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고대사 (고조선, 부여)
박준서 | 간디서원
19,800원 | 20251203 | 9788997533619
잃어버린 고조선과 부여의 역사를 찾는다!
현재 중국과 일본은 자기 민족에 대한 긍지를 살리려고 과장된 역사를 가르치지만, 우리는 대륙으로 한 번도 진출해 보지 못하고 한반도 안에서 지지고 볶고 싸우는 민족으로, 도저히 자부심을 가질 수 없는 왜곡되고 축소된 역사를 가르친다. 참으로 개탄스러운 일이다.
조선시대까지 한민족의 고대 사료는 『단군고기』와 『신지비사』, 『배달유기』, 안함로와 원동중의 『삼성기』, 표훈(表訓)의 『삼성밀기』, 『조대기』 등이 있었다. 특히 『신지비사』와 『배달유기』는 고조선 건국에 관련이 깊은 내용이 담겨 있던 책으로 조선 초까지 전승되어 서운관(書雲觀)에 보관하고 있었다.
그러나 조선은 개국 직후 편찬했던 『고려사』를 다시 고쳐 종래의 자주적인 내용을 제후국에 맞도록 편찬하였고, 특히 왕위를 찬탈한 세조는 고서를 숨긴 자는 참형에 처한다는 엄명을 내리고 고기류(古記類)를 수거하고 불태우는 등 조선판 분서갱유(焚書坑儒)를 저질렀으며, 그나마 민간에 숨겨둔 것마저 일제는 1910년 수거령을 내려 이 땅 곳곳에서 51종 20만 권 정도의 서적을 수거해 불태우거나 본국으로 가져가 버렸다.(조선총독부 관보)
때문에 한국 고대사 사료는 매우 부족하다. 하지만 중국 25사 및 관련된 사료를 연구하는 사학자들 덕분에 고조선과 부여가 실존의 역사임이 밝혀지고 있다. 중국 손작운(孫作雲)은 『산해경』을 동이 고서(古書)로 규정하고, 해내경을 아예 조선기(朝鮮記)라고 불렀다. 사마천의 『사기(史記)』 조선열전에도 만이(蠻夷) 세력이 옛 연(燕)과 제(濟)까지 미쳤다는 기록, 『설문해자』에서 패수는 낙랑군 누방현에서 나와 동쪽 바다로 들어간다는 명확한 기록이 있고, 동시에 『사기(史記)』 화식열전(貨殖列傳, BC403∼BC221 기록)에서 연(燕)나라가 북쪽으로 오환(烏桓), 부여(夫餘)와 이웃하고 있고, 동쪽으로 예맥(穢貊), 조선(朝鮮), 진번(眞番)과 교역이 있다고 하였다. 강단사학자들의 부인에도 불구하고 고조선과 부여의 역사는 역사적 사실임이 명백히 드러나고 있다.
일제식민지 사관과 동북공정 문제
우리 민족의 역사는 그동안 심하게 왜곡되고 부정되어 전해왔다. 1945년 광복이 되어 80년이 지났지만, 사학계는 여전히 식민사관의 잔재를 떨쳐 내지 못하고 있다. 한국 사학계를 관통하는 두 가지 사관이 있는데, 하나는 사대주의 노론 사관이고, 또 하나는 식민 사관이다.
노론 사관은 1623년 광해군을 쫓아낸 서인들의 인조반정에서 시작됐다. 성리학을 받든 존명반청의 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서인들은 이후 노론과 노론 벽파로 이어지면서 조선이 멸망할 때까지 300년간 나라를 말아먹었다. 일본 제국주의에 나라를 팔고 관작을 받아먹은 양반들 대다수는 노론이었고, 그 후예들이 일제 조선사편수회에 가담했으며 광복 뒤에도 사학계 주류가 되었다. 식민사관(植民史觀) 역시 노론 사관과 다를 바 없는데, 영토(領土)적 개념(槪念)이 한반도 내로 국한되어 비슷하기 때문이다. 식민사관(植民史觀)이란 한반도 북부에서 한나라가 한사군을 설치해 400년간이나 식민지를 경영했고, 남부에서는 일본이 임나일본부를 설치해 백제와 신라를 경영했다고 하는 역사 조작에 이론적 근거가 되었던 사관이다. 특히 청천강 패수설과 평양의 낙랑군설은 일제가 만든 식민사관의 핵심 요소이다.
지금도 한국 사학계는 조선사편수회에 몸담고 식민사학의 주구 노릇을 하던 학자와 그 후예들에게 잠식되고 있다. 그들은 일제가 주장한 식민사관을 실증사학이라는 가면 아래 교묘히 숨겨 그대로 수용하였다. 실증주의 사학은 발굴한 유적과 유물을 과학적으로 검증함으로써 문헌에 기록한 역사적 사실을 고증한다고 주장하면서 고증되지 않은 사료는 대부분 불신한다. 7~8천 년 이전의 고대 유적과 유물이 계속 발굴되고 있지만, 고조선과 단군이 증명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역사가 아닌 신화로 치부되고 있다. 이러한 실증사학에 따라 우리 역사 대부분이 잘려나갔다.
이렇게 중국에 대한 사대주의와 일제의 식민사관, 여기에 더해 실증사학에 의한 우리 역사 변질이 매우 심각하다. 사대주의와 식민사관의 결과로 대륙을 호령했던 우리 한민족 역사의 활동무대가 한반도 내로 축소되었다. 이는 중국의 동북공정에 빌미를 제공하고 있다. 중국에서 동북 지방은 지금의 요녕성, 길림성, 흑룡강성 등을 일컫는 말이다. 식민사관에 따른 억지 주장으로 이 지역의 역사가 공백으로 남았고, 그래서 이 지역을 중국 역사로 편입하려는 것이 바로 동북공정이다. 그러나 고조선과 부여, 고구려 역사만 바로 정립되면 동북공정의 논리는 저절로 무너진다. 확실한 사료와 유물을 가지고 이야기를 하면 부정할 수 없다. 늦었지만 지금부터라도 올바른 역사관을 정립하고, 우리가 나아가야 할 역사 교육의 방향을 함께 고민해보아야 할 때다.
고조선과 홍산(紅山) 및 하가점 하층(夏家店下層) 문화(文化)와 연관성
기원전 4,500년경 홍산문화는 황하문명과 별개인 동이족의 선진 문명으로 ①여신을 모신 사당 ②원형 제단(祭壇) ③적석총(積石塚)이 특징이다. 요녕성 조양시 건평(建平)과 능원(凌源) 지역에서 발견된 우하량(牛河梁) 유적은 홍산문화 만기(晩期, 기원전 3,500∼3,000년)에 해당되는데, 거대한 제단, 여신묘(女神廟), 적석총(積石塚) 등이 출토되었다. .
또한 BC 2,200년~ BC 1,600년경 하가점 하층문화(夏家店下層文化)는 전기 청동기시대에 해당되는데, 조양(朝陽), 능원(陵源), 객좌(客左), 건평(建平) 등과 내몽고와 요녕성 접경지역인 적봉(赤峰) 삼좌점(三座店)과 성자산(城子山)에서 엄청난 규모의 석성과 돌무덤 떼, 제단, 주거지 등 출토되었다.
하가점 상층문화(夏家店上層文化, BC. 1,000년~ BC. 600년경)는 후기 청동기시대에 해당되며, 대표적인 유물인 비파형 동검이 석관묘 안에서 출토되어 동이족의 대표적인 유물임을 입증하고 있다. 이들 홍산문화의 유물 중 특히 여신묘에서 곰의 턱뼈와 진흙으로 만든 곰의 발도 함께 출토되어, 홍산(紅山) 사람들이 여신과 함께 곰을 숭배하는 부족이었다는 확실한 증거로 단군 신화를 떠올릴 수밖에 없다.
이에 당황한 중국은 1980년대부터 통일적(統一的) 다민족국가론(多民族國家論)을 들고나와 중국 국경 안에 있는 모든 소수 민족과 역사는 고대부터 중화민족의 일원이고 중국사라고 주장하면서, 고조선과 후예인 부여, 고구려, 발해 등 모든 우리 고대국가를 중국 역사로 편입시키고, 동북 지역의 모든 고대 민족인 숙신, 동호, 선비 등을 황제의 후예로 보고 중화민족의 일부로 만들려고 고군분투하고 있다.
그런데, 앞서 설명했듯 기원전 2천 년경 무렵부터 홍산(紅山)문화는 하가점 하층문화(夏家店下層文化)로 이어지는데, 기원전 2천 년경 요하 유역에 존재할 수 있는 국가는 사서를 아무리 뒤져봐도 고조선 외에는 없다.
사서(史書)로 보는 고조선
사료1 『산해경』 해내경: 동해의 안쪽과 북해의 모퉁이에 나라가 있는데 조선이라 한다. 조선은 천독이다. 그 사람들은 물가에 살고 사람을 존중하며 사랑한다(東海之內 北海之隅 有國名曰朝鮮天毒 其人水居 偎人愛之).
사료2 『산해경』 해내북경: 조선은 열양(列陽) 동쪽에 있다. 바다 북쪽, 산의 남쪽에 있으며, 열양은 연나라에 속한다(朝鮮在列陽東 海北山南 列陽屬燕).
사료3 『사기색은(史記索隱)』: 조선에는 습수(濕水), 열수(洌水), 산수(汕水) 세 강이 합해져 열수(列水)가 된다. 아마도 낙랑이니 조선이니 하는 것은 여기에서 이름을 취한 듯하다.
유적과 유물로 입증되는 고조선 건국은 청동기 출현 시기인 기원전 20세기, 늦게 보아도 지석묘 출현 시기인 기원전 18세기에는 건국되었다고 보아야 한다.
먼저 가장 오래된 선진시대 사료인 『산해경』에서 고조선과 삼한은 하북성에 있다고 하였다. 『산해경』을 주해한 곽박은 조선은 지금 낙랑군이며, 열양은 대방이고 연나라 땅이므로, 중국 동해 안쪽 (곧 현재 하북성, 산동성, 강소성, 절강성 등)과 북해인 발해의 모퉁이인 하북성 곧 하북성 동북쪽에 있었다는 뜻이다.
『삼국유사』는 (『고기』를 인용하여) 단군왕검이 평양에 조선을 건국하여 1,500년을 다스렸고, (아사달은 빛나는 아침의 땅이란 뜻) 평양, 백악산 아사달, 장당경(臧唐京) 순으로 도읍지를 옮겼다고 기록하고 있으며, 조선 중기 허목의 『미수기언(眉叟記言)』에는 조선은 유주(幽州)에 있었다 하였는데, 유주는 중국 하북성 보정시와 북경시 지역을 말한다.
또 『시경(詩經)』 한혁편(韓奕篇)과 『제왕운기』에도 고조선은, 많은 부락 연맹체의 우두머리를 거수(渠帥)로 삼아 자기 봉지를 다스리도록 하는 거수국(渠帥國)을 거느린 고대국가라 하였다.
각종 문헌에 나오는 거수국들은 부여(夫餘), 고죽(孤 竹), 고구려(高句麗), 예(濊), 맥, 추(追), 진번(眞番), 낙랑(樂浪), 임둔(臨 屯), 현도(玄兔), 숙신(肅愼), 청구(靑丘), 양이(良夷), 발(發), 유(兪), 옥저 (沃沮), 진(辰), 비류(沸流), 행인(荇人), 개마(蓋馬), 구다(句茶), 조나(藻 那), 주나(侏那), 한(韓) 등이 있으며, 부여와 고구려도 단군조선을 구성하고 있던 거수국으로 출발하여, 단군조선이 중앙통치력을 잃게 되자 독립한 나라였다.
고조선의 강역
1) 도장으로 추정하는 고조선 영역
내몽골 나만기(柰曼旗) 유적에서 발견된 옥인장(玉印章) 등 홍산문화에서 발견된 옥인장(玉印章) 연대는 기원전 6,500년 전에서 5,000년 전으로 은나라에서 발견된 도장보다 적어도 2,000년 이상을 상회한다. 이는 황하문명으로 전파되었다.
2) 비파형 동검으로 추정하는 고조선 영역
『삼국유사』에서 환인(桓因)이 환웅(桓雄)에게 천부인(天符印)을 주듯, 천부인은 청동검, 청동거울, 청동방울을 말한다. 고조선의 대표적인 유물인 비파형 동검은 내몽골과 만주지역 및 한반도까지 두루 발견되었으며 특히 하북성 승덕시 칠로도산과 내몽골 적봉시 노로아호산 부근에서 많이 출토되었다.
3) 탁자형 고인돌로 고조선 영역 추정
고인돌을 지석묘(支石墓)로 부르는데 고조선의 세력범위를 나타내는 중요한 표지 역할을 한다. 비파형 동검과 마찬가지로 지석묘(支石墓)도 요녕성, 길림성, 흑룡강성, 산동성, 절강성 및 한반도 전역에 분포되어 있지만 중원에서는 발견되지 않고 있다.
4) 명도전으로 추정하는 고조선 강역
북경과 하북성, 요동 지역, 한반도 서북부에서 출토되는 명도전은 고조선 강역과 대부분 일치한다. 이를 기존 사학계에서는 기원전 3세기 초에 연나라가 동쪽으로 세력을 확장하고 고조선과 교역했던 증거로 보지만, 당시는 연나라 말기로 국력이 쇠퇴했던 시기이고, 연나라가 화폐를 사용했다는 어떤 사서 기록도 없다. 또 고조선 팔조법금(八條法禁)을 보면, 고조선이 화폐를 사용했음을 명백히 알 수 있는데, 명도전은 비파형 동검, 세형동검, 고인돌 등 고조선의 대표적인 지표 유물과 출토 지역이 같다.
더 결정적인 것은 명도전이 연나라 실제 강역으로 추정되는 지역에서 미미한 수준으로 출토된다는 점이다. 이로 보면, 명도전이 가장 많이 발견된 북경과 하북성 북부는 고조선 핵심 강역이었다고 보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