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볼전쟁 (상징의 한일관계사)
홍이표 | 진인진
40,500원 | 20251025 | 9788963476391
태양과 초승달, 십자가와 삼족오, 벚꽃과 무궁화—한일 양국의 관계사는 언제나 상징의 언어로 대화해 왔다.
『심볼전쟁』은 정치와 외교, 경제의 이해관계를 넘어, “상징(symbol)”을 매개로 한일관계의 내면사를 다시 쓰는 시도이다.
저자 홍이표는 이 책에서 16세기 임진왜란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한일 양국이 공유하거나 대립해 온 상징들의 계보를 추적하며, 그 속에 숨은 권력의 의식과 문화적 무의식을 해부한다.
책은 크게 세 부분으로 구성된다.
제1부 '동상이몽의 상징사'는 한일 관계의 출발점에서 서로 다른 세계관이 처음 충돌하던 시기를 다룬다. 일본의 초승달, 조선의 태양, 서양의 십자가가 맞물리던 시공간 속에서, 상징은 단순한 문양이 아니라 신앙과 문명의 경계선이었다. 임진왜란 당시 기리시탄(隱れキリシタン)의 박해, 십자가와 초승달의 교차, 동상이몽으로 이어진 신앙의 시각문화가 그 첫 장을 장식한다.
제2부 '오비이락의 여울목 위에서'는 근대 일본의 제국주의 팽창기와 식민지 조선의 상징체계를 다룬다. 삼족오와 야타가라스, 태양신의 후예를 자처한 두 문명의 상징이 각기 다른 정치적 의미로 재구성되며, 욱일기·국화문·팔굉일우 같은 제국의 시각언어가 조선총독부의 휘장과 마크로 이식되는 과정을 추적한다.
저자는 “식민지의 시각은 제국의 언어로 말하게 강요받았다”고 말하며, 경성부 휘장·조선총독부 문장·사쿠라 다이몬(벚꽃 문장) 같은 사례를 통해 제국의 상징정치가 어떻게 일상공간 속으로 침투했는지를 섬세하게 분석한다.
제3부 '상징의 재편과 기억'은 해방 이후의 이야기를 다룬다. 일제의 벚꽃이 지고, 대한민국의 무궁화가 피어오르는 과정에서 상징은 새로운 정치적 의미를 획득했다. 무궁화는 단순한 식물이 아니라, 식민 잔재를 지우고 자주적 국가를 상징하기 위한 정신적 토대가 되었다. 그러나 저자는 동시에 “해방의 상징은 과거의 잔영 위에 세워졌다”는 점을 지적한다.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오동잎 문장, 조선총독부 문양의 잔재, 서양 삼위일체의 종교적 상징이 현대의 정치·교육·건축 디자인 속으로 스며든 사례들을 통해, 그는 '청산되지 않은 시각의 식민성'을 비판적으로 드러낸다.
『심볼전쟁』의 백미는 상징을 단순한 문양이나 미술사적 장식으로 보지 않고, 지배와 저항의 언어, 기억의 정치학으로 읽어내는 저자의 시선에 있다. 일본 제국주의가 남긴 상징의 잔재를 해체하는 동시에, 해방 이후 한국이 그것을 대체하며 구축한 상징체계의 정치성을 함께 보여줌으로써, 책은 한일 관계사를 새롭게 조명한다.
상징은 단순히 '그림'이 아니다. 그것은 한 사회가 자신을 어떻게 기억하고, 타자를 어떻게 규정하는가를 드러내는 정신적 구조물이다. 저자는 이를 “상징의 전쟁은 곧 기억의 전쟁이며, 정체성의 투쟁”이라고 정의한다.
마지막 장에서 저자는 연세대학교 교표 속 한글 모음 'ㅏ·ㅣ·ㅡ'와 십자가의 결합을 예로 들어, 상징이 어떻게 언어와 신앙, 철학을 관통하는지를 설명한다. '하늘과 땅, 사람'의 원리를 담은 이 교표는 한국적 사유와 서양적 기호가 공존하는 상징의 결정체로 읽힌다. 저자는 이를 통해 “상징은 시대정신의 거울이며, 언어로 표현할 수 없는 공동체의 기억”이라고 말한다.
『심볼전쟁』은 정치·역사·종교·미술·건축을 가로지르는 상징의 인류학이자 시각문화 비평서이다.
한일 관계를 둘러싼 갈등의 근원과 정체성의 문제를, 눈에 보이는 상징들을 통해 다시 묻는다.
우리가 매일 마주하지만 의식하지 못한 문양들—국기, 교표, 꽃, 문장 속에는 시대의 사상과 권력이 새겨져 있다.
이 책은 그 상징의 언어를 해독하는 열쇠이자, '보이는 것 너머의 역사'를 읽어내는 새로운 교양서로서의 의미를 가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