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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으)로 1,706개의 도서가 검색 되었습니다.
9788982183720

언제라도 안아줄게 (양진채 장편소설)

양진채  | 강
13,500원  | 20251120  | 9788982183720
우리 시대의 기원을 새로 쓰다 “너는 그날을 기억해. 아니, 기억한다는 말은 맞지 않아. 그날은 네게서 늘 맴돌고 있었으니까. 파문의 중심처럼, 네 안에서 미동도 하지 않는데 끊임없이 회오리를 일으키고 있었으니까.” 1978년 2월, 노조 지부장 선거를 위해 투표하러 가던 방직공장 여공들의 머리 위로 똥물이 끼얹어진다. 그리고 이어지는 무자비한 구타. “너는 공포로 굳어 있었고 너를 보호해야 했지. 공포는 명숙의 감정이었지만 네게 고스란히 전해졌어. 불안하고 떨리던, 분노에 차 어쩔 줄을 모르던, 터져버릴 것 같던 그 생생한 느낌을 아직도 기억해.” 양진채의 장편소설 『언제라도 안아줄게』는 동일방직 여성 노동자 미은과 명숙, 선자, 그리고 태오의 이야기로 시작된다. 고등학교에 진학하는 대신 돈을 벌기 위해 도시로 올라온 미은은 같은 방직공장에서 일하는 명숙, 선자와 한방을 쓰며 친자매와 다름없는 사이가 된다. 세 사람은 휴일 없는 삼교대의 고된 노동 환경 속에서도 각자 저마다의 방식으로 청춘을 꽃피운다. 명숙은 공장에서 개최하는 미스동일 선발대회에 나가고, 선자는 공장 일과 노조 대의원 활동을 병행하고, 미은은 성당 야학을 다니며 공부의 꿈을 포기하지 않는다. 이 세 사람이 하숙하고 있는 주인집 아들 태오는 독실한 천주교 신자로서 성당의 종지기 일을 맡고 있다. 태오는 동갑내기인 미은과 점차 가까워지며, 또 가난한 가정 형편 속에서도 책을 손에서 놓지 않고 세상에 대해 관심을 가지는 친구 경준과 함께하며 사제의 길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하느님이 정말로 있다면 어째서 사람들은 이렇게 가난한가. 어째서 아무도 이들의 이야기를 들어주려 하지 않는가. “태오야, 하느님이 계시는 거 맞지? 하느님이 계시다면 왜 우리 기도를 들어주지 않는 거니. 우리가 그렇게 싸워도 도대체 아무도 몰라. 신문에 기사 한 줄 실리지 않아. 아무도 우리 말을 들어주지 않아. 우리 얘길 들어달라고, 같이 힘 좀 모아달라고 그렇게 외치고 다녀도 아무도 우리 얘길 들으려 하지 않아. 우리가 공순이라서 그런 거니? 정말 그런 거야? 너무하지 않아? 우리는 똥물을 뒤집어쓰고 있는데, 제발 우리 얘기 좀 들어주면 안 돼? 조금의 관심, 그게 그렇게 어려운 건가?” 명숙은 그날 뱃속의 아이를 잃는다. 소설은 그 아이에 대한 진혼의 형식을 품고 시대의 암흑에 짓밟힌 세 노동자 여성의 청춘의 시간을 복원한다. ‘인간다운 삶’에 대한 열망이 아름답게 피어났던 시간이 망각의 저편에서 생생하게 돌아온다. 작가는 이 소설을 통해 우리 시대의 기원을 새롭게 쓰려 한다.
9788982183744

선을 지키는 일 (조미해 소설집)

조미해  | 강
13,230원  | 20251130  | 9788982183744
2024년 고양행주문학상을 수상한 조미해의 첫 소설집. 밀도 높은 심리 묘사와 낯선 상상력으로 우리 시대의 환부를 정치하게 그려낸 7편의 소설이 실렸다. 「비 내리는 밤에 우리는」은 무더운 9월의 끝자락 영숙 부부의 집으로 시공간적 정황을 집중한다. 딸 소연과 사위가 모처럼 방문해 저녁식사를 함께하게 되는바, 소연 부부는 영숙 부부에게 둘의 결별을 짐작하게 하는 소식을 알린다. 그 결별은 소연 부부가 아들 지민을 잃은 충격을 벗어나지 못한 결과다. 소연 가족이 물놀이 휴가를 갔을 때 마침 영숙이 건 전화를 받느라 지민이 급류에 힙쓸려 간 것이다. 지민의 죽음은 할머니 영숙에게도 원죄다. 따라서 소연 부부의 불안한 결별 소식에 영숙은 죄의식을 면치 못한다. 영숙 부부는 지민이 좋아하던 오리 인형을 발견하고 비 오는 밤에 그것을 인공 연못에 띄워 보냄으로써 애도한다. 「비 내리는 밤에 우리는」은 이처럼 영숙의 손주 지민의 운명적인 죽음이라는 사건을 내세워 그로부터 일어난 몇몇 에피소드를 아우르면서 그 해결의 장으로 나아간다. 이때 이 소설은 사건의 발생과 결과에 이르는 전 과정을 하나의 상황에 응축함으로써 극적 긴장과 심리적 몰입을 가능하게 했다. 조미해의 소설은 이처럼 단편소설 특유의 응축성을 유지함으로써 독자를 흡입하고 있다. 이와 같은 응축성은 다른 소설에서도 거의 고르게 유지된다. 「마스카라」는 한 메이크업 아티스트(‘나’)의 샵에서 ‘나’의 어머니 장례 때 사자(死者) 메이크업을 담당한 장례 메이크업 아티스트(문주연)에게 행하는 신부 화장에 상황을 응축한다. 「남태평양에는 쿠로마구로가 산다」는 어느 날 한밤중의 ‘나’ 앞에 바다로 나가 실종된 아버지를 연상케 하는 오십대 남자가 나타나 대화를 나누는 상황에 집중한다. 「선을 지키는 일」은 새로 이사 온 이웃과 식사를 하면서 대화를 나누는 동안 ‘나’가 겪은 이전의 불쾌한 ‘선 넘기 당한 경험’을 상기한다. 「그런 게 다 무슨 소용이에요」는 아들 한들의 고교 졸업식에 참석한 엄마 정연의 불안한 한나절을 다루고 있다. 「더미」는 쌍둥이 언니가 죽자 자신이 죽은 걸로 처리하고 언니를 대신해 주체적으로 행동에 나선 쌍둥이 동생 영화(나)의 당당한 하루에 집중한다. 다만 「부끄러움을 아는 마음」은 시간적 응축은 덜한 대신 한 아이(서준)가 담임선생(나리)에게 관심을 끌기 위해 부리는 통제되지 않은 행동들에 초점을 맞춘다. 조미해 소설의 이러한 응축적인 플롯은 물론 서사의 밀도를 높이고 독자에게 긴장감을 주려는 의도에서 비롯된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이를 통해 얻는 주제적 효과는 소설마다 남다른 결을 유지한다. 이를테면 「비 내리는 밤에 우리는」은 실수로 딸 부부의 행복을 파괴했다고 생각하는 부모의 내적 고통을 드러낸 소설이다. 「부끄러움을 아는 마음」은 한 아이의 집착적 행동을 통해 부끄러운 마음은 어떻게 생기는가에 대한 질문을 드러낸 스토리다. 「남태평양에는 쿠로마구로가 산다」는 실종된 아버지에 대한 간절한 그리움을 드러낸 소설이라 할 수 있다. 「마스카라」는 삶과 죽음은 극단적으로 대비되는 지위에 해당하지만 삶은 결국 죽음으로 가는 과정이며, 죽음은 삶의 또 다른 여정이라는 의식을 드러낸다. 이에 비해 「선을 지키는 일」, 「그런 게 다 무슨 소용이에요」, 「더미」 등은 무엇보다 인간이 자본주의적 구조 내에 생존하면서 어떻게 사는가에 대한 주제에 가닿는다는 공통점이 보인다. 이 소설들은 대체로 삶의 목표에 관한 진정성에 대해 질문한다. 그 질문은 단순히 인간은 태어나 어떻게 살아가야 할 것인가와 같은 형이상학적 지표에 그치지 않는다. 그것은 등장인물이 처한 세계, 즉 우리가 살고 있는 21세기 한국 사회에서 사는 문제와 깊이 관련을 맺는다. 「그런 게 다 무슨 소용이에요」에서 ‘한들의 의대 진학’이라는 지상 명제에 매달리는 정연 남편의 욕망은 사실 개인의 욕망에 그치지 않는다. 그것은 그날 졸업식을 참관한 모든 부모들의 그것과 다르지 않다. 나아가 그것은 21세기 한국 사회 전체의 욕망의 구도를 그대로 닮아 있기도 하다. 작가 조미해는 이런 욕망의 구도를 한들 가족으로 응축해 드러내면서 그 문제점을 강력히 시사한다. 나아가 아버지의 요구에 한들이 맞서고 마침내 정연마저도 ‘그런 게 다 무슨 소용이에요’로 맞서는 과정을 통해 욕망의 노예가 된 사회를 정면에서 비판해 보인다. 「더미」에서 ‘나’는 쌍둥이 언니 영주가 출세를 위해 어떤 수모를 겪었는지 충분히 짐작하고 있다. 영주는 분장감독의 욕망대로 움직이는 대리인이었지만 그 수모를 견디며 특수분장사의 지위를 공고히 하려다 좌절하고 죽음을 맞았다. 그런데 이를 알아낸 ‘나’의 행동은 자못 특별하다. 도덕적인 기대대로라면 ‘나’는 영주의 죽음의 원인이 분장감독의 과도한 폭력에 있었음을 밝히는 길을 택했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도리어 분장감독의 그러한 약점을 빌미로 그의 욕망에 더욱 충실해지는 길을 택한다. 이는 우리 사회에서 출세를 위한 욕망의 지배 구도가 얼마나 완벽한지 증명하는 사례가 될 만하다. 이에 비해 「선을 지키는 일」은 좀 특별한 스토리로, 이러한 욕망의 지배 구도에 대해 증명해주는 소설로 읽힌다. ‘나’는 집에 놀러 온 동년배의 이웃집 여성과 저녁 식사를 함께하면서 그 이전 그 집에 살다가 이사 간 여성 유라 씨가 보인 행동에 대해 설명한다. 크리스마스이브, 친구 부부의 집에서 열린 파티에 유라 씨는 ‘나’와 같은 옷, 같은 스카프를 하고 나타난다. 사람들의 시선 속에서 ‘나’는 모욕감과 분노를 느끼고, 결국 와인을 유라 씨의 옷과 스카프에 일부러 쏟는다. 화를 감추지 못한 유라 씨도 감정이 폭발하고 만다. ‘나’의 남편 진규는 그런 상황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채 오히려 ‘나’를 나무란다. 유라 씨는 또 그 이전에 ‘나’의 시부모 생신날 예고 없이 집으로 방문해 청하지도 않은 케이크 선물까지 하면서 존재감을 과시한 적도 있다. 유라 씨는 그에 그치지 않고 ‘나’와 친한 척하면서 ‘나’의 옷차림, 취향, 말투, SNS 활동까지 따라 하며 점점 ‘나’의 삶을 침범해 들어온 인물로 그려져 있다. 크리스마스가 지난 며칠 뒤 예정된 유라 씨 부부와의 해맞이 여행도 유라 씨의 일방적인 불참으로 무산된다. 뒤이어 도착한 유라 씨의 카톡 메시지 “그날, 제게 왜 그러셨어요?”(와인을 쏟은 일)는 화자의 감정을 더욱 뒤틀리게 만든다. 이후 유라 씨는 아무런 말도 없이 이사를 간다. 화자는 상실감과 당혹스러움을 안은 채 유라 씨에게 여러 차례 메시지를 남기지만 아무런 답변도 받지 못한다. 유라 씨에게 상처 입은 ‘나’는 그 사실을 모두 그녀에게 설명했다. 그 내용은 주로 ‘서로의 관계에서 선을 넘지 않고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는 게 중요한데 특히 유라 씨가 그 선을 넘은 행동을 보여 몹시 불쾌했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알고 보니 그녀도 유라 씨와 유사한 경험을 저지른 존재였다는 것이다. ‘나’는 그녀의 얘기에 여전히 관계의 경계가 무너진 크리스마스의 기억을 떨치지 못한 채 “결혼 후 맞는 두번째 크리스마스도 망쳐버린 것 같다”고 느낀다. 그런데 ‘나’는 어떤 사람인가. 유라 씨의 선 넘는 침범을 받고 상처를 입었으며, 이웃집 그녀의 고백을 통해 다시금 ‘선을 넘는 일’의 불쾌한 기억 속에 젖지만 ‘나’ 역시 실은 자기만의 ‘아비투스’에서 헤어나지 못한 상태라 할 수 있다. ‘나’가 좋아하는 와인을 정해놓고 마시고 남편에게나 이웃에게나 자기만의 선물을 고집하는 등의 일련의 행동은 사회적으로 내면화된 습관과 성향의 체계 속에서 세상을 인식하고 행동한 예가 된다. 조미해의 소설은 전반적으로 단편소설로서 강한 응축력을 자랑한다. 편편이 자잘한 에피소드를 거느리고 있지만 대개는 단일한 사건을 중심으로 상황을 밀고 나간다. 특히 단편소설이 발생학적으로 자본주의적 욕망이 가져다준 여러 병폐에 대한 비판을 내재화한다는 점에 대한 각별한 이해를 바탕에 두고 있다. 집중된 상황에 놓인 인물의 심리적 묘사를 통해 극적인 긴장감을 낳고 그로부터 독자의 상상력을 이끌어내는 데 성공한다.
9788982183737

내 이름은 장춘실! (민혜숙 장편소설)

민혜숙  | 강
13,230원  | 20251126  | 9788982183737
‘장춘실’의 발걸음을 따라 그려지는 탈북민의 과거와 현재 “팔십에 턱걸이하는 중”인 79세 탈북민 장춘실은 매주 한 번씩 가족관계증명서를 발급받는다. ‘행복주민센터’ 직원들에게도 낯이 익을 정도다. 장춘실은 어떤 이유로 가족관계증명서를 발급받는 것일까. 탈북 이후 그녀의 삶을 짐작하게 하는 대목이 있다. 기가 막힐 일이다. 춘실이 2006년에 남한에 왔는데, 자기들 말대로 코로나가 한창때 돌아가셨다고 해도 십오 년이나 시간이 있었다. 그 십오 년 동안 아버지를 만난 일은 단 세 번뿐이고, 밥 한 끼도 같이 먹은 일이 없다. 그 세 번의 만남 가운데 한 번은 법정에서 눈으로만 만났다. 이런 기가 막힌 팔자가 있을까.(190쪽)
9788982183706

난잎에 베이다 (박찬순 장편소설)

박찬순  | 강
13,500원  | 20251025  | 9788982183706
난잎에 어린 세 겹의 이야기 삼십대 중반의 여성 주인공 ‘나’(서홍화)는 10년 동안의 서울 직장 생활을 접고 경북 안동 낙동강 상류 마을로 내려와 농가 일손을 돕는 ‘마을인턴’과 래프팅 강사로 일하며 새로운 삶의 길을 모색한다. 그러던 중 인근에서 춘란연구소 다윈농장을 운영하는 소심, 세엽 남매의 부탁을 받고 ‘난(蘭)’에 얽힌 비밀스런 세계로 발을 내딛게 된다. 남매의 아버지 류포의 춘란연구소 소장은 생후 3개월에 독일로 입양된 인물로 세계적인 원예학자가 된 뒤 20여 년 전 한국으로 돌아왔다. 국산 춘란의 향기가 미미한 것을 안타까워하던 그는 생모에 대한 그리움으로 춘란에 향기를 입히는 일에 전념하다 의문의 죽음을 맞는다. 서홍화는 소심, 세엽 남매와 함께 류 소장의 마지막 동선을 뒤쫓고 그가 사망하기 전날 만났던 사람들을 찾아다닌다. 그러는 과정에서 서홍화는 류 소장이 죽기 전 되짚어가던 장소들이 모두 조선 후기의 풍속화가 김홍도와 관련되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사건에 얽힌 이야기는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확장된다. 서홍화는 류 소장의 금고에서 발견된 일기와 오래된 아기 옷에 수놓인 난초 문양을 단서로 세엽과 함께 독일 뮌헨 근교의 수도원으로 향한다. 그곳에서 두 사람이 발견하게 되는 것은 오랜 시간 동안 감추어져 있던 그림 「난향을 맡는 소녀」의 청아하고도 은은한 비밀이다.
9788982183652

꿈결에 시를 베다 (손세실리아 시집)

손세실리아  | 강
13,500원  | 20250530  | 9788982183652
2001년 『사람의문학』 『창작과비평』 등을 통해 작품 활동을 시작하며 연민과 위로, 희망의 언어로 시를 써온 손세실리아 시인의 두번째 시집 『꿈결에 시를 베다』가 도서출판 강에서 양장 개정판으로 새롭게 출간되었다. 소외된 존재들을 돌아보는 시인의 시선은 속 깊은 자성의 언어 속에 섬세하게 감싸여 있다.
9788982183683

희주

박향  | 강
13,500원  | 20250627  | 9788982183683
『희주』는 ‘몸’에 대한 이야기이며, 동시에 세 명의 ‘희주’에 대한 이야기이다. 소설은 1인칭 화자 희주를 통해 유방암 진단을 받은 중년 여성의 투병기를 사실적으로 전한다. 질병을 진단받는 순간, 그리고 항암과 방사선 치료를 반복적으로 받는 과정에서 겪는 신체적 고통, 그 고통이 불러일으키는 부대끼고 무너져가는 내면 풍경이 면밀하게 그려진다. 일상은 나를 간단하게 배반했다. 삶의 질은 떨어졌다. 자주 화장실에 드나들어야 하고, 오래 앉아 있어야 소변이 겨우 나왔다. 빈속이나 밥을 먹은 후나 상관없이 오심을 느끼고, 설사와 변비가 번갈아 왔으며, 음식의 맛을 제대로 느끼지 못했다. 손톱과 발톱이 시커멓게 변하고 급기야 덜렁거리는 것도 생겼다. 그러니까 온통 발진 같은 꽃들이 앞다투어 피어나 기름 속에 떨어뜨린 물처럼 튀어 오르고 야단법석을 떨었다. 꽃이 핀 몸이 말을 하기 시작했다. 여기가 아프다고, 걷지 못하겠다고, 밥을 못 먹겠다고. 마취약이 몸속에 들어갈 때의 선뜩한 느낌에서부터 주렁주렁 달린 갖가지 종류의 수액들의 이야기가 나온다. 수술 후 통증, 얼굴이 퉁퉁 부으며 끊임없이 시달리는 구토와 음식에 대한 혐오증, ‘온몸에 젖은 이불을 둘러씌운 듯한’ 나른함과 무력감, 두통과 불면…… 머리카락과 눈썹을 비롯해 온몸의 털이란 털이 죄다 빠져 나가는가 하면 마침내는 발톱마저 덜렁거리며 떨어져 나간다. 작가는 화자의 입을 빌려 이 모든 상황과 증상을 치밀하게 재현해낸다. 투병기가 소설의 겉껍질이라면, 이 소설의 비의는 더 깊은 곳에 있다. 기억의 지층에 파묻힌 상처를 추적하는 시간 여행이 이 소설의 속살이다. 호미로 땅을 조금씩 긁어내고 솔로 흙가루를 털어내는 집요한 작업 끝에 묻혀 있던 고대의 토기를 발굴하는 고고학자처럼 작가는 조금씩 조금씩 상처의 단서를 지상으로 끌어올린다. 입원한 화자는 어느 밤 환청 같은 두 살짜리 여자아이의 목소리를 듣는다. 그 목소리의 주인은 화자와 같은 이름의 ‘희주’이다. 그 아이는 화자가 기억의 심층에 파묻어버린 어린 시절의 상처를 환기시키고 헤집는다. 두 살짜리 희주는 화자 희주가 태어나기도 전에 죽은 친언니이다. ‘희주’와 ‘희주’의 만남 속에서 묻혀 있던 비밀이 하나씩 드러난다. 소설 속에는 또 다른 ‘희주’도 나온다. 화자의 딸인 유미다. 화자의 엄마는 딸에게 냉담했던 것과는 달리 외손녀에게 병적인 집착을 보인다. 엄마의 고통 속에선 외손녀가 첫딸 ‘희주’가 되었다. 유미는 엄마를 건너뛰어 할머니와 애착 관계를 형성하는 듯 보였지만, 자신을 늘 ‘희주’로 부르고 죽은 딸의 그림자를 끊임없이 손녀에게서 찾는 할머니에게서 역시 상처를 입었음을 고백한다. 다르게 보면 이 소설은 ‘희주’라는 이름을 고리 삼은 모녀 삼대의 가족 서사이기도 하다. 미술을 전공한 유미는 ‘희주야!’라는 이름의 행위미술전을 열어 할머니에게서 입은 유년기의 상처를 드러내고 스스로 치유에 나선다. 그것은 상처 입은 엄마를 위로하고 치유하는 기제이기도 하다. 살아 있는 이를 위한 씻김굿이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화자는 언니 ‘희주’와 딸 ‘희주’의 도움으로 서서히 유년의 상처를 치유할 힘을 얻는다. 이 소설은 화자 자신과 엄마의 대립과 갈등, 딸과의 간극, 남편과의 이혼, 시력을 잃어가는 친구의 아픔 등 여러 가지 상처를 밀도 있게 교직하면서 우리 누구나 마주칠 수 있는 남루하고도 아픈 삶의 대목을 풀어놓는다. 그리고 단추를 꿰듯 하나씩 하나씩 정면에서 응시하고, 성찰하며 화해와 용서의 방법을 찾아 나선다. 그리고 끝내는 치유와 해방의 길로 독자를 이끌고 있다. 그렇게 보면 이 소설은 상처와 치유, 굴레와 해방에 관한 이야기라고도 할 수 있겠다.
9788982183669

기차를 놓치다 (손세실리아 시집)

손세실리아  | 강
13,500원  | 20250530  | 9788982183669
2001년 『사람의문학』 『창작과비평』 등을 통해 작품 활동을 시작하며 연민과 위로, 희망의 언어로 시를 써온 손세실리아 시인의 첫번째 시집 『기차를 놓치다』가 도서출판 강에서 양장 개정판으로 새롭게 출간되었다. 세상의 슬픔을 곡진하게 노래하면서도, 시인은 어둡고 좁은 터널의 반대편에 있는 구원의 가능성을 놓치지 않는다.
9788982183690

내 영혼 그대의 몸속으로

박설호  | 강
11,700원  | 20250702  | 9788982183690
불가능과 가능 사이의 소망은 시간의 잔해, 과거라는 시간의 타자성을 향해서도 열린다. 어쩌면 ‘빙의의 시학’이 가닿고자 하는 가장 간절한 지점이 이 어름일지도 모르겠다. 시인의 시에는 ‘늘픔’ ‘돌꼇잠’ ‘살매’ ‘는실난실’ ‘고수련’ ‘그느른’ 등 사라져가는 모국어가 많다. 그것은 그 단어들이 품고 있는 오래된 시간에 대한 사랑이기도 할 것이다. 시인의 시학에서 모국어의 속살과 ‘그대의 몸속’은 둘이 아니다. 박설호의 시집 『내 영혼 그대의 몸속으로』의 시어들은 버려지고 망각된 것들을 향한 기나긴 그리움 속에서 자라나온 것이다. 거기, 사랑이 있다고 시인은 조용히 말하고 있다. ‘발문’에서_ 정홍수(문학평론가)
9788982183638

모경의 빛 (박형숙 연작소설)

박형숙  | 강
13,500원  | 20250521  | 9788982183638
연작소설 『모경의 빛』에서 우리가 반복적으로 만나게 되는 것은 지난 연대 서울 변두리 산동네에 터를 잡은 한 가족의 초상이다. 도장업(‘뺑끼쟁이’)으로 일곱 식구의 생계를 책임진 과묵한 아버지, 빈한한 살림일망정 자식들의 교육에 열성이었던 품 넓은 어머니, 그리고 1남 4녀의 자식들로 이루어진 가족의 이야기는 산업화와 민주화의 시대를 거치며 급속하게 변화해온 한국 사회의 한 전형을 담고 있다. 빈곤 탈출, 계층 상승의 사다리를 향한 열망이 사회 전체에 들끓었던 시기의 핍진한 이야기는 세목 세목에서 뭉클하고 착잡한 시간의 아우라에 둘러싸여 있다. 그런데 『모경의 빛』이 지나간 시간의 작은 실타래들을 기억의 힘으로 정밀하게 복원하며 하고자 하는 일은 그 변화하는 사회적 배경 안에 있으되, 끝내 해소되지 않는 개인적이고 실존적인 물음인 듯하다. 연작소설의 중심 화자는 집안의 막내딸이라고 할 수 있는데, 소설에서 일인칭의 ‘나’, 이인칭의 ‘너’로 등장하거나, 때로는 ‘인해’, ‘세경’과 같은 이름을 부여받고 삼인칭으로 나오기도 한다. 작가의 분신, 페르소나로 짐작되는 이 인물에게 닥친 실존적 위기의식이 ‘가족’과 스스로에 대한 질문으로 이어지면서 아홉 편의 ‘가족 이야기’를 낳고 있다.
9791172246884

조현진  | 북랩
12,600원  | 20250613  | 9791172246884
마음 깊은 울림을 따라 잃어버린 시를 찾아 나선 여정 무의식 저편, 사랑의 감정을 조용히 노래하는 목소리 흐르는 강물처럼, 말보다 먼저 마음이 지나갔다. 그리고 그 자리에 시가 피어났다. 이 책은, 마음의 강을 따라 흘러온 언어의 기록이다. 시인은 삶의 가장 깊고 어두운 물줄기에서부터 사랑과 증오, 고통과 해탈, 기억과 상실의 물결을 차례로 건너며 이 한 권의 시집에 다다른다. 삶은 때때로 소용돌이처럼 격렬하고, 어느 날엔 신기루처럼 허망하다. 그러나 시인은 멈추지 않고 흐른다. 어디에도 머무르지 않고, 때로는 갈대처럼 흔들리며 때로는 거대한 강줄기처럼 모든 것을 끌어안고 흘러간다. 이 시집은 단지 ‘시’에 머물지 않는다. 그 안에는 인간과 우주의 운명을 되묻는 철학, 신성과 현실의 모순을 끌어안는 사유, 무너진 신념과 되살아나는 사랑이 뜨겁게 교차한다. 읽는 이는 문장의 끝에서 자주 멈추게 된다. 시인의 고백이 곧 내 이야기 같기 때문이다. 우리가 잊고 지낸 것들, 감히 꺼내지 못한 말들, 견디고도 말하지 않았던 모든 감정이 이 시를 통해 다시 떠오른다. 『강』은 그렇게 우리 각자의 내면을 흐르는 또 하나의 강이 되어 묻는다. “그대는 지금 어디를 향해 흐르고 있는가.”
9788982183676

플라나리아

전상국  | 강
19,800원  | 20250610  | 9788982183676
『플라나리아』에 수록된 전상국의 작품들에서 사람들은 거듭 떠나거나 사라지거나 숨는다. 가령 「너브내 아라리」에서 쏘가리 최씨는 반공포로라는 그의 이력이 불러오게 될 사회적 박해를 피해 장항리라는 오지 마을에서 철저히 고립된 삶을 살아가고, 제목부터가 「실종」인 소설에서는 30년 이상의 시간적 격차를 둔 두 실종 사건이 겹쳐지면서 실종이라는 테마에 내장된 문제성의 집요함을 암시한다. 또 「이미지로 간다」에서 미지라는 인물의 죽음으로 형상화된 실종의 테마는 상실의 고통과 이것에서 벗어나려는 의지 사이의 간극이 펼쳐내는 정신적·물리적 공간 속에서의 방황의 몸짓을 낳기도 한다. 이보다 단순하게 「온 생애의 한순간」 「플라나리아」 「소양강 처녀」 등의 작품들에서 실종의 테마는 사귀거나 같이 살던 여자의 떠남이라는 직설적 행위로 구체화되고, 「물매화 사랑」에서 그것은 「너브내 아라리」와 비슷한 은둔의 형태를 취한다. 이렇게 『플라나리아』에 수록된 거의 대부분의 소설들은 그 서술과 형상화의 방식이나 의미화의 구조를 달리하면서도 하나같이 실종의 테마를 중심으로 한 동심원을 이루고 있다. 작품들의 발표 연도를 볼 때 1997년에서 2004년에 이르는 7년여의 짧지 않은 세월 동안 실종의 테마는 전상국의 글쓰기를 이끌어온 예인선이었던 셈이다.
9788982183645

더 헐렁하게 사랑하든지 (이사라 시집)

이사라  | 강
10,800원  | 20250508  | 9788982183645
이사라의 여덟번째 시집 『더 헐렁하게 사랑하든지』에는 이 세상의 끝에 다다른 자의 감회가 도저하다. “우리들 함께 살았는데/그들이 떠나고/당신이 떠난다”(「유언」) 우리가 함께했던 날들은 이제 기억 속에서만 건재하고 어느새 이별은 삶의 형식이 되었다. “곧 우리 생의 화면은 깨지”(「종교적」)고 나는 사라질 것이다. 한 생이 마감을 염두에 두고 있다. 그런데 “밖은 이미 어둡고/저 무지개 너머의 세상은 더 이상 없다고/느낄 때” 바로 그 순간 시인은 “이렇게밖에 할 수 없어서/나에게 미안해//겨우겨우 살아내서 미안해”(「안에서 만져지는 몽글몽글한 슬픔」)라고 느닷없는 자책을 쏟아내고 있어 주목을 요한다. 1981년 『문학사상』으로 등단한 이래 시업 40여 년을 넘어서는 동안 심연 속 상처를 시의 표면 위로 불러내는 데 인색했던 ‘미학적 슬픔’의 대가는 이번 시집에 이르러 그동안 접어두고 억제해온 슬픔의 주름을 풀고 ‘몽글몽글한’ 회한의 감상 덩어리를 끄집어내 거침없이 만지고 또 ‘만진다’. “새 풀과 새 물이 필요해요/언제나 건조해요/정착했는데 아닌가 봐요”(「유목」)라고 원하는 것을 분명하게 요청하는가 하면, “너와 사는 동안/순간순간/울컥했다”(「울컥」)고 직접적으로 고백하고 “그게 다 사랑 때문이야/누가 무어라 해도/그래!”(「그게 다 사랑 때문이야」)라고 격렬하게 감정을 토로하기도 한다. 에드워드 사이드가 말하는 ‘말년의 양식(late style)’이라고 할까. 예술가들의 노년에 종종 발견되는 비타협, 풀리지 않는 모순, 구조적 불협화음 등을 안정감이나 삶의 연륜, 지혜 등과 대비시키는 사이드는 조화와 해결의 징표 대신 예술가가 이제까지의 기존의 사회 질서와의 원활한 관계를 포기하고 과감하게 뜻밖의 관계를 새롭게 형성하는 지점에 주목한다. 소위 ‘자발적 망명’으로 규정되는 노대가의 지배체제와의 비타협적인 면모가 성숙한 예술의 지양된 형식보다 예술의 실체에 부합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사라의 이번 시집에서도 우리는 이러한 면모를 확인할 수 있다. 물론 이 시집에는 2000년대 이후 시인의 작업, 이를테면 『시간이 지나간 시간』(2002), 『가족박물관』(2008), 『훗날 훗사람』(2013), 『저녁이 쉽게 오는 사람에게』(2018) 등의 여운이 없지 않으며 그것들을 심화하고 갱신하려는 의지도 두드러진다. 특히 과거, 현재, 미래로 이어지는 일직선적 진화론의 시간관에서 벗어나 시간을 과거와 미래가 동시에 현재로 출몰하는 ‘진흙 덩어리’이자 파편 같은 ‘토막’, 그리고 그 토막들이 서로 엮인 ‘사다리’ 같은 것으로 감수하는 지점은 여전하다. 그러나 이번 시집이 그동안 엄숙하게 고수해온 미학적 절제에서 벗어나 나이 들어가는 자의 감정을 자유롭게 직설적으로 분출하는 대목은 새롭다고 할 만하다. 형이상학적 주체에서 몸의 실존으로 옮겨가는 정체성의 재구성 과정이 슬픔의 눈물을 통해 타자와 공감하는 장면도 돋보인다. 무엇보다도 이 시집이 나와 너의 공감의 가능성에 문을 열어놓고 있지만, 완전한 합치의 전체성에는 격렬하고 냉소적으로 저항하는 부분도 흥미롭다. 이 ‘헐렁한 틈새’의 시학은 말년에 이른 이사라의 시의 또 다른 출발이라고 할 수 있다.
9788982183621

웃음과 울음의 원무 (허택 소설집)

허택  | 강
13,500원  | 20250328  | 9788982183621
허택 소설에서 몸과 욕망의 문제는 지속적으로 변주되고 있는 테마이다. 그런데 이번 소설집을 통해 새삼스럽게 눈에 들어오는 것은 그 변주의 소설적 방법들이다. 허택 소설의 관심은 현실의 반영과 모사 못지않게 현실의 재구성 쪽에도 있는 것 같다. “허택의 소설은 실재하는 현실과 작가가 만들어낸 인공의 현실을 동시에 껴안고 있는 이중성의 세계를 보여준다”(정호웅, 『몸의 소리들』 해설)는 비평적 언급은 이 점을 정확히 지적하고 있다. 여기서 ‘인공의 현실’은 작가의 세계 해석이 적극적으로 개입하는 현실의 변형과 재구성을 가리킨다고 보아도 될 것 같다. 허택 소설에서 알레고리, 그러니까 ‘다르게 말하기’의 화법이 두드러지는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을 테다. 그렇다면 허택 소설에서 ‘몸’과 ‘욕망’은 테마이며 동시에 이야기의 형식이 아닐까. 선명한 대립 구도를 말해볼 수 있을 것 같다. 한쪽에는 도덕, 윤리와 무관하게 자신의 욕망을 날것 그대로 추구하는 인물이 있고, 다른 쪽에는 그로 인해 상처 입은 인물이 있다. 허택 소설의 많은 이야기는 이 구도로부터 시작된다. 이번 소설집을 여는 「마른장마」의 중심인물 정주와 명희는 고교 동창인데, 명희가 재수를 해서 정주와 같은 대학에 입학할 정도로 단짝 친구였다. 그러나 명희는 정주의 남자 친구 민석을 빼앗아 결혼하고 두 사람의 관계는 파탄 난다. 이후 명희는 비교적 성공적인 길을 달린 남편과 함께 번듯한 가정을 꾸려가고, 정주는 배신의 상처를 안고 고립된 삶을 살아간다. 비슷한 구도는 「상실의 흔적」에서도 반복된다. 여성 화자 ‘나’는 대학 시절에 만난 ‘훈이’와 결혼했고, 표면적으로는 무난한 가정을 이루어왔다. 그러나 두 사람 사이에는 남편의 절친인 고교 동창 A가 있었고, ‘나’는 세 사람이 함께했던 대학 사진반 여행에서 A로부터 성폭행을 당한 사실을 숨기며 살아왔다. 우정을 짓밟고 폭력적으로 틈입한 몸의 기억은 끊임없이 ‘나’의 평온을 뒤흔드는 트라우마적 상처로 남게 된다. 가혹한 생존경쟁의 논리를 내면화한 남성 가부장의 일그러진 욕망이 아내나 자식들에 대한 폭력적 억압으로 표출되는 이야기들도 있다. 「웃음과 울음의 원무」, 「N번째 살인미수 사건」이 그런 경우인데, 가족 내에서 이루어지는 가해와 억압의 또 다른 선명한 대립 구도를 보여준다. 남근적 욕망의 자기 파멸의 서사를 환상적 우화로 그려낸 「야차 LC」, 남편의 성적 착취에 맞선 아내의 끈덕진 처벌을 담아낸 「붉은 비닐 노끈」에서도 가족 관계에서 내연하고 있는 대립 구도의 변주된 양상을 읽어내기는 어렵지 않다. 「영도와 여의도 사이」에서는 집과 경제 관념을 둘러싼 세대간 대립 구도가 뚜렷하다. 물론 대립 구도를 풀어내는 방식은 작품마다 다르며, 가해나 억압의 세부적 양상 또한 단선적이기보다는 중층적으로 뒤얽혀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 같은 대립 구도의 반복적 활용이 얼마만큼은 현실에 대한 작가 나름의 해석적 프레임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게 되는 것도 사실이다. 그리고 이 점이 허택 소설을 통상의 리얼리즘과는 다른 소설적 좌표로 이동시키는 것 같다. 허택 소설은 세부적 현실의 재현으로부터 하나하나 이야기를 쌓아가는 방식을 취하지 않는다. 그보다는 인물이나 상황을 압축하는 환유적 표현에 힘을 기울이면서 그 환유의 수사학을 소설의 전체적 구도, 전언으로 확장하려고 한다. 이때 소설의 서사는 환유의 수사학을 중심으로 구축된다. 가령 「마른장마」에서 자신의 욕망에 거침이 없는 명희라는 인물을 그릴 때, 작가는 명희의 ‘높고 날카로운 목소리’에 주목한다. 소설에서 명희의 목소리는 ‘소프라노 솔 음’이라는 환유의 수사학으로 표현된다. 비슷한 수사학의 예는 ‘집’에 대한 생각을 둘러싼 부자 세대간의 갈등을 다룬 「영도와 여의도 사이」에서도 만나게 된다. 노년의 문턱에 이른 ‘나’와 아내에게 ‘집’은 영도 산동네의 자그마한 재개발 아파트가 전부라고 할 수 있다. 그 집은 ‘나’가 고등학교 2학년 때 아버지가 해상 사고로 세상을 뜬 후 어머니와 함께 힘겹게 장만한 것으로, 영도 조선소에서 ‘깡깡이 아지매’로 일한 어머니와 대학 진학을 포기하고 곧장 생활전선에 나서야 했던 ‘나’의 고단한 세월이 담겨 있는 곳이다. 그 집은 ‘나’에게 어릴 적부터 오르내리던 ‘달빛 아래 벚꽃 가로수길’로 기억 속에 남아 있다. 「N번째 살인미수 사건」에서 우리는 대립 구도의 자기 분열/증식을 본다. 이 작품에서 소설화자 ‘나’가 거듭 죽이려고 시도하는 존재는 생존경쟁의 내면화, 폭력적인 남성 가부장의 허위의식 속에서 ‘괴물’로 변해버린 자기 자신이다. 혹은 괴물이 되어버린 내면의 욕망이다. 소설에는 거듭 ‘놈을 죽여야 한다’는 표현이 나온다. 평범한 중산층의 삶을 벗어나고 싶었던 ‘나’는 은행원으로 일하면서 주식투자에 빠졌고, 주식에 중독된 채 삼십대를 보냈다. 그러는 동안 집안의 경제를 책임지고 자식들을 키운 것은 아내였다. ‘나’는 음악을 하고 싶어 한 아들의 뜻을 마구 짓밟기도 했다. 이 소설에서 흥미로운 지점은 ‘나’의 자기 분열, 자기 대면이 피해자이기도 한 아내의 적극적인 조력을 통해 이루어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번 소설집에서 허택 소설의 개성적 구도와 화법이 가장 집약적으로 표현된 작품은 표제작인 「웃음과 울음의 원무」다. 평생 집안의 폭군으로 군림했고, 함께 입사한 절친을 배신하면서까지 직장에서 최고의 지위에 오른 소설화자 ‘나’는 허택 소설의 전형적인 남성 인물이다. 소설은 2년 전 세상을 떠난 아내의 추도식 날 하루를 담고 있다. 어머니의 사고와 죽음에 아버지의 책임이 크다고 믿는 아들과의 관계가 특히 좋지 않지만, 권위적이고 억압적인 아버지에 대해 두 딸도 소원하기는 마찬가지다. ‘나’가 막내딸의 8개월 된 외손녀를 이날 처음으로 보게 된 상황에 ‘나’를 둘러싼 가족의 현재가 압축되어 있다. 아내가 떠난 후 ‘나’가 군림해온 집이라는 성채는 기실 ‘공허’와 ‘적막’뿐이었다는 게 드러난다. 추도식 날 가족들로부터 소외된 ‘나’는 자신만의 철옹성이라 믿었던 서재에 고립된다. 구원의 계기는 외손녀로부터 찾아온다. 서재로 들어온 아기가 할아버지를 보고는 울음을 그치고 방실방실 웃음을 짓는다. 아이의 웃음이 ‘나’에게 뜻밖의 몸의 반응을 불러일으킨다. 스스로를 가혹하게 다그치며 앞만 보고 질주해왔던 ‘나’는 눈물을 모르는 삶을 살아왔다. 그런데 아기의 ‘너무도 깨끗한 웃음’에 대한 ‘나’의 첫 반응은 자신도 모르게 흘러내리는 눈물이다. 눈물은 그렇게 잊었던 몸의 기억을 일깨우며 찾아온다. 몸의 기억은 연쇄적이다. 허택 소설은 예의 ‘몸의 시학’을 통해 ‘나’에게 찾아온 반성과 구원의 계기를 포착하려 한다. 허택 소설에는 전쟁통에 태어나 힘겨운 시대를 살아낸 어떤 세대의 초상이 겹친다. 현직 치과의사라는 작가의 이력은 몸에 대한 각별한 소설적 상상력으로 이어지면서 인간 욕망의 미로를 탐사하는 많은 이야기를 빚어왔다. 이번 소설집에서도 확인할 수 있는바, 욕망을 둘러싼 선명한 대립 구도는 허택 소설의 중요한 서사적 동력이면서 그 구도를 허물고 넘어서는 소설 화법의 다양한 가능성을 시도하는 원천이 되고 있다. ‘다르게 말하기’는 알레고리라는 소설 화법의 특징과도 연결되지만, 문학적 새로움을 추구하려는 작가적 의욕의 표현이기도 한 것 같다. 허택 소설에서 ‘몸’은 끊임없는 소설적 탐구와 발견의 대상이면서 그 자체 소설의 새로운 형식, 새로운 화법을 요구하는 동인이 되고 있다. 늦은 등단에도 불구하고 벌써 다섯번째에 이른 소설집의 상재(上梓)가 보여주는 것처럼, 작가의 지칠 줄 모르는 열정에는 젊음의 시간을 방불케 하는 경이로움이 있다. 그 열정의 힘으로 펼쳐질 앞으로의 세계가 기대된다.
9788982183607

자본주의근대와 세계문학

유희석  | 강
21,600원  | 20250228  | 9788982183607
괴테가 세상을 뜨고 200년이 가까워 오는 지금, 과연 그가 예견하고 기대한 세계문학의 이상을 인류는 얼마나 구현하고 있는가? 이 책 서장인 「허먼 멜빌과 ‘세계문학’의 꿈」에서 저자는 바로 그 물음을 염두에 두면서, 국민ㆍ민족문학과 세계문학의 살아 있는 긴장을 포착한다. ‘세계문학’에 관한 한 멜빌은 괴테와 본질적으로 공명하고 있다. 하지만 전혀 다른 역사적 국면에서 활동한 작가들이니만큼 차이점도 확연하다. 멜빌에게 고전적인 문학 유산의 수호 의지는 그 자체로 미국문학의 세계적 가능성을 저버리는 정신적 매국에 가까웠으니 말이다. 그것도 그럴 것이, 적어도 그가 태어난 당대의 미국에는 그런 유산 자체가 부재했다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9788982183614

봉준호 되기 (봉준호를 만든 교과서와 스승들)

남다은, 정한석  | 강
18,000원  | 20250310  | 9788982183614
모두가 기다렸던 방식으로 ‘봉준호’를 말한다 “부끄럽지만 이것이 나의 지난 이야기다. 과거의 마침표이자 미래의 출발점으로 삼고 싶다.” 봉준호(영화감독) 2025년 3월 현재 봉준호 감독의 신작 〈미키 17〉이 개봉되어 관객들과 만나고 있다. 봉준호는 이제까지 일곱 편의 장편을 선보였다. 대부분은 비평적 찬사를 받았고, 네 편은 광범한 대중적인 성공을 거두었다. 그의 영화를 눈여겨봐온 사람이라면 알겠지만, 그는 한 번도 전작의 성공 공식에 기대 다음 작품을 만든 적이 없다. 실제 미제 사건을 미결의 범죄스릴러로 재현한 두번째 장편 〈살인의 추억〉(2003), 불과 110억 원의 제작비로 괴수가 단 125숏에만 등장하는 희귀한 크리처 영화 〈괴물〉, 아들의 살인죄를 숨기기 위해 목격자를 살해한 엄마가 관광버스에서 춤추는 장면으로 끝나는, 떠올리기조차 힘든 괴이한 범죄스릴러 〈마더〉, 유명 할리우드 배우들을 대거 기용한 대형 국제적 프로젝트 〈설국열차〉(2013)와 〈옥자〉(2017), 그리고 다시 한국적 상황으로 돌아와 초대형 세트에서 홍수의 재난을 만들어낸 〈기생충〉에 이르기까지, 봉준호는 자신을 탈진시킬 정도로 모험적인 프로젝트가 아니라면 도무지 흥미가 없다는 듯, 도전적인 작업을 계속해왔다. 어떤 영화를 본 뒤에 그 영화를 만든 감독의 머릿속을 열고 들여다보고 싶은 충동을 느낄 때가 있다. 아마도 그 영화가 예상치 못한 지적 감정적 충격을 주었거나, 작품의 화술과 기예가 너무도 경묘해 찬탄을 불러일으켰을 때일 것이다. 이 책의 필자들에겐 봉준호가 그런 감독이다. 〈괴물〉(2006)에서 송강호 가족이 합동 장례식장에서 바닥을 뒹굴며 난동과도 같은 합동 오열을 할 때, 〈마더〉(2009)에서 취조 형사 송새벽이 뜬금없이 세팍타크로 강의를 늘어놓다 돌연 용의자 원빈의 입에 물린 사과를 돌려 찰 때, 〈기생충〉(2019)에서 피와 땀이 범벅된 지하실 남자가 벽에 머리를 박다가 충혈된 눈을 부라리며 “리스펙”이라고 소리 지를 때, 이 예측 불가능하지만 너무도 현실적인, 동시에 우스꽝스럽고도 위협적인 장면을 어떻게 떠올릴 수 있었을까? 무엇보다, 온갖 이질적인 것들이 모여 있는데도 어떻게 그토록 조밀하고 유연하고 단단한 하나의 덩어리를 빚어낼 수 있었을까. 영국에서 봉준호와 대담을 진행한 감독 라이언 존슨(〈나이브스 아웃〉, 2019)의 표현대로 그의 “미친 두뇌(insane brain)”가 궁금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 책의 제목 ‘봉준호 되기’도 존 말코비치의 두뇌 속으로의 가상 여행을 다룬 〈존 말코비치 되기〉(스파이크 존즈, 1999)에서 힌트를 얻었다. 물론 봉준호 감독의 머릿속을 온전히 이해하는 건 불가능하다. 창작 과정에서 창작자의 두뇌가 작동하는 비밀스런 메커니즘은 분석적 접근이 불가능한 마법에 속한다. 하지만 적어도 지금까지 알려진 것보다는 조금 더 깊은 곳을 들여다볼 수는 없을까. 이런 호기심이 이 책의 출발점이었다. 봉준호는 어떤 감독보다 다양한 텍스트들에서, 혹은 뜻밖의 텍스트들에서 영감을 얻는 창작자이다. 그리고 그 영감의 원천들은 어떤 다른 감독의 경우보다 더 직접적으로 작품에 새겨져 있다. 이 책의 필자들은 그에게 더 많이 물어서 그 영감의 원천들을 더 넓게 더 깊이 알고 싶었다. 두 필자는 이 책을 위해서 봉준호 감독과 모두 여덟 시간에 걸쳐 네 차례의 대화를 가졌다. 그의 영화적 교과서와 스승들뿐만 아니라 구체적 텍스트로 환원될 수 없는 환경과 기질과 취향도 물었고, 봉준호 감독은 친절하고 세심하게 답해주었다. 봉준호 감독은 고등학생 때 성당 간행물에 그린 일곱 쪽짜리 만화(김동인의 단편소설 「거지」의 결말을 충격적으로 바꿔 그렸다)를 포함해 여러 유용한 시각 자료도 제공해주었다. 어린 봉준호를 영화의 세계로 이끈 TV라는 ‘시네마테크’/‘이야기 상자’, 만화와 애니메이션, 불안과 서스펜스의 범죄스릴러 세계(추리소설)와 관련된 흥미로운 이야기들은 이 책의 1부 ‘TV소년 준호’ ‘미래소년 코난’ ‘만화의 광맥’ ‘소설과 불화한 추리광’ 장에 녹아들었다. 독자들은 여기서 봉준호 감독의 영화적 뿌리와 원천만이 아니라 ‘걸출하고 개성적인 이야기꾼’의 탄생 과정을 지켜볼 수 있을 것이다. ‘이야기꾼’으로서의 봉준호 감독에 대한 주목은 그가 가장 존경하는 알프레드 히치콕 감독과의 영향 관계, 두 감독의 공통 유전자에 대한 논의로 확장되면서 히치콕의 창조적 계승자로서 봉준호 감독의 고유한 영화적 인장과 비밀에 다가간다(1부 7장 ‘히치콕이라는 거대한 그림자’). 봉준호 감독의 본격적인 영화 수업기인 대학 시절, 그가 체감했던 시대의 부조리는 ‘부조리와 욕망의 스승, 김기영과 이마무라 쇼헤이’ 장에서 봉준호 영화의 곳곳에 스며 있는 설명하기 힘든 정념의 장면들, 아이러니한 영화적 수사학과 함께 조명된다. 2부 ‘봉준호와의 대화 : ‘나’라는 텍스트를 말한다’에서는 봉준호 감독의 육성으로 그 자신의 영화적 원천과 영화 수업 과정, 영화적 영감과 영화 만들기에 얽힌 흥미로운 이야기들과 함께, 불안과 강박에 얽힌 개인적인 고백도 접할 수 있다. 3부에는 봉준호 감독을 매혹시키며 그를 영화의 세계로 이끈 할리우드 장르 영화의 목록들을 생생하게 탐사하고, 봉준호 감독이 꼽은 여러 ‘베스트 목록’을 선보인다. ‘봉준호의 이 한 장면 : 베스트 신 10’에서는 그에게 지속적으로 영화적 영감을 주는 영화의 신(scene)들을 구체적인 장면 설명과 함께 보여준다. (1부에는 그가 좋아하는 애니메이션, 만화, 추리소설 베스트 목록을 담았다.) 부록으로는 동시대 일본을 대표하는 하마구치 류스케 감독의 강연록 ‘하마구치 류스케가 봉준호에게 배운 것’을 수록했다. 하마구치 감독은 봉준호 감독의 영화에서 받은 충격을 진솔하게 고백하면서 〈살인의 추억〉의 명장면들을 예시로 봉준호 영화의 힘을 감동적으로 풀어낸다. 그는 “〈기생충〉을 보고 난 후, 저는 알프레드 히치콕을 잇는 유일한 존재가 봉준호 감독이라고 생각했습니다”라며 강연을 마무리하고 있다. 이 책은 봉준호의 영화 세계에 관심을 가진 독자들과 영화 창작자를 꿈꾸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쓰였다. 그리고 봉준호의 영화 세계를 형성하는 데 바탕이 되고 영감을 준 텍스트들, 달리 말해 봉준호만의 영화 교과서를 정리해보고 싶다는 의도에서 만들어졌다. 하지만 이 책에 실린 봉준호의 영화적 원천을 되새기면서, 사회성과 정치성과 장르성에 관심이 모아져온 그의 작품들에서, 시청각적 표현들이 영화 서사의 중핵을 이루는 소위 ‘순수영화’적 자질 그리고 이질적 혼종성과 역동적 응집성이라는 성격이 더 깊이 재조명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도 있다. 이 책이 봉준호의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들, 혹은 그로부터 배우려는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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