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결하는 아프리카
김용현, 김정은, 송홍진, 심지영, 오정숙 | 아딘크라
15,300원 | 20251225 | 9791189453381
경희대학교 아프리카연구소는 2009년 개소 이후 한국에서 아프리카 연구의 범위를 넓히고, 학술 성과를 대중과 공유하기 위한 노력을 꾸준히 이어왔다. 일반 대중들이 보다 쉽고 재미있게 아프리카 문화의 역동성과 주체성을 발견할 수 있게끔 기획하게 된 것이 바로 ‘트랜스아프리카’ 총서이다.
‘트랜스’라는 말은 트랜스컬쳐, 트랜스내셔널, 트랜스휴먼 등과 같이 현대의 탈공간적, 탈시간적, 탈경계적 사회·인간·문화를 지칭하는 데 두루 쓰이고 있다. 트랜스 담론은 시공간을 초월하는 수평적 공시적 개념으로, 국가, 민족, 문화적 경계를 넘는 ‘초월’, 문화적 다양성과 혼종성을 포괄하는 ‘횡단’, 문화의 상호적 교류와 역동적 생성을 포착하는 ‘이행’, 새로운 문화를 생성하고 확산시키는 ‘변화’의 의미를 모두 담고 있는 폭넓은 개념이다. ‘트랜스아프리카’ 총서는 아프리카와 세계가 주고받는 역동적인 문화 횡단과 전용, 변화의 과정을 포착하고 싶다는 의도에서 기획되었다.
총서의 첫 번째 권인 『횡단하는 아프리카』는 문화의 이동과 교차를 통해 대륙과 지구를 횡단하는 아프리카의 역동성을 소개하며 첫 문을 열었다. 두 번째 권인 『뒤집어본 아프리카』는 서구 중심의 관점을 뒤집어보고 전복시키며 아프리카의 내재적인 시각으로 문화의 주체성을 조망해 보았다.
그리고 이제 출간되는 이 책은 총서를 구성하는 세 번째 권으로서, 아프리카를 사람의 이동, 언어의 흐름, 문화의 생성이라는 더 넓은 네트워크 안에서 조명하고자 한다. 아프리카는 오래전부터 사람, 언어, 문화가 끝없이 흐르며 서로를 연결해온 대륙이다. 이 책의 제목 ‘연결하는 아프리카’는 바로 그러한 역사적 운동성과 상호작용성을 담아낸다. ‘연결’이라는 표현은 단순히 무엇을 이어붙이는 행위가 아니라, 사람들의 이동이 언어를 바꾸고, 언어의 변화가 문화의 생산을 이끌고, 문화의 생명력이 다시 새로운 인간 관계망을 만들어내는 과정 전체를 가리킨다. 이 책의 부제인 ‘사람, 언어, 문화의 네트워크’는 이러한 순환과 교차, 혼종을 중심에 두고 아프리카를 바라보고자 하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한다.
이 책은 크게 문화, 문학, 외교라는 세 개의 장으로 구성된다. 각 장을 구성하는 글들은 서로 다른 분야에서 출발했지만, 아프리카가 세계와 관계 맺어온 방식이 곧 사람의 이동, 언어의 흔적, 문화의 재창조라는 네트워크의 작동 방식이라는 점에서 긴밀히 연결된다.
제1장에는 문화의 영역에서 아프리카를 조명하는 세 편의 글이 수록되었다.
심지영은 서양 예술에서 흑인 여성의 육체가 어떻게 재현되어 왔는지 묻는다. 오랫동안 수많은 작품 속에서 흑인 여성은 백인의 부를 과시하는 소유물, 이국적 장식물, 혹은 미개하지만 매혹적인 성적 존재로 나타났으며, 그 육체는 순수함과 타락, 원시성과 관능성이 중첩된 욕망의 대상으로 소비되었다. 이러한 서양 미술사의 식민주의적 시선에 맞서, 코트디부아르의 조아나 슈말리와 카메룬 출신의 앙젤 에툰디 에쌈바는 사진 작업을 통해 흑인 여성의 존엄성과 정체성을 재현하며 탈식민적 전략을 제시한다. 슈말리는 전통적 아름다움과 정체성의 문제를 탐구하는 반면, 에쌈바는 서양 예술의 전유와 패러디를 통해 식민주의 미학을 전복하고자 한다. 두 작가의 사진 작업은 역사적으로 ‘서발턴’으로 주변화되었던 흑인 여성들이 직접 목소리를 내고 자신을 드러내는 공간을 확장하며, 흑인 여성의 자기 재현이 예술적 ‘예외’가 아닌 예술사의 새로운 규범이 되는 길을 열고 있다.
윤유석은 미국 국적의 나이지리아계 패션 디자이너이자 콘텐츠 창작자인 왈레 오예지데를 사례로, 영미권 디아스포라 아프리카인이 창출하고 있는 아프리카인에 대한 새로운 서사와 이미지, 콘텐츠를 스토리텔링 관점에서 소개하고 있다. 오예지데와 같은 디아스포라 창작자들은 스스로를 아프리카계 세계시민을 뜻하는 ‘아프로폴리탄’으로 규정하며, 정전화 된 세계 문화와 아프리카인을 새롭게 연결하는 자기 인식 방식을 제시한다. 이를 통해 아프리카에 뿌리를 두고 세계 각지에서 살아가는 이들이 자신들의 경험을 기반으로 한 새로운 이야기와 이미지를 창작하며 아프리카인의 재현 방식을 주체적으로 재구성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차지연은 포스트 아파르트헤이트 시대 남아프리카공화국이 어떤 가치 위에서 새 국가를 세워왔는지를 이해하는 것이 오늘날의 남아공을 파악하는 중요한 열쇠가 됨을 강조한다. 이 글은 집권 정당인 아프리카민족회의(ANC)가 내세운 핵심 가치, 특히 자유라는 이념이 박물관이라는 공적 공간에서 어떻게 사회적으로 공유되고 재구성되는지를 살피고 있다. 필자는 2025년 3월 직접 방문한 케이프타운의 이지코 노예사 박물관과 요하네스버그의 아파르트헤이트 박물관을 중심으로, 인종주의와 아파르트헤이트의 역사를 다루는 전시가 어떤 방식으로 관람객에게 메시지를 전달하는지 추적한다. 두 박물관의 상설 전시와 특별전시는 텍스트 구성부터 공간 배치까지 다양한 전시 전략을 활용해, 관람객이 해방을 향한 투쟁의 서사를 생생하게 체험하도록 설계되어 있었다. 이러한 체험은 인종 차별의 어두운 과거와 그것을 극복한 현재의 의미를 다시 인식하게 하며, 관람을 마치고 전시장을 나서는 순간 관람객으로 하여금 바로 그곳에 자유의 가치가 있었음을 새삼 깨닫게 한다.
제2부에서는 프랑스어권 아프리카 문학과 관련된 다섯 편의 글에서, 디아스포라 여성, 휴머니즘, 시적 연금술, 신화, 탈식민주의 등과 같은 키워드를 통해 사람·언어·문화가 교차하는 핵심적 주제를 심층적으로 다루고 있다.
김용현은 〈검은 휴머니즘과 바스티유〉라는 글에서 코트디부아르 문학의 아버지 베르나르 다디에의 휴머니즘 사상을 깊이 있게 조명하고 있다. 다디에는 코트디부아르 독립 직전인 1959년 출간된 『파리의 흑인』을 통해, 프랑스와 아프리카의 새로운 관계 맺기를 모색한다. 조국의 근대화를 염원했던 그는 제국주의를 비판하면서도, 프랑스라는 국가를 고유한 역사적 맥락 위에서 객관적으로 응시하고자 했다. 파리를 여행하는 주인공 탕오에 베르탱의 시선은 이중적이다. 그는 인권과 자유를 쟁취해 낸 프랑스 민중의 역사에 감탄하면서도, 동시에 돈과 경쟁에 지배당하는 현대 프랑스인들의 삶을 목격한다. 다디에는 아프리카와 서구 중 어느 한쪽의 우위를 논하는 이분법을 거부한다. 대신 국경과 체제를 넘어 인간을 억압하는 모든 폭력과 탐욕에 저항한다. 인간에 대한 근원적 신뢰에 뿌리를 둔 그의 휴머니즘은, 결국 우리 모두가 행복을 갈망하는 대등한 존재임을 역설한다.
김정은은 치마만다 응고지 아디치에의 『아메리카나』라는 소설을 ‘아프로폴리타니즘(Afropolitanism)’의 정치적 가능성 속에서 새롭게 읽고 있다. 이 글은 사랑 이야기의 외피 속에 인종, 젠더, 국가 폭력, 감시 체제를 교차적으로 드러내는 작품이다. 주인공 이페멜루는 미국과 나이지리아를 오가며 경험하는 차별과 감시를 통해 국가 폭력이 일상에 스며드는 방식을 보여주며, 블로그 글쓰기를 저항의 실천으로 전환한다. 이러한 행위는 감시 사회 속에서 침묵을 거부하고, 말하기의 윤리를 복원하는 정치적 수행으로 읽힐 수 있다. 필자는 『아메리카나』가 권력과 폭력의 구조에 맞서 싸우는 글로벌 시대의 디아스포라 여성 주체를 통해 아프로폴리타니즘을 단순한 정체성 담론이 아닌 비판적 세계 인식의 윤리로 확장시키고 있다는 점에 주목한다.
송홍진의 글은 차드 출신 시인 니므롯의 2020년 아폴리네르 상 수상작인 『자연 빛에 대한 작은 예찬』에서 보여주는 시적 미학을 탐구한다. 니므롯은 아프리카와 유럽을 잇는 시적 예찬의 전통을 새롭게 이어나가며, 랭보와 보들레르를 자신만의 방식으로 재해석한다. 시인은 자연을 바라보는 또 다른 시각을 제시하며, 긴 망명 속에서 유년기의 아프리카 풍경과 유럽의 낯선 자연을 감각적으로 결합한다. 태양, 구름, 바람 등 자연은 시인에게 변화 속에서도 보편적 지평을 열어주는 요소들이며, 니므롯은 자연에 대한 관조를 통해 상처를 치유하고 시적 언어의 근원을 탐색한다. 결국 그는 자연의 빛이 지닌 창조적 힘을 믿으며, ‘뿌리뽑힌 자’가 아니라 ‘걷는 나무’로 자신을 긍정하게 된다. 이는 아프리카 시문학의 전통을 현대적 감성으로 확장하는 시도의 일환이다.
오정숙의 글은 그리스의 이오 신화와 이집트의 이시스 신화를 비교해 유럽 문명의 뿌리에 아프리카 문명이 깊이 자리하고 있음을 밝힌다. 두 신화 모두 사랑, 시련, 방랑, 모성이라는 유사한 구조를 지니며, 페니키아의 뷔블로스 도시와 암소의 상징성 등 놀라운 공통점을 공유한다. 이오 신화가 이집트와 연결되고, 이시스 신화가 그리스 문학과 비교되면서 고대 문명 간의 깊은 교류가 드러난다. 이 글은 고대 그리스 문명의 순수성을 강조하는 오랜 유럽 중심주의에 균열을 내며, 아프리카 문명의 선행성과 영향력을 복원하려는 학계의 노력도 폭넓게 소개한다. 이는 사람의 이동이 언어와 신화, 종교적 상징을 어떻게 전파했는지를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다.
최일성의 글은 이른바 ‘네그리튀드(Négritude)’ 운동의 아버지라 불리는 에메 세제르(Aimé Césaire)의 탈식민주의 비평을 재검토한다. 지금까지 제시된 탈식민주의 비평의 주요 성과 가운데 하나는 피식민 사회의 정치적 해방이 해당 사회의 경제, 사회, 문화 등의 해방을 담보하지 못하고, 따라서 맑스주의, 민족주의, 여성주의, 해체주의 등과 같은 서구중심적 해방담론이 비서구 사회에 직접적으로 적용될 수 없다는 사실을 밝혀낸 데 있다. 하지만 탈식민적 해방을 위한 비평가들의 노력은 여러 서구중심적인 전통들과 결별하지 못한 채, 혹은 그것들과 연대하면서 진행되어 온 것도 사실이다. 세제르의 탈식민주의 비평 역시 탈식민주의를 주창하거나 제안하는 ‘화자(話者)’의 정체성 측면에서, 그러한 이데올로기를 담아내거나 표출하는 ‘언어(言語)’의 측면에서 그리고 식민주의의 폐해를 고발함과 동시에 탈식민적 미래를 모색하기 위해 동원하였던 ‘대항담론(對抗談論)’의 측면에서 어떻게든 서구와의 연을 이어갔다. 이 글은 이러한 측면이 세제르의 탈식민주의 비평을 재평가하는 데 어떠한 함의를 갖는지를 이론적으로 점검한다.
제3부에서는 외교의 장에서 현대 한국과 아프리카의 관계를 중심으로 사람·정책·국제질서의 네트워크를 살펴본다.
조준화의 글은 한국의 대아프리카 관계가 냉전기 남북한 외교 경쟁 속에서 출발해, 2000년대 이후 개발협력과 경제협력을 중심으로 재구성되어 온 과정을 조명한다. 아프리카의 인구 급증, 핵심광물 자원의 전략적 중요성, 역내 경제통합의 진전은 한국 외교에 새로운 기회와 과제를 동시에 제공하고 있다. 1990년대의 정체기 이후 한국은 ODA 확대, 정상외교, 다자협력 채널 구축을 통해 아프리카와의 협력 기반을 공고히 해왔다. 국제적 차원에서는 미·중 경쟁, 공급망 재편, AU의 G20 가입 등이 아프리카의 위상을 높이며 한국의 전략적 관여 필요성을 강화하고 있다. 또한 북한의 핵·미사일 문제는 한국이 아프리카 국가들과의 정치·안보 연계를 재평가하도록 만드는 중요한 변수로 작용한다. 이러한 맥락 속에서 양 지역 간 협력은 상호 이익 기반의 파트너십으로 심화되고 있다. 과거 빈곤·분쟁의 이미지로 대표되던 아프리카는 이제 글로벌 사우스 시대의 핵심 파트너로 자리잡고 있으며, 2024년 한-아프리카 정상회의는 이러한 변화를 상징적으로 드러낸다. 한국은 AU와의 다자 외교를 강화함과 동시에 중점협력국 중심의 양자 외교를 추진하며 경제, 농업, 광물, 보건, 치안, 교육 등 다양한 영역에서 협력 기반을 확대하고 있다. 이 글은 아프리카 국가들이 단순한 원조의 대상이 아니라, 기후변화 협력, 보건동반자, 광물·에너지 파트너, 문화·교육 교류의 중요한 주체로 부상하고 있음을 강조한다.
『연결하는 아프리카』는 아프리카를 단일한 ‘대륙 이미지’로 보던 관습적 시각을 넘어, 사람·언어·문화가 교차하며 만들어내는 복합적 네트워크로 바라보게 한다. 아프리카는 언제나 외부와 단절된 고립된 공간이 아니라 세계와 교섭하며 문명을 만들어온 중심이었다. 이 책은 문화·문학·외교의 각 층위에서 공통적으로 다음과 같은 점을 보여준다.
첫째, 아프리카는 세계 문화의 수용자이면서 동시에 생산자이다.
둘째, 디아스포라와 초국가적 이동은 새로운 사유와 문학, 예술을 탄생시킨다.
셋째, 현대 국제정치 속에서 아프리카는 한국을 포함한 세계 여러 지역과 새로운 파트너십을 형성하고 있다.
앞으로 ‘트랜스아프리카’ 총서는 아프리카와 한국, 그리고 세계 시민의 삶을 연결하는 지적 네트워크로서 더욱 확장될 것이다. 사람의 이동, 언어의 흐름, 문화의 생성이라는 관점에서 아프리카를 바라보는 작업은 이제 시작일 뿐이다. 이 책이 그러한 여정에 함께하게 될 독자들에게 넓은 시야와 새로운 감각을 제공하기를, 그리고 세계와 연결되는 아프리카의 미래를 함께 그려나가는 출발점이 되기를 바란다.
2025년 12월,
경희대학교 아프리카연구소 소장 오정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