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울 속의 야만 (나는 어떻게 괴물이 되는가!)
윤창섭 | 퍼플
15,000원 | 20250901 | 9788924170504
필자는 인류라는 이름의 어둡고 깊은 박물관을 홀로 걷는 듯한 기이한 감각에 사로잡혔습니다. 진열장 너머에는 우리가 익히 들어온 비극의 유물들—아우슈비츠의 철조망, 르완다의 마체테, 킬링필드의 해골 더미—이 음울한 빛을 발하고 있었습니다. 필자는 그 사실 앞에서 분노하고, 슬퍼하고, 그리고 안도했습니다. ‘저들은 우리와 다르다’라는, 문명인의 안일한 위안과 함께 말입니다.
이 책은 안전한 유리벽 너머의 과거를 관람하도록 안내하는 친절한 해설가가 아니라는 것을. 오히려 이 책은 그 모든 진열장이 사실은 ‘거울’이었음을 폭로하며, 독자의 멱살을 잡아 그 앞에 세우는 대담하고 불편한 기록입니다.
이 책은 단순히 인류가 저지른 잔혹 행위의 목록을 나열하는 연대기가 아닙니다. 그것은 오히려 그 끔찍한 비극의 무대 뒤편, 평범한 우리와 너무나도 닮은 얼굴을 한 가해자들의 분장실을 대담하게 열어젖히는 통렬한 탐사 보고서에 가깝습니다. 무엇이 평범한 이웃을 학살자로 만들었는가? 무엇이 선량한 시민들의 눈을 감기고 입을 닫게 했는가? 그 질문에 답하기 위해 필자는 심리학과 뇌과학, 사회학과 역사를 검토하며 인간의 마음속 가장 깊은 곳에 숨겨진 ‘잔혹의 설계도’를 한 겹 한 겹 펼쳐 보았습니다.
제1부 ‘잔혹의 씨앗’에서 우리는 우리 뇌에 각인된 ‘우리’와 ‘그들’을 나누는 원시적 본능과 마주하며, 다수에게 속하고 싶은 열망이 어떻게 진실을 외면하게 만드는지 깨닫게 됩니다. 제2부 ‘잔혹의 기계’에서는 그 작은 씨앗이 권력, 시스템, 이데올로기라는 토양을 만나 어떻게 거대한 악의 숲으로 자라나는지를 목격합니다. 밀그램의 전기 충격 실험실과 스탠퍼드 모의 감옥은 더는 먼 나라의 연구가 아니라, 우리가 매일 경험하는 조직과 사회의 축소판으로 다가올 것입니다.
이어 제3부 ‘잔혹의 무대’는 역사의 법정에 선 인류의 가장 참혹한 범죄들을 재구성하며, 앞서 분석한 잔혹의 메커니즘이 어떻게 수백만의 피로 역사를 물들였는지 생생히 증언합니다. 그리고 마침내 제4부 ‘잔혹의 거울’에 이르러, 저자는 그 시선을 지금, 여기의 우리에게로 되돌립니다. 온라인 마녀사냥의 키보드를 두드리는 손가락에서, 불의를 외면하는 우리의 침묵 속에서, 그리고 문명의 발전이라는 눈부신 빛의 그림자 속에서, 우리는 과거의 야만이 단 한 번도 우리를 떠난 적이 없음을 고통스럽게 확인하게 될 것입니다.
부디 이 책이 당신에게 안전한 관람석이 아닌, 불편하고 고통스러운 거울이 되기를 바랍니다. 읽는 내내 마음이 무겁고, 때로는 차마 마주하기 힘든 자신의 모습을 보게 될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그 거울을 정직하게 들여다보는 용기야말로, 우리가 다시는 그 끔찍한 역사를 반복하지 않을 유일한 희망이라는 것을. 그 거울 속에서, 우리는 비로소 잔혹의 시대를 끝낼 희미한 빛, 즉 성찰하는 인간의 존엄을 발견하게 될지도 모르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