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긴장을 기르는 것 같아
로버트 크릴리 | 민음사
14,400원 | 20251120 | 9788937477188
미국 최고 시집에 수여하는 ‘볼링겐상’ 수상 작가 로버트 크릴리 국내 최초 번역!
‘20세기의 에밀리 디킨슨’으로 불리는 미국 현대 시인 로버트 크릴리의 시선집 『나는 긴장을 기르는 것 같아』(세계시인선 18번)가 국내 처음 번역 출간되었다. 그의 시는 ‘블랙마운틴 투사시(Projective Verse)’파에서 시작했으나 점차 “떠들썩하게 큰 목소리와 분방한 시의 리듬이 주류를 이루던 시절에 일상의 언어로 간명한 형식을 추구”하며 독자적인 길을 걷게 된다. 이후 뉴욕주 계관시인(1989~1991년), ‘미국 예술 과학 협회’ 펠로(2003년)를 지냈으며, 윌리엄 칼로스 윌리엄스를 이어 20세기 후반 미국 시사에서 중요한 목소리로 자리매김한다.
영문학자이자 번역가인 정은귀 한국외대 교수는 뉴욕 버펄로대학교에서 로버트 크릴리 교수와 매주 미국 시문학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으며, 뒤늦게나마 “당신의 시를 읽으면 마음에 일던 먼지가 가라앉는 느낌이 듭니다.”라고 전한다. 이번 선집에는 미국 최고의 시집에 수여하는 ‘볼링겐상(Bollingen Prize)’을 수상한(1962년) 『사랑을 위하여(For Love)』, 『끌림(The Charm)』, 『단어들(Words)』, 『거울(Mirrors)』 등에서 정 교수가 직접 고른 일흔세 편이 실려 있으며 영어 원문이 함께 수록돼 있다.
나는 긴장을 기르는 것 같아
아무도 가지 않는
숲속의
꽃들처럼.
상처는 저마다 완벽하여,
눈에 띄지 않는 작은
꽃망울 속에 스스로를 가두고,
아픔을 만드네.
아픔은 저 꽃과도 같아,
이 꽃과도 같고,
저 꽃과도 같고,
이 꽃과도 같아.
-로버트 크릴리, 「그 꽃」, 『나는 긴장을 기르는 것 같아』에서
“형식은 내용의 확장일 뿐이다.” -로버트 크릴리
로버트 크릴리의 시는 “현실을 수동적으로 보여 주는 것이 아니라, 시가 현실을 새롭게 만드는 장면을 현재형으로 바라보게” 한다. 가족, 연인, 친구, 그 모든 관계가 애틋하고 다정한 것 같으면서도 지루하고 고통스러울 수 있다. 그리고 그러한 현실을 생생하게 느끼면서도 구체적으로 표현하려고 하면 말문이 막힌다. 그래서 그의 시는 “드러냄과 숨김을 반복하며 여러 무늬로 변주된다,”
놓아두라
어딘 가에 나는
당신을 사랑해를
이와
눈에, 그걸
깨물어라 하지만
다치지 않게
조심하면서, 당신은
원하네 너무
많이 너무
적게. 말들은
모든 것을 말한다.
나는
당신을 사랑해
다시,
그러면 대체 왜
공허한지. 채우
려고, 채우려 하기에.
나는 말들을 들었다
아픈 구멍
가득한
말들을. 발화는
입이다.
-로버트 크릴리, 「언어」, 『나는 긴장을 기르는 것 같아』에서
또한 그의 시에서 의미는 개별성과 보편성 사이에서 진동한다. 일상적인 소재를 간결하게 전달하여 어렵지 않아 보이지만, 사실 그 속에 삶의 수수께끼를 숨겨놓기라도 하듯 또 다른 의미 층이 내재해 있다. 그렇게 “일상의 언어로 간명한 형식을 추구한 크릴리는 평범한 사유를 비트는 어법으로 자신만의 시 세계를 열어간다. 귀를 기울여 듣게 만드는 그의 시는 확장하고 뻗어나가는 소리이기보다는 쉼표를 찍으며 멈추는 소리다. (……) 그에게 시는 이야기를 전하는 도구가 아니라 이야기의 일부를 경험하게 하는 과정이다.”
탐스러운 단어들이 있다
촉촉하고
따뜻한
살갖처럼.
만질 수 있어서, 그것들은
인간으로서 누리는,
안도와,
위안을 전한다.
그것들을 말하지 않으면
모든 욕망은
추상적으로 변하고
결국에는 죽어 버린다.
-로버트 크릴리, 「사랑」, 『나는 긴장을 기르는 것 같아』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