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나스 서사시 3부작 (마나스, 세메테이, 세이텍 서사시)
사금바이 오로즈바코프, 사야크바이 카랄라예프 | 부산대학교출판문화원
34,650원 | 20211230 | 9788973167296
문학으로 이해하는 마나스 서사시, 흥미와 감동을 선물
마나스 서사시를 흔히 키르기즈인의 역사와 철학, 민속학의 보고라고 한다. 중앙아시아 유목민들의 삶과 정신세계를 들여다보는 거울이라 말하는 사람들도 있다. 마나스와 세메테이, 세이텍으로 이어지는 서사시 3부작을 합하면 50만 시행에 이른다고 하면서 일리아스와 오디세이 보다 긴 서사 규모에 감탄하기도 한다. 하지만, 탈라스를 취재한 국내 다큐멘터리나 한국인 여행 마니아가 남긴 답사기를 보면, △중앙아시아의 풍광이나 △현지인의 일상생활, △고구려 유민 출신 고선지 장군의 전쟁 유적지 조망이 주류이고, 마나스는 옵션이다. 필요에 따라 덤으로 잠시 소개될 정도이다. 지리상으로 한국에서 멀다보니 현지의 로컬 서사시가 낯선데다, 우리 말 번역서도 없어 내용을 짐작할 수 없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마나스 서사시를 꼼꼼하게 읽을 기회가 있는 독자라면 마나스가 ‘한 민족의 신화적인 이야기에 국한된 스토리텔링이 아닌 것’을 쉽게 알 수 있다. 공간과 인물만 중앙아시아와 키르기즈인이 선택되었을 뿐, 이야기가 다루는 근본적인 내용은 인간의 본성에 대한 것이라는 데에 놀랄지도 모른다. 마치 셰익스피어의 비극 작품을 읽을 때처럼 말이다. 셰익스피어의 드라마는 영국 이외의 공간을 배경으로 할 때가 많다. 햄릿은 덴마크 왕자이고, 베니스의 상인은 제목에서부터 이국적이다. 로미오와 줄리엣, 오셀로를 비롯한 셰익스피어의 비극은 대부분 그러한데, 우리가 셰익스피어에 감동하는 것은 공간 배경이나 등장인물들의 국적 때문이 아니다. 드라마가 구사하는 마법의 언어와 비극적인 인간 본성의 노출에 우리 가슴이 공감하기 때문이다.
마나스 서사시를 한 편의 드라마로 읽으면, ‘인간의 본성을 다루는’ 새로운 고전의 세계를 경험하게 된다. 영웅의 승리와 업적, 중앙아시아 특유의 민속이 텍스트를 가득 메우고 있을 것 같은 추측을 할 수 있지만, 실제로는 전쟁과 영웅에 대한 서사만큼이나, 인간들 사이의 질투와 반목, 불화, 그리고, 그 결과로 초래되는 비극적인 스토리전개가 우리 가슴에 와 닿는 것을 알게 된다. 마나스가 인간의 본성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유목민 버전의 드라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마나스 서사시는 교양을 넓히기 위한 독서거리나 중앙아시아 민속을 이해하는 텍스트의 구실도 하지만, 문학으로 읽으면 유목민의 세계에서 셰익스피어를 발견하는 가슴 뛰는 감동을 선물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