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코, 페미니즘, 성범죄 (반구금주의적 분석)
클로이 테일러 | 부산대학교출판문화원
22,310원 | 20250221 | 9788973168224
두 도시 이야기
2017년, ‘같은 범죄 다른 결말’의 책 두 권이 국내에 번역 출간되었다. 하나는 미국 몬태나주 미줄라에서 발생한 일련의 성폭행 사건을 둘러싸고 벌어진 일들의 기록이고(존 크라카우어/전미영 옮김, 『미줄라: 몬태나 대학교 성폭생 사건과 사법 시스템에 관한 르포르타주』, 2017), 다른 하나는 강간 가해자와 피해자가 남아프리카 공화국 케이프타운에서 일주일간 나눈 대화의 기록이다(토르디스 엘바·톰 스트레인저/권가비 옮김, 『용서의 나라: 성폭력 생존자와 가해자가 함께 써내려간 기적의 대화』, 2017).
인구는 7만에 불과하나 미국 북서부 몬태나주에서 두 번째로 큰 도시인 미줄라(Missoula)는 “인정이 넘치고 풍경이 아름다운 곳”으로, 영화 ≪흐르는 강물처럼(1993, 미국)≫의 배경이 바로 여기 미줄라와 인근의 빅블랙풋강이다. 20세기 후반까지 번성했던 임업이 쇠퇴한 이후 미줄라 지역 경제의 “고용 창출 원천은 몬태나대학교”다. 아름다운 자연풍광은 미줄라 시민의 자랑거리지만, 몬태나대학교 미식축구팀 ‘그리즐리스’야말로 그들에게 진정한 “자부심의 원천”이다. 존 크라카우어의 책은 부제가 말해주듯이 이런 몬태나대학교 미식축구부 선수들을 비롯한 학생들이 저지른 “성폭행 사건과 사법 시스템에 관한 르포르타주”다. 성폭행 피해자들이 신고조차 주저하게 되는 상황, 그리고 수사기관과 대학 당국에 사건을 신고하더라도 그럼으로써 (악의적인 헛소문, 가해자 가족·친구·팬들이 가하는 부당한 비난, 피해자와 피해자 가족의 의사에 큰 관심을 기울이지 않고 성폭행에 관해 편견을 가진 수사기관 담당자들, 사건처리에 부주의한 대학 당국, 법정에서 이루어지는 검찰 측과 피고인 측의 공방 등으로부터) 겪게 되는 고통, 불안, 좌절을 기술한다. 폭력 행위로 초래된 상처 외에 사법 절차에서 겪게 되는 성폭행 생존자의 고통과 좌절은 가해자에 대해 어떤 결론(출교 처분, ‘증거불충분’을 이유로 하는 불기소처분, 재판을 통한 유·무죄 판결)이 나는지와는 무관하게 사법 시스템에 발을 들여놓으면 모두가 겪게 될 수밖에 없는 것임을 여러 실례로 보여준다.
아파르트헤이트의 상처를 딛고 ‘진실과 화해’로 사회통합을 이룬 남아프리카 공화국이지만 성범죄 발생률은 통계상 다른 어느 나라보다도 높아서 남서쪽 해안에 자리한 아름다운 도시 케이프타운(Cape Town)은 “그 별명이 부당하든 아니든 간에 레이프타운(Rape Town)”으로 불린다. 두 번째 책의 저자 중 한 사람인 토르디스 엘바는 1996년 첫사랑으로부터 강간을 당했다. 나머지 저자 톰 스트레인저가 바로 사건의 가해자다. 이들은 2005년 토르디스가 불안정한 심리상태에서 “카페에 앉아 끼적인 글”을 시작으로 8년간 약 300통의 서신을 주고받았다. 2013년, 그들은 ‘그날의 일’을 ‘끝맺음’하고자 각자 아이슬란드 레이캬비크와 오스트레일리아 시드니에서 “세계 제일의 강간 도시”로 향했다. 이렇게 해서 케이프타운에서 이루어진 일주일간의 대화는 “살얼음판 위를 걸어가는 한 걸음 한 걸음”이었지만, 부제가 말해주듯이 “기적의 대화”였고, 이들은 결국 서로에 대한 이해, 진정한 용서와 화해에 이른다.
범죄를 저지른 행위자는 적법한 절차를 통해 밝혀진 진실(과연 이것이 진실일지는 논외로 하고)에 따른 죄책에 비례하는 형벌을 받아야 하며, 이를 통해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다시 자리매김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진다는 것이 형사법의 이념이자 구조인데, 위 이야기는 이런 형사사법제도에 의문을 품게 한다. 토르디스와 톰이 보여준 ‘기적 같은’ 결말이 형사사법제도 내에서였다면 가능했을까? 두 책이 보여준 ‘같은 범죄에 대한 다른 접근과 결말’은 성범죄에 대해 우리는 어떤 관점을 가지고 접근하는 것이 타당하며, 어떤 결말을 바라는지, 이를 위해서 형사사법제도는 어떠해야 할지를 고민하게 한다.
여기에 우리말로 옮긴 클로이 테일러의 책은 이러한 물음에 답하려는 훌륭한 시도라고 할 수 있다. “명료하고 설득력 있으며 우아한 산문체(Borg)”로 쓰인 이 책은 “범죄, 형벌, 정의에 관한 논의와 연구에 꼭 필요한 자료(Repo)”, “성폭력·페미니즘 문제와 관련하여 푸코를 연구하는 사회학자라면 누구나 반드시 읽어야 할 책(Neall)”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감옥에 대한 다른 관점과 과제
푸코는 ‘감옥의 대안’이라는 주제로 캐나다 몬트리올대학교에서 강연해달라는 요청을 받았을 때 두 가지 이유로 당황스러웠다고 한다. 첫째, 감옥의 대안이라는 말을 들으면 “마치 일곱 살짜리 아이로 돌아가서 ‘이제 벌을 받아야 하는데 둘 중에 어떤 벌을 받을지 직접 고를 수 있게 해줄게. 채찍으로 맞을래, 아니면 간식을 안 먹을래?’라는 질문을 듣는 기분”이기 때문이고, 둘째, “감옥의 실패를 기리는 주간에 이 주제로 강연”해야 한다는 점 때문이었다는 것이다(미셸 푸코/이진희 옮김, 『감옥의 대안』, 2023). 감옥의 대안으로 제안된 새로운 구금 시설이라 할지라도 그것이 실제로 하는 기능은 “감옥 고유의 기능”일 뿐이며, “범법자를 만들어 내는 공장이 더는 필요치 않게” 되었다는 점에서 감옥이 쇠퇴하고는 있지만 감옥과 범법자가 맡았던 역할을 대체할 더 효과적이고 치밀한 통제 방식은 오히려 확산하고 있다는 점에서 감옥은 전혀 실패하지 않았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위 제안이 당황스러웠다는 의미이다. 푸코는 “감옥이 완벽하게 성공”했다고 보며, “실로 감옥의 대안이 없기 때문”에 어떠한 제안도 하지 않았다. 그러나 테일러는 푸코의 이러한 통찰에 기본적으로 동의하면서도 감옥의 대안에 관한 논의를 계속 개진할 가치가 있다고 보았으며, 그 여정에서 잠시 머물게 된 선착장이 감옥은 성범죄의 대응책이 될 수 없고 폐지의 대상이라는 것이다.
이른바 ‘폐지주의’는 이미 “사회학에서는 화석으로만 존재가 확인되는 공룡과 같으며, 이제 더는 오늘의 주요 뉴스가 아니라는 평가”를 받기도 한다(Greco, Feuerbachs Straftheorie, 2009). 형벌을 정당화하기 위해 지난 200년간 수많은 학자가 쏟은 노력의 결과물을 무시할 수는 없지만, 그럼에도 형벌(이론)에 대한 비판이 여전히 존재한다는 점은 부정할 수 없다. 이뿐만 아니라 폐지주의에 대한 위와 같은 평가와 달리 “독일 이외의 서구에서는 형사법학자들 사이에서도 확고한 기반을 확보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Greco).
폐지주의에 대해 “우리가 알고 있는 형벌을 정당하지 않다고 주장하면서 우리가 알지 못하는 형벌을 제시하는 형벌이론을 전제”(Greco)한다는 법학자의 ‘법학적 사고’와 범죄에 대한 형사사법제도의 대응이 반드시 형벌과 구금이어야만 하느냐는 철학자의 ‘철학적 사고’ 사이에는 넘을 수 없는 벽이 가로놓여 있는 듯하다. 일부 현실의 문제를 이유로 폐지를 주장하는 것이 타당한지, 폐지 이후의 대안이 무엇이며 그런 대안이 형벌일 수 있느냐는 규범적·논리적 측면의 비판은 폐지론자에게 언제나 제기되는 물음이다.
다만 종래의 형벌이론이 형벌의 정당화에 성공했느냐는 의문 또한 언제나 제기되는 물음이다. 앞서 말한 ‘범죄를 저지른 행위자는 적법한 절차를 통해 밝혀진 진실에 따른 죄책에 비례하는 형벌을 받아야 하며, 이를 통해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다시 자리매김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진다’는 형사법 이념이 정의롭고 확고한 듯하지만, 당장 우리나라를 예로 들면, 죄를 짓고도 감옥에 가는 비율은 “전체 범죄자의 0.2-0.3% 정도에 불과”하다. “상업주의에 기초한 대중매체의 선정적인 범죄 보도(특히 성범죄 보도)와 이에 따른 대중의 범죄자를 향한 분노와 불안 고조 및 범죄방지 대책을 요구하는 여론 형성, 그리고 대중의 인기에 영합하려는 정부와 정치권의 중형주의 대책 마련”이라는 우리의 형사정책 현실을 고려하면, 비록 테일러의 연구가 북미의 상황에서 북미의 논의를 바탕으로 수행된 것이기는 하지만, 감옥에 대한 비판이 감옥의 확대 논리로 귀결된다는 주장을 포함한 그녀의 논지를 우리의 사정에 비추어 성찰해 볼 필요성은 충분하다. 우리나라에서 그녀의 주장이 현재의 주류적 견해를 대변하고 있지 않다고는 하더라도 적어도 “발언력 있는 마이너리티”로서의 가치는 가진다. 아마도 진실은 폐지론자와 규범론자 사이에 가로놓여 있는 벽과 벽 사이 어디쯤인가에 있을 것이며, 양자의 벽을 허물어 새로운 세상을 여는 작업은 양쪽에서 계속되어야 할 것이다.
페미니스트-푸코주의자라는 단호한 자신의 이데올로기적 입장을 견지하고 있음에도 자기 견해를 “강요하거나 설교”하는 것이 아니라, “토론을 시작하여 다른 주장의 논리를 끝까지 따라가 보는”, 그리고 “궁극적으로 반대하거나 완전히 동의하지 않는 다양한 견해의 내부 논리를 존중심을 가지고” 살펴보는 테일러의 “사고방식과 글 쓰는 태도의 미덕”(Borg)은 성범죄에 대한 대응책으로서의 ‘감옥의 무용성’이라는 그녀의 주장을 더욱 설득력 있게 한다. 다만 결론에서 대안으로 다루는 예방적·재분배적·회복적·전환적 정의의 논의는 그 분량이나 밀도, 제시된 실제 사례에서 아쉬움을 남긴다. 그러나 이런 아쉬움은 아직 아무도 가보(려 하)지 않은 길을 가는 것이라는 점에서 이해할 수 있는 수준이며, 오히려 그녀를 비롯한 폐지론자의 추가적인 후속 연구를 기대하게 하는 요소로 작용한다.
푸코가 몬트리올대학교 강연에서 한 말(『감옥의 대안』)과 크리티컬 리지스턴스(Critical Resistance)의 설립자 루스 윌슨 길모어가 어느 인터뷰에서 한 말을 듣는 것으로 해제를 마친다.
“사회 속에서 위법행위가 기능하는 거대한 정치적, 경제적 맥락을 고려하지 않고서 형법과 처벌에 대해 문제를 제기한다면 이는 당연히 추상적인 질문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 새로운 사회를 꿈꾸지 않고서는 감옥을 개혁할 수 없습니다.”
“[감옥 폐지란] 대인관계에 관련된 피해, 경제적 궁핍, 사회적·건강상 취약성이 과거의 일이 되어버린 세상을 상상하는 방법입니다. 사람들이 서로에게 주먹을 들어서 해결하는 것이 아닌 세상을 꿈꾸는 방식이며, 도움을 받거나 자신의 생활을 보호받는 방법이 감옥에 가는 것뿐이라고 생각하지 않는 세상을 꿈꾸는 방식이죠. 그들은 우리가 모두 겪는 일상적 사회 무질서가 …… 범죄화와 처벌로 가장 잘 해결된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그래서 감옥 폐지는 사실 다른 질서의 세계를 상상하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