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결과 이동의 AI혁신 (안전 패러다임 전환)
김태호 | 율곡출판사
19,000원 | 20251025 | 9791194359340
나는 오랫동안 통신과 도시철도 분야에서 일하며, 기술이 사람의 안전과 편리함을 어떻게 바꿀 수 있는지를 가까이에서 지켜보았다. 그 과정에서 깨달은 것은 안전이야말로 모든 운영의 출발점이라는 단순하지만 본질적인 사실이었다. 아무리 새로운 기술을 도입해도 안전이라는 토대가 무너지면 모든 것은 한순간에 무의미해진다. 그래서 이 책을 쓰면서 가장 먼저 강조하고 싶은 것도 바로 안전이다.
우리 사회는 여전히 ‘세계 최고 산재왕국’이라는 불명예스러운 꼬리표를 달고 있다. 작은 실수가 대형 사고로 이어지고, 위기 뒤에야 대책을 내놓는 모습이 반복된다. 이제는 사고를 기다렸다가 대응하는 방식으로는 한계가 분명하다. 위험을 미리 상상하고, 겹겹이 대비해야만 더 이상 똑같은 비극을 반복하지 않을 수 있다.
이러한 다층적 대비라는 생각은 사실 고신뢰성 조직 High Reliability Organization; HRO 에서 출발한다. 항공이나 원자력과 같이 한 번의 실패도 치명적인 분야에서 HRO는 ‘작은 실수도 체계적으로 흡수하는 다층 안전 방호벽’을 구축해 왔다. 서울교통공사는 이 개념을 창의적으로 발전시켜 ‘안전 5중 방호벽이라는 시스템을 만들었다. 설비와 장치, 절차와 규정, 사람의 훈련과 문화, 조직과 제도, 그리고 외부와의 협력까지 다섯 겹의 안전망을 쌓아 올린 것이다. 이 체계는 실제 현장에서 인적 오류를 크게 줄이는 성과를 거두었고, ‘사람은 언제든 실수할 수 있다’는 냉혹한 현실을 기술과 조직 문화로 보완하는 길을 보여주었다.
하지만 오늘날의 철도 운영 환경은 과거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복잡하다. 단순히 사람의 주의와 절차만으로는 모든 위험을 다 막아낼 수 없다. 그래서 필요한 것이 바로 디지털 5중 방호벽이다. 센서와 카메라, 웨어러블 기기를 통해 위험을 감지하고, 초저지연 네트워크로 연결해 실시간으로 데이터를 모은다. 인공지능이 그 데이터를 분석해 이상 징후를 찾아내며, 관제와 장치가 자동으로 대응한다. 마지막으로 모든 과정은 기록되고 검증되어 조직이 학습하고 더 나은 결정을 내리도록 돕는다. 이렇게 디지털 기술이 겹겹이 쌓여 만들어지는 안전망이 바로 디지털 5중 방호벽이다.
나는 도시철도 운영에서 AICT Artificial Intelligence & Communication Technology 가 곧 이런 디지털 방호벽의 역할을 한다고 확신한다. 플랫폼에서는 인공지능이 승객의 움직임을 지켜 안전사고를 예방하고, 선로에서는 드론과 로봇이 점검을 대신한다. 열차는 달리면서도 스스로 건강 상태를 진단하고, 관제 시스템은 자동으로 정보를 분석해 가장 안전한 결정을 내린다. 혼잡한 시간대에는 군중을 분산시키고, 에너지 사용도 최적화해 쾌적한 환경을 만든다.
이 책에서 살펴볼 도시철도의 여러 AICT 적용 사례는 단지 철도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AICT는 건설, 제조, 물류, 에너지 등 그 어떤 산업에서도 동일한 방식으로 디지털 방호벽을 구축하는 데 활용될 수 있다. 실제 산업재해 사례를 분석해 보면, 철도에서 검증된 다층 안전망의 논리를 다른 산업 현장에도 이식할 수 있음을 알 수 있다. 안전을 비용이 아닌 ‘생명을 지키는 투자’로 본다면, AI와 ICT는 전 산업의 안전 수준을 한 단계 끌어올리는 강력한 도구가 될 것이다.
그러나 기술만으로는 완전한 변화를 이룰 수 없다. 아무리 정교한 시스템도 사람이 받아들이지 않으면 그저 장식품에 불과하다. 그래서 변화 관리가 중요하다. 리더가 먼저 배우고, 현장이 함께 참여해야 하며, 작은 성공이 반복되어야 비로소 새로운 문화가 자리 잡는다. 결국 운영의 혁신은 사람과 조직이 함께 만들어가는 과정이다.
이 책은 통신과 철도 현장에서 직접 보고 겪은 경험을 바탕으로, 안전을 최우선 가치로 두고 다층 방호벽을 디지털화하며, 그것을 운영 문화로 정착시키는 여정을 담았다. 독자들은 이 책을 통해 “AI와 ICT는 단순한 기술이 아니라 우리의 삶을 더 안전하고 편리하게 만드는 새로운 방호벽이다”라는 사실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철도 운영을 고민하는 학생과 연구자, 정책을 고민하는 관계자, 그리고 더 나은 도시를 꿈꾸는 모든 이에게 이 책이 작은 길잡이가 되기를 바란다.
끝으로, 안전하고 스마트한 서울교통공사를 만들어가는 길에 함께 땀 흘리고 지혜를 모아 준 여러 동료들에게 깊은 감사를 드린다. 특히 Smart Connected Metro를 구현하는 혁신을 함께 이끌었던 권지원 님, 김석태 님, 김성완 님, 노갑진 님, 오재강 님, 심재창 님, 정일봉 님, 한재현 님은 지금도 각자의 전문 분야에서 활발히 활동하고 있지만, 함께한 시절 그들의 헌신과 열정은 여전히 제 마음속에 큰 울림으로 남아 있다. 안전과 HRO에 대해 같이 고민하고 실행을 도왔던 김종석 님, 책의 내용과 형식에 대해 세심한 조언을 아끼지 않았던 김관오 님, 또한 현장 곳곳에서 많은 도움을 아끼지 않았던 수많은 서울교통공사의 직원들께도 이 자리를 빌려 깊은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졸고가 책으로 나오기까지 끊임없이 성원을 보내고 격려해 준 가족들에게도 감사와 사랑을 표한다.
2025년 10월
김태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