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예술교육 (인간 경험 형성과 심미적 교육)
랄프 스미스(Ralph A. Smith) | 박영사
18,200원 | 20230915 | 9791130310145
지 게히건George Geahigan의 서문
자신이 선택한 전문분야에서 지도적인 정치가로 존경받을 만한 인물을 발견하는 일은 매우 드물다. 예술교육 분야에서 Ralph A. Smith는 바로 그 적절한 인물이다. 그는 미술교육의 탁월한 이론가 중 한명으로 인정받던 당시에 예술교육의 중요한 시기인 전쟁(세계 대전) 전후 「미적 교육 저널Journal of Aesthetic Education」의 설립자이자 편집자로서, 예술분야에 사회적 문제를 제기하고 대화를 촉진하도록 하는 교육 정책을 마련할 수 있는 중요한 위치에 있었다. 또한 그는 학교에서 광범위하게 실행되어 온 교육 철학을 확고히 하고자 장학금 제도도 추진해왔다. 그가 출판한 많은 예술교육과 관련된 저서와 논문들은 철학적으로 깊이 있는 내용들이어서 시각 예술뿐만 아니라 다른 분야 전문가들로부터도 큰 호응을 얻어왔다.
이 저서에 실린 내용들은 지난 30년 동안 Smith가 지필해온 대표적인 논문들과 저서, 그리고 강연들 중 문화와 예술교육과 관련된 연구들로 구성되었다. 따라서 문화예술교육과 관련하여 깊이 있게 다룰 수 있는 일련의 인간 경험 형성에 대한 사고의 발전을 광범위하게 탐구해볼 기회를 제공한다. 특히, 일반교육에서 예술이 사라질 위기에 대한 방어적 근거와 공립학교에서 실행 가능한 예술교육 커리큘럼을 구성하기 위한 그의 일생의 노력을 기록한 글들이라고 할 수 있다. Smith는 교육 환경에서 예술과 미학을 잘못 적용하여 제안되고 추진되는 정책들에 대한 지속적인 관심과 우려를 표방하고 있었다. Smith에게 있어서, 학교 커리큘럼 내에 미술교육의 위치를 정당화하는 문제는 궁극적으로 인간의 삶 속에 예술이 차지하는 독특한 가치를 어떻게 차별화된 방식으로 적용하는가에 달려 있다. 이때, 교육자는 미학에서 가장 다루기 어려운 문제에 직면하게 되는데 그중 하나가 심미적 가치의 본질을 탐구하는 것이다. 어디서나 볼 수 있는 예술의 존재가 우리의 삶 속에 예술의 중요성을 증명하고 있다고 할 수 있지만 아직까지도 철학자들은 예술이 왜 가치가 있는지에 대한 합의점에 도달하지 못했다. 이 어려운 지형을 체계적으로 협상해봄으로써 교육에 접근하고자 하는 이론가는 흔치 않으며, Smith는 그 드문 학자 중 한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그의 글들에서 미학자와 철학자들이 숙고해온 문제들을 지속적으로 탐구해왔다는 것을 알 수 있으며, 자신의 철학이 성숙해감에 따라 결국 예술이 왜 가치 있는가에 대한 질문으로 회귀됨을 반복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예술의 중요성에 대한 그의 최종 결론은 심미적 가치에 대한 도구적 개념에 기초한 것으로 보인다. 예술작품이 가치 있는 경험으로 이끌어 낸다는 믿음하에서 그것은 충분히 도구로서의 가치가 있다. 이는 예술작품에 대한 경험들은 그 자체가 본질적으로 즐겁고 만족스러울 뿐만 아니라, 그런 경험들을 통해 관객들은 세상과 자신에 대한 인문학적 통찰력을 얻게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힘은 예술이 가진 도구적 가치로부터 나온다고 본다. 비록 예술이 사회적이라기보다는 개인적인 것이라는 점에서 그 주된 가치를 제공하고 있지만, 개인적 가치를 우선적으로 경험함으로써 사회와 문화 전체가 충족되고 문화적 문해력을 갖춘 인간으로 성장해감으로써 궁극적으로 예술의 중요한 가치를 발휘할 수 있다고 Smith는 주장한다.
이 책의 후반 글들에서 Smith는 Ernst Cassirer, Nelson Goodman, Albert William Levi 등의 연구를 인용하여 심미적 경험의 속성을 가진 인지적 성격을 강조한다. 예술은 학생들의 인격과 지적 발달에 기여를 하기 때문에, 예술은 그 자체로 독특한 학교 교과목으로 여겨져야 한다. 하지만 이것은 인문학을 바탕으로 구성된 커리큘럼일 때를 의미한다. 예술이 가치 있는 경험을 제공할 수 있는 잠재력을 지닌 것이라는 전제하에서, 예술교육의 주요 임무는 학생들이 예술 작품을 이해하고 감상할 수 있는 능력과 자질을 갖추는 것이어야 하며, 따라서 예술교육은 이 가치에 접근할 수 있어야 한다. Smith는 스튜디오 실습을 기반으로 한 커리큘럼을 지지하는 교육자들과는 대조적으로, 예술작품의 인문학적 연구에 주로 전념하는 커리큘럼을 주장한다. Smith가 구상하는 커리큘럼은 주로 중등학교 학년기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전문가를 위해서보다는 비전문가를 위한 교육에 전념한다는 점에서 일반 교육으로서의 특성을 지닌다고 할 수 있다. 비록 개인적인 관심사를 형성할 수 있도록 어떤 조항들을 만들어놓긴 했지만, 학생들이 유사한 개념과 기술을 배우고, 비슷한 작품의 구성을 취한다는 점에서 일반적인 성격의 예술교육이 될 것이다. 전통적이고 동시대적인 예술 모두를 포괄하는 본보기가 될 만한 예술작품들로 구성되어 있고, 이들 중 대부분은 서양의 문화유산에서 선정되었지만, 학생들은 다른 문화유산의 작품들도 역시 공부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질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비록 예술에서의 “통찰력”, “수월성”, 또는 “인문학” 커리큘럼에 대한 전반적인 개념은 수정되지 않은 채 본질적인 개념이 그대로 사용되었지만 이 책의 후반부 내용들에서 보다 정교하고 정제된 용어로 수정되어 사용된 것을 알 수 있다. 그가 가장 최근에 쓴 에세이에서는 다양한 교육 방법을 주장하면서 학년 단계별로 순차적으로 이어지는 커리큘럼에 대한 설명들을 제시하고 있다. 이 커리큘럼은 미술 작품을 안내하는 비공식적인 활동에서 출발하여 심미적 개념과 자질에 대한 점진적인 친숙함으로 이어질 수 있는 내용들로 구성되어 있으며, 미국 학년제로 볼 때 3학년 초기부터 시작할 수 있는 내용들이다. 학습의 대부분은 현재 저학년에서 미술교육을 지배하는 창조적인 활동으로 시작하여 점차 심미적 활동으로 이어진다. 이러한 학습 활동은 4~6학년에서 예술작품에 대응하는 체계적인 훈련의 도입을 통해 보다 공식적인 형태의 지각 훈련으로 통합된다. 7~9학년에서는 주로 서양 미술에 대한 연대기적 조사를 통해 “시간, 전통, 스타일(양식)”의 관점에서 예술을 사고하는 능력을 기르기 위해 미술사적 감각에 전념하도록 한다. 10학년과 11학년이 되면, 학생들은 서양 미술 작품과 다른 문화 전통의 작품들로 선택된 걸작들을 깊이 있게 공부하도록 한다. 마지막 단계인 12학년에서 학생들은 이전에 습득한 기술을 종합하고 개인적인 예술 철학을 개발할 기회를 가진다. 이때는 학습의 모든 유형은 세미나 형태로 이루어지며 미학과 예술 비평 관련 문헌을 읽고 분석하며 심미적 판단 기준을 토론하고 적용함으로써 학습이 가능할 것이다.
Smith의 수많은 글들에서 알 수 있듯이, 그는 예술교육의 명확한 대변가이자, 교육에 예술과 미학을 잘못 적용하고 있는 정책적 제안들에 대한 날카로운 비평가이기도 하다. 그는 특히 예술을 심미적인 목적이 아닌 예술 자체를 교육에 사용하려는 시도에 대해 우려해왔다. 수년간 교육자들은 학교에 예술 교과가 확고한 기반을 다질 수 있는 많은 이유를 제시해왔다. 예를 들어, 예술교육은 읽기, 쓰기, 그리고 수학의 기본 기술을 촉진하기 위한 하나의 방법으로서, 학교 내에서 더 긍정적인 분위기를 조성하는 수단으로서, 사회 문제를 개선하기 위한 도구로서, 인종 관계를 향상시키는 방법으로서, 그리고 기타 등등의 방법으로 제안되어 왔다. 비록 Smith가 예술을 가르치는 것이 위와 같은 교육의 성공적인 결과를 가져오는 데 주된 방법과 수단으로서의 역할을 한다는 것을 인정한 선두주자일지라도, 그는 모든 학습의 성과가 예술로만 이루어질 수 있는 것은 아니며, 이것이 예술을 학교에서 하나의 교과목으로 예술 고유의 가치를 정당화할 수 있는 기초를 제공하는 것은 아니라고 주장한다. 그러한 심미적이지 않은 목표에 집중하는 것은 목표와 목적에 대한 근본적인 혼란을 드러내는 것에 지나지 않으며, 학교 교육 과정 내에서 예술교육이 뚜렷하게 그 고유의 차별적인 역할이 없는 교육을 양산하는 것에 불과하다고 주장한다.
교육의 목표는 실천을 정당화할 뿐만 아니라 실천을 지시하기 때문에, 심미적 목표가 아닌 다른 목표를 채택하는 것은 예술을 가르치고 배우는 바로 그 구조를 왜곡하거나 파괴할 수 있는 매우 위험한 문제를 초래한다. 이것은 특히 예술교육에 대한 일부 사회재건주의자들의 접근에 해당된다. 사회 재건주의 교육에는 특수 이익집단의 정치적 아젠다를 홍보할 수도 있는 이념적 내용을 담은 예술작품에 집중하는 경향이 내재되어 있다. 뚜렷한 이념적 메시지가 없는 작품이나 현재 유행하고 있는 성향과 다른 이데올로기를 내포하는 작품을 무시하는 성향들이 바로 그러하고, 심지어 모두가 순수예술 연구를 포기하는 분위기가 바로 그런 경향이다. Smith에게 이 모든 것은 용납할 수 없는 방식으로 예술을 가르치고 배우는 교수학습의 본질을 변질시키고, 학생들에게서 순수 학문 연구로부터 얻을 수 있는 예술이 가진 독특한 성향들을 터득할 기회를 박탈하는 결과를 가져올 수도 있는 것이다.
Smith는 교육에 미학을 포함하여 다루는 내용 중 일부 터무니없는 주장들에 날카로운 비판을 하기도 한다. 많은 철학자들과 교육과정이론가들은 교실에서 배우는 것을 미적 경험을 하게 되는 것에 비유했고, 가르치는 것을 연기에 비유했으며, 교육현상을 평가하는 것을 예술작품을 비평하는 것과 관련시켰던 내용들이 그것이다. 이러한 인식들에 대한 그의 비판은 주로 미적 경험, 연기, 예술 비평의 기본 개념에 대한 상세한 분석에 기초한다. 그는 이론가들이 개념적 유추를 해명하는 데 있어서 이질적인 현상들 사이에 발생하는 몇 가지 주요한 차이점들을 무시했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결과 미학에 대한 이론적인 혼란뿐 아니라 교육과정, 교수법, 교원연수, 교육평가 등에서 근거 없는 애매한 처방들로 이어지게 되었다는 것이다.
물론 나도 Smith가 이러한 정책적 과오의 일부 주요 가닥에 대한 도식적인 개요를 제공하는 이 에세이들의 풍부하고도 복잡한 많은 내용들을 간과했던 것이 사실이다. 나의 이 간략한 서문이 그가 예술을 인간다움의 결정체로서 논의한 철학적 내용, 심미적 경험에 대한 상세한 분석, 예술에서의 개념과 개념 학습에 대한 식견 있는 개요, 그리고 교육 평가에 대한 지각 있는 논평에 정당성을 부여할 수는 없다. 또한 예술교육에서 다문화주의, 엘리트주의, 포스트모더니즘과 같은 문제들에 대한 그의 세심한 분석을 자세히 묘사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독자들은 전쟁 전후 기간 동안 심미적 교육의 개념과 시각 예술교육의 커리큘럼 추세에 대한 명확한 설명으로 보상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수년 동안 Smith의 연구들은 오늘날 학교 현장에서 예술교육을 지배하고 있는 스튜디오와 공연 기반 모델에 대한 대안을 모색하는 개혁적인 교육자들에게 엄청난 영향을 끼쳤다. 이런 영향력의 원천은 나무랄 데 없는 그의 학문적 식견과 사려 깊은 추론에 바탕을 둔 광범위하고 통합적인 예술교육철학으로 비롯되었다. 이 저서에 수록된 에세이들은 학교에서 예술과목들에 대한 설득력 있는 비전을 제시하고 있다. 따라서 교육에서 예술의 역할과 교수학습 환경에서 예술교육의 실천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있는 모든 교육자들에게 주목받을 가치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