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줌인형 잡기 (콜센터 노동실태와 정책대안)
조돈문, 정흥준, 신희주, 김성호 | 매일노동뉴스
25,200원 | 20220916 | 9788997205547
여성노동자들이 얼굴을 붉히며 말한다. ‘오줌권’을 보장해야 한다고.
화장실에 가려면 우선 인형부터 가져다 자리에 앉혀 두어야 한다. 이른바 오줌인형 잡기. 아주 먼 옛날 야만의 시대 얘기처럼 들리겠지만, 기술혁신 논의가 난무하는 콜센터 노동현장 얘기다.
제4차 산업혁명으로 일컫는 급격한 기술발전은 많은 일자리를 없애며 직업 지도를 획기적으로 바꿀 것이라는 예측들이 쏟아진다. 그중 콜센터 상담업무는 기술혁신에 의한 일자리 대체가능성이 매우 높은 고위험군으로 분류되곤 했다. 상담전화를 사용해 본 사람들이라면 실제 인공지능(AI)·자동응답시스템(ARS) 같은 지능정보기술이 폭넓게 활용되고 있음을 경험하며 상담업무의 소멸 우려를 현실로 느끼게 된다.
콜센터 상담업무의 높은 일자리 소멸 가능성은 상담서비스를 제공하는 노동자들에게 실직하지 않고 남아 있는 것만도 감지덕지하고 열악한 노동조건도 수용하도록 압박한다. 실제 콜센터 상담노동자들은 저임금에도 높은 노동강도와 감정노동 스트레스 속에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는 사실을 본 연구에서 확인할 수 있었다.
콜센터 상담노동자들 가운데 자살을 생각해 본 적 있다는 노동자 비율이 48%나 된다는 본 연구 설문조사 결과는 충격 그 자체였다. 상담노동자들이 자살을 생각하고, 직무수행 과정과 조건에 불만을 갖고, 이직을 생각하게 되는 것은 한결같이 두 가지 요인에서 비롯됐다. 저임금과 감정노동 스트레스다. 질적 연구방법을 통한 공공 직영, 공공 간접고용, 민간 직영, 민간 간접고용 등 네 부문에 대한 사례연구에서 확인된 실태도 설문조사 결과와 정확하게 일치했다.
한국비정규노동센터는 국가인권위원회와 함께 2008년과 2021년 두 차례에 걸쳐 콜센터 상담노동을 연구하는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두 차례 연구로 확인된 13년간의 변화는 콜센터 상담업무의 소멸이 아니라 업무 내용 변화였다. 실제 AI·ARS 등 지능정보기술은 모든 상담업무를 대체한 게 아니라 간단한 질문에 단편적 정보 제공 방식의 상담업무만 대체했다. 그 결과 상담사들에겐 점점 더 복잡하고 난도 높은 상담업무만 남겨지게 된다. 따라서 상담노동자의 숙련과 전문성 향상이 요구되며 학력 수준과 근속연수 증가를 가져오게 했다.
콜센터 상담업무의 복잡성과 난도가 증가하고 상담노동자의 전문성과 숙련 수준이 향상됐음에도 상담노동자의 상대적 임금수준은 도리어 하락한 것으로 나타났다. 저임금에 상담노동자의 불만이 증폭되는 것은 피할 수 없는 귀결이다. 이뿐만 아니라 상담노동자는 점점 더 강한 노동강도와 감정노동 스트레스에 시달리며 건강권 보호도 받지 못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본 연구는 상담노동자들의 열악한 노동조건을 개선해 자살충동을 강요하는 상황을 타개하기 위한 정책대안들을 모색한다. 본 연구는 콜센터 상담노동자들을 대상으로 진행된 연구였지만, 본 연구에서 제안하는 정책대안들은 콜센터 상담노동자뿐만 아니라 모든 상담업무에 보편적으로 적용된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이 책은 한국비정규노동센터가 국가인권위원회의 지원을 받아 진행한 콜센터 상담노동자 연구 프로젝트의 성과에 기초해 만들어졌다. 동 연구를 재정지원하고 연구 성과물의 출판을 허락해 준 국가인권위원회와 관계자들, 콜센터 상담노동자 설문조사와 심층면접 연구를 도와주고 연구 결과물에 대한 토론과 정책대안의 실현 방안에 대한 고민을 나누고 마음을 모아 주신 한국비정규노동센터와 한국비정규직노동단체네트워크 및 소속 단체 활동가들, 공공부문콜센터노동조합연대회의, 공공운수노조, 사무금융노조·연맹, 희망연대노조, 서비스연맹, 금속노조 삼성전자서비스지회, 전국금융산업노조, 직장갑질119, 한국컨택센터산업협회, 엠브레인, 그리고 비정규직 문제에 대한 꾸준한 관심과 애정으로 〈비정규직 주체형성과 전략적 선택〉(2012), 〈사라져버린 사용자 책임 : 간접고용 비정규직 실태와 대안〉 (2013), 〈노동자로 불리지 못하는 노동자 : 특수고용 비정규직 실태와 정책대안〉(2016), 〈노동권 사각지대 초단시간 노동자〉(2017), 〈공공부문 비정규직 제로화의 길 : 무기계약직 정책을 넘어〉(2018), 〈해외사례를 중심으로 본 지역 일자리·노동시장 정책〉(2018), 〈다시 묻는 사용자 책임 : 간접고용 비정규직 실태와 정책대안〉(2021)에 이어 콜센터 상담노동자 연구 결과물까지 책으로 만들어 주신 매일노동뉴스 관계자들께도 감사를 드린다.
2022년 8월
필자들을 대표해
조돈문 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