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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하리쉬"(으)로 15개의 도서가 검색 되었습니다.
9788980389520

산스크리트 요가 수트라

마하리쉬 파탄잘리  | 동문선
25,200원  | 20240920  | 9788980389520
인류 최고의 수행 경전. 인간의 모든 의식 수준과 거기에 도달하는 방법과 목표와 수행 방식. 〈요가 수트라〉는 인도의 여섯 수행체계이며 철학체계 가운데 가장 중요한 수행서인 경전이다. 본서는 요가 수행자들이 애장, 낭송하기 좋도록 주석 없이 산스크리트 원어에 로마나이저를 달고 원문 번역만을 실었다. 본문 2색 인쇄, 고급한 인조가죽에 금장을 입혀 양장본으로 펴냈다.
9788991596849

라마나 마하리쉬와의 대화 1

라마나 마하르시  | 슈리크리슈나다스아쉬람
27,000원  | 20250610  | 9788991596849
빛과 빛에 이르는 길을 더 이해하고 정리하고 싶은 마음이 일어나 베단타 경전들 속으로 들어가게 되었다. 그러나 가르침이 아주 명쾌한 라마나님의 책들이 그 중심이었다. 『Talks with Ramana Maharishi』는 많은 도움을 주었지만 자료가 더 있었으면 하는 마음이 늘 있었다. 그러다가 『Aham Sphurana: Scintillations of Jnana from Sri Ramana Maharshi』라는 방대한 자료를 접하게 되었다. 이것은 라마나님에 관한 자료이다. 그러나 왜 그런지 모르겠지만 라마나스라맘에서 출간된 것은 아니었다. 나는 이 책 속으로 빠져들었다. 이러한 귀중한 자료가 이 세상에 있다니.... 이 책을 통해서 깨달음과 수행법들을 그리고 라마나님의 가르침의 정수를 접할 수 있었다. 그래서 기쁜 마음으로 이것을 번역하여 한국의 독자들과 나누어야겠다는 마음이 일어났다. 이 자료에는 국제 정세, 자세한 주변 환경, 여과 없는 질문자의 자기 고백, 여러 책들을 참석자들이 읽는 것도 담겨있었다. 나는 라마나님의 직접적인 가르침이 아닌 이것들을 생략하였다. 라마나스라맘에서 나온 『Talks with Ramana Maharishi』와 같은 모습이 되도록 노력하였다.
9788991596634

바가바드 기따의 정수 (바가바드 기따의 정수)

라마나 마하리쉬  | 슈리크리슈나다스아쉬람
8,100원  | 20200306  | 9788991596634
제목이 암시하는 것처럼, 이 책은 기따의 바로 정수이며 진지한 구도자들이 고이 간직할 수 있는 은총의 선물이다. 이제까지 누구에 의해서도 그 어떤 언어로도 온 시대의 이 영적 걸작으로부터 간략하게 선별한 책은 만들어진 적이 없었다. 헌신자와 구도자들은 이 귀중한 책으로부터 거대한 영적 유익을 끄집어낼 수 있을 것이다.
9788991596399

가슴이 당신의 이름입니다, 오 신이시여! (슈리 라마나 마하리쉬의 침묵의 순간들)

라마나 마하리쉬  | 슈리크리슈나다스아쉬람
10,800원  | 20120720  | 9788991596399
슈리 라마나 마하리쉬의 탄생 125주년을 맞이하여 발간한 사진집이다. 이 책은 죽음을 경험을 통해 깨달음을 얻은 라마나의 어록들로 하여금 삶의 지혜의 인생의 자세, 자신의 내면을 깊이 닦을 수 있도록 돕고 있다. 라마나의 가르침을 선별하여 아름다운 그림과 사진을 함께 담아냈다. 이는 마음을 내면으로 향하게 하여 깊은 침묵으로 이르는 길로 이끌어준다.
9788991596757

나는 누구인가? (바가반 슈리 라마나 마하리쉬의 가르침)

라마나 마하르시  | 슈리크리슈나다스아쉬람
9,000원  | 20220615  | 9788991596757
‘나는 누구인가’는 나 탐구에서 일어나는 질문과 답에 주어진 제목이다. 이 질문들은 1902년 슈리 M. 쉬바 쁘라까삼 삘라이에 의해 바가반 슈리 라마나 마하리쉬에게 놓여졌다. 철학 석사인 슈리 쉬바 쁘라까삼 삘라이는 그 당시에 남 아르꼬뜨 세무서의 징세부에 근무했다. 1902년 띠루반나말라이를 방문하는 동안에 그는 아루나짤라 산의 비룩빡샤 동굴로 가서, 그곳에서 마하리쉬를 만났다. 그는 마하리쉬로부터 영적 안내를 구하였으며 나 탐구와 관련한 문제들에 대한 답을 간청하였다. 바가반께서는 그때 대화를 하지 않았다. 어떤 맹세 때문에 그렇게 한 것은 아니었다. 다만 말하고 싶은 의도가 없어서 그렇게 했다. 마하리쉬는 그가 물은 질문들에 대하여 답을 적었다. 슈리 쉬바쁘라까삼 삘라이의 회상과 기록에 의하면 13개의 질문과 답들이 바가반에 의하여 그에게 주어졌다. 이 기록은 1923년에 처음으로 (오리지널 따밀지에) 슈리 쉬바쁘라까삼삘라이의 이름으로 출간되었다. 거기에는 어떻게 바가반의 은총이 자신의 의심을 추방하여 삶의 위기로부터 그를 구했는지에 관련한 몇 개의 시도 들어 있었다. 이후 이 책은 여러 번 출간되었다. 어떤 판에서는 13개의 질문과 답이 보이며, 다른 판에서는 28개가 보이기도 한다. 또 다른 판에서는 질문들이 보이지 않으며, 또 다른 판에서는 가르침이 산문 형식으로 재배열되고 있다. 현존해 있는 영어 번역은 산문 형식으로 재배열된 것이다. 이 책에는 28개의 질문과 답들이 있다. 비짜라상그라함(나 탐구)과 함께, 난 야르(나는 누구인가?)는 스승 자신의 말로 된 첫 번째 가르침의 묶음이다. 이 둘은 바가반의 저서 중 유일한 산문 조각들이다. 그것들은 해방으로 가는 직접적인 길인 나 탐구라는 핵심적인 가르침을 설명하고 있다. 탐구가 만들어지는 특별한 모드는 난 야르에서 명쾌하게 설명하고 있다. 마음은 생각들로 되어 있다. ‘나’ 생각이 마음에서 일어나는 첫 번째 생각이다. ‘나는 누구인가?’라는 탐구를 지속적으로 할 때, 모든 다른 생각들이 파괴되며, 마침내 지고한 비이원의 나만을 남겨놓은 채 ‘나’ 생각 그 자체가 사라진다. 나가 아닌 몸과 마음의 현상과 나와의 거짓 동일시가 끝나고, 그래서 샥샤뜨까라 즉 깨달음이 있다. 물론 탐구의 과정은 쉬운 것이 아니다. ‘나는 누구인가?’를 탐구할 때, 다른 생각들이 일어날 것이다. 그것들을 따라감으로 그것들에 굴복하는 대신에, 그와 반대로 ‘그것들이 누구에게 일어나는가?’하고 물어야 한다. 이것을 하기 위해서는, 극히 경계하고 있어야 한다. 끊임없는 탐구로 마음을 그것의 근원에 머물게 해야 한다. 마음을 바깥으로 방황하게 하여 스스로 창조한 생각의 미로에 길을 잃어서는 안 된다. 호흡의 통제나 신의 형상에 대한 명상과 같은 모든 다른 수련들은 보조적인 수행들로 여겨져야만 한다. 그것들은 마음을 고요하게 하며 또 일점지향이 되도록 만드는 한 도움이 된다. 집중의 기술을 얻은 마음에게는 나 탐구가 비교적 쉽다. 쉬지 않고 탐구함으로 생각들은 파괴되고 나가 깨달아진다. ‘나’라는 생각조차도 없는, ‘침묵’이라고 언급이 되는 절대적 실재인 나가 깨달아진다. 이것이 실질적으로 난 야르에 있는 바가반 슈리 라마나 마하리쉬의 가르침이다. T.M.P, 마하데반 마드라스 대학교 1982. 6. 30
9788991596856

라마나의 가르침

바가반 슈리 라마나 마하리쉬  | 슈리크리슈나다스아쉬람
18,000원  | 20230601  | 9788991596856
이 책 [라마나의 가르침]은 “가르침의 꽃다발”로 번역될 수 있는 우빠데사 만자리이다. 초기 헌신자들 중의 한 명인 슈리 나따나난다는 어느 날부터 바가반과 그의 헌신자들 사이에 일어난 대화를 받아 적었다. 그런 다음 그것들을 정리하고 확장시켜 바가반에게 보여주었고, 그는 그것을 인정해주었다. 그러고 나서 그것은 우빠데사 만자리, 즉 영적 가르침이라는 제목으로 출판되었다. 이 책은 그 위대한 영혼, 슈리 라마나 마하리쉬의 불멸의 말들의 전형인데, 그의 가르침은 마치 태양이 어둠을 몰아내듯이 이 비천한 사람의 의심과 그릇된 관념을 완전히 몰아냈다. 이 책의 주체는 모든 베다와 아가마의 정점이자 가슴으로서 빛나는 그 영원한 브람만이다. 모든 우빠니샤드가 칭송하고 모든 고귀한 수행자들이 추구하는 비할 바 없는 나 깨달음이, 이 책의 주제이다.
9791137273887

라마나 마하리쉬와 아기장난감

무각  | 부크크(bookk)
15,800원  | 20220214  | 9791137273887
질문자 : 어떻게 하면 참자아의 자리에 도달할 수 있습니까, 마하리쉬 : 참자아의 자리에 도달한다는 그런 것은 없다. 만약 참자아의 자리에 도달해야 한다면 참자아는 ‘지금 여기에’ 존재하고 있지 않다는 뜻이며, 결국 새롭게 획득해야 할 대상이라는 말이 된다. 그러나 새로 얻은 것은 언젠가는 잃어버리게 된다. 따라서 그것은 영원한 것이 아니며, 영원하지 않은 것은 추구할 필요가 없다. 그래서 나는 참자아의 자리에 도달한다는 그런 것은 없다고 말하는 것이다. 그대가 참자아이다. 그대는 이미 참자아 자체이다. 그대는 그대의 충만한 지복 상태를 모르고 있다. 꼬리를 물고 일어나는 무지가 지복이라는 본질을 가진 참자아 위에 장막을 드리우고 있다. 그대가 할 일은 무지의 장막을 걷어내는 일뿐이다. 참자아를 육체나 마음과 동일시하는 것이 무지이다. 이 그릇된 동일시가 제거되면 참자아만이 홀로 남는다. 따라서 깨달음은 누구나 가능하다. 깨달음은 구도자를 차별하지 않는다. '내가 과연 깨달을 수 있을까'하는 의심과 '나는 깨닫지 못했다'는 생각이 깨달음을 방해하는 장애물이다. 그 장애물에서 벗어나도록 하라. 질문자 : 영원한 자유의 상태에 이르려면 얼마나 오랜 세월이 걸리나요, 마하리쉬 : 해탈이란 미래의 어느 때에 얻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지금 여기에 영원히 현존한다. 질문자 : 그 말씀에 동의합니다. 하지만 그것을 체험하고 있지 못합니다. 마하리쉬 : 그 체험은 '지금 여기'에 있다. 아무도 자신의 참자아를 부정할 수 없다. 질문자 : 자신의 참자아라는 것은 존재 차원의 문제이지, 행복의 차원은 아니지 않습니까, 마하리쉬 : 참자아가 행복이며, 행복이 실재이다. 해탈이라는 말은 사람들을 혼동하게 만든다. 사람들은 현재 무엇엔가 구속되어 있고, 그래서 자유롭기를 갈망한다고 믿고 있다. 그러나 진정 구속이란 존재하지 않으며 오직 자유만이 있다. 이미 그 상태이거늘, 무엇 때문에 영원한 자유니 해탈이니 하는 이름을 붙이고 그 헛된 이름을 추구하는가, 질문자 : 맞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희들은 지금 무지합니다. 마하리쉬 : 무지만 없애면 된다. 그 외에는 할 일이 없다. 해탈에 관해 질문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 해탈이란 구속에서 벗어난다는 말인데, 그것은 현재 구속되어 있음을 전제로 하는 말이다. 그러나 구속은 없다. 그러므로 해탈도 없다. 질문자 : 서양사람들 중에는 우주의식의 섬광을 체험했다는 이들이 있는데, 그들이 체험한 것은 무엇입니까, 마하리쉬 : 그들이 체험했다는 섬광은 말 그대로 섬광이다. 그런 체험은 번쩍하고 나타났다가는 순식간에 사라져 버린다. 시작이 있는 것은 반드시 끝이 있다. 항상 현존하고 있는 의식에 대한 깨달음만이 영원하다. 그 의식은 언제나 우리 안에 현존하고 있다. ‘내가 존재한다’라는 것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아무도 자기 자신이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을 부정하지는 못한다. 깊이 잠들었을 때는 아무것도 모르다가 깨어나면 다시 정신을 차리지만, 깊이 잠든 사람이나 깨어난 사람은 동일한 사람이며 그 사람 자체에는 아무 변화가 없다. 깊이 잠들었을 때는 육체에 대한 의식이 없지만, 깨어있는 상태에서는 육체에 대한 의식이 있다. 그러므로 차이점은 육체에 대한 의식이 있느냐 없느냐 하는데 있을 뿐, 본래의 의식 자체는 변함이 없다. 육체와 육체에 대한 의식은 함께 일어났다가 함께 사라진다. 깊이 잠들어 있는 동안에는 아무런 제약이 없지만, 깨어있는 상태에서는 육체에 대한 의식 때문에 여러 가지 제약이 생긴다. 이런 제약이 곧 구속이다. 구속은 육체와 자기를 동일시하는 잘못된 생각 때문에 생겨난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육체와 ‘나’를 동일시하는 그릇된 관념이 사라져야 한다. 진정한 ‘나’는 육체에 대한 의식이 없는 동안에도 늘 존재한다. 그것은 사라지지 않으며 새롭게 나타나지도 않는다. 그것은 ‘지금 여기’에 현존한다. 영원히 현존하는 것이라야 실재라고 할 수 있다. 새롭게 나타나는 것은 결국 다시 사라질 것이다. 깊이 잠들어 있을 때와 깨어 있을 때를 비교해 보라. 깨어 있을 때는 육체가 있지만, 깊이 잠들면 육체가 없다. 따라서 육체는 영원한 실재가 아니다. 늘 현존하며, 육체라는 현상이 나타나도록 만드는 참자아 의식만이 영원한 실재이다. ‘나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하는 사람은 없다. 그러나 문제는 ‘나는 존재한다’고 말하면서 ‘나’를 육체와 동일시하는 데 있다. 모든 고통은 이 잘못된 동일시에서부터 시작된다. 이 잘못된 생각과 느낌이 사라져야 한다. 그러면 그게 곧 깨달음이다. 깨달음이란 어떤 새로운 것을 얻거나 새로운 능력을 갖추는 것이 아니라, 모든 속임수가 제거된 상태이다. 궁극적인 진리는 지극히 단순하다. 그것은 본래 상태로 존재하는 것일 뿐이며, 그 이상 다른 말이 필요하지 않다. 질문자 : 깨어있는 상태보다는 깊이 잠든 상태가 순수의식에 더 가깝습니까, 마하리쉬 : 깊이 잠든 상태, 꿈꾸는 상태, 깨어있는 상태는 고정불변의 각성상태인 참자아 위에 나타나는 일시적인 현상일 뿐이다. 그대는 한순간이라도 참자아를 떠나서 존재할 수 있겠는가, 만약 그럴 수 있다면 지금 그대가 하는 식의 질문도 가능하리라. 질문자 : 그러나 흔히 깊이 잠든 상태가 깨어 있을 때보다 순수의식에 더 가깝다고들 말하지 않습니까, 마하리쉬 : 그 질문은 ‘저는 깨어 있을 때보다 잠들어 있을 때 저 자신에게 더 가까운가요,’ 하고 묻는 것과 같다. 참자아는 순수의식이다. 한순간이라도 참자아에서 분리되어 존재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이원성이 존재한다면 그대와 같이 질문하는 것이 가능하겠지만, 순수의식 상태인 참자아 안에는 이원성이 존재하지 않는다. 잠을 자거나 꿈을 꾸거나 깨어 있거나 사람은 변하지 않는다. 사람들은 깨어있는 상태에는 즐겁고 재미있는 일들이 많지만, 잠자는 동안에는 그런 것을 경험하지 못한다는 이유로 잠든 상태를 둔한 상태라고 한다. 자, 더 나아가기 전에 몇 가지 짚고 넘어가자. 그대는 자는 동안에도 그대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인정하는가, 질문자 : 예, 인정합니다. 마하리쉬 : 그러면 잠자는 동안에 존재하는 그대와 지금 깨어 있는 상태의 그대와 같은 사람인가 다른 사람인가, 질문자 : 같은 사람입니다. 마하리쉬 : 그렇다면 잠든 상태와 깨어있는 상태 사이에는 연속성이 있다. 그 연속성이 무엇인가, 그것은 그대가 어떤 상태에 있든지 늘 존재하는, 존재 상태의 연속성이다. 잠든 상태와 깨어 있는 상태의 유일한 차이점은, 깨어 있는 상태에서는 육체를 비롯한 현상세계가 나타나지만, 잠든 상태에서는 사라진다는 것뿐이다. 질문자 : 하지만 잠든 상태에서는 육체와 현상세계가 사라졌다는 것조차 인식하지 못합니다. 마하리쉬 : 그렇다. 잠든 상태에는 육체와 이 세상이 존재하느냐 존재하지 않느냐에 대한 인식이 없다. 그러나 ‘나는 잠자는 동안에는 그런 인식이 없습니다.’라고 말하기 위해서는, 잠자는 동안에는 그런 인식이 없다는 것을 ‘아는 나’라는 존재가 필요하다. 지금 잠자는 동안에는 그런 인식이 없다고 말하는 그대는 누구인가, 깨어 있는 상태의 그대가 그렇게 말하고 있지 않은가, 잠자는 상태의 그대는 그렇게 말할 수 없다. 결국 참자아와 육체를 동일시하는 개체로서의 그대가 ‘나는 잠자는 동안에는 그런 인식이 없다’라고 말하고 있는 셈이다. 그대는 주변 세계를 둘러보면서, 깨어 있는 상태에는 즐겁고 재미있는 일이 많지만, 잠이 들면 이 모든 것이 사라지기 때문에 잠든 상태는 둔한 상태라고 말한다. 이렇게 말할 수 있는 것은 그대 자신을 육체와 동일시하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세 가지 상태를 번갈아 오가는 중에도 존재의 연속성은 사라지지 않는다. 그대의 진정한 존재는 어떤 상태에서도 현존하지만, 개체적인 자아나 인식의 대상인 현상세계는 그렇지 못하다. 질문자 : 그렇습니다. 마하리쉬 : 연속적인 것이 영원한 것이다. 연속적이지 않은 것은 일시적인 것이다. 따라서 연속적인 그대의 존재 자체는 영원하지만, 육체나 이 세상은 그렇지 않다. 육체나 이 세상은 영원토록 변치 않는 ‘참자아’라는 스크린 위를 지나가는 일시적인 영상일 뿐이다. ☞ 문 : 참자아가 지금 여기에 항상 있는데, 저는 왜 그것을 느끼지 못하는 겁니까, 답 : ‘느끼지 못한다고 말했는가, 그 말을 하는 자는 누구인가, 참나인가 아니면 거짓 나인가, 조사해 보면 그렇게 말하는 자는 ‘거짓 나’라는 사실을 알게 될 것이다. 그 거짓 나가 참나를 가리고 있는 장애물이다. 참나가 드러나기 위해서는 거짓 나가 없어져야 한다. 나는 아직 깨닫지 못했다는 느낌이 깨달음을 가로막고 있는 장애물이다.’라고 하였다. 또한 다음과 같이 말씀하였다. 깨달음이란 새롭게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깨달음은 항상 존재하고 있으며, ‘나는 깨닫지 못했다’는 생각만 버리면 된다. 고요함과 평화가 깨달음이다. 참자아가 아닌 상태란 한순간도 존재하지 않는다. 길고 긴 세월 동안 깨닫지 못했다는 느낌이나 의심 속에서 살아왔기 때문에 그것들을 제거해야 할 필요성이 생기는 것이다. 왜 의심이 생기고 깨닫지 못했다는 느낌이 생기는가, 그것은 ‘참자아가 아닌 것’을 참자아와 동일시하기 때문이다. ‘참자아가 아닌 것’ 사라지고 나면 참자아만이 남는다. 방을 가득 채우고 있는 물건들만 치우면 빈 공간은 저절로 드러난다. 빈 공간을 어디 다른 데서 가져오는 것이 아니다. 어쩌면 이 구절이 우리가 찾고자 하는 모든 부분을 함축시키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달마대사가 인도에서 중국으로 건너와 중국 선의 조사가 나타났다. 그분들의 깨달음을 얻은 내력을 살피면 다음과 같다. 달마대사는 양무제를 떠나 소림사의 동굴에서 9년간 벽을 바라보며 좌선하고 있었다. 어느 겨울날 달마대사께 혜가란 사람이 찾아왔다. 달마는 그를 본 척도 하지 않았다. 그는 한겨울에 눈을 맞으면서 몇 날 며칠을 기다리다 자신의 결연한 의지를 보이기 위해 한쪽 팔을 잘라 달마대사에게 바쳤다. 비로소 면벽을 풀고 돌아앉은 달마대사는 그를 바라보며 말했다. 그대는 무엇 때문에 나를 찾아왔는가, 그는 달마대사에게 자신의 마음이 어지러워 평안을 구하고자 찾아왔노라고 말하였다. 그러자 달마대사는 그렇다면 내가 그대의 마음을 평안하게 해줄 터이니 어지러운 마음을 내놓으라고 다그치는 것이었다. 혜가대사는 절실하게 자신의 마음을 찾아보았으나 도무지 찾을 수가 없었다. 혜가대사는 도무지 마음을 찾을 길이 없다고 대답하자, 달마대사는 ‘그대의 마음이 없는데 어찌 어지러울 수 있겠는가, 그대는 이미 평안하다.’ 이로써 혜가대사는 자신의 어리석음을 깨닫고 달마대사의 법맥을 이은 중국 선의 2대 조사가 되었다. 중국에서 스님들이 한 손으로 합장을 하는 것도 혜가대사로부터 기인한 것이라고 한다. 3조는 승찬대사로 나이가 들어 고질병인 풍병(문둥병)에 걸려 고통받으면서 2조인 혜가를 찾아 와 자신의 죄를 참회하고 싶다고 하였다. 혜가대사는 내가 그대를 참회시켜 줄 터이니 죄를 내놓으라고 말하였다. 승찬대사는 아무리 자신의 죄를 찾아보았으나 죄는 어디에도 찾아볼 수가 없는 것이었다. 혜가대사가 이르길, 그대는 이미 죄인이 아니다라고 말함으로써 3조인 승찬대사가 탄생한 것이다. 승찬대사는 혜가대사의 배려로 승적을 받고 깊은 산으로 들어가 기숙하면서 신심명을 저술하여 많은 사람들의 길을 인도하는 등불이 되었으며, 입멸하실 때는 큰 소나무 밑에서 합장을 하고 선 채로 열반에 들었다고 한다. 4조는 도신대사로 어느 날 어린 중이 승찬대사를 찾아왔다. 그리고는 당돌하게 묻기를 ‘저를 부디 대사께옵서 자유롭게 이끌어 주십시오’ 하는 것이었다. 승찬대사는 누가 너를 묶어 놓았느냐, 하고 묻자 ‘저를 묶은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라고 대답했다. 승찬대사는 그렇다면 자유롭기를 바랄 필요도 없다면서 4조인 도신대사가 법맥을 이어받게 된다. 다음으로 5조인 홍인대사는 어려서부터 영특하였다. 도신대사가 하루는 황매현으로 가는데 골격이 수려하여 다른 아이들과 사뭇 다른 어린이를 만나 묻기를 ‘너의 성이 무엇이냐,’ 동자가 대답했다. ‘성은 있으나 흔한 것은 아닙니다.’ ‘어떤 성인가,’ ‘부처의 성품인 성입니다.’ ‘너의 성품은 어째서 없는가,’ ‘성품이 공하기 때문입니다.’ 도신대사는 그가 법기임을 짐작하고 그 부모에게 출가시키기를 권하니 그 부모는 아무런 난색도 없이 아들을 출가시키게 된다. 도신대사가 그를 제자로 삼아 의발을 주고 법을 전하니 5조인 홍인대사인 것이다. 다음으로는 육조인 혜능대사는 24세 되던 해 땔나무 장사를 하며 나이 든 노모와 함께 생계를 이어가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손님한테 나무를 갖다주고 나오다 금강경 읽는 소리에 본성의 마음을 깨달아 5조인 홍인대사의 뒤를 이어 6조인 혜능대사가 탄생한 것이다. 이와 같은 것은 모두 마음을 관찰하고 주시하는 회광반조(廻光反照)를 통해 이루어진 것이다. 전해오는 일설에 의하면 홍인대사의 스승인 도신대사가 육조 혜능대사로 몸을 바꾸어 태어났다고 한다. 그것이 사실인지 아닌지는 그렇다 치고, 마음을 깨달은 조사들은 철저한 무아의 입장에 있다. 종자를 뿌리는 사람이 있어야 꽃도 있고 종자도 생기는 것이지 종자를 뿌리는 사람이 없다면 꽃도 종자도 없듯이 우리가 세상을 살아가면서 겪게 되는 많은 혼란과 갈등도 결국 그러한 혼란과 갈등을 종식시키고 싶다는 욕구가 문제를 일으킨다. 만약 문제를 삼지 않는다면 문제될 일은 없다. 다만 살아가면서 당연히 치러야 할 대가쯤으로 인식되어질 것이다. 이처럼 문제를 만들고 있는 것은 세상이나 환경이 아니라 바로 우리 자신이 문제를 만들어 내고 있다. 그러한 문제로부터 벗어나기를 희구하는 한 우리의 노력은 아무리 오랜 세월을 흐른다 해도 문제 해결을 기대하기란 불가능하다. 왜냐면 계속 다른 문제를 끄집어내면서 해결하려 할 것이 틀림없기 때문이다. 달마대사는 이르길, 인간은 누구라도 영원히 번뇌를 벗어나 평안을 구하기 위해 마음을 찾고 있다. 그러나 내가 찾는 본성의 마음은 마음이 스스로 가지고 있는 것이니, 찾는 마음으로 본래의 마음 알기를 바라지 말라. 불성(佛性)은 마음 밖에서 얻는 것 아니니, 찾고자 하는 마음이 일어나는 그때가 어리석음의 죄가 생기는 때라고 말씀하였다. 우리가 만일 깨달음을 얻었다면 우리는 한 번도 진아의 성품을 벗어난 적이 없음을 알 것이다. 왜냐하면 보고 듣고 맛보고 생각하는 모든 것이 진아의 성품으로 행해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깨닫고자 버둥거리는 것은 말 탄 사람이 말을 찾는 것과 같고, 물고기가 물을 찾고자 사방을 이리저리 헤매는 것과 같다. 깨달음을 구하고자 행해온 모든 일들이 자신은 이미 깨달았음에도 미혹에서 비롯된 것임을 안다. 우리가 행하는 모든 일들은 우리가 행하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존재계의 질서에 의해서 진아의 성품으로 행해지고 있을 뿐이다. 그것은 마치 땅 파는 계약서에 도장을 찍고 나면 이미 그 땅은 자신의 땅이 아니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생각으로 행해지는 것은 아직 계약서에 도장을 찍지 않은 것과 같고, 말과 행동으로 나타난 것은 계약서에 도장이 찍힌 것이다. 그것은 존재계의 질서에 의해 드러난 것이므로 내가 행했지만 이미 내 것이 아니다. 다만 생각의 상태로 있는 것들은 내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그것도 내 손을 벗어나 존재계의 휘하로 들어갈 것이다. 그러므로 ‘나는 누구인가’를 끈질기게 붙들고 늘어지는 수행이란 얻고 구하는 마음을 비우고 내려놓음에 있을 것이다. 우리 존재는 마치 들이쉬고 내쉬는 호흡 중간인 멈춤과 같다. 그처럼 고요하고 생각으로는 접근할 수 없는 영역이 곧 우리 존재이다. 내면의 무한한 침묵도 역시 우리 본래 면목이라 할 수 있다. 그처럼 텅 비고 공한 것을 무슨 재주로 손에 넣을 수 있고, 이것이 깨달음이라고 가리킬 수 있겠는가, 그러므로 내면에서 들끓는 온갖 소음이란 우리 본래 면목을 방해하는 장애물일 뿐이다. 물론 마음을 비우기 위한 수행조차도 마음의 욕망에서 비롯되는 것이지만 인간은 무언가를 하지 않으면 불안감을 느끼도록 늘 다른 사람과의 관계를 통해 존재해 왔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러한 생각도 마음이 녹아 참마음으로 스며들고 나면, 화장터의 마지막 부지깽이를 불 속에 던져 넣듯이 하면 된다고 말씀하였다. 비우고 또 비우면 불현듯 마음이 본래 부처인 진면목을 깨닫게 되는 것이다. 그것 이외에 다른 길을 걷고자 하면 애써 노력한다 해도 잘못된 길 들어서서 외도를 면치 못하게 된다. 외도란 성취할 무언가가 존재한다고 생각하면서 부지런히 육신을 다그쳐 고행하면서 그 대가로 주어지는 무언가를 기대하는 사람들을 말한다. 세상은 창조주에 의해 생겼다거나 혹은 창조주가 없다거나 하는 등의 관념을 끌어안고 있는 것도 모두 외도라고 붓다는 일컬었다. 그래서 신이란 단어가 자주 등장하지만 마하리쉬는 신이란 우리 진아를 일컫는 말이지 자신과 분리된 존재를 가리키는 것은 아니라고 하였다. 허공에 밝음과 어둠이 교차해도 허공은 어디에도 물들지 않고, 허공에 받침 없이 둥실 떠오른 지구라는 별도 먼지 티끌처럼 실체가 없으니 세상에 형상을 지닌 것들은 결국 허공으로 흩어지게 된다. 모든 것이 사라지면 세상은 멈추어버릴 것이지만 무언가 생멸을 주관하는 에너지가 있으므로 세상은 생겼다 멸하기를 반복하면서 존재하고 있다. 우리 육신이 멸해도 계속되는 것은 변치 않는 무엇인가가 존재하듯이, 세상도 모든 것이 사라져도 변치 않는 무언가로 인해 새로운 탄생을 거듭하는 것이다. 마치 나무가 잎을 피우고 떨구면서 순환하듯이, 나의 주인공일 뿐 아니라 세상의 주인공인 참나는 형상 지음이 불가능하므로 보고 듣는 작용이 없는 알아차림으로 존재한다. 온 세상 일체가 참나만이 실재하므로 참나는 무엇으로 이름 붙인다 해도 관계없지만, 신이란 단어는 나와 동떨어진 개념으로 사용되었기에 제한하고 나를 자각하는 그것이 존재하기에 ‘나’라고 이름 붙였으므로 ‘나’가 그것의 맨 처음 이름이며 나중에 다른 이름들이 생겨났으리라. 이처럼 참성품은 마치 허공과 같은데 허공을 무슨 재주로 색칠하고 장식할 수 있겠는가, 이처럼 텅 빈 내 마음이 우리 본래면목인 줄 알면 우리의 육신과 마음이란 기차를 타고 가면 수없이 스쳐 가는 전봇대와 같은 물건일 것이다. 아이들은 기차를 타면 스쳐 가는 전봇대를 보면서 신나게 외친다. 전봇대, 잘 간다.
9788991596818

가슴이 당신의 이름입니다, 오 신이시여! (슈리 라마나 마하리쉬의 침묵의 순간들)

라마나 마하르시  | 슈리크리슈나다스아쉬람
10,800원  | 20221220  | 9788991596818
이 책은 내가 대부분 한 번도 만나 본적이 없는 많은 훌륭한 분들의 도움으로 만들어졌다. 그분들이 없었다면 이 책은 출판될 수 없었을 것이다. 그 직접적인 영감은 《라마나 마하리쉬의 핵심적인 가르침(The Essential Teachings of Ramana Maharshi》이란 제목으로, 미국의 출판사인 이너디렉션(Inner Directions)이 출간한 책에서 비롯되었다. 나는 그 책이 아름답고 고상하며 포괄적이라는 것을 알았다. 하지만 환율을 볼 때 확실히 그것은 대부분의 인도 사람들이 구입해 볼 수 없는 높은 가격이었다. 하지만 언제든지 책을 집어 들고 어디에서나 책을 펴서 얼마동안 읽거나 볼 수 있고, 그때마다 매번 귀중한 영감이나 통찰력을 반드시 얻을 수 있는 그런 책이 있다면, 그 책을 갖고 싶지 않은 사람이 과연 어디에 있겠는가? 이러한 아이디어는 가능성과 함께 나의 심장을 두근거리게 만들었다. 2003년 8월에 나는 슈리 라마나스라맘의 총재이신 슈리 V.S. 라마난을 찾아뵙고, 이러한 방침에 따라 슈리 라마나스라맘을 위하여 나 자신이 선택한 사진과 디자인과 인용문을 이용하여 적당한 가격의 책을 출판할 수 있도록 요청했다. 그는 열성적으로 승낙해 주면서 아쉬람의 출판물과 사진기록 보관소를 이용할 수 있도록 해주었으며, 슈리 라마나의 탄생 125주년 기념 행사에 맞추어 책을 출판해 달라고 요청하였다. 저명한 사진작가이면서 또한 아쉬람의 사진 기록 보관인인 V. 까리띡은 우기 기간인 8월에 아쉬람에 머물고 있었다. 나는 책에 필요한 아루나짤라와 마을과 사원에 대한 사진의 종류를 설명해 주었다. 며칠 뒤에 성스러운 산 주변의 아름다움과 풍요로움을 포착한 사진들이 들어 있는 네 장의 CD를 받았다. 나는 감도가 뛰어난 까르띡의 사진들에 대하여 그에게 감사를 드린다. 최종적으로 책의 지면 배치를 끝마치고 전체를 검토해 봤을 때, 나는 나의 부족함을 보고 마음이 슬퍼졌다. 나의 능력으로는 바가반 라마나의 훌륭한 가르침과 그의 매혹적인 힘, 아름다움을 정확하게 표현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래도 이 과제를 추진하고 있는 동안 내 마음을 가득채운 기쁨과 은총, 안내를 받고 있다는 굉장한 느낌을 기억하자, 그 슬픔은 사라졌다. 다시 되찾은 영감으로 나는 마무리 작업을 진행해갔다. 특히 어떤 인용구는 질문에 대한 장문의 답변에서 발췌를 했기 때문에, 어법을 통일하고 대문자를 사용하고 읽기 쉽게 하기 위하여 편집상의 사소한 수정을 해야만 했다. 이렇게 하는 동안, 그 과정에서 일어날지도 모르는 일관성이 없는 의미의 미묘한 차이를 피하기 위해 주의를 기울였다. 또한 슈리 라마나의 다양한 기분을 보여 주고, 어떻게 참된 신성함이 아주 인간적일 뿐만 아니라 자연스러운 것인지를 보여 주고자 다소 손상되고 질이 낮은 문서 보관소의 사진들도 포함시켰다. 나는 이러한 사진들의 심오한 내용이 어떤 시각상의 결함보다 더 중요하다고 느낀다. 이 책의 머리말을 써 주신 비말라 따까르와 부드럽고 귀중한 비평으로 격려를 해주신 데니스 하텔, 바가반의 많은 사진들을 되찾고 직무 태만의 컴퓨터와 나 사이를 중재해 주신 그레이엄 보이드에게 감사를 드리고 싶다. 물론, 나는 바가반과 함께 살면서 그의 사진을 찍고, 그의 말씀을 편찬하고 번역해 준 모든 알려진 혹은 알려지지 않은 분들에게 감사를 드린다. 그들은 직접 라마나를 만나 본적이 없는 사람들을 위하여 계속 그분을 살아 있게 하고 있다. 바라띠 미르짠다니
9788991596320

슈리 라마나 릴라 (슈리 라마나 마하리쉬의 전기)

슈리 크리슈나 빅슈  | 슈리크리슈나다스아쉬람
11,700원  | 20101105  | 9788991596320
바가나 슈리 라마나 마하리쉬(Bhagavan Sri Ramana Maharshi)의 전기이다. 그는 1879년 12월 30일에 태어나 1950년 4월 14일 사망했다. 11살 때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자 죽음에 대해 깊이 탐구했고 삶과 죽음의 현상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그 뒤 17세 때인 1896년 7월, 그는 갑작스레 죽음에 대한 강력한 공포를 체험하게 되었다. 이 체험을 통해서 몸은 죽어 있어도 '나'는 살아 있음을 분명히 의식하게 되었으며 사마디 상태로 자연스럽게 몰입하였다.
9788991596177

불멸의 의식 (한국 슈리 라마나 프라사담 오픈 기념 출판물)

라마나 마하리쉬, 맥 마틴  | 슈리크리슈나다스아쉬람
0원  | 20080506  | 9788991596177
무한한 나를 만나다! 무수한 사람에게 깨달음의 메시지를 말과 침묵으로 가르친 바가반 슈리 라마나 마하리쉬의 『불멸의 의식』. 저자의 심오하고 귀중하며 직접적인 가르침 중 일부를 발췌하여 수록했다. 이 책은 한국 슈리 라마나 프라사담 오픈 기념으로 출간된 것이다. 말뿐 아니라, 침묵으로도 무수한 사람을 가르쳐온 저자의 핵심적 진리를 얻을 수 있는 것은 물론, 무한한 '나'와 만날 수 있다. 저자는 우리가 'Nan Yar(나는 누구인가?)에 대해 고민하도록 인도한다. 아울러 영원하고 무한하며 변함없는 우리의 의식에 대해 이야기함으로써, 우리가 성장해나갈 수 있도록 도와주고 있다. 양장본.
9788989942504

마하르쉬의 복된 가르침

바가반 슈리 라마나 마하리쉬  | 탐구사
15,300원  | 20190923  | 9788989942504
20세기 인도의 영적 스승 라마나 마하르쉬(Ramana Maharshi, 1879-1950)의 어록들 중 분량이 적은 6편을 한데 모아 번역한 책이다. 1939년에 처음 간행된 소책자 『마하르쉬의 복음』을 필두로, 1911년 최초의 서양인 제자 험프리스가 기록한 『마하르쉬의 삶과 가르침에 대한 견문』, 1912년 이후 한 헌신자가 자신과 마하르쉬와의 문답을 기록한 『해탈요담』, 1930년경 나라싱하 스와미가 편집한 산문체 『스리 라마나 기타』와 마하르쉬와의 긴 문답을 모은 『마하르쉬와의 대화』, 그리고 1937년에 한 제자가 간행한 『마하르쉬의 친존에서 얻은 가르침』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 중 『마하르쉬의 복음』은 2000년에 처음 국내에서 번역 소개되었는데, 이번에 내용이 대폭 개정되면서 국내에 처음 소개되는 다른 다섯 편의 저작들과 함께 합본된 것이다.
9788991596481

참나 깨달음 (라마나 마하리쉬의 생애와 가르침)

나라심하 스와미  | 슈리크리슈나다스아쉬람
16,200원  | 20151203  | 9788991596481
띠루반나말라이의 성산을 흠모한 성자 슈리 라마나 마하리쉬의 생애와 가르침을 엮은 책이다.
9788991596580

그대 자신을 아십시오

바가반 슈리 라마나 마하리쉬  | 슈리크리슈나다스아쉬람
13,500원  | 20180525  | 9788991596580
라마나 마하리쉬의 신성한 말들은 우빠니샤드처럼 독창적이고 독립적이며, 자신의 직접적인 경험에 바탕을 두고 있다. 그의 메시지는 모두를 위한 것이다. 대답이 주어지지 않은 영적인 길에 관한 의문에 모든 답이 주어졌다. 라마나는 철학적 사유와 수행법 가운데 가치 있는 모든 것을 풍성하게 하고 명확하게 했으며, 또한 참나 지식으로 가는 곧고 확실한 길을 전해 주었다. 라마나의 길은 자기 탐구 즉 비짜라의 길이다. 그는 영적 가슴의 과학이라는 등불을 밝혔으며, 그래서 그것을 이용할 수 있도록 해 주었다. 일반적으로 철학적 사유는 신, 참나, 미지의 것 등에 관심을 갖지만 라마나의 관심은 온통 개인에게 초점이 맞추어져있다. “우리는 ‘나’를 잘 안다고 생각하지만, 올바르게 자기 탐구를 해보면 우리가 당연하게 여기던 것들과 가정들이 타당하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럴 때 우리는 마음이라는 것의 성질, 마음과 영적 가슴과의 관계, ‘나’의 진정한 의미, 그리고 우리가 당연시 하듯이 과연 ‘나’라는 것이 몸에 한정되는 것인지 등의 질문을 정면으로 조사하고 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 책은 독자들에게 필요한 내용을 중심으로 라마나 마하리쉬와 여러 구도자들 간의 대화 중에서 필요한 내용을 선별하고 정리했으며 짧은 해설을 덧붙였다. 이 책의 목적은 참나 지식으로 가는 독자들의 여정에 실제적인 안내서로서 이바지하는 것이다. 자기를 알 때 우리 본래의, 그러나 감추어져 있는 참된 행복이 활짝 열릴 것이다.
9788991596528

천상의 노래 (마하리쉬가 선별한 바가바드 기따의 정수 42편)

라마나 마하리쉬 (선별 및 엮음)  | 슈리크리슈나다스아쉬람
0원  | 20170228  | 9788991596528
[20세기 인도 성자의 삶과 가르침]은 『슈리 아난다마이 마의 삶과 가르침』이라는 책에서, 알렉산더 립스키 교수는 철저한 연구와 개인적인 접촉을 바탕으로 하여 매력적이고 간결하며 영적으로 감성 있는 아난다마이 마의 전기를 제공하고 있다. 아난다마이 마에 관한 립스키 교수의 작품을 편집 해석한 것이 본서의 시작 부분이며 제1장과 제2장을 구성하고 있다.
9788991596160

파다말라이 (슈리 라마나 마하리쉬의 희귀한 가르침)

무루가나르  | 슈리크리슈나다스아쉬람
22,500원  | 20080220  | 9788991596160
바가반 슈리 라마나 마하리쉬의 가르침을 담은 시집 바가반 슈리 라마나 마하리쉬의 가르침이 담긴 작품 〈파다말라이〉를 소개하는 책. 〈파다말라이〉는 저명한 타밀어학자이자 시인이며, 바가반의 헌신자인 무루가나르가 바가반의 가르침에 대해 쓴 시집이다.「슈리 라마나 갸나 보담」이라는 제목의 타밀어 시리즈 중에서 제9권에 해당하는 것으로, 〈파다말라이〉라는 제목의 긴 시가 수록되어 있다. 〈파다말라이〉와 이 작품의 철학적 깊이의 중요성을 최소화하고자 하는 무루가나르의 시도는 그의 자아를 낮추는 성향을 전형적으로 보여준다. 여기에는 무루가나르가 들었던 바가반의 가르침들이 담겨 있다. 즉, 전체적으로 이 작품은 바가반의 가르침에 대한 중요한 말씀들을 폭넓게 다양한 주제로 다루고 있다. 이번 한국어판에서는 〈파다말라이〉의 영문판을 번역하였다. 영문판에는 3,059편의 시 중에서 약 1,750편이 선별돼 포함되었으며, 바가반의 가르침을 체계적으로 제시하기 위해 일정한 방식에 따라 주제별로 시들을 정리하였다. 또한 가르침의 진술들을 명확히 하기 위해 바가반이 직접 말한 편집 주해와 보충 인용문을 추가하였다. [양장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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