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창삼우 (김종회 디카시집)
김종희 | 상상인
12,600원 | 20251115 | 9791174900258
김종회 디카시집 『북창삼우』는 한 장의 사진과 짧은 문장이 만나 일상에 숨어 있던 의미를 반짝이게 만드는 시집이다. 그의 시와 사진들은 ‘디카시’라는 형식의 핵심인 순간 포착, 최소한의 언어 그리고 여백의 미학을 단아하게 구현하면서, 사물과 풍경, 사람과 시간 사이에 놓인 미세한 결을 세심하게 더듬는다. 한 컷의 프레이밍은 세계를 잠깐 멈추고, 한두 줄의 문장은 그 정지된 세계에 천천히 호흡을 불어넣는다. 독자는 사진의 빛과 그림자, 초점과 흔들림, 프레임 바깥의 기척까지 함께 읽어내며, 보는 일이 곧 사는 일임을 실감하게 된다.
이 시집에서 카메라는 기록의 도구가 아니라 사유의 장치이다. 시인은 서둘러 해석을 내리지 않고, 빛이 사물에 머무는 시간을 따라가며 이미지의 가장자리에서 말을 건넨다. 사진과 함께 하는 김종회 시인의 문장은 짧지만 얕지 않다. 사진이 붙잡은 찰나 위에 언어는 지속을 부여하고, 그 지속은 독자가 스스로 여백을 메우게 하는 독서의 시간을 열어준다. 그래서 이 시집은 빠르게 넘기는 화보도, 장황한 에세이도 아니다. 오히려 페이지마다 작게 놓인 사유의 씨앗들이 독자의 하루 속에서 늦게 싹트고 늦게 도착하는 감동을 지향한다.
시집의 1부는 시인의 생활 공간의 가까운 반경에서 의미를 새로이 발견하는 작품들이다. 「황금 깃발」, 「눈꽃 1·2」, 「눈 마당」, 「눈을 진 노송」, 「설경문학관」은 빛과 눈雪을 통해 사물의 표정을 환하게 끌어올린다. 특히 「모색暮色」은 해거름의 반음계 같은 색조를 한 줄로 붙들어, 저녁이 하루의 끝이 아니라 다음으로 나가는 시간임을 느끼게 한다.
2부는 손녀가 만들어 낸 일상의 장면들로 작은 서사를 다정하게 만들어 내고 있다. 「곰돌이」, 「모닝 빵순이」, 「작은 공주님」, 「소공녀」, 「어린 예술가」, 「조손 합심」 등은 가족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유머와 온기를 느끼게 해 준다. 「위니비니 천국」처럼 상호와 간판 같은 소품을 포착한 작품에서는 상업적 표어가 오히려 삶의 속도를 비추는 거울이 된다.
3부는 바다·산·도시 풍경에서 시간의 두께를 길어 올린다. 「양양 휴휴암 앞바다」, 「해변 관음전」, 「해운대 해무」는 수평선·안개·수묵 같은 톤으로 멈춤의 미학을 실험한다. 「유달산 목포」, 「유달산 정상」, 「목포 비너스」는 장소의 고유한 기운을 장면 속에 눌러 담는다. 특히 「순교의 땅」 같은 제목의 작품에서는 풍경이 곧 역사의 지층임을 드러내며, 사진과 문장 결합이 추모의 형식으로도 기능함을 보여준다.
나훈아, 조용필, 정태춘 등의 공연 사진이 주를 이루는 4부는 순간을 기록으로 변화시킨다. 한 시대를 풍미했던 그들이 늦은 나이에 다시 보여준 공연 사진은 단순히 한순간의 열광을 재현하는 것을 넘어 역사의 기록이 되고 한 시대에 대한 증언이 된다. 또한, 「국제공항 입국 출구」, 「탈북 경로」는 이동과 경계를 촘촘히 비추어 사람의 발걸음이 지도를 만들고, 그 지도가 우리에게 긴 이야기를 들려준다는 것을 알게 된다.
한 컷, 한 줄의 세계는 작지만 결코 가볍지 않다. 작고 느린 것들이야말로 우리 삶을 튼튼히 지탱한다는 믿음이 이 시집의 페이지마다 사진과 문장으로 아로새겨져 있다. 김종회 시인의 디카시집 『북창삼우』는 바쁘고 조급한 시대에 잠깐 멈춰 생각하게 우리를 유도한다. 카메라의 눈과 시인의 문장이 만날 때, 일상은 소비되는 풍경이 아니라 새로 시작되는 이야기로 바뀐다. 이 시집을 천천히 넘기다 보면, 독자는 어느새 관찰자가 되어 시인과 함께 우리의 일상과 풍경을 바라보게 된다. 그리고 그때 비로소, 우리 각자의 하루도 한 편의 시처럼 또렷해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