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를 사랑한 날들 (한국문학상 수상 기념 시집)
김민서 | 샘문
10,800원 | 20251031 | 9791194817321
〈평설〉
일상성에서 존재론으로, 감성에서 사유로 승화한 시詩
- 강소이(시인, 수필가, 소설가, 문학평론가)
1. 들어가는 말
김민서 시인의 두 번째 시집 「너를 사랑한 날들」 총 115편의 시편을 통해, 김 시인이 시와 더불어 살아온 궤적을 알 수 있었다. 김 시인의 프로필은 정통 문학 교육이나 시 전문 훈련과는 거리가 있지만. 오히려 다양한 삶의 현장 - 컴퓨터학원, 무역, 건강식품, 화장품, 뷰티 사업 등과 사회복지사, 평생교육사, 청소년 심리 상담사, 건강가정사, 시낭송가로도 활발히 활동을 해왔으며 한복 모델로 최고의 무대에 섰던 경험치를 갖고 있다. 다양한 분야에서 활발히 활동하며 자신의 삶을 열심히 살아온 프로필을 가진 분이다.
시인은 〈여는 글〉에서 시 쓰기가 단순한 취미나 감성의 발현이 아니라, ‘존재 확인’과 ‘세상 견디기’의 기제로 기능해 왔음을 고백한다. 김민서 시인은 중, 고등학교 때 문학의 밤 사회를 보다가 한용운의 “님의 침묵”을 낭송한 일이 계기가 되어 시를 써왔다고 했다. 한복을 입고 무대에 설 때마다 시적 정서를 다시 확인했으며 시낭송가의 길로 이어졌다고 했다. 이는 시 쓰기가 단순한 미적 창작이 아니라, 실존적 글쓰기로 확장된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물론 일부 시편에서는 관념어와 한자어로 다소 직설적인 표현을 보이기도 하며, 시적 이미지의 형상화와 감각적 밀도가 다소 약화 되는 지점도 있다. 그러나 다수의 작품에서는 언어의 생동성과 정서의 내밀성이 성공적으로 조화를 이루며, 생활 세계로부터 추출된 사유와 정서의 정련된 형상화를 보여준다.
2. 시편 들여다보기
W. 워즈워드가 말했듯, 인간은 표현의 욕구가 있다. 표현하고 싶은 욕구가 인간의 본능이라는 것이다. 김민서 시인은 삶의 순간순간, 사소한 일까지도 시로 빚어 시집을 두 번째 묶는 것으로 보아, 시에 대한 열정이 깊은 것을 알 수 있다.
김민서 시인의 두 번째 시집 「너를 사랑한 날들」의 시 115편에 나타난 시의 특징을 몇 가지로 분류해 보았다. 115편 중, 우수한 작품들만 뽑아 각, 파트별로 시의 특징을 간단히 살펴보도록 하겠다.
1) 사소한 일상에서 철학적 사유로의 확장
위에서 언급한 대로, 김민서 시인은 삶의 순간순간을 시로 빚어낸 시가 이 시집의 주된 특징이다. 그중에 〈고속 터미널〉, 〈빨래방의 모습〉, 〈단추 1, 2〉 등이 돋보인다. 주변 사물이나 공간에서 출발하지만, 그것을 단순한 서정의 대상으로 보는 데 그치지 않고 존재론적 - 관계론적 사유로 승화시키고 있다.
대부분 사람은 바쁜 일상에서 시와 무관하게, 시를 외면하고 산다. 그러나 김민서 시인은 중, 고등학교 시절부터 시의 감성을 얻어 시를 벗 삼아 살아온 연유인지 그의 생활은 곧 시가 된 듯한 느낌이다.
어느 옷에나 단추가 달려있다. 누구나 단추를 무심히 지나친다. 그러나 김민서 시인은 “단추”라는 작은 사물도 그냥 지나치지 않고, 단추에 대해 사유하고 시로 빚어내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단추 1, 2〉를 읽으면, 저절로 맑은 미소가 지어진다. 〈단추 1〉에서 “너가 있어 따뜻하고/ 너가 있어 멋스럽고/ 너가 있어 행복하고/ 너가 있어 빛이 난다네”라고 노래했다. 〈단추 2〉에서는 “추울 때는/ 나의 빈 가슴을 여미어주고/ 더울 때는/ 살짝 열어 보여서 멋스럽게 연출해주는 너”라고 했다. 추울 때는 단추를 잠가 바람이 들어오지 못하게 하여 몸을 따듯하게 한다. 더울 때는 단추를 풀어 멋스럽게 연출해준다. 우리가 늘 입는 옷에 달린 작은 단추를 보고 시로 빚어낸 시적 감수성이 놀랍다.
〈빨래방의 모습〉도 재미있는 일상 시다. “빨래터에서 아낙네들이 방망이질하며/ 수다 떠는 풍경”에서 이제는 “500원짜리 동전 7개 넣고/ 스타트 버튼 누르면/ 빨래방의 빨래는 숨 쉴 사이 없이 돌고 돈다” 빨래터에 쭈그리고 앉아 빨래하던 빨래터의 모습은 사라지고, 이제 기계 세탁으로 변모한 빨래방의 모습을 보며, 빨래방에서 빨래하는 일상도 놓치지 않고 시로 빚고 있다. “주말이면 북적거린다/ 늘 그 시간에 오면 만나는 사람이 있다/ 이젠 빨래방에서 눈이 맞으려나/ 흐흐~~~”라고 했다. 재미있는 발상이다.
〈고속 터미널〉 시는 일상의 공간이다. 뒤에서 언급하겠지만, 이번 시집에는 유난히 여행 시가 많다. 여행을 좋아하는 시인인가 보다. 여행마다 여행지로 이동하는 교통수단이 무엇이었는지는 알 수 없으나, 김 시인은 고속 터미널에서 어딘가로 떠나 본 경험이 있음은 틀림이 없다. 그저 고속버스를 타고 이동하는 터미널에서 김 시인은 인생 - 삶을 사유하고 깊이 있는 멋진 시를 빚어내고 있다. 이 시는 많은 이들에게 울림을 줄 훌륭한 수작(秀作)으로 회자膾炙될 것으로 보인다.
“사람들은 모두 어디론가/ 떠나거나 돌아오는 길 위에 서 있다” 이 표현은 시의 서두에서 독자의 시선을 압도한다. 어디론가 떠나고 싶은 모든 사람의 열망 - 그리고 돌아오는 길. “사람들은 모두 그 길 위에 서 있다” 멋진 표현이다. 고속 터미널 전광판에는 버스가 출발하는 시각과 행선지가 불빛으로 뜬다. “시간표에 적힌 숫자들/ 그건 목적지가 아니라/ 각자의 사연, 안녕의 이름들”이라고 했다. 떠나는 곳에서 “안녕”을 비는 인사를 남기고 떠나는 일을 시로 형상화한 것이리라.
그리고 김 시인은 고속 터미널을 “잠시 멈추는 이 공간은 말한다”라고 했다. “삶은 떠나는 길과 돌아오는 사이에/ 작은 돌다리”로 보았다. “고속 터미널 = 작은 돌다리”이다. 훌륭한 은유(metaphor)이다. 시 쓰기 기법 중에 메타포(은유)적 연결은 매우 고도의 고급스러운 표현법이다. 〈고속 터미널〉은 누구나 지나치는 공간이지만, 시간과 장소의 상투성을 벗어나 삶과 존재의 본질에 대한 통찰로 나아가는 시적 전략은, 시적 언술이 철학적 성찰로 확장될 수 있음을 시사한다. 메타포 적 언어의 절창으로 이끌어내는 우수성이 돋보이는 시이다.
2) 일상의 공간에서 길 위에 시편들
서두에서 언급한 것처럼, 김 시인의 이번 시집은 일상적인 소재에서 시를 빚어내고 있다. 김 시인이 사는 지역이 양재역 부근인 모양이다. 〈서초동 여름 저녁〉, 〈양재천의 아침〉, 〈양재천 새벽길〉, 〈양재역에서〉, 〈한여름 방배동을 지나며〉의 시는 일상에서 길 위의 서정을 읊은 시들이다.
그중에 〈양재역에서〉는 “시민의 숲엔/ 나뭇잎 사이 햇살이 부서지고/ 작은 새 한 마리/ 은행나무 아래 노래를 건넨다”라고 했다. 양재역이라고 하면, 강남권이며, 신분당선으로 환승을 할 수 있는 역이다. 조선 시대에는 이곳을 말죽거리라고 불렀다. 그때에도 한양 남쪽 지방과 한양을 연결하는 관문이었다.
지금도 양재역 주변은, 출퇴근 시간에는 이동하는 인파로 붐빈다. 그런데 분주하게 움직이는 사람들을 아랑곳하지 않고, 나뭇잎 사이로 햇살이 부서지고 작은 새 한 마리 은행나무 아래 인사를 건넨다고 했다. 인간사(人間事)에 관심이 없다는 듯 햇살과 작은 새는 인사를 건넨다. 가던 발걸음을 멈추고 한 번쯤은 작은 새의 지저귐에 귀를 기울이며 자연이 건네는 인사의 마음을 내어주는 “마음 쉼”의 정서 - 평안과 휴休를 읊고 있어서 눈길을 끄는 시라고 하겠다.
결국, 시인은 “도심의 숨은 쉼표”라고 했다. “양재 시민의 숲”은 “당신이 서 있는 이곳이/ 오늘의 가장 고요한 풍경이다”라고 단정하고 있다. 지금 독자가 서 있는 곳이 금싸라기 땅, 양재역 부근이 아니라고 해도, 서울 변두리거나, 멀리 시골 헐한 땅이라고 해도, “당신이 서 있는 이곳”이 “가장 고요한 풍경”이라는 표현은 우리에게 깊은 사유를 하게 한다. 금싸라기 땅이 아니라도 “서 있는 이곳”을 고요한 곳으로 만드는 게 시인의 언어의 힘일 것이다.
〈한여름 방배동을 지나며〉는 삼호교회 담장에 온통 초록 담쟁이로 덮여 있는 모습, 삼호 아파트 나무들, 매미 울음소리에 잠기고…. “여기 한철의 몸이 지고/ 한철의 여름이 타오른다”라고 했다. 봄이 지고 한여름 땡볕 속에 매미 울음소리 아래 화자(김 시인)의 발소리만 뜨거운 한 철이 타오른다는 표현은 시를 많이 접해 본 내공 있는 표현이다. 여름이 뜨겁게 달아오르는 방배동의 모습이 한 폭의 그림처럼 눈에 그려진다. 이 시는 아스팔트 - 담장의 초록 담쟁이 - 벚꽃의 눈부심 - 잎을 꾹꾹 눌러 편 아파트 나무들에서 보이는 시각적(회화적 심상)과 매미 소리라는 청각적 심상이 어우러진 우수한 시라고 하겠다.
3) 자연과 계절을 통한 내면 풍경의 구현
봄, 여름, 가을, 겨울 계절과 자연을 읊은 시도 다양하게 빚어내어 시의 서정과 사유를 잘 담아내고 있다. 그중에 〈봄의 약속〉, 〈사월의 소곡〉, 〈가을에서 겨울로 가는 길목〉, 〈가을은 색동저고리〉, 〈대추의 추억〉, 〈가을〉, 〈하엽〉, 〈6월의 깊이〉, 〈서리풀 숲길에서〉 등이 우수하다.
〈서리풀 숲길〉은 서초동에 있는 넓고 쾌적한 도심 속 공원 숲길이다. 세종대왕 둘째 형인 효령대군과 첫째 형인 양녕대군의 묘도 주변에 있고, 몽마르뜨 언덕이 조성되어 있다. “서리풀”은 서초구의 옛 지명에서 유래되었다. 김민서 시인은 프로필에서 서초동에 거주한다고 밝힌 것으로 보아, 집 근처에 있는 서리풀 숲길을 자주 걷는 모양이다. “서리풀 터널”, “누에 다리”, “고요한 숲의 초록”, “벚꽃이 쏟아지는 봄날, 분홍빛 눈이 떨어져/ 한걸음마다 부서지는 꽃잎의 파편/ 그 위에 남은 내 마음의 발자국”, “여름엔 빗줄기 한 올 흔들리고” “가을엔 단풍이 나를 감싸/ 차분한 고요로 나를 물들인다.” “겨울엔 하얀 고요가 깃들고”라고 계절 변화에 따른 서리풀 숲길의 변화를 시각적(회화적)으로 그려내면서 “마음의 사유와 마음의 고요”를 노래하고 있다.
서리풀 공원은 시인에게 “도시의 공원에서 나는/ 오늘도 다시 태어나서 기다린다”고 했다. 그 공원의 풍경이 어떠하기에 시인은 다시 태어나서 기다림의 미학을 갖게 했을까? 궁금해진다. 서리풀 공원에 찾아가 보고 싶은 마음이 일게 하는 시이다. 그리고 시인이 기다리는 것은 무엇인지 그것 또한 궁금해진다. 계절의 변화를 기다린다는 것인지, 숲길을 걸으며 계절마다 사유하며 다시 깊어지는 사유 속에 다시 태어나는 더욱 원숙한 자신을 기다리는 것인지. 김 시인과 대화를 나눠보고 싶게 하는 시이다.
〈가을에서 겨울로 가는 길목〉은 가을에 지는 잎을 보며, 원숙해지는 화자를 만날 수 있는 시이다. “그렇게 매일 바쁘게 살아온 나날들/ 물질의 탐욕 인간들은 다 벗어버린/ 나무를 보고 느끼는 게 없을까?”라고 했다. “왜 그리 아등바등 살아갈까!/ 있을 때 좀 더 베풀고 나누면/ 아름답게 살아갈 수 있을 텐데/ 후회 없이 살아보자고요”라고 했다. 이 시는 시인이 하고 싶은 말을 직설적으로 나열한 서술이다. 지는 잎을 보며 사유한 주제 의식을 분명하게 노골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이런 직접적인 윤리적 언술을 사용하여, 소외된 인간성을 환기하면 도덕적 시의 기능을 수행한다. 다만 여기서는 직진 적 담론이 이미지의 시적 변환을 대체하면서, 미학적 완성도보다는 메시지의 전달력이 강조되고 있다.
4) 사랑과 만남에 대한 감각적 언어
매우 정감 있고 따스한 감수성으로 만남, 인연, 사랑, 사랑의 언약, 이별을 다룬 시들도 여럿이다. 매우 감동적으로 읽었으나, 여행과 종교적 담론을 담은 시들에 대해 언급할 것이 많으므로 이 부분은 생략하기로 한다. 그중에 〈사랑도 달콤한 커피 향처럼〉, 〈내 눈에 콩깍지〉, 〈너를 사랑한 날들〉, 〈오월 스무 한날 당신과 나〉 시가 돋보인다. 서정적 감수성과 개별적 기억의 복원을 통해 감정의 구체성을 확보하고 있으며, 이는 일상성과 결합 된 정감적 서정시의 전형으로 읽힌다.
5) 여행을 통한 자아 성찰과 존재 탐구
여행은 우리 모두에게 누구에게나 로망이다. 익숙한 공간에서 떠나 새로운 곳을 찾아가 새로운 자신을 발견하고 새 힘을 얻어 다시 일상으로 돌아오고 싶어한다. 다른 시집에 비해서 「너를 사랑한 날들」에는 여행 시편의 비중이 높다. 〈거제도 홍포 일몰〉, 〈파도 소리〉, 〈다낭 미케비치 해변〉, 〈간월도에서의 하루〉, 〈그때 그날의 별들에게〉, 〈남해, 바다의 속삭임〉, 〈금산 보리암〉, 〈논개 각문〉, 〈경포 앞바다〉, 〈모래〉, 〈상사화 섬〉, 〈위도〉, 〈광양 매화 축제〉 등이 모두 여행 시이다. 김 시인은 여행을 많이 다닌 것을 알 수 있고, 여행지마다 느낀 소회를 시로 빚어내었다. 여행 시는 문학성이 뛰어나기가 쉽지 않다. 여행의 경로와 감상에 치우칠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문학성을 살리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그중에 〈거제도 홍포 일몰〉은 매우 우수한 작품성을 보여서 괄목할 만하다. “지는 해”, “석양”, “불타오름”과 같은 이미지들이 시간의 흐름과 삶의 덧없음을 동시에 환기 시킨다. 시인(화자)은 일몰을 바라보며 “너”에게 말을 건다. 그리고 곧 “무슨 생각에 잠겨있을까”라는 질문으로 시적 자아의 내면과 타인의 내면을 동시에 비춘다. 더 나아가 “나는 토닥거린다/ 잘하고 있다고”라는 구절에서 보이듯이 일몰을 통해서 자기 위로와 타인에 대한 위로를 동시에 이루고 있다.
또한, 이 시에서도 이미지로 그려내기보다는 직접적인 말하기 방식으로 “사람은 누구나 왔다 간다”라는 말을 하고 있다. 삶의 유한성을 확인하는 철학적인 인식이다. 그러나 시인은 단순한 허무로 종결하지 않고, “석양의 활활 타오름”에서 오히려 아름답게 잘 살다 갈 것이라는 희망적 해석을 끌어내고 있다. 일몰의 장엄한 이미지는 단순한 자연 풍경이 아니라, 사람도 누구나 왔다 가지만, 그 소멸은 허무가 아니라 아름다운 흔적을 남길 수 있다는 희망으로 바뀐다. 일몰이라는 자연 현상을 삶의 마무리와 존재의 형상화된 미학으로 승화되고 있기에 탁월한 상징주의적 성취를 보인다.
결국, 이 시는 “일몰”을 통해 삶의 소멸과 아름다움, 그리고 긍정적 수용을 노래하고 있어서 우수한 시로 인정된다.
6) 종교적 사유와 영성의 시적 형상화
여러 분야에서 분주하게 바쁜 일상과 여러 차례의 여행을 통해서 김민서 시인은 삶에 대한 깊은 통찰과 종교적 답을 얻은 듯한 시를 빚어내고 있다. 〈암흑 속에서〉, 〈해미원의 기도〉, 〈간월암의 기도〉가 그것이다. 김 시인님의 종교가 무엇인지는 모르지만, 천주교 박해가 있었던, 해미읍성 여행 후 쓴 시가 눈에 뜨인다. “해미원의 돌담길”, “작은 풀잎조차 고개 숙임”, “해미읍성의 성벽”의 시각적 이미지를 보인다. 여기에 “아이들 웃음소리”와 “장날 풍경 소리”의 청각적 이미지를 더하고 있다.
이 시에서 이런 이미지보다 더 중요한 것은 “바람결 따라 피어나는 기도/ 눈물에 비친 구름 조각 하나에도/ 은총이 흐른다”라는 종교적 사유를 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시인은 이곳에서 자신의 안녕과 부귀영화나 명예를 기도하는 것이 아니라, “나는 두 손 모아 이 땅의 평화를 빌고/ 누군가의 고요한 눈물을/ 하늘에 띄운다”라는 아름다운 마음을 보인다. 이 땅의 평화와 순교자, 그리고 눈물을 흘리고 있는 누군가의 작은 시름까지 하늘에 띄우고자 하는 고운 마음이 시보다 더 아름답다.
〈간월암의 기도〉에서는 “이 조용한 절벽 위/ 달을 품은 암자에서/ 나는 나를 내려놓는다”라는 표현이 큰 울림을 주고 있다. 금강경(金剛經)의 가르침 “내려놓음”을 선택하는 시인의 사유의 깊이를 읽을 수 있다.
“기도는 말이 아니고/ 눈물이 아니라/ 그저 바다를 바라보는 일”…. “달빛 같은 용서를 배우는 시간”…. “저 너머 저 하늘 끝/ 잃어버린 마음의 집을 향해/ 작은 촛불 하나 밝혀/ 이 순간을 기도로 올린다”
간월암에서 시인은 잃어버린 마음의 집 - 욕심이나 갈등, 미움을 내려놓고 달빛 같은 용서를 배워 잃어버린 마음의 집에 촛불 하나 밝혀 진아眞我를 찾고자 하는 구도자의 모습을 보인다. 〈해미원의 기도〉와 함께 〈간월암의 기도〉는 김민서 시인의 내면의 깊이와 고요를 알 수 있는 우수한 작품이다. 공감共感을 보내며, 필자도 작은 촛불 하나 밝혀 이 땅의 평화를 위해 기도하고, 잃어버린 마음의 집을 찾는 일에 손을 모으고 싶다.
3. 나가는 글
위에서 김민서 시인의 두 번째 시집 「너를 사랑한 날들」의 특징을 6가지로 나누어 살펴보았다. 일상의 감각적 체험과 내면적 성찰이 교차하는 지점에서 탄생한 시집으로 보인다. 언어적 실험보다는 정서의 전달력과 사유의 진정성을 추구하며, 서정시 본연의 기능에 충실한 작품들로 구성되어 있다. 시인은 삶의 편린을 ‘시의 언어’로 번역해 내며, 경험과 시적 감각의 유기적 결합을 꾀하고 있다.
또한 계절에 대한 사유, 만남과 이별, 사랑에 관한 시, 여행 시를 살펴보았다. 115편의 시 중에서 〈해미원의 기도〉와 함께 〈간월암의 기도〉에서 읊은 시가 김 시인의 사유의 극점이라고 볼 수 있겠다. 삶에 대한 깊은 통찰과 사유 - 평화를 기원하는 기도와 내려놓음의 미학의 정수를 읽을 수 있어서 기쁜 마음이다. 향후의 시 세계가 보다 정제된 언어 감각과 형상성의 밀도를 확보한다면, 김민서 시인은 보다더 폭넓은 공감과 비평적 성공을 동시에 성취할 수 있을 것이다. 더욱 시에 정진하여 더욱 깊이 있는 시를 빚어낼 것을 기대하며 또한 제2시집 출간을 축하드리며 글을 맺는다.
[감수 지율 이정록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