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은 못 갔는데 오늘은 가야겠다 (엑스 세대와 엑스 쓰는 세대가 함께 쓴 광장 연대기)
임은경 | 이매진
15,120원 | 20251221 | 9791155311608
“살려 달라는 말이
어떻게 순서를 지켜 나올 수 있습니까?”
계엄과 내란의 밤, 그 뒤 ‘벌써 1년’의 밤들
‘남태령 벼락’ 맞고 삶이 바뀐 광장의 청년들
따듯한 환대와 다정한 연대로 이어진 약한 것들
각자의 삶 속에서 ‘그 밤’을 이야기하는 우리들
‘그 밤’ 이후 - 각자의 삶 속에서 마주한 광장의 청년들 이야기
‘벌써 1년’이다. 12월 3일 비상계엄, 12월 21일 ‘남태령 대첩’, 1월 5일 한남동 ‘키세스 시위대’까지 이어진 지난겨울이 벌써 1년 전이다. 계엄과 내란의 나날을 통과하던 ‘그 밤’마다 광장을 밝힌 많은 사람 중에서 응원봉과 깃발을 든 청년들이 유독 눈에 띄었다. 광장의 청년들은 어디에서 왔고, 무엇이고, 어디로 가는가?
《그날은 못 갔는데 오늘은 가야겠다》는 광장의 청년들이 계엄과 내란의 ‘그 밤’을 지나 ‘벌써 1년’을 맞이하는 동안 살아온 시간을, ‘그날’을 맞이하기 전 각자의 삶을 이야기한 기록이다. ‘86세대’와 ‘엠지 세대’ 사이에 낀 ‘엑스 세대’ 저자 임은경이 ‘엑스 쓰는 세대’를 만나 청년들 목소리에 귀 기울인 광장의 연대기이기도 하다. ‘엑스 세대’의 가두와 ‘엑스 쓰는 세대’의 광장에는 여전히 ‘살려 달라는 말’을 외치는 청년들이 있다. 2025년 5월부터 10월까지 만난 여덟 청년은 각자 지나온 삶 속에서 그 밤을 이야기한다. 평범한 대학생이 ‘집회 덕후’가 되고, 여성 농민이 ‘벼락 활동가’가 되고, 지역에 고립될 뻔한 성소수자가 ‘말벌 시민’이 된 ‘그날’들을 들려준다. 청년 시절 기자로 일하며 가두에서 여러 죽음을 마주한 임은경은 광장의 청년들을 만나 자주 경탄하고, 깊이 공감하고, 넓게 성찰한다. 광장을 거치며 세상에 눈뜬 청년들은 노동자, 농민, 장애인, 성소수자 등 ‘약한 것들’을 찾아 확장된 ‘나들’이랑 연대하러 오늘도 집을 나선다.
“그렇구나. 알아 두겠다” - ‘약한 것들’을 잇는 따듯한 환대와 다정한 연대
응원봉과 깃발 부대가 광장을 가득 채우고 청년 여성과 성소수자가 전면에 등장한 변화를 상징하는 사건은 2024년 12월 21일 동짓날에 벌어진 ‘남태령 대첩’이다. 광장에 쏟아져 나온 응원봉과 깃발에 놀라고 기특해하던 기성세대는 이날을 기점으로 청년들을 이해하기 시작한다. 농민과 여성 청년, 성소수자 청년 등 가장 힘없는 약자끼리 서로 손잡고 도운 이날, 광장은 ‘약한 것들끼리 하는 연대’로 빛나는 우리들의 광장이 된다. 청년들이 광장을 ‘내 것’으로 여기게 되고, 탄핵 촉구 집회 참가자에게 무지개떡 1만 개가 전해지고, 서울퀴어문화축제에 농민들이 참가하고, 인구주택총조사에 ‘비혼 동거’ 항목이 추가된다.
광장의 청년들은 자기가 어디에서 온 사람이고, 무엇이고, 어디로 가는지를 잘 알고 있다. 남태령이라는 ‘불벼락’을 맞은 배 키우는 농부 후주는 늘 지기만 하던 농민들이 처음으로 승리한 광장이 ‘진정한 대화의 장’이자 ‘민주주의 학교’라고 말한다. ‘남태령 미니스커트’로 유명해진 채연은 ‘생카(생일 카페)’에 가듯 자연스럽게 남태령에서, 세종호텔 앞 고공 농성장에서, 거제 조선소에서, 무안공항에서 ‘외로운 싸움’을 하는 사람들을 만난다. ‘키세스단’ 앞에서 퀴어 퍼레이드에 농민들 트랙터가 오면 좋겠다고 당당히 말한 당근은 퀴어와 농민이라는 상상 못 한 조합이 실현돼 기쁘지만, 성소수자로서 괜찮은 노후를 누릴 수 있을지 벌써 걱정한다. ‘바쁜 말벌’ 예은은 오늘도 좌절할 시간이 없고, 성별 정정을 마친 학교 밖 트랜스젠더 활동가 샤샤는 일상과 사회운동의 경계를 허무는 정치를 상상하며 광장을 지킨다. ‘고졸 페미니스트 성소수자’ 승유는 청년 문제와 기후 의제를 중심으로 지역에서 더 넓고 많은 광장을 만들려 노력한다.
광장 이후 - 아직도 여전한 세상에 건네는 청년들의 광장 이야기
엑스를 통해 만나 말벌 시민으로 진화한 청년들이 털어놓는 후일담 속에서 우리 시대의 광장은 계속 넓어지고 있다. 후주는 농사를 잠시 접고 서울에 집을 구해 활동한다. 책 모임과 심포지엄, 아카이빙 작업 등 남태령을 기억하는 일에도 열심이다. 노동조합을 고리로 청년 문제를 고민하고 싶다던 승유는 창원에서 노조 상근자로 일한다. 예은은 물류센터 아르바이트를 하며 졸업을 준비하고, 만 24세가 돼 청소년 신분을 벗어난 샤샤는 차별금지법을 널리 알리는 활동을 벌인다. 지희는 청년 정치 세력화를 목표로 지방 선거에 출마하려 지역에서 신뢰를 쌓는 중이고, 순부는 무지개행동에서 열심히 일하고 있으며, 당근은 주요 광장마다 참여해 무지개 깃발을 휘날리고 있다. 살려 달라는 말에 한국 사회는 아직도 순서를 매기고 있지만, 청년들은 따듯한 환대와 다정한 연대에 기대어 삶을 건 도약을 감행할 광장의 연대기를 또다시 이어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