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서  | 돌베개

9,000원  | 20001215  | 9788971991251

이 책은 16세기 전반에 베트남의 문인 완서(阮嶼) 가 창작한 '전기만록(傳奇漫錄)'을 번역한 단편 소설집이다. '전기만록'은 한문으로 씌어진 전기소설로서 전 4권, 각 권 5편씩 모두 20편의 작품이 실려 있다. 14세기 중국의 구우(瞿佑)가 지은 '전등신화(剪燈新話)에 영향을 받아 씌어졌고, 15세기에 김시습이 창작한 금오신화와 비견되는 베트남 고전소설의 걸작으로 평가된다. 전기소설은 동아시아 중세에 성립하여 발전해 온 소설 양식이다. 시와 산문을 독특하게 교직(交織)하면서 남녀의 사랑이나 기이한 사건을 흥미롭게 펼쳐 보이며, 환상적인 내용 속에 현실에 대한 지은이의 감정과 태도를 드러내기도 한다. '전기만록'의 지은이 완서 역시 다양한 주제와 소재를 활용한 옛 이야기 속에 권선징악, 인과응보 등중세시대의 보편적인 세계관을 담고 있다. 지은이가 작품을 통해 드러내고자 했전 핵심적인 메시지는 왕위 찬탈과 부패와 현실사회에 대한 풍자와 비판이다. 이 책의 배경은 베트남의 진조말, 호조, 여조 초 쯤으로, 저자 완서가 생존해 있던 시대보다 1, 2세기 앞선다. 1527년 여조의 신하 막등용이 왕위를 찬탈한 사건이 있은 후 지은이는 진조의 신하로 왕위를 찬탈한 호조에 빗대어 현실 속의 막씨 정권을 우의(寓意)적으로 비판했으며, 무증하고 부정한 위정자들에 대해서도 신랄하게 비판하였다. 이 책의 핵심적 메시지 중 또 다른 하나는 중국의 침략주의에 대한 반대와 비판이다. 반전을 주장하는 '전등신화' 나 이야기하는 방식의 한 장치로만 병란을 이용하는 '금오신화'와는 달리 '전기만록'에서는 중국(明)의 침략전쟁으로 인한 베트남 인민의 참상을 강조하면서 침략전쟁 반대와 저항적 민족주의의 면모를 강하게 드러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