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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우난골"(으)로 62개의 도서가 검색 되었습니다.
9791192651415

링거나무 아래서

이영혜  | 여우난골
10,800원  | 20251022  | 9791192651415
벼랑 끝에서 피워낸 단단한 꽃잎들 시인수첩에서 이영혜 시인의 신작 시집 『링거나무 아래서』 (시인수첩 시인선 101)가 출간되었다. 저자는 총 4부로 구성된 이번 시집에서 죽음의 문턱을 넘나든 경험과 가족, 여행, 사회에 대한 성찰을 담아냈다. 시집의 표제작 「링거나무 아래서」는 저자가 췌장 낭종으로 응급 입원하여 생사의 갈림길에 섰던 경험에서 출발한다. “주렁주렁 오랏줄에 묶인 수형자들 / 생명줄이 포승줄 같다”는 구절은 링거줄에 매달린 환자의 모습을 통해 자유와 속박, 삶과 죽음의 경계를 예리하게 포착한다. 암 환자들이 대부분인 병동에서 보낸 열흘이 넘는 시간은 시인에게 삶의 유한성과 소중함을 깨닫게 한 전환점이었다. “오 척 육신에 종신으로 세 들어 살다가 / 불현듯 퇴거 명령 떨어지면/다 비워주고 홀홀 / 알 수 없는 먼 길 떠나야겠지”(「세입자」)라는 구절에서 보듯, 시인은 몸을 빌려 사는 존재로서의 인간을 성찰하며 겸허한 자세로 삶을 대한다. 이와 같이 시집 곳곳에는 가족에 대한 깊은 애정이 배어 있다. 십여 년 전 세상을 떠난 아버지의 삼선 슬리퍼는 여전히 “한 방향으로” 현관에 놓여 있고(「삼선 슬리퍼 한 쌍」), 치매에 걸린 어머니는 “점점 아이가 되어가”며 “우화등선을 꿈꾸고” 있다(「우화등선」). “점심은 먹었니?”를 반복하는 어머니의 밥걱정은 한국적 모성의 정수를 보여준다. “유구한 자식 밥걱정”(「밥걱정」)이라는 표현처럼, 시인은 이제 어머니의 어머니가 되어 약을 챙기고 반찬을 사 들고 간다. 멀리 유학 간 아들을 떠나보내는 아픔(「영종도」)과 성장하는 손녀를 바라보는 기쁨이 교차하며, 생과 소멸의 물지게를 양어깨에 지고 걷는 시인의 모습이 애틋하다. 이영혜 시인은 『링거나무 아래서』에 수록된 시 편들에서 개인의 내밀한 경험을 넘어 사회적 약자들에게도 시선을 돌린다. 탈북자 정착 교육기관인 하나원에서의 의료봉사 경험을 담은 연작시는 특히 인상적이다. "안녕하십네까?"라며 나팔꽃처럼 환하게 인사하는 탈북 여성들(「하나원 일지 1」), 손톱마다 희망의 꽃을 피운 네일아트(「하나원 일지 2」), 십여 년을 떠돌다 한국에 온 이의 “아래 송곳니 두 개만” 남은 입(「하나원 일지 3」)은 고통의 역사를 견뎌낸 이들의 삶을 증언한다. “더 높고 더 싼 집으로 / 숨 가쁜 등정을 시작”하는 노인(「달팽이 계단 정류소」), 요금소 박스 안에서 네일아트로 미소 짓는 손톱들(「네일아트」), 코로나 팬데믹의 공포(「바이러스 월드」), 가자지구의 비극(「누구를 위하여 불꽃은 터지나」) 등 시인은 우리 시대의 아픔을 외면하지 않는다. 몽골 고비사막을 세 차례 여행하며 얻은 깨달음도 시집의 중요한 축을 이룬다. “끝이 없다, 경계가 없다 / 길이 없다”는 사막에서 시인은 “가고자 하는 마음이 길이다”(「고비, 길」)라는 철학적 통찰에 도달한다. 길 없는 길을 달리며 마주한 모래바람, 은하수 가득한 밤하늘, 구름 그림자는 삶의 여정에 대한 은유가 된다. 시인의 치과의사로서의 경험은 시집 곳곳에 독특한 색채를 더한다. “도화살에 난분분 꽃잎으로 쉬이 붉게 물들었고”(「살살」), “위 어금니 신경 치료도 끝나고 / 마지막으로 크라운을 씌운 날”(「하나원 일지 2」), “송곳니 두 개만 달랑 남았다”(「하나원 일지 3」) 등 구강과 치아에 관한 구체적 이미지들은 시인만의 개성 있는 언어 세계를 구축한다. 『링거나무 아래서』는 4부 58편의 시와 산문 1편으로 구성되어 있다. 생로병사의 현장에서, 가족의 품에서, 사회의 그늘에, 광활한 자연 앞에서 시인이 발견한 삶의 의미들이 진솔하고 따뜻한 언어로 펼쳐진다. “맑은 정신 하나 / 바지랑대 끝에 새로 내건다”는 시인의 말처럼, 이 시집은 삶의 무게를 견디며 희망의 깃발을 올리는 한 시인의 용기 있는 기록이다.
9791192651392

꿈을 나눠 먹어요

고영숙  | 여우난골
10,800원  | 20250815  | 9791192651392
은유 뒤에 숨은 한 생은 순간의 이미지였다 고영숙 시인은 인간의 내면적 상처와 그 치유, 가족과 사회라는 거대한 맥락 속에서 개인이 겪는 고통과 연대, 그리고 꿈과 희망을 섬세하고 깊이 있게 탐구한다. 삶의 경계에서 마주하는 자신의 정체성을 시적으로 탐구하고, 현실과 이상 사이를 넘나드는 삶의 무게를 시어에 담아낸다. 소소한 일상과 가족 내 갈등, 사회적 약자의 고통 등을 연대와 치유의 의지를 담아 구체적인 이미지와 공감적 언어를 통해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산문 「은유 뒤에 숨은 한 생은 순간의 이미지였다」는 ‘여자’와 ‘남자’의 각기 다른 시선, 이들의 생애를 끌고 가는 슬픔, 세상의 무심함 속에서 만들어지는 연대와 따뜻한 약점 등을 이야기한다. ‘여자’와 ‘남자’, 그리고 그들이 살아가는 오늘의 ‘공산(空山)’ 풍경을 서사적으로 조직해 한 사람의 생애, 동시대인의 아픔과 온기를 담아냈다. 상실로 강행되는 치열한 현실이다. 고영숙 시인은 고통 앞에서 몇 번이나 신의 이름을 부르는 인간의 좌절을 지켜보며 부재중인 신을 소환한다. 가장 나약한 존재로 슬픔에 결박당한 흔적들, 감각에 의존하는 전생을 경유해 다시 현생으로 이동하는 무의식의 삶을 방관하는 신을 환기시킨다.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간병에 허덕이다 스스로 무너지는 사람들, 온힘을 다해 취업난을 헤쳐 나가는 푸른 청춘들, 유리 교실 속 지키지 못한 안타까운 교사의 죽음, 주민번호가 없이 그림자로 살아 온 아이들의 발자국도 보인다. 몇 번을 허물고 다시 지으며 언어의 모래성을 쌓는 감정노동자, 고영숙 시인은 거스를 수 없는 전생을 원초적 슬픔의 뿌리로 정의하며 연민의 시선으로 이들을 끌어당긴다. 절제된 슬픔은 강한 내면의 힘으로 타인의 눈물을 읽는 힘이 된다. 수많은 화자들의 흐트러진 눈물의 결정체와 아름다의 빛의 결정체는 동의어라고 그만의 기록으로 쓰여 지는 페이지는 절망의 한계와 희망의 가능성 앞에 선 절실한 이들에게 보내는 찬사이기도 하다.
9791192651330

지구를 돌리며 왔다 (이현정 시집)

이현정  | 여우난골
10,800원  | 20250219  | 9791192651330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김없이 뜨겁게” 2018년 《중앙신인문학상》, 2019년 《매일신문》신춘문예로 등단한 이현정 시인의 첫 시집, 『지구를 돌리며 왔다』가 시인수첩 시인선 93번으로 출간되었다. 이 시집은 무엇보다 그동안 반성하고 성찰해 온 생(生)에 대한 시인의 직관적 태도가 녹아 있으며 이를 정교하게 조절하며 우리의 평범한 일상어로 직조해내고 있다는 점에서 근래 보기 드문 성취를 이뤄내고 있다. “이 시집의 큰 방향성은 결국 ‘삶’입니다. 삶의 여정과 소멸, 사랑과 이별, 아픔과 위로 등의 주제가 상상과 현실 속의 대상과 만나 시로 태어났습니다”라며 인터뷰에서 고백한 것처럼 이 시집은 생활과 실존에 파묻힐 수 있는 삶의 본원적 그리움이다. 더욱이 시인이 늘 시선을 두는 곳은 우리가 ‘주류’가 아닌 ‘변두리’다. 소위 주류라 불리는 공간은 많은 사람들의 관심이 집중되고 심지어는 일거수일투족이 감시되고 있다는 점에서, 그 화려함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을 구속하는 경향이 있다. 요컨대, 자유를 만끽할 시간조차 타인들에 의해 제어되며 그리하여 주체로서의 ‘나’는 존재할 수 없는 곳이다. 하지만 ‘변두리’는 다르다. 소규모 공동체를 이룰 수 있고, 그 가운데 자신의 목소리를 또렷이 낼 수 있으며 내가 ‘나’를 만날 수 있는 곳이다. 이른바 ‘상상하기 좋은 곳’이라 시인이 명명한, 은밀한 다락방과 같은 ‘헤테로토피아’를 고집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그는 ‘모서리’에서 ‘죽도록 간절한’ 삶의 의지를 읽어내고, ‘오답’에도 빛을 찾아내며, 아무도 그 존재를 주목하지 않던 일본의 귀신 ‘가오나시’에서 맹렬한 사랑을 발견한다. 이러한 감각과 사유의 집중은 ‘혀의 돌기’가 ‘뿔’로 변하는 순간을 이끌어내기도 한다. 고요했던 순물질 비등점에 닿는 순간 최선의 방어이자 최후의 공격으로 뿔, 뿔, 뿔 들끓어 오르지 맹렬해진 심장의 서슬 차오르던 역한 기운 포화점을 넘는 찰나 한 모금 혼돈주로도 솟구치는 혀의 돌기 이맛전 짓이겨져도 치받아버리지 뿔 뿔 뿔 - 「뿔, 뿔, 뿔」 전문 ‘말’을 멈추는 이유는 많다. 상대방과의 부드러운 대화를 이끌고자 할 때, 상대방의 고압적인 말투나 태도 혹은 전혀 예기치 못했던 상황이 발생할 때 등이 그것이다. 물론 내가 스스로 말을 끊어버리는 경우도 비일비재다. 그러한 사태가 지속될수록 ‘나’의 내면에는 ‘나’를 수복할 반전을 준비하게 된다. ‘혀의 돌기’가 “짓이겨져도 / 치받아버리”는 ‘뿔’로 변신하는 것이다. 물론 ‘뿔’은 시인의 의지로서, 어떠한 난관이 닥쳐와도 밀고 나가겠다는 행위의 바탕이 된다. 이러한 ‘반전’은 이 시집의 대부분에서 발견되는바, “남아 있는 날 선 것은 치아밖에 없는 여인, / 집게 다리 하나 잘린 꽃게를 먹고 있다 / 모서리, 모서리끼리 입속에서 부딪혔다”(「뜨겁게 2」), “밤낮이 찌는 듯 / 한잠도 잘 수 없고 // 먼 산의 속울음조차 / 내 것인 양 메아리치던 // 그렇게 / 호흡도 타버릴 // 더운 밤이 다 있었다”(「열대야」), “어쩌면 냄비 받침이 될 / 시를 쓰고 모은다 / 누군가의 라면 냄비를 받치고 있다가 / 불현 듯 / 또 누군가에게 / 뜨겁게 읽힐 수 있다면”(「뜨겁게 5」)과 같은 문장으로 압축된다.
9791192651408

누가 나를 심었나 (김순옥 시집)

김순옥  | 여우난골
10,800원  | 20250915  | 9791192651408
김순옥의 시들은 자아를 하나의 고정된 실체로 보지 않고, 다양한 타자성으로 분열되고 재배치되는 형상으로 제시한다. 해체된 자아는 새로운 장소, 타인의 시선, 꿈, 환상 속에서 끊임없이 전이되고 다시 구성된다. 시인은 이러한 전이의 장치로 몽환, 꿈, 유년의 기억, 영화적 상상력 등을 활용한다. 해체된 자아가 사회적 규범 밖에서 재구성되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 재구성된 자아는 사회적 성공이나 이상에 도달한 자아가 아니라, 몰락의 자리에 존재할 수 있는 능력, 즉 새로운 생존의 형태로서의 자아일 것이다. 김순옥의 시에는 ‘역할놀이’가 빈번히 등장하여 자아란 본래의 존재가 아니라 주어진 역할을 수행하는 연기자에 가깝다는 것을 말하고자 한다. 이러한 역할놀이는 시집 전체의 미학적 전략이기도 하다. 자아는 고정된 ‘나’가 아니라 늘 타자의 역할을 대행하고, 또 다른 존재의 감각을 스며드는 매개체라는 것이다.
9791192651385

반짝이는 것들만 남은 11층

홍숙영  | 여우난골
10,800원  | 20250715  | 9791192651385
SF-시의 가능성 혹은 ‘디지털의 후예’ 2002년 현대시문학으로 등단한 홍숙영 시인이 마침내 언어의 본질로서 길어 올린 시집 『반짝이는 것들만 남은 11층』을 시인수첩시인선 98번으로 발간했다. 시와 소설, 글쓰기 등 장르와 영역을 구분하지 않고 다방면에 걸쳐 놀라운 작법의 가능성을 보여준 홍숙영 시인은 이 시집을 통해 세계를 직관하고 성찰한 시간을 시대의 화두를 넘나들며 정교하게 투사하고 있다는 점에서 시단에 충격파를 던지리라 예상된다. 특히 시집에 깃든 주제 의식은 한 편의 장엄한 유화-이미지와 같은데, ‘AI-시’의 등장으로 시의 본질적 질문이 더욱 첨예하게 부각되는 시점에서 언어와 세계, 시인과 존재에 대한 실존적 가능성까지 이 시집의 원근은 뛰어난 예지력을 발휘하고 있다. 시인의 직관이 첫 번째 포문을 연 시는 「이상한 번역시와 골똘한 착상」이다. 이 작품에서 그는 AI-시가 ‘엘리사 효과’ 곧 일종의 착란이라고 쓴다. “빛나는 언어가 별처럼 떠다니는 시인들의 채팅방, 한 시인이 아이디어를 냈습니다 각자 AI의 도움을 받아 시 경연대회를 열자는 것이었어요 그러니까 똑똑한 프로그램을 고른다면 위대한 시인으로 인정받는 거죠 사실 AI가 똑똑한 건 아닙니다 사람들은 엘리사 효과에 속고 있어요.” 그리고 화자를 통해 AI-시를 일종의 ‘이상한 번역시’라고 호명한다. 따지고 보면 맞는 말이다. AI는 ‘시를 쓴다’라는 자기 각성 없이 문장을 만들어 내는바, 다만 기존의 문장들을 학습해 그 배치를 바꿨을 뿐이다. 여기에는 일상이 예술로, 평범함이 숭고함으로 바뀌는 마법은 없다. 그리고 이에 대한 혜안을 제시한다. 그는 영국의 포크 가수로 추앙받는 〈닉 드레이크〉를 소환해서는 예술로서의 시의 본질을 각인한다. 시인은 망설임 없이 노래한다. “조바심은 어디에나 존재합니다 성공이나 사랑, 혹은 면접을 치른 어두운 기다림 속에도 / 하지만 날것의 예술은 느림이 힘이죠 어떠한 모델도 필요 없어요 나는 그 자체로 특별하니까요 따라 할 이유도 없답니다 / 요절한 천재 닉 드레이크는 분홍 달빛에 희망을 걸었다고 합니다 아무도 그의 노래에 관심을 갖지는 않았죠”(「요절한 천재 닉 드레이크는 분홍 달빛에 희망을 걸었다고 합니다」). 닉 드레이크의 ‘분홍 달빛’이란 어쩌면 일상과 예술, 평범함과 숭고함의 관계가 만들어내는 마법이다. 아울러 홍숙영 시인의 작품이 무척 다채롭다는 것도 주목할 부분이다. SF-시라 명명해도 손색이 없을 만큼 디지털화된 사회의 거의 모든 면모를 가늠하고 측정하며 작품에 투사한다. 「기억의 숲」을 보자. 특이하게도 시인은 ‘숲’을 실체화하지 않는다. 단지 전쟁과 역병이 창궐했던 행성의 어느 한 지역이라는 것만 넌지시 암시하고 있다. 숲에서 어떠한 의식이 집행되고 또한 무슨 이유로 화살을 쏴야 하는지 밝히지도 않는다. 기존의 시들이 완벽한 자기-세계 속에서 언어를 산출하고 있었다면, 그는 확정되지 않은 세계 위에 집을 짓는다. 이미 숲은, 생성되는 회로가 아니라, 만들어-진-세계다. 다시 말하자면 디지털-화된 세계라 해도 놀랍지 않다. 그런 숲에 사람이 모여 있고 이 사람들은 아이러니하게도 ‘리멤버’라는 주문을 외우고 있다. 숲에는 사이프러스가 고혹의 열매를 매달고 있었다 소란스러운 바깥세상에서 살기 위해 사람들은 술잔을 높이 들고 ‘리멤버’를 외쳤다 그 순간 아이러니하게도 모든 것은 잊혔고 웃음이 찾아왔다 말하자면 그것은 망각의 주문이었다 -「기억의 숲」 부분 「네고 불가」는 데카르트가 선언했던 인간의 의미-나는 생각하므로 존재한다-를 ‘소비’에 맞춰 전환한다. 말하자면 이렇다. “나는 소비하므로 존재한다.” 우선 상품이 소비되기 위해서는 이름과 가격이 부여되어야 한다. 시인은 뭔가 그럴싸하게 융통되는 언어들의, 그 어리숙하고 불편한 한계를 그대로 풀어낸다. 그리고 이름을 더욱 고급스럽게 만들도록 가격을 매기고 “네고 불가”라는 독립선언서를 붙인다. 이것이 예의이며 도덕이고 정언의 명령이다. “서로의 마지막 예의는 건드리지 않기로 해요 /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 당신의 이름을 봉인해 두는 것 / 마치 처음인 듯, 다시 시작할 수 있도록”(「네고 불가」) 말이다. 당신의 이름은 네고 불가 39.9℃의 체온을 가졌습니다 화려한 여러 개의 배지를 단 우리는 2020 홀리데이 미러볼 디스코 텀블러를 사이에 두고 품질 좋은 과거를 거래합니다 -「네고 불가」 부분
9791192651361

AI 인류 (이인철 시집)

이인철  | 여우난골
10,800원  | 20250501  | 9791192651361
AI 인류, 존재는 누구의 것인가? 이인철 시인은 2003년 《심상》으로 등단하였고 현재 시인수첩+(주)여우난골 발행인으로 활동하고 있다. 첫 시집 『회색병동』이라는 시집으로 현대인의 이상심리를 적나라하게 묘파하여 문단에 신선한 충격을 준 이인철 시인이 『AI 인류』라는 첨단의 사유와 감성을 그려낸 시집을 냈다. 현대사회의 가장 큰 화두가 된 인공지능을 다루고 있어 또다시 문단에 큰 충격파를 던져주리라 예상된다. 이인철의 시집 『AI 인류』는 인공지능의 부상으로 인간 존재의 경계가 흐려지는 시대에, 기술과 인간의 미래를 깊이 성찰하는 문학적 실험이다. 이 시집은 AI 시대와 포스트휴먼 담론의 중심에서 과학적 상상력을 시적 언어로 풀어내며, 인간 중심 세계관이 해체되는 현실 속에서 새로운 인간상을 철학적으로 탐색한다. 시집은 ‘플랫폼’, ‘갈등’, ‘공생’, ‘계시록’이라는 4부 구성으로, 인공지능과 인간의 관계 변화를 서사적인 구도와 서정적 섬세한 감성으로 그린다. 1부에서는 인간 의식의 확장과 새로운 존재 가능성에 대한 상상이 펼쳐지고, 2부에서는 창조주와 피조물의 갈등이라는 고전적 테마를 통해 긴장과 충돌을 그린다. 3부에서는 공존과 화해의 가능성을 모색하며, 4부에서는 인간의 운명이 우주적 순환 속에 다시 자리 잡는 모습을 보여준다. 시인은 이러한 흐름 속에서 설교가 아닌 감각적 이미지와 서정적 언어로 철학적 질문을 던지며, 기술문명 속에서도 인간의 체온과 감정을 놓치지 않는다. 시집에 담긴 시들은 양자컴퓨터, 사이보그, 기후위기, 영혼 제조 같은 미래적 소재를 다루면서도, 인간 내면의 두려움과 욕망, 윤리의식 등을 섬세하게 포착한다. 이는 단순히 미래를 경계하거나 환영하는 것이 아닌, 인간과 기술 사이의 근본적 질문을 진지하게 마주하는 태도를 보여준다. 시인은 낙관도 비관도 아닌 열린 상상력을 통해 독자가 스스로 성찰할 수 있는 거울을 제시하며, 변화 속에서도 인간다움은 계속 진화할 것이라는 믿음을 전한다. 이인철의 시집 『AI 인류』는 기술과 인간의 경계를 묻는 동시에, 문학만이 줄 수 있는 상상력과 감정의 울림으로 독자에게 깊은 사유를 촉발하는 시적 예언이자 윤리적 성찰의 묵시록이다.
9791192651378

이별 뒤에 먼 곳이 생겼다 (하두자 시집)

하두자  | 여우난골
10,800원  | 20250620  | 9791192651378
하두자 시인은 1998년 문예지 『심상』 신인문학상을 통해 등단한 이후 꾸준히 작품 활동을 이어오고 있는 한국 현대시의 시인이다. 그의 작품세계는 일상의 소소한 장면 속에 깃든 미시적 감정과 존재의 잔잔한 울림을 투명하게 응시하는 특성을 지니고 있다. 삶의 일상적인 풍경을 마주하면서도 단순한 서정에 머물지 않고, 그 너머에 자리한 내면의 결핍과 관계의 심연을 조심스럽고도 세밀하게 포착하는 점이 그의 시의 특징이다. 하두자 시인은 『물수제비 뜨는 호수』, 『물의 집에 들다』, 『불안에게 들키다』 등의 시집을 발표하며 내면 지향적이고 고요한 시적 사유를 펼쳐왔다. 초기 시집에서는 존재론적 응시와 정적인 내면 세계가 중심을 이루었다면, 『불안에게 들키다』에서는 불안이라는 정서를 보다 직접적으로 드러내며 감정의 미세한 떨림을 언어로 포착해내는 능력을 보여주었다. 2020년에 출간된 시집 『프릴 원피스와 생쥐』에서는 이러한 그의 시세계가 한층 더 깊어진 모습을 보여준다. 이 시집에서 하두자 시인은 관계 속에서 발생하는 정서의 층위를 탐색하고, 결핍과 부재의 정서를 담담하면서도 날카롭게 드러낸다. 그의 언어는 과잉되지 않으면서도 감정의 결을 섬세하게 따라가며, 때로는 수학적 은유나 감각적 이미지를 통해 찰나의 심리적 동요를 드러내기도 한다. 황정산 평론가는 이 시집을 "결핍과 부재의 언어들"이라는 말로 평하며, 그가 펼쳐 보이는 관계와 존재의 심연에 주목한 바 있다. 이런 하두자 시인이 이번에 도서출판 〈여우난골〉에서 자신의 네 번째 시집 『이별 뒤에 먼 곳이 생겼다』를 냈다.
9791192651354

코드를 잡는 잠

이승예  | 여우난골
10,800원  | 20250421  | 9791192651354
2015년 《발견》으로 등단한 이승예 시인이 시집 『코드를 잡는 잠』이 시인수첩 시인선 95번으로 출간되었다. 이승예 시인은 (제5회), (제20회)를 수상한 바 있으며 신인으로서는 드물게 치밀한 언어 운용을 통해 중량감 있는 문장과 이미지를 생산한다는 문단의 평을 받고 있다.
9791192651323

타인과 마리오네트 사이

이은화  | 여우난골
10,800원  | 20250117  | 9791192651323
집시 여인의 14년 만의 외출 2010년 《詩로 여는 세상》 신인상으로 등단한 이은화 시인의 첫 시집, 『타인과 마리오네트 사이』가 시인수첩 시인선 92번으로 출간되었다. 삶의 거친 파랑(波浪)을 견디며 무려 14년의 묵언을 지켜온 끝에 터진, 시인의 섬세하고도 정갈한 문장들에는 무엇보다 ‘타인’에 대한 반성에서 출발하여 순백의 ‘나’에 이르기 위한 성찰이 오롯이 담겨 있다. 특히, 시인은 “우리의 삶이 자유의지로 살아가는 것 같지만 마리오네트처럼 타인의 시선에서 자유롭지 못한 관계에 대한 주제를 담았”다고 고백하는데, 그러나 그는 현대인들의 삶이 그 근원적 실존에만 머물지 않고 있음 또한 동시에 포착한다. 중력을 거부하던 ‘조르바’처럼 시인도 우리의 삶을 “생존을 위해 아웃사이더로 밀려나길 거부하는 춤과 노래로 치환”한다고 과감하게 선언하는 것이다. “되짚어 보면 모든 시간은 열려 있다”(시인의 말)는 문장에 선명히 각인된 놀라운 확장성은 절망은 항상 희망으로 구축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9791192651347

나비 증상 (함태숙 시집)

함태숙  | 여우난골
10,800원  | 20250325  | 9791192651347
2002년 《현대시》로 등단한 함태숙 시인이 시집, 『나비 증상』이 시인수첩 시인선 94번으로 출간되었다. 총 5부로 구성된 이번 시집은 등단 이후 문학을 철학, 심리학, 임상의학 등의 첨예한 사유들과 접목하면서 꾸준히 작품 활동을 펼쳐온 시인이 우리 시대의 쟁점으로 등장한 복제 인간의 실존과 그 초월을 중심으로 또 하나의 세계관을 축조했다는 점에서 그 무게감이 남다르다. 무엇보다 이러한 독특한 세계 인식이 가능한 것은 시인이 존재를 그 기원에 속박된 일종의 압화된 함의로 간주하지 않고 끊임없이 증식하고 확장하는, 형태 없음의 비(非)-존재로 열기 때문이다. 적어도 시인에게 존재란 사후적이다. 그래서 “책은 하나의 사건이다”(시인의 말)라는 과감한 도약과 선언을 통해 ‘예술’을 진리의 지평을 여는 중요한 열쇠라고 강조한다.
9791192651316

휴먼 히스토리아 (이상옥 장시집)

이상옥  | 여우난골
10,800원  | 20241201  | 9791192651316
인류의 역사에 대한 숭고한 알레고리를 위해 현재 우리 시단의 뜨거운 이슈인 ‘디카시’의 대부 이상옥 시인의 장시집 『휴먼 히스토리아』가 시인수첩 시인선 91번으로 출간되었다. 이번 시집의 주목할 특징은 기존에 보기 드문 ‘장시’의 형태를 노정하고 있다는 점이다. 시인은 인류의 기원에서부터 예수 탄생 직전까지의 BC의 역사적 흐름을 추적했으며, 이로써 작품들은 극적 모멘텀을 가질 수밖에 없다고 강조한다. 이른바 웅장한 서사적 흐름을 가진 시들의 향연이다. 게다가 시인은 여러 씨줄과 날줄로 얽힌 작품들은 특이하게도 ‘작은 탑’의 형상을 취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시의 구성을 탑처럼 뾰족하게 구성하여 시각적으로도 탁월한 형태시적 기법을 완성했다. “한 편 한 편 비죽비죽 솟은 언어의 축조물들은 그 자체로 개인이든 사회든 국가든 그것들의 욕망을 표상합니다. 작은 탑들을 표상하는 에피소드들이 씨줄과 날줄로 엮어서 하나의 파일, 하나의 텍스트로써 구축된 장시는 거대 담론으로 완결성을 지”(인터뷰 중에서)닌다는 것이다. 이를 증명하듯, 이상옥 시인은 첫 번째 작품을 우주의 탄생 곧 ‘빅뱅’에 집중시킨다. “무한한 밀도와 질량의 / 한 점으로 뭉쳐 / 백억 년 전의 대폭발 / 신의 손가락으로 튕겼을 법한 / 우주는 / 팽창과 수축을 반복하고”(「빅뱅 혹은」)라는 문장에 나타난바, 대폭발과 함께 시작한 우주는 ‘지구’라는 행성으로 응축되고, 마침내 인류는 그 유장한 역사 위에 선다.
9791192651286

어때요 이런 고요

조경선  | 여우난골
10,800원  | 20240808  | 9791192651286
뒤돌아보지 않을수록 아픈 그리움 2016년, 〈매일신문〉 신춘문예로 등단한 조경선 시인의 세 번째 시집 『어때요 이런 고요』가 시인수첩 시인선 88번째로 출간되었다. 우리에게 잘 알려진 것처럼, 시인은 나무로 향하고 나무로 기울어지며 또한 나무와 함께 삶을 나누는 ‘목수 시인’이다. “지금도 시를 쓰듯 나무를 앞에 놓고 대패질을 한다. 껍질을 벗겨내고 기둥을 골라낸다. 한나절의 무릎들이 쉼터에서 내뱉는 말은 모두 한결같다”는 시인의 말처럼, 그의 문장은 나무들의 싱그럽고 부드러운 살랑거림과 무척 닮아 있다. 목수로서의 그의 이력이 증명하는 바와 같이, 그의 시는 장인(匠人)의 섬세하고 정교하며 투박한 결을 내장하고 있다. 그러한 까닭에 그의 모국어는 ‘짓다’라는 동사의 파생어로서 우리에게 다가온다. 문학이 ‘상상하다’를 언어로 구현하고 있듯이, 조경선 시인에게 시는 한 채의 ‘집’을 짓는 과정으로서 충분히 대칭된다. 상당히 매혹적인 작품, 「손 타는 것이 좋다」는 이러한 사태를 압축해서 보여준다. “잊히는 목문(木門)에도 / 안부가 묻었는지 // 사람들 손 높이에 얼룩이 모여 있다 // 고택의 무거움일까 / 과거를 붙잡는 걸까 // 바람을 잡느라 / 햇살에 닳고 닳은 문 // 손때는 앞을 몰라 끝과 시작을 삭일 때 // 흔적은 끌 손잡이와 / 망치 자루 추궁한다 // 나도 모르게 붙잡는 / 오래된 나무 기둥 // 산 자와 죽은 자가 한 겹씩 옷을 벗는다 // 맨 처음 손을 탄 목문이 / 경첩을 슬쩍 당긴다(「손 타는 것이 좋다」). 때문에 대상과의 밀착과 소통을 위한 집중과 거리두기-이것이 우리가 시인에게서 느낄 수 있는 최초의 공감각이다. 그의 생활과 실존에 박혀 있는 대상을 바라보고 촉감하며 냄새 맡고 그 은밀한 울림을 듣는 태도는 시가 설계되고 지어지며 완성되는 모든 과정에 스며들어 있다는 것이다. 같은 맥락에서 시인은 “조심스러운 네 앞에서 / 매번 주춤거렸다 // 안쪽과 바깥쪽은 / 뒤꿈치가 우글거렸고 // 분명히 열려 있는데 닫혀 있는 이승처럼 // 돌고 도는 미래는 / 잡아 봐도 미끄러져 // 수많은 발자국이 / 쉴 새 없이 돋아났다 // 투명을 앞에 놓고서 쩔쩔매는 종종걸음 // 네 중심은 확고한데 / 나는 자꾸 튕겨 나가 // 발 빠른 아침이 / 우리를 잡아둘 때 // 다시는 되돌릴 수 없는 방식이 무서웠다”(「회전문」)라고 노래하는데, 집 짓는 일이 그러한 것처럼 시를 짓는 일도 마찬가지임을 우리에게 말하고 있다. 아울러 조경선 시인의 모국어는 드물게도 ‘구상’이라는 방법으로 직조되고 있다. 이것이 흔치 않은 것은, 우선 언어가 한 인간의 의식을 통할(統轄)하는 것처럼 보여도 종국에는 수면 아래 잠겨 천천히 유동하는 빙하의 생존 그대로 주체의 무의식이 ‘언어’를 밀어내기 때문이다. 요컨대, 시에서 문장이 생산되는 방식은 자동기술에 가깝다는 말이다. 그럼에도 조경선 시인은 이 ‘보이지 않는 손’을 자아의 등고선에 두고자 한다. 물론 이러한 시도는 그 성공 여부와 관계 없이 그에게 자주 보이는 2행-문장의 안정적 형식미의 근거로 작용한다. 이를테면, 숨구멍 손 뗄 때마다 쏟아내는 울음들 한 번 품은 생각은 물결 따라 퍼져나가 갇혔던 감정을 풀어 몸 낮춰 번집니다 - 「연적」 부분 대부분의 삽들은 걸려 있거나 세워진다 하루에도 몇 번씩 허리를 잡는 사이 내 속을 밀고 들어와 꽂혀 있는 아버지 - 「삽의 근거」 부분 와 같은 시들이 그 좋은 예다. 이들 시는 나무들이 집의 바탕이 되고, 그 살과 뼈로 고양되는 순간의 정형성을 띠고 있는데, 시인은 이를 변주하면서 나름대로 독특한 설계를 완성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 2행의 문장을 반복하다가 그 규칙을 위반하며 1행을 한 연으로 만들기도 한다. “돌아온 먼 길은 / 타면 탈수록 제자리 // 재가 된 몸이 뒤틀려 의자에 있는 나처럼 // 바닥에 떨어진 너는 / 고스란히 나를 닮았다”(「타면 탈수록」)이러한 형식은 묘하게도 시집 전체를 안정시키는 동시에 일종의 파격으로서 리듬을 돌출시킨다. 물론 이것이 가능한 이유는 대상에 대한 ‘집중’과 ‘거리두기’ 때문이다. 조경선 시집을 읽으면 알게 되겠지만, 그의 모국어가 향한 우리의 내면과 그 까마득한 무의식에 다가가게 된다. 그는 이러한 순간을, 한 채의 집이 완성되어 세계 속에 또 하나의 세계를 이뤄내는 과정에서 발견한다. “외딴집에 홀로 앉아 / 아궁이에 불을 넣는다 / 낯익은 발자국보다 먼 소리가 먼저 들려 / 일몰은 남아 있는데 / 고요만 타들어 간다”(「어때요 이런 고요」)라는, 생활과 실존의 가장 가깝고도 먼 ‘헤테로토피아’의 시간과 장소들이다, 요컨대 우리가 우리 삶에서 가장 환하게 밝혀지는 모국어의 별빛이다.
9791192651309

포화 속 딸기는 발사된다

김수형  | 여우난골
10,800원  | 20241106  | 9791192651309
'중앙신인문학상'과 '목포문학상' 본상 등을 수상한 김수형 시인의 시집 『포화 속 딸기는 발사된다』가 시인수첩 시인선 90번으로 출간되었다. 그의 이번 시집은 ‘목포’라는 거대한 상형에 집중하고 있는데, 특히 ‘목포 박물지’라 부를 수 있을 만큼 목포의 역사와 그 숨은 내력, 그리고 여기에 얽힌 다채로운 이야기들을 풀어냈다. 유년의 운동장이라 밝힌 목포의 수많은 ‘공간’들은 물론이고 목포가 가진 특별함과 장소성을 확장하고 강화했으며, 문명의 횡포와 전쟁으로 갈 곳 잃은 연약한 개체. 그들의 고통을 담박하게 바라보았다. 이를 증명하듯, 시인은 출판사와의 인터뷰에서 이번 시집의 주제의식을 “사회의 중심부에서 밀려나 벼랑 끝에 내몰린 약자들의 고통과 슬픔”으로 요약하고 있다. 여기서 약자들이란 목포 사람들을 중심으로 그들이 살아온 삶의 모든 터전을 지칭한다.
9791192651293

나무라 불러도 괜찮습니다

남상진  | 여우난골
10,800원  | 20241010  | 9791192651293
2014년 《애지》로 등단하여 시집으로 『현관문은 블랙홀이다』, 『철의 시대 이야기』를 발간한 남상진 시인이, 독자들을 호젓한 숲갈로 초대했다. 바로 『나무라 불러도괜찮습니다』라는, 특이한 제목의 시집을 통해서다. 시인은 인터뷰에서, "이미 숲이란 이름으로 지어진 한 채의 집 안에서 또 다른 어설픈 집을 짓고 있는 나의 시는 아둔하기 짝이 없다."며 수줍게 고백하는데 "살아가는 일이 미완의 집 한 채 짓다 돌아가는 일이라면 시는 그 집의 서까래거나 대문이거나 식탁 위에 나뒹구는 건강보조식품쯤 될까?"라는 겸손에서 출발한다.
9791192651279

캄캄한 바다를 자꾸 구두라고 불렀다 (홍성남 시집)

홍성남  | 여우난골
10,800원  | 20240521  | 9791192651279
일상어의 정교한 반전 혹은 ‘존재-함’의 깊이 2021년에 등단한 신예 홍성남 시인의 시집 『캄캄한 바다를 자꾸 구두라고 불렀다』가 시인수첩 시인선 87번째로 출간되었다. 이미 1996년 수필가로 등단, 빼어난 문장과 삶에 대한 진지한 성찰로 모국어에 향과 깊이를 더 한 시인은, 이번 시집에서도 우리가 보지 못했던 삶의 이면을 집중 조명하며 그 속에서 생(生)의 긍정을 이끌어내고 있다. 무엇보다 그 ‘긍정’은 존재-함의 놀라운 방식으로 터져나온다. 적어도 ‘존재’는 단순히 내가 이 땅에서 살아 있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생활과 실존 속에, 그리고 끊임없이 관계하는 ‘타자-들’과의 소통 속에 파고들어야 하는 적극적인 삶의 태도만이 ‘존재’의 긍정을 보증할 수 있기 때문이다. 홍성남 시를 읽으면 인간다운 온기와 은은함이 느껴지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시를 읽은 독자들도 한결같이 시인의 문장에 깃든 강한 생명력을 느끼는바, 그조차 시인의 시선에 맺힌 울음의 깊이 때문이다. 그는 자신의 경험을 시로 쓰면서 결코 어려운 문장을 쓰지 않는다. 그는 자신을 과장하지 않는다. 대범하게 사물을 바라보는 시선에는 결코 그것을 퍼즐처럼 분해하여 우리에게 던지는 예술가의 불편한 자의식도 없다. 그는 쉽게 쓴다. 일상의 언어를 벗어나지 않으며 우리가 늘 쉽게 접하는 단어와 친근한 목소리로 자신의 경험을 탁발한다. 아마도 수필가라는 오랜 경력에서 이끌어낸 분투의 흔적일 것이다. 이를테면, 시인은 “감자를 돌려 깎는다/ 지구본을 손안에 넣고 돌리는 것처럼// 지도를 펼치고 감자를 돌려본다// 감자의 중심을 자르면 생장점이/ 미지의 세계로 멀어지기 시작한다// 먼 바다의 풍경이/ 또 하나의 풍경에 얹혀서/ 하얀색이 된다// 아직은 미완성이죠// 감자는 어슷하게 썰고/ 양파는 채를 썬다/ 수프와 푸딩으로, 피자로, 부침으로/ 각각의 이름으로 생겨나는 것처럼// 우리는 다른 꿈을 꿀 수 있어 // 이리저리 굴러다니다 꿈을 움켜쥐던/ 쪼그라진 감자는/ 이국의 냄새를 품게 되고 // 아무렇게나 떠나보는 겁니다”(「밥은 안 먹지만 브런치는 먹습니다」)라는 문장은 친숙함을 넘어서서 마치 사진을 현상하듯 삶을 고스란히 옮겨온다. “한 손으로 서랍을 열어서는 안 돼요// 밤으로 뭉쳐진 해변이 길어지고 있고요/ 이불깃으로 수없이 끌어 덮은 밤이 있어요// 식물채집처럼 붙잡힌 흘림체의 날들/ 오래된 문장이 건조해져서 바닷물에 흘러가 버릴지 몰라요”(「서랍 속의 날씨」)라는 문장은 또 어떤가. 시인은 문장을 발표시키면서, 그 농익은 삶의 진리를 우리에게 펼치는 것이다. 이러한 시인의 태도는 놀랍게도 ‘존재-함’의 방식과 정교한 대칭을 이룬다. 요컨대, 시에 포착된 그 모든 장면들이 종국에는 ‘존재’라는 철학적 문제를 함의한다는 것이다. “벽은 서로를 꽉 깨물면서도/ 흩어지고 싶고/ 숨어 있기 좋은 방은 아늑해서 불안하다// 날마다 끼워도 어긋나는 조각들/ 더 치밀해져야 어둠이 생긴다”(「레고」), “벌써 물고기를 좋아해요/ 우리라고 하지 않으니까요/ 여기가 아닌 어디라도 라는 말은/ 너무 멀기도 하고, 너무 가깝기도 해서 울음이 섞여 있죠// 그런 저녁처럼/ 지느러미 속에는 유전자의 비밀이 숨어 있죠”(「베이비 박스」) 등의 문장에서 나타나듯, 시인은 일상어를 생활의 언어가 아니라 존재의 언어로 탈바꿈시킨다. 특히, “주목할 것은 홍성남 시인의 시에 나타나는 숱한 부재의 확인은 실제 없음이 아니라 없음의 인식을 통해 나의 있음을 발견하고 확인하려는 데에 있다는 것이다.”라는 이승희 시인의 통찰은, 시인이 얼마나 긴 시간을 자신의 내면에서 무작위로 들려오는 목소리를 갈고 다듬었는지를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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