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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삼웅"(으)로 106개의 도서가 검색 되었습니다.
9788959408610

단재 신채호 평전

김삼웅  | 시대의창
19,800원  | 20250301  | 9788959408610
아我와 비아非我의 투쟁적 삶을 살다간 고결한 혁명가 독립운동사에서 단재 선생만큼 남북한 공히 존경받는 인물은 아마 없을 것이다. 해방 후 극심한 이념대결의 장에서 독립투사들의 이념에 따라 서로를 인정하지 않았지만 선생만은 자신이 남긴 업적만큼이나 위대한 혁명가로서 존경을 받았다. 그러나 남북한이 전쟁을 치를 만큼 한쪽의 역사를 잃었던 것과 마찬가지로 우린 아직도 선생의 국적조차도 회복시키지 못하는 우를 범하고 있다. 이 책은 단재 선생의 생애를 연구하고 선생의 발자취를 끊임없이 찾아 새로운 자료를 발굴했던 저자의 역작이기도 하다. 이 책에는 실제 저자가 몇 차례 뤼순 감옥을 방문해 입수하게 된 선생의 감옥 입소 때 찍은 사진을 게재했으며, 잡지 《천고》의 2권을 연변에서 입수해 국내 언론에 소개했던 일화도 소개하고 있다. 단재 선생의 삶은 그야말로 자신이 ‘아와 비아의 투쟁’이라 일컬었던 역사의 정의만큼이나 치열하게, 또는 고뇌하며, 고결하게, 한 점 흐트러짐 없는 혁명가의 삶을 살았다. 또 그 삶의 무게만큼이나 선생이 남긴 업적 또한 오늘날의 참 지식인의 전형을 보여주고 있다. 우선 단재는 사학자로서 민족사학의 골격을 세웠을 뿐 아니라 한국 고대사 복원은 물론 잘못된 역사의 과오와 왜곡된 역사에 대해서도 비판의 칼을 들이댔다. 이러한 단재사학의 가장 특징이라 할 수 있는 ‘낭가사상’은 민족사상의 기원, 전승, 기능을 구명하면서 국권회복을 위한 근대적 자주독립정신을 세워 민족의 진로와 시대정식을 밝히고자하는 노력의 일환으로 볼 수 있겠다. 또한 선생이 남긴 《조선상고사》 등 수많은 저작물은 오늘날 역사 연구의 전형을 보여주고 있다. 언론인으로서의 단재는 결기 그 자체라 말할 수 있겠다. 선생은 일찍이 《황성신문》의 논설위원을 지냈을 뿐 아니라 장지연이 쓴 〈시일야방성대곡〉의 후반부 원고 집필을 도와 을사늑약의 부당함을 만방에 알리기도 했다. 또한 《대한매일신보》 주필로서 일제의 침략과 친일파의 매국 행위를 통렬히 비판하는 논설과 사설들을 쏟아내기도 했으며, 이 시기 애국심과 자강사상을 고취하기 위해 해외 역사 서적을 번역(《이태리 건국 삼걸전》)하고 한국 사상의 영웅전(《수군 제일 위인 이순신전》, 《동국거걸 최도통전》)을 직접 저술하기도 했다. 선생은 망명길에 올라서도 《대동공보》에 관여하고 《권업신문》 주필로도 활약했다. 이승만의 임시정부에 대항하기 위해 항일신문 《신대한》을 창간하기도 했으며, 개인 잡지 《천고》를 발행, 중국인과 한국인을 결속하는 항일투쟁과 한국 고대사 연구에 열정을 불태웠다. 독립운동가로서의 단재는 무장투쟁노선을 견지한 혁명가였다. 〈의열단선언문〉으로 불리는 〈조선혁명선언〉은 일제시대 수많은 독립 선언문 가운데 내용과 문장이 가장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선생은 이 선언문에서 폭력에 의한 민중의 직접혁명을 부르짖었다. 또한 고급 밀정 김달하를 처단했던 다물단의 선언문도 집필했으며, 단원들과 함께 기거하며 조선사 등을 강의하기도 했다. 마지막으로 아나키스트로서의 단재는 “지배계급이 민중들을 억압하거나 민중들을 속여 자신들의 지배에 복종시키고 혁명을 소멸시키기 위하여 이용하는 지배계급의 일체의 지배기관이나 수단은 파괴되고, 지배계급이 제정한 일체의 사회제도도 철폐되어 존재하지 않으며, 사유재산제도 부정되고 모든 재화의 공유제가 실시되어 일체의 착취가 없는 사회”를 건설하고자 했다. 선생의 이러한 사상적 변화에 대해 비판하기도 하지만 민족주의의 발전된 단계로 보는 견해도 있다. 이 책에서는 선생에 대한 여러 다양한 의견들과 비판들을 실어 아나키스트 신채호의 면모를 들여다 볼 수 있도록 했다. 단재 신채호 선생의 생애는 망국 시대에 모든 것을 바쳐 일제와 싸운 처절한 혁명가의 삶이었으며, 오로지 일제 타도와 조국 해방 외에는 아무것도 바라지 않았다. 선생은 일제 타도를 위해 언론ㆍ문학ㆍ사학ㆍ대종교ㆍ아나키즘ㆍ의열단 등 가능한 모든 수단과 방법을 동원하여 싸웠으며 오늘날 각 분야의 큰 업적을 남겨 참 지식인의 전형을 보여주고 있다. 동북공정으로 대변되는 중국의 역사 왜곡이 한민족의 울분을 자아내고 있는 지금, 선생은 이미 민족사학의 이름으로 찬란한 우리의 고대사를 연구하고 복원하였다. 오늘 우리가 선생의 발자취를 조금이라도 다시 더듬고자 하는 것은 바로 잘못된 역사를 청산하고 올바른 역사의식을 회복하기 위함이다.
9791171530311

선생님, 홍범도 장군이 누구예요?

김삼웅  | 철수와영희
13,500원  | 20250717  | 9791171530311
우리는 왜 홍범도 장군을 알아야 하나요? - 홍범도 장군과 함께 만나는 독립운동의 역사 이 책은 대한독립군 총사령관 홍범도 장군의 일생과 동학 농민 혁명, 청일 전쟁, 봉오동 전투, 청산리 대첩, 홍범도 장군 흉상 철거 논란 등에 관한 다양한 이야기를 통해 독립운동과 일제의 만행에 대해 자세히 알려줍니다. 홍범도 장군은 우리 독립운동사에서 열 손가락 안에 꼽힐 만한 분입니다. 그의 활동 무대는 지금의 함경도 지역인 관북의 산악 지대로부터 만주와 러시아에 이릅니다. 홍범도 장군처럼 오랜 기간 치열하게 일제와 싸운 사람도 흔치 않습니다. 독립군을 이끌고 최초로 일본이 점령한 국내 진공 작전에 나선 사람도 홍범도 장군입니다. 그는 봉오동 전투와 청산리 대첩의 주역이었어요. 뛰어난 전략 전술로 청일 전쟁과 러일 전쟁의 승자였던 일본 정규군을 물리쳤습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일제와 싸우는 과정에서 부인과 자식을 잃었습니다. 부인은 일제 감옥에서 고문으로, 큰아들은 전선에서 일본군과 싸우다 전사했어요. 홍범도 장군은 봉오동 전투와 청산리 대첩을 승리로 이끈 후 일제의 추격으로 피신할 때 러시아령(러시아 영토)에서 독립운동 진영 간의 갈등을 조정하고, 장기전에 대비하여 황무지를 개간하면서 부하들과 둔전(유사시 군량미를 생산하는 논)을 경영합니다. 홍범도 장군은 1937년 소련의 권력자인 스탈린에 의해 러시아령 블라디보스토크 지역에 살던 동포 17만 명과 함께 중앙아시아 카자흐스탄으로 강제로 이주당했어요. 낯선 땅에서 그는 동포들의 정신적 지주가 되었어요. 동포들의 민족의식을 고취하면서 항일 무장 투쟁의 꿈을 버리지 않았습니다. 그러다 일흔다섯 살이던 1943년 조국 해방을 2년 앞두고 서거했습니다. 나라의 독립을 위해 자신은 물론 가족까지 희생한 홍범도 장군은 일제가 가장 두려워했던 무장 독립 전쟁의 영웅이고, 전투에서 세운 공로는 독립운동사의 자랑스러운 기록입니다. 그는 나라가 어려움에 처했을 때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보여 주었습니다. 우리가 홍범도 장군을 알아야 하는 이유입니다.
9791198896902

네 칼이 센가 내 칼이 센가

김삼웅  | 달빛서가
15,300원  | 20250220  | 9791198896902
단재 신채호의 삶과 사상, 열정과 고뇌를 담은 실록 소설! 오로지 역사와 민족을 위해 치열하게 싸운 지식인의 모습을, 광복 80주년을 맞아 우리가 되새겨야 하는 ‘신채호 정신’을 평전의 대가 김삼웅 전 독립기념관장이 소설로 들려준다!
9788942391356

서민호 평전 (통 큰 정치인)

김삼웅  | 지식산업사
18,000원  | 20241223  | 9788942391356
월파 서민호 선생을 아시나요? 한국 근현대사에서 깊게 조명해야 할 인물이 어찌 한두 분이겠는가 마는 역사의 장막으로 세월의 퇴적층에 속절없이 덮혀 잊혀져가는 것은 우리에게 크나큰 손실이 아닐수 없다. 그 가운데 한 분이 서민호 선생이다. 그는 일제 식민지 시대 3.1운동에 참가하여 옥살이를 했으며, 일본과 미국으로 유학하여 최고 학부를 거친 지식인으로서 조선어학회를 적극 지원, 역시 옥살이를 하였고, 미군정 아레서 광주시장. 전남지사 등을 지내고, 대한민국 정부수립에 적극 가담하였다.. 1950년 제2대 국회에 진출하여 내무분과위원장으로, 1951년 국민방위군사건. 거창 양민학살사건 등 이승만 정권의 비리를 적극 파헤치자 그의 정적으로 몰려 서대위 격살 사건으로 8년 남짓 옥살이를 하다가 4월 혁명으로 풀려났다. 그는 호남 부호의 아들로 해방 당시 좌익세력에 맞서 싸웠으나 그 많은 재산의 대부분을 교육사업에 기부했다. 민주화 투쟁에서 고난을 당하면서도 정치적 회유냐 협박에 흔들리지 않고 ‘겨레와 민주주의’라는 대의를 위헤 자기를 지켰다. 조봉암 사형 이후 금기시되었던 혁신정당의 맥을 잇고 민주사회주의를 표방하면서, 보수야 당도 유지하기 어려웠던 이승만 박정희 독재정권으로부터 몇 차례나 방공법 위반 혐의로 구속되기를 거듭하면서도 자신의 이념과 정책을 펼치는 몇 안 되는 정치인이었다. 군사쿠데타로 정권을 잡고 설치던 박정희 대통령을 향해 〈대통령을 탄핵한다〉는 제목 아래 대 정부 정책질의를 한 용기 있는 정치인이었다. 그는 소신과 용기만 있었던 것이 아니고, 〈내가 만약 대통령이라면〉 의 제목 아래 정책 비전을 제시하고 유엔을 통한 남북 총 선거를 실시하여 우리 겨레의 통일 자주 정부수립을 하자고 촉구하기도 했다. 온갖 시련과 탄압에도 우리가 가야 할 길은 민주사회주의 라는 이념의 텃밭을 지키려 했던 의로운 분이었기에 김대중 대통령도 정치인 가운데서 존경하는 인물로 서민호 선생을 꼽은 것이리라. 폭력과 전쟁이 난무하는 지금, 월파 서민호 선생의 앞을 내다보는 안목과 경세관은 오늘 다시 되새겨야 할 나침반이라 할 것이다.
9788959408498

심산 김창숙 평전

김삼웅  | 시대의창
19,800원  | 20241111  | 9788959408498
심산 김창숙 선생 ‘칼을 든 선비’ 남명 조식의 선비 정신을 이어받은 심산 김창숙 선생은 시대의 암흑기에 한눈팔지 않고 오로지 정도를 당당히 걸어온 참선비다. 일제강점기에 격렬하게 항일 독립 투쟁을 벌이고, 해방 후에는 치열하게 반독재 민족통일운동을 벌인 애국지사다. 이 책은 여든네 살의 생애를 외세와 불의에 비타협적인 투쟁으로 일관해온 선생의 행동과 정신을 담았다. 선생은 구국 전선에 뛰어들어 처절하게 싸웠다. 일제의 감옥에서 모진 고문을 당해 두 다리가 마비되어 앉은뱅이로 살아야 했지만, 꼿꼿함으로 통일조국수립운동과 반독재 투쟁을 벌였고 유림의 정통성을 지키기 위해 성균관을 수호했다. 일제 청산을 제때에 하지 못한 탓에 왜곡된 역사관이 ‘당당’하게 주장되는 오늘날, 심산 선생의 서릿발 같은 삶은 우리 정신을 일깨우는 따끔한 가르침을 남긴다.
9791171530212

미래 세대를 위한 동학 농민 혁명 이야기

김삼웅  | 철수와영희
11,700원  | 20241205  | 9791171530212
동학 농민 혁명을 왜 알아야 할까요? 이 책은 우리나라 근현대 최초의 혁명이었던 동학 농민 혁명이 왜 일어났는지, 동학 농민 혁명이 어떻게 전개되었는지, 동학 농민 혁명의 정신이 무엇이었는지 등 동학 농민 혁명에 대한 다양한 주제를 중심으로 동학 농민 혁명을 청소년 눈높이에서 알려 준다. 동학 농민 혁명에 대해 꼭 알아야 할 최제우, 최시형, 손병희, 전봉준 같은 중요한 인물들의 생애와 함께 동학 농민 혁명이 일어난 시대적 배경과 동학 농민 혁명 과정에서 분기점이었던 고부 봉기, 황토현 전투, 전주성 입성, 우금치 전투 등에 관한 내용을 자세히 담았다. 당시 백성들이 왜 동학을 따랐는지, 농민군의 행동 강령과 대의가 무엇이었는지, 사발통문에 담긴 평등사상은 무엇이었는지, 왜 동학이라는 이름을 천도교로 바꾸었는지 등 청소년들이 궁금해할 만한 22가지의 질문과 답변을 통해 동학 농민 혁명에 대해 쉽게 알려준다.
9788959408597

녹두 전봉준 평전

김삼웅  | 시대의창
19,800원  | 20241202  | 9788959408597
범부의 자리를 박차고 나와 민중혁명 지도자로 산화한 영혼에 바치는 서사시 역사책 속에 나오는 태생과 환경이 비범한 인물들 가운데서 전봉준은 하나의 혁명 같은 존재이다. 조선 후기 대부분의 농민들처럼 주목받지 못한 채 빈곤하고 고된 일생을 숙명으로 받아들일 평민으로 자랐으나 마침내 한국 근대 민중사의 절정인 동학농민전쟁의 지도자가 되고 세도정치의 폐해와 제국주의의 위협 아래 신음하던 조선 후기 민중의 이익을 대변하는 정치체제를 주창한 진보적 사회정치가가 되었다는 점에서 전봉준은 민중의 힘을 새삼 느낄 수 있는 매력을 지닌 인물이다. 이번에 나온 《녹두 전봉준 평전》은 전봉준의 이와 같은 일생의 변모를 다룬 책으로, 조선 후기 평범한 농촌지식인이 한국 근대 민중사의 절정인 동학농민혁명을 진두지휘한 민중의 명장으로 우뚝 서는 과정을 우선 놀라운 시선으로 그려내고 있다. 이 책의 저자는 전봉준의 일대 변신을 경이롭게 바라보고 다루기를 먼저 선택함으로써 사료와 기존의 연구 자료가 미처 다 풀어내지 못한 논란거리들(전봉준과 대원군과의 관계, 김개남 장군과의 관계 등)에 크게 구애받지 않고 관심사를 전개하는데, 특히 동시대의 대다수 농민들과 같은 삶을 이어가면서도 팍팍한 조선의 현실을 직시한 채 좋은 세상을 실현하고자 보국안민의 길을 궁리하던 전봉준이 동학에 입교하여 그 길을 찾고자 했으며, 나라를 구하고 백성을 위하는 길이 반봉건, 반외세의 투쟁일 수밖에 없다고 판단한 그에게 민본주의와 동양 사상의 주체성을 강조한 동학이 정신적 지주이자 농민을 기반으로 하는 집단적 활동의 원천으로 보였을 것이라는 부분을 예로 들 수 있다. 이 책은 1894년 고부에서 일어나 이듬해 3월 처형되기까지 전봉준이 진두지휘한 동학농민전쟁은 19세기 말 이 땅의 민중이 어떻게 역사의 구심점으로 떠올랐는지를 보여준다. 접전과 휴전 시기를 아울러 1년 4개월 남짓한 전쟁 내내 동학농민군의 최고지휘자 자격으로 전봉준이 고시한 격문과 통문들을 살펴보고 특히 전주화약이 체결된 이후 집강소 설치와 운영을 중심으로 그가 지휘한 농민군의 활약상을 주목하면 동학농민전쟁을 당시 지배계급과 외세에 대한 단순한 ‘저항’으로만 치부할 수 없음을 알 수 있다. 독자들은 동학농민전쟁이 저항을 넘어서서 우리 근대사에 어떤 비전들을 가지고 있었는지, 농민들이 구체적으로 지향한 사회적, 경제적 방향은 무엇이었는지에 대해 “전국에 집강소가 설치되고 유능한 ‘공화주의자들’이 정사를 맡으면 농민군들은 생업(농업)에 복귀하여 그 본분에 충실하고자 한다”는 전봉준의 발언을 반추하며 그 답을 가늠해볼 일이다. 또한, 현존하는 사료와 기존의 학문적 연구 결과의 틀을 벗어나 여러 편의 시를 비롯한 문학 작품을 옮겨놓은 서정성이 강한 평전이어서 딱딱한 역사 속 인물서가 아니라 마치 한 권의 영웅시를 읽는 듯한 감흥도 얻을 수 있다. 오늘날 우리는 범부 전봉준이 동학농민군의 지도자로 변모하면서 봉기했던 때를 고질적으로 닮은 시대를 살고 있다. 분단과 외세의 극복은 여전히 우리 시대의 절박한 과제다. 무슨 영웅이나 대단한 애국자는 아닐지라도 이런 동시대의 현실을 직시한 채 우리 사회의 비전을 모색하고자 고민하는 분들에게 특히 일독을 권한다.
9788942391257

조지훈 평전 (지조의 시인·한국학자)

김삼웅  | 지식산업사
18,000원  | 20240415  | 9788942391257
먼동이 트기 직전, 어둠을 걷은 지조의 시인 이 책은 그간 문학분야에 집중되어 왔던 조지훈 선생의 일면을 조명한 글이다. 조지훈 선생은 〈승무僧舞〉를 비롯하여 〈고풍의상〉, 〈봉황수〉, 〈낙화〉, 〈바위송〉 등 수 많은 절창을 쓴 시인이면서도, 한국학자이자 논객으로 활동한 복합적 지식인이었다. 일제강점기에는 《큰사전》 편찬위원으로 활동하며 수많은 문인·지식인들이 친일로 훼절을 할 때 청년 조지훈은 오대산으로 들어가 청절한 지조를 지켜냈다. 또 자유당정권 말기에는 공명선거 전국위원회 중앙위원으로 반독재투쟁의 선두에 섰을 뿐 아니라, 이어지는 4.19혁명에서는 청년들의 정신적 지주가 되었다. 조지훈 선생은 풍류문인과 학자, 논객으로 호방하게 살다가 48세의 짧은 생애를 접었다. 민주와 공화 그리고 정의 대신 ‘법치’ 만이 나부끼는 다시 암울한 이 시대, 지성을 갉아먹는 지식인들이 소 갈 데 말 갈 데 가리지 않고, 권력이 부르면 뒤도 돌아보지 않고 달려가는 교수·언론인이 줄을 서는 이 시대에, 그리고 추하게 빛바래지는 시인·문인들이 넘치는 시절에, 조지훈 선생과 같은 기개 있는 지식인을 기대하면서 짧지만 깊고 넓었던 삶과 사유의 족적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9788974431631

노무현 평전 (지울 수 없는 얼굴, 꿈을 남기고 간 대통령)

김삼웅  | 두레
10,800원  | 20240523  | 9788974431631
원칙과 상식이 통하는 ‘사람 사는 세상’을 꿈꾸며 불의와 특권에 저항했던 노무현! 용기와 희생의 정신으로 냉혹하고 혼탁한 정치판에 맨몸으로 부딪친 그의 삶을 서거 15주년을 맞아 다시 돌이켜보다 그가 남기고 간 미완의 꿈에 비춰 우리의 현실을 다시 들여다보고, 불안과 좌절 속에서도 새로운 미래를 그려보게 만드는 책! 『백범 김구 평전』『김대중 평전』등 다수의 전기를 집필한 역사가 김삼웅이 노무현 전 대통령의 파란만장한 삶을 재조명하였다. 노무현 대통령의 곤궁했던 어린 시절, 숱한 좌절로 점철된 청년기, 인생의 전환점이 되었던 부림사건과 ‘거리의 변호사’로 활동했던 이야기, 청문회 스타 뒤에 가려진 초선의원의 고뇌, 험난했던 대선후보 과정과 당선, 정권 초기의 시련 등 불의와의 적당한 타협을 거부하고 남들이 가지 않은 길을 걸었던, 바보 노무현의 생애가 풍부한 역사 지식과 자료 조사에 바탕을 둔 저자의 평가와 함께 생동감 있게 펼쳐진다. 정치판의 칼날 위에 맨발로 딛고 서 있어도 사람의 향기를 잃지 않았고 죽음을 앞에 두고도 끝까지 초연했던 노무현. 그가 고인이 된 지 15년이 지난 이때 평전을 다시 펴내며, 인간 노무현의 삶을 더욱 선명하고 객관적인 시선으로 그려내고자 했다.
9788959408436

백범 김구 평전

김삼웅  | 시대의창
19,800원  | 20240522  | 9788959408436
백범의 삶과 사상을 총제적으로 담아내다 평화와 자유는 이 세상을 사는 모든 사람들에게 있어 추구해야 할 보편타당한 가치이다. 또한 이는 우리 사회뿐 아니라 국가가 존립하고 있는 근거이기도 하다. 그래서 늘 세계는 평화와 자유를 위협하는 세력에 대해서는 어떠한 희생을 감수하고서라도 철저히 응징해오고 있다. 특히 우리나라는 분단 상황에 놓여 있기 때문에 평화와 자유는 그 어떤 가치보다 소중하고 지켜야 할 절대적인 가치로 인식된다. 이처럼 우리에게 소중한 평화와 자유의 가치를 물려주고자 노력했던 사람이 있었다. 그가 바로 ‘백범 김구 선생’이다.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는 과거의 핍박과 억압에 대해 잘 모르고 있다. 특히 일제시대에 독립을 위해 싸운 독립투사들의 죽음을 불사르는 항거는 그 어떤 것과도 맞바꿀 수 없는 소중한 자산이다. 그러나 지금, 우리 스스로가 과거의 잘못을 바로잡지 못한 사이, 일본은 자신들의 참혹한 만행을 반성하기는커녕 외려 잘못을 되풀이하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 우리는 순국선열들의 정신을 계승하기는커녕 물질만능과 도덕적, 정신적 해이로 이어져 끊임없이 서로를 왜곡하고 매도하고 있다. 이러한 정신적 몰락을 회복하기 위해서라도 선열들의 위대한 정신을 계승 발전할 수 있도록 그들의 올곧은 삶을 재조명해야 할 역사적 사명이 우리에게 있다. 지금까지 백범 김구 선생에 대한 책은 김구 선생이 직접 저술한 자서전인 《백범일지》가 널리 알려져 있다. 그 외에도 여러 가지 그의 사상과 독립운동에 대한 논설이 주를 이루고 있지만, 백범 김구 선생의 평전은 찾아볼 수가 없었다. 백범 김구 선생의 평전을 세상에 내놓은 이유는 앞서 말한 정신의 계승과 발전에도 있지만 더 이상 잘못된 역사(친일청산)를 되풀이하지 않고 더 나은 미래로 나아가려는 데 있다.
9788959408290

안중근 평전

김삼웅  | 시대의창
18,000원  | 20231201  | 9788959408290
고결한 삶을 살다 간 ‘지나간 미래상’ 안중근 지난 2009년이 안중근 의사가 이토 히로부미를 토살한 하얼빈 의거 100주년이었다. 그리고 2010년은 안중근 의사가 여순감옥에서 순국한 지 100주년이 되는 해였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이러한 사실을 아는 사람들은 그렇게 많지 않다. 우리 민족이 위기에 처했을 때 민족의 적 1호 이토 히로부미를 처단함으로써 한민족의 독립의지와 기상을 천하에 떨친 그의 행적이 그동안 너무 쉽게 간과되어온 탓이다. 안중근 의사는 독립운동가로서뿐 아니라 세계평화주의자로서의 면모를 보여준 선각적인 지도자였다. 하얼빈 의거 말고도 국채보상운동, 교육사업, 의병전쟁 등 수많은 구국 운동에 참여했고,《동양평화론》을 통해 동아시아의 평화를 주장했다. 그가 주장한 동양 평화에 대한 지론은 100여 년이 훌쩍 지난 지금에 적용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동아시아의 현재와 미래의 ‘평화구도’와 공동체 모델로 인식되는 대단히 선구적인 것이다. 그는 한ㆍ중ㆍ일이 공동으로 동양평화회의를 구성하고, 국제적 분쟁지인 여순을 중립화해 그곳에 동양평화회의 본부를 설치할 것과 3국 공동의 개발은행을 설립해 공동화폐를 발행하자고 제안했다. 유럽공동체와 같은 기구를 100여 년도 더 전에 구상한 것이다. 이러한 그의 혜안은 21세기의 동아시아 정세에 그대로 대입해도 될 정도로 논리적이고 합리적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안중근 의사를 ‘지나간 미래상’이라 부르는 것이다. 이 책은 안중근 의사의 삶을 통해 해결되지 않고 잊히는 과거사를 현재에 되돌려, 우리 민족이 추구해야 할 미래를 그려본다.
9791193193075

정의의 길, 세 개의 십자가: 함세웅 평전

김삼웅  | 소동
22,500원  | 20240109  | 9791193193075
한평생 걸어온 민주주의의 한 길. 민중과 함께하는 영원한 현역, 함세웅. 누가 정의로 가는 길을 묻거든, 눈 들어 그의 삶을 보게 하라! 역사는 기록으로 남지만 이름으로도 남는다. 윤동주라는 이름에는 젊은 시인이 살았던 일제강점기의 쓰라린 역사가 담겨 있고, 전태일이라는 이름에는 청년 노동자가 스스로를 불살랐던 1970년대의 혹독한 노동현실이 응축되어 있다. 개인적 삶의 서사를 뛰어넘어 한 시대의 상징으로 남은 이름들! 치열했던 1970~80년대 또한 후인들에게는 누군가의 이름으로 기억된다. 그중 하나가 바로 정의구현사제단의 함세웅 신부다. 이 책은 사제이자 사회운동가로 평생을 살아온 함세웅 신부의 삶의 기록이다. 삼엄한 독재의 70년대, 찬란한 항쟁의 80년대, 좌절과 반성의 90년대 그리고 새로운 모색의 2000년대까지, 그의 이름에 응축되어 있는 이 땅의 현대사가 수많은 자료와 인터뷰를 통해 생생하게 재현된다. 굴곡진 시대였던 만큼 사연 또한 많았을 터, 그것을 담아낸 책의 밀도 역시 그만큼 높을 수밖에 없다. 글쓴이는 김구, 홍범도, 안중근, 김대중, 김근태 등 독립운동과 민주화운동에 헌신한 많은 인물들의 삶을 책으로 엮어낸 바 있다. 하지만 동시대 인물의 평전을 쓰는 것은 아무리 베테랑이라도 쉽지 않은 일이다. 많은 부담을 무릅쓰고 굳이 ‘지금’ 이 책을 펴낸 이유를 그는 이렇게 설명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용기를 낸 것은 바야흐로 ‘공정과 상식’이라는 관제 구호가 나부끼는 시대가 되었기 때문이다. (중략) 또다시 정의의 탈을 쓴 불의가 횡행하는 지금, 함세웅 신부의 강고한 삶의 궤적을 살펴봄으로써 진정한 정의가 무엇인지를 확인하고, 세인들을 미혹하는 ‘관제 정의’가 뿌리 내리지 못하도록 경계하고자 한다.” (‘들어가는 글’ 중에서)
9788974431600

개화기의 선각자 서재필

김삼웅  | 두레
17,100원  | 20231220  | 9788974431600
한국 근대사의 대표적인 개화사상가, 언론인, 계몽사상가, 독립운동가 개화기에 선각자로서 큰 발자취를 남긴 서재필 평전! 서재필의 개화 시기의 역할과 해방 후의 행적 등을 자세히 들려준다 서재필은 수구파를 척살하고 개혁정치를 실현하려던 혁명가이고, 개화운동의 선구자이며, 이 땅에서 처음으로 ≪독립신문≫이라는 근대적 신문을 만든 자유언론인이자, 독립문을 세우고 독립협회와 만민공동회를 주도한 공화주의 시민운동가였다. 이 모든 일은 오로지 조국의 자주독립을 위한 헌신에서 비롯되었다. 이 때문에 서재필은 자신을 제외한 온 가족이 몰살당하는 참극을 겪어야 했다. 서재필의 생애는 당대 한국인 누구 못지않은 파란곡절(波瀾曲折)의 삶이었다. 그는 국내보다 해외에서 산 기간이 더 길었다. 그러다 보니 조국이 해방되어 귀국했을 때는 한국말이 서툴렀고, 외국인 행세를 하며 한국을 ‘귀국(貴國)’이라 불렀다. 미국 여성과 재혼하고, 미국 시민권을 받았으니 반은 미국인이었다. 그러나 그는 죽을 때까지 한국인이었고, 조국의 독립과 통일을 기원했다. 서재필에 관한 책은 이미 여러 권이 나와 있고, 연구 논문도 많다. 최근에는 그의 행적을 두고 과대 포장되었다는 비판적인 주장도 제기되었다. ≪독립신문≫을 두고도 ‘부왜역적 기관지’라는 극단적인 비판이 따르기도 한다. 그런데도 또 하나의 ‘서재필 평전’을 독자들에게 내놓는다. 우리나라 근현대사 연구가이자 독립운동과 민주화운동에 헌신한 인물들의 평전을 써서 ‘평전의 대가’라는 평을 받는 김삼웅 전 독립기념관장은 그 이유를 “개화 시대의 그의 역할과 해방 후의 행적 등을 좀 더 세밀히 살펴보기 위해서”라고 말한다. 이 책은 망명과 추방, 멸문지화에도 조국의 자주독립운동과 통일국가를 염원하는 독립운동가로서 한평생을 바치며 살다 간 서재필의 삶과 업적을 꼼꼼하게 들려준다. 저자가 미국 필라델피아의 서재필 선생 기념관을 찾아 전시관을 둘러보고, 기념관 주위에서 자라는 대나무(서재필의 고향인 전남 보성에서 가져왔다고 함)를 보며 언젠가 기회가 되면 이 거인의 평전을 쓰고자 다짐했다고 한다. 그때가 2000년 8월이니, 그 다짐을 지키기까지 23년이라는 세월이 훌쩍 지났다. 갑신정변과 서재필 서재필은 스물한 살 때인 1884년에 김옥균과 박영효, 홍영식 등 개화당 인사들과 청나라에 의존하려는 척족 중심의 수구당을 몰아내고, 실질적인 독립과 개혁정치를 이룩하고자 갑신정변을 일으켰다. 그러나 수구세력이 끌어들인 위안스카이(袁世凱)의 청나라군에 진압되어 갑신정변은 삼일천하로 막을 내렸다. 서재필은 목숨을 구하기 위해 고국을 떠나야만 했고 이후 일본을 거쳐 미국으로 망명했다. 서재필은 갑신정변 당시 휘하의 사관생도들을 지휘하여 고종을 호위하고 수구파를 처단하는 역할을 맡았다. 갑신정변이 실패한 뒤 그의 가족은 역적으로 몰려 부모·형제와 아내는 음독자살하고, 동생은 참형을 당했으며, 두 살 된 아들은 돌보는 이가 없어 굶어 죽었다. 서재필 박사(doctor) 일본에서 미국으로 건너간 서재필은 미국으로 귀화한 1호 한국인이 된다. 낮에는 일하고 밤에는 컬럼비안 의과대학(오늘날 조지워싱턴 대학교)에서 인턴 과정을 수학한 뒤 의사 면허증도 땄다. 서재필은 박사 학위를 받은 적이 없다. 각종 기록에서 ‘서재필 박사’라고 쓰는 것은 흔히 의사를 ‘닥터(doctor)’라고 하는 데서 온 착오인 듯하다. ≪독립신문≫과 독립문, 그리고 다시 추방 서재필이 미국에서 정착하는 사이에 국내 정세는 급변했다. 갑오개혁(1894~1896)이 일어나 개혁정치가 단행되고, 서재필 등에게 내려졌던 역적의 죄명이 벗겨졌다. 이로써 죄인의 신분에서 벗어난 서재필은 1895년 말에 귀국하고, 중추원 고문에 임명된다. 망명한 지 12년 만에 귀국한 서재필은 백성들의 계몽이 중요하고, 개화정책을 국민에게 알리기 위해서는 신문을 발행하는 일이 시급하다고 판단하여 1896년에 우리나라 최초의 민간신문인 ≪독립신문≫을 창간했다. 창간일인 4월 8일은 오늘날 ‘신문의 날’이 될 만큼 ≪독립신문≫의 기능은 막중했다. ≪독립신문≫은 최초로 한글 전용과 가로쓰기와 띄어쓰기를 함으로써 우리나라 한글이 보급되고 발전하는 데에도 크게 기여했다. 서재필은 ≪독립신문≫을 창간한 데 이어 독립협회를 조직하고, 만민공동회를 열어 개화사상을 대중화시키는 데 기여했다. 독립협회와 만민공동회는 우리나라 최초의 시민단체 역할을 하면서 입헌군주제를 주창하고, 정부 대신들의 부정부패를 규탄하고, 열강들의 이권 침탈을 강력하게 비판했다. 또한 청나라 사신을 맞아들이던 영은문이 헐린 자리에 프랑스 개선문을 본떠서 독립문을 세웠다. ≪독립신문≫과 독립협회, 만민공동회는 줄기차게 수구파의 국정 농단과 이와 결탁한 열강의 이권 침탈을 폭로·비판했다. 그러자 수구파 정부와 국제 열강들은 이들의 중심에서 서재필이 작용한다고 보고 그를 미국으로 추방했다. 그가 다시 쫓겨나기 전까지 2년여 동안 한국에서 벌인 여러 가지 활동은 우리나라 개화운동사에 큰 비중을 차지한다. 당시 그 누구도 그의 업적을 넘어서기 어렵다. 그런데 또한 이 시기에 그의 납득하기 어려운 일탈 행위도 없지 않았다. 미국에서도 독립운동에 매진 다시 미국으로 돌아간 서재필은 생업에 종사하다가 1919년에 국내에서 3·1 혁명이 벌어지자 필라델피아에서 ‘한국회의’를 개최하고 월간지 ≪한국평론≫을 발행했다. 상하이 임시정부가 워싱턴에 설치한 구미위원회에 참여하여 독립운동도 전개했다. 펜실베이니아주에서 병원을 개업해 생계를 꾸려나갔다. 서재필은 1922년에 워싱턴에서 군축회의가 열리자, 우리나라 독립을 세계 여론에 호소했다. 1925년에 하와이에서 범태평양 회의가 열렸을 때는 우리나라 대표로 참석하여 일제의 만행을 규탄하면서, 한국의 독립을 각국 지도자들에게 호소했다. 서재필이 이렇게 조국의 독립을 위해 동분서주하는 사이에 병원은 경영이 어려워지고 결국 문을 닫아야 했다. 45년 만의 귀국, 그리고 서거 서재필은 일제가 패망한 뒤 미국 정부의 한국문제 수석고문(미군정최고의정관)에 위촉되어 망명 45년 만에 환국했다. 미군정 측은 한때 이승만 대신 서재필을 남한의 집권자로 옹립하려는 움직임을 보였다. 서재필은 이 같은 일로 이승만의 견제를 받다가 정부가 수립된 뒤인 1948년 9월 11일에 홀연히 미국으로 돌아갔다. 한국전쟁이 한창이던 1951년 1월 5일, 고국의 민주통일국가를 염원하던 서재필은 필라델피아 근교 몽고메리 병원에서 87세를 일기로 눈을 감았다.
9788974431570

겨레의 노래 아리랑

김삼웅  | 두레
13,500원  | 20230911  | 9788974431570
‘아리랑’은 우리에게 무엇인가? ‘아리랑’의 역사, 그리고 역사 속의 ‘아리랑’ 이야기! 역사학자이자 평전 전문가 김삼웅 전 독립기념관장이 쓴 ‘아리랑 전기’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민요이자 한국 문화의 상징적 노래,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 〈아리랑〉, 망국(亡國) 시대에 독립운동가들이 왜적과 싸울 때 국가나 군가처럼 부르자 조선총독부가 금지곡으로 지정하며 탄압한 노래 〈아리랑〉, 국내에서는 전통 구전민요로, 해외에서는 망향가로, 귀화인들은 한국인이 되었음을 인증하는 노래로 불리는 〈아리랑〉, 문화적 독자성과 민족적 동질성을 내포하고 있어 향후 통일 한국의 ‘국가’로 지정되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는 노래 〈아리랑〉! 그래서 우리는 〈아리랑〉을 ‘겨레의 노래’, ‘민족의 노래’, ‘통일의 노래’라고 부른다. ‘아리랑’이 무슨 뜻인지, 언제 만들어졌는지 알 수는 없으나 현재 국내외에서 채집된 〈아리랑〉은 약 186종이다. 이렇게 다양하고 많은 판본이 있을 수 있는 이유는 무엇이고, 〈아리랑〉은 우리에게 무엇일까? 이 책은 〈아리랑〉의 역사를 살펴보고, 〈아리랑〉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이는 곧 지금까지 50여 종의 평전을 펴낸 평전 전문가이자 대가인 김삼웅 전 독립기념관장이 쓴 ‘아리랑 전기’인 셈이다. 저자는 음악이나 문화 전문가가 아닌 역사학자로서 〈아리랑〉의 음악적 평가나 설명이 아닌 〈아리랑〉의 굴곡진 역사와 우리 역사 속에서 〈아리랑〉이 담고 있는 ‘아리고 쓰리지만 때로는 힘을 불어넣은’ 이야기를 중심으로 들려준다. 이 책을 감수한 임진택 창작판소리 명창은 “(저자는) 평전 저작가로서 다른 연구들과는 구별되는 시각에서 〈아리랑〉을 바라보고 평(評)하는 또 다른 관점들을 제시”하는 책이라 평가하고, 김태균 음악평론가는 “국내 최초로 〈아리랑〉의 역사의 총체성을 담고 있다.…… 우리 민족의 아리랑 인생 내력을 풀고 있”는 책이라고 평가했다.
9788974431556

다산 정약용 평전

김삼웅  | 두레
17,100원  | 20230320  | 9788974431556
‘다산(茶山)’ 하면 야트막한 차밭이 떠오른다. 그러나 ‘다산’ 뒤에 고유명사 ‘정약용(丁若鏞)’이 붙으면 차밭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진다. 그곳에 거대한 학문의 산맥과 도무지 그 넓이와 깊이를 헤아리기조차 힘든 사상의 바다가 펼쳐진다. 조선 후기 대표적인 개혁사상가, 저술가, 조선의 레오나르도 다빈치, 조선의 엔지니어, 서학 사상의 개척자, 혁명을 꿈꾼 시인, 그리고 뛰어난 법학자이자 의학자 등 이루 헤아릴 수 없는 수식어가 붙는 것은 이 때문이다. 다산의 ‘학문의 산맥과 사상의 바다’는 얼마나 높고 깊고 넓을까? 우리는 왜 다산에 열광하고, 그의 삶과 사상을 배우고 따르고 싶어 하는가? 수많은 모습 중 다산의 진짜 모습은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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