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어증 환자 (계영수 장편소설)
계영수 | 미다스북스
18,900원 | 20251113 | 9791173556029
“소통이 무너진 시대,
침묵은 가장 깊은 언어가 된다.”
“남편의 실종으로 시작된 파문,
그 속에서 마주한 두 가족의 진실.”
말하지 못하는 자와 듣지 않는 세상,
그 침묵 속에 감춰둔 사실이 서서히 깨어난다
『실어증 환자』는 두 가족의 이민 서사를 중심으로, 언어와 관계의 단절이 인간의 삶을 어떻게 변형시키는지를 묻는 장편소설이다. 이 작품에서 실어증은 단순히 의학적 증상이 아니다. 말을 잃어버린 개인과 듣지 않는 사회의 초상이며, 동시에 현대인의 정신적 무력함을 드러내는 은유다.
주인공 서진애는 화려했던 인생의 말년, 미국 말리부의 바닷가에서 남편의 실종을 맞는다. 그를 찾아 나서는 과정에서 드러난 가족의 비밀, 이민의 그림자, 그리고 각자의 상처는 독자를 추리의 세계로 이끈다. 진희와 재아, 두 세대의 여성 인물은 언어로는 이어지지 못하지만, 상실과 기억을 통해 서로의 내면으로 스며든다. 저자는 이들의 관계를 통해 ‘말하지 못하는 시대’의 윤리와 책임, 그리고 인간 존재의 존엄을 치밀하게 탐구한다.
『실어증 환자』의 서사는 단단하고 절제되어 있다. 민주화 운동의 미완 과제, 이민 사회의 균열, 자본의 탐욕, 세대 간 단절 등 현대사의 모순이 문장 깊숙이 녹아 있다. 특히 저자는 ‘언어는 사라져도, 진실은 끝내 살아남는다’는 믿음을 바탕으로, 말 대신 남겨지는 침묵의 울림을 날카롭게 포착한다.
“언어는 넘쳐나도, 진심은 더 이상 닿지 않는다.”
말을 이해하지만 표현하지 못하는 자,
말을 쏟아내지만 의미 없이 살아가는 자
『실어증 환자』는 이 두 부류의 인간이 공존하는 시대를 비춘 거울이다. 어쩌면 우리는 지금, 이 두 종류의 실어증 속을 함께 살아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소통의 부재 속에서 인간은 의미 있는 언어를 잃어버린 채, 자신의 내면조차 설명하지 못하는 파편화된 존재가 되었다.
오늘, 초현실적 탈진실의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역사적 사건의 후예들은 일상 속에서 필연적으로 모순을 마주한다. 그러나 우리는 그 모순을 ‘모순’으로 인식하지 못한 채, 익숙함과 속도에 매몰되어 살아간다. 만약 그 모순이, 감춰진 진실이 소통을 갈망하며 드러낸 얼굴이라면 우리는 그것을 외면하지 않고 마주할 수 있을까?
『실어증 환자』는 바로 그 질문에서 시작했다. 두 가족의 미국 이민 생활을 중심으로, 저자는 어떻게 인간이 만나고, 부딪히고, 해체되고, 결국 자신과 세계의 진실에 이르는지를 탐구한다. 이야기는 심리 추리의 형식을 빌려, ‘말할 수 없음’과 ‘듣지 않음’이 빚어내는 관계의 균열을 차분히 그려낸다. 결국 이 소설은 하나의 사건을 넘어, 언어와 인간, 그리고 진실에 대한 철저한 질문으로 나아간다.
병호는 모든 것을 기억하고 있었다고. 병호는 비록 실어증 환자일지언정, 결코 바보가 된 것은 아니고 그의 속에 있는 것을 밖으로 내보낼 수 있는 언어 표현능력만 없었을 뿐, 그가 속에 감추어두고 있었던 그의 의식, 이성 아니 그보다 더한 그의 의지는 그대로 살아 있다는 것을 다시금 확인하게 되었다.
- 본문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