 초상이 겹친다. 현직 치과의사라는 작가의 이력은 몸에 대한 각별한 소설적 상상력으로 이어지면서 인간 욕망의 미로를 탐사하는 많은 이야기를 빚어왔다. 이번 소설집에서도 확인할 수 있는바, 욕망을 둘러싼 선명한 대립 구도는 허택 소설의 중요한 서사적 동력이면서 그 구도를 허물고 넘어서는 소설 화법의 다양한 가능성을 시도하는 원천이 되고 있다. ‘다르게 말하기’는 알레고리라는 소설 화법의 특징과도 연결되지만, 문학적 새로움을 추구하려는 작가적 의욕의 표현이기도 한 것 같다. 허택 소설에서 ‘몸’은 끊임없는 소설적 탐구와 발견의 대상이면서 그 자체 소설의 새로운 형식, 새로운 화법을 요구하는 동인이 되고 있다. 늦은 등단에도 불구하고 벌써 다섯번째에 이른 소설집의 상재(上梓)가 보여주는 것처럼, 작가의 지칠 줄 모르는 열정에는 젊음의 시간을 방불케 하는 경이로움이 있다. 그 열정의 힘으로 펼쳐질 앞으로의 세계가 기대된다.
9788982183553

팔월의 이안류 (임은영 소설집)

임은영  | 강
12,600원  | 20241216  | 9788982183553
임은영의 문장이 만들어내는 마음의 이안류는 기본적으로 부끄러움을 그 공통된 기저로 삼고 있지만, 그 한 겹 밑바닥에는 조금만 방심해도 기어코 일어나고야 마는 필연적 불행에의 두려움이 이안류 내부의 이안류가 되어 흐른다. 전자가 맹목적 삶의 질서를 멈추어 세우는 부끄러움의 감각에 초점을 둔다면, 후자는 어떻게 해도 도저히 손쓸 수 없는 절대적 삶의 실재와 그로 인해 촉발되는 원초적 불안감에 주목한다. 이안류의 두 흐름은 얼마쯤 상반된 것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실제로는 서로 긴밀히 조응하며 하나로 흐르는데, ‘부끄러움’은 불행을 피하기 위해 선택한 타협적 행위들로 인해 촉발되며, ‘부끄러움’에 대한 응시는 궁극적으로 이 절대적 실재로서의 삶에 대한 성찰과 응시를 요청한다.
9788982183607

자본주의근대와 세계문학

유희석  | 강
21,600원  | 20250228  | 9788982183607
괴테가 세상을 뜨고 200년이 가까워 오는 지금, 과연 그가 예견하고 기대한 세계문학의 이상을 인류는 얼마나 구현하고 있는가? 이 책 서장인 「허먼 멜빌과 ‘세계문학’의 꿈」에서 저자는 바로 그 물음을 염두에 두면서, 국민ㆍ민족문학과 세계문학의 살아 있는 긴장을 포착한다. ‘세계문학’에 관한 한 멜빌은 괴테와 본질적으로 공명하고 있다. 하지만 전혀 다른 역사적 국면에서 활동한 작가들이니만큼 차이점도 확연하다. 멜빌에게 고전적인 문학 유산의 수호 의지는 그 자체로 미국문학의 세계적 가능성을 저버리는 정신적 매국에 가까웠으니 말이다. 그것도 그럴 것이, 적어도 그가 태어난 당대의 미국에는 그런 유산 자체가 부재했다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9788982183591

각자의 방식대로 밤을 쓰다듬는 손 (9인 소설집)

박찬순, 심아진, 양진채, 정태언, 조현  | 강
13,500원  | 20250130  | 9788982183591
밤의 어둠을 더 이상 헤아릴 수 없을 때, 당신이 이 책을 펼치길 원한다. 아홉의 작가가 모여 만든 아홉 개의 서랍마다, 골목길들이 무섭게 일어서고 이곳에서의 밤은 끝나지 않고 계속 이어진다. 모험을 위한 부름을 알리는 전령이나 고지자는 어둡고, 징그럽고, 무섭고, 세상의 버림받은 존재인 것이 보통이겠지만, 당신 앞에 솟아오른 세계는 충만하게 아름답길 바란다. “삶에 대한 황망한 기대와 하나 다르지 않게 끈질기게, 질척거리며 엉겨 붙는 사념에 시달”리고 난 후라면 “몸이 아니라 영혼을 다친 강아지처럼”(심아진, 「운니지차」) 울어도 상관없다. 자신 안의 중심을 잃었을 때 비로소 여행이 시작되듯이, 이 골목에서라면 시공간을 넘나들며 쉬이 빠져나오지 못하는 기묘한 경계점에 서게 될 것이다. 아홉 개의 서랍에는 모두가 기피하는 더러움을 껴안고 그 존재로부터 더러움을 토해내게 하는 분명한 힘이 있다. 그것은 “모든 걸 집어삼키니까요. 그 앞에서 절규해봐야 아무 소용없어요. 전부 사라지고 (……) 아무도 안 알아주는 외로운 절규”(정태언, 「각자의 방식대로」)이기도 하다. 아가미를 펄떡이는 북방의 차가운 바람 속에 서서 누군가 실제로 살 수 없었던 인생만이 아니라 그들이 살아야 했던, 그러나 살지 못했던 인생까지 살게 하는 것이 이야기가 가진 힘이 아닐까. 어떤 분야의 작품이든 작가와 독자가 함께 완성해나갈 때 가장 매혹적인 세계가 열린다고 믿는다. 슬픔을 가운데 두고 이쪽이나 저쪽에서 문을 열어보면, 그의 내부는 생각보다 좁고 깊어 상대를 응시하는 일은 언제고 어렵겠지만, 서랍 속 소설들은 “얼떨떨하다 못해 머릿속이 멍해져왔다. 일생일대의 기회에 잠에 빠져 허우적댄 얼빠진 주인공”(표명희, 「세상의 모든 K」)이 되는 일을 서슴지 않는다. 한때 아프다 밀어놓았던 지난날을 느닷없이 소환해 당신의 손바닥에 쥐여줄 수도 있다. 그렇게 쥔 것들을 펼쳐 바람에 풀어내고 나면 한동안은 “잠시 굉음도 사라지고, 삭풍도 잔잔해진다. 어깨가 홀가분해진 (……) 삭풍 속으로 조용히 스며든다. 발걸음이 산뜻”(허택, 「N번째 살인미수 사건」)해진다. “가까이에서 보면 소름이 끼칠 정도로 섬뜩했지만 조금 떨어져서 바라보면 무슨 회화 작품처럼 보”(박찬순, 「불면의 밤을 떠도는 팅커벨」)이기도 하듯 어쩌면 삶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단순한 세계인지도 모른다. 때로 생(生)은 저마다의 권태나 절망의 바닥을 치고 나서 폭발하기도 한다. 선과 악이 하나의 얼굴인 것처럼, 우리가 사랑하는 타자를 이해하고 분석할 수 있다는 오만과 결별하는 순간, 신기하게도 영원히 닫혀 있을 것만 같던 타자의 내면의 빗장이 열린다. “세상의 모든 이야기는 사랑의 상처에서 자라나. 누군가의 마음이 누군가의 마음을 사랑해 생겨난 이야기”(채현선, 「밤을 쓰다듬는 손」)이자, 그것은 곧 자기 자신의 내면을 호출하는 일이기도 하니까. 책을 읽는 동안, 시간은 자비로워서 그의 곁을 스치기만 해도 어떤 날 선 일들이든 모서리를 잃고 부드러워질 것이다. “눈은 동공 없이 텅 비어 있었다. 모딜리아니의 그림처럼. (……) 작품의 의도나 이유를 묻지 않는다. 까만 눈동자를 그려 넣으라고 강요하지 않”(진보경, 「우리가 디스코를 출 때」)고 그저 당신 손에서 우리는 부드럽게 펼쳐질 뿐이다. 오래 그리워한 것들, 끝내 붙잡지 못한 것들, 못내 목메어오는 것들이 흰빛으로 일렁이는 언어의 바람벽에서 흩날린다. 당신이 자신을 향한 위로를 놓지 않았다면, 서로 스미고 스며 흰빛 가득한 세상이 되는 기적 같은 순간을 맞이하게 된다. “한 송이 눈은 내리자마자 녹아버리는데, 눈이 엄청나게 내릴 땐 이렇게 순식간에 세상을 덮어버”(양진채, 「흰빛 가득한」)리는 것처럼, 분별과 무분별의 아득한 경계를 잠과 꿈, 그리고 날마다 죽음을 꿈꾸는 일로 작품 속에서 구현하기도 한다. 서랍 속에서라면, 색색으로 점멸하는 신호등과 민들레 홀씨가 날아오르는 횡단보도와 정연한 숫자들의 달력을 비껴나 분명 내가 발 디딘 세상이지만, 이전의 세상이 아닌 듯한 기이한 뒤편으로 내던져질 수도 있다. 당신이 펼친 이 책은 아홉 개이자, 동시에 하나의 긴 노래이다. “무심코 털어놓은 진심의 문장들, 머뭇머뭇 눈빛으로 보내는 침묵의 말들, 비 내리는 새벽 다녀간 흔적으로 남기는 꽃잎의 언어들, 고통과 상흔을 달래는 손짓들. 밤의 로비에서 누군가의 해후를 빌어주는 기도들. 잠시 말들의 정류소에 거주하고 있다가 이윽고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여 마음을 전하는 나와 당신들의 가여운 언어들”(조현, 「말들의 정류소」)의 골목길이다. 때로는 오직 살아남는 것이 그 어떤 영웅적인 행위보다 존엄하기에, 기도한다, 세상의 모든 아픈 언어의 영혼이 원하는 곳에 무사히 도착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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