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사와 변경
Turner, Frederick Jackson | 소명출판
25,200원 | 20200730 | 9791159055294
진정한 미국, 개척자의 나라
이 책의 저자인 프레데릭 잭슨 터너는 미국 사학계의 대표적인 학자 가운데 한 명으로, 이 책 ?미국사와 변경?을 발표함으로써 학자로서의 명성을 얻기 시작했다. ?미국사와 변경?에서 저자는 서부 변경을 개척하고 정착지를 건설했던 것이 바로 미국의 예외적 특징을 규정한 핵심적 동력이라고 주장한다. 미국의 서부 팽창은 북동부, 중부의 단순한 복제적 확산이 아니었다. 그 팽창은 동부를 박차고 나왔던 거칠고 투박한 오지인, 변경이주자, 개척자들이 끊임없이 전진함으로써 만들어 낸 적응과 변용의 과정이었던 것이다. 유럽적 유산이 강한 동부 대서양 연안지역은 결코 미국일 수 없으며, 지속적 서부 전진이 만들어 낸 변경 개척지와 거기서 체득된 개척자의 정신, 습속, 그리고 제도, 바로 이것들이 바로 진정한 미국이었다.
변경 민주주의를 찾아서
황무지 개척을 통해 변경 속에서 정체성을 확립해 간 미국의 개척자들은 전통적 권위, 정치제도, 기성 종교 등을 철저히 거부했다. 투쟁하며 벌목하고 농장을 세워 가축을 기르면서 자립한 변경 개척자들은 투박하고 직설적인 기질을 체득하였고, 고담준론이 아니라 결과 지향적 행위를 존중하였으며, 구속되지 않는 삶을 추구한 한 자유인들이었다. 변경에서 탄생한 이런 기질의 개척자들은 투쟁을 통해서 얻은 자신의 토지를 바탕으로 자유와 평등을 주장하면서 전통의 인습과 권위의 제약에 구속되지 않는 ‘변경 민주주의,’ ‘개척자 민주주의’를 창조해 갈 수 있었다. 즉 서부와 접촉하는 변경이 없었다면 유럽과 다른 예외적인 미국으로 발전해 나갈 수 없었다는 입장이 이 책의 저변에 지속적으로 흐르고 있다.
이러한 주장은 ‘접경 연구(border studies)’와 관련하여 재조명될 필요가 있다. 두 문화권 간의 접촉에서 나타나는 이질적인 민족이나 인종, 사상과 문화의 혼종, 잡거, 변용, 변화 등을 통해서 새로운 민족, 인종, 문화, 사상 등이 나타날 수 있다는 접경 연구의 관점에서 볼 때에도 터너의 ?미국사와 변경?은 한번을 면밀하게 읽어보아야 할 고전으로 남아 있다. 터너의 변경사가 제시하는 미국의 경험에서 과연 과거 제국주의 세력과 피식민지의 관계에 대한 어떤 패턴이나 주류 민족과 소수민족 간의 상호작용이 어떤 식으로 발전할 것인지에 대한 시사점이 도출될 수 있을지는 향후 지속적인 연구과제가 될 것이다.
개척자의 미국, 트럼프의 미국
2016년 트럼프 미국대통령의 백인 민족주의 등장 이후 현재 전개되고 있는 미국사회의 현실은 터너가 이 책에서 제시한 미국의 모습과는 너무도 다르다. 트럼프 등장 이후 현재 전개되고 있는 현실을 바탕으로 이 책에 수록된 터너의 글을 읽어 보면 불과 백 년을 사이에 두고 마치 두 개의 미국이 존재하는 듯한 착각이 들 것이다. 저자가 이 책을 집필한 1893년부터 1920년까지의 시기는 미국이 남북전쟁의 폐허에서 벗어나 북부를 중심으로 대형기업 중심의 산업화 궤도에 올라서고 세계 최대의 제조업 국가로 도약하는 시기였다. 당시에는 그의 변경론적 미국사 해석의 바탕이 된 미국의 개척자 정신, 미국 고유의 변경 민주주의의 유연함과 강인함, 유럽과 차별화된 미국 예외주의의 여건 등이 존재했었다. 그러나 2016년 트럼프 대통령의 당선 이후 2020년의 미국은 백인 민족주의의 발흥, 다원주의의 쇠퇴, 인종 간 대립의 격화 등으로 인해 터너가 찬양한 ‘창조적인 미국의 정신’과 ‘역사적인 미국의 이념’이 들어설 자리가 없어 보이기도 한다. 터너의 ?미국사와 변경?은 이러한 관점에서 책을 접하게 될 독자들에게 강대국의 발전과 쇠퇴에 관한 어떤 교훈을 시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