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사막 (이승하 시집)
이승하 | 더푸른출판사
10,800원 | 20230805 | 9791198173621
사막화된 인간 사회를 관통하는 휴머니즘적인 시선과 시심(詩心)
『사람 사막』은 이승하 시인의 열여섯 번째 신작 시집이다. 더푸른 출판사가 기획한 ‘테마시선’의 두 번째 시집으로서 시로 인간을 탐구한 특별한 작업을 했다. ‘인간’을 모티브로 하는 시를 쓴다는 것은 역사를 기록하는 것만큼이나 조심스러운 일이다. 그래서 이승하 시인은 시적 직관을 활용해 인간이라는 대상이 가진 본질을 예리하게 간파하려고 노력했다. 독서 환경에 따라 독자들이 삶의 본질과 인간의 본성을 다르게 느낄 수 있도록 묘사를 최대한 배제하고 시적 언술을 통해 인물이 가진 특징을 꿰뚫어 보듯 인물화를 그렸다.
1부 ‘시인들’에서 탐구한 인물은 시인들이다. 김영승, 김소월, 백석, 김수영, 천상병, 기형도, 나혜석, 이상, 임화, 서정주, 윤동주, 한하운, 박인환, 천상병, 박희진, 정진규, 윤후명, 박정만, 중국 당나라 때의 두보와 이하, 프랑스 상징파 시인 랭보와 보들레르와 베를렌 등 이름이 알려진 시인부터 개인적인 인연이 있는 시인까지 이승하의 관심 대상이 되는 순간 시인들은 상징적인 존재로 탈바꿈한다. 그들의 삶의 치열함과 이른 죽음의 비애를 시종 따뜻한 시선으로, 또 다양하게 포착한 후 그들의 특징을 형상화한다.
2부 ‘폭력’에서는 온갖 종류의 폭력 앞에 희생되었거나 폭력을 행사한 역사적 인물의 시간과 공간을 다룬다. 김대건 신부, 김덕령 장군, 이순신 장군, 화가 최북, 마르크스, 푸틴, 최익현, 명성황후, 고종, 순종, 박열, 안중근, 홍범도, 도스토예프스키, 가미카제 특공대원 박동훈, 탈레반에게 끌려가 처형된 배형규 목사, 연쇄 살인을 저지른 일본의 중학생, 총기 난사 사건을 일으킨 조승희와 스티븐 패덕 등이 등장하는데, 각종 폭력 상황을 예리한 시선으로 확인하고 고발한다.
3부 ‘비폭력’에서는 폭력을 뛰어넘는 사랑의 숭고함과 희생정신, 예술혼 등을 다룬다. 조만식의 아내 진선애, 무명용사, D.H. 로렌스, 인간문화재 장용수, 문학평론가 김윤식, 소설가 김승옥, 영화배우 이영호, 가수 김현식, 맹아학교 학생들, 이창동 감독, 소설가 송상옥, 시인의 가족 등이 등장하는데, 인간에 대한 이해와 관용에 기반한 시편이 모여 있다. 폭력과 광기의 나날을 다루었던 시인이 기실 사랑을 탐구하고 유토피아를 꿈꾸었던 박애주의자임을 알게 하는 시편이다.
시집을 다 읽게 되면 독자들은 시집 전체를 관통하는 것이 휴머니즘임을 느끼게 될 것이다. 인간에 대한 보편적 사랑인 휴머니즘은 인종ㆍ국적ㆍ종교의 차이를 초월하여 인류의 공존을 꾀하고 복지를 증진시키려는 사해동포사상이다. 물리적 폭력이나 정치적 억압 같은 한계상황에서도 시인은 그것을 뛰어넘는 ‘차별 없는 사랑’을 발견하고 시로 쓴다. 지금도 수많은 사람이 각종 폭력 앞에서 고통을 겪고 있기에 세상은 오아시스 없는 모래벌판인 ‘사람 사막’인 것이다. 그런 상황이 끝나지 않는 한 시인은 자신만의 시각으로 ‘사람 사막’에 비를 뿌리는 휴머니즘의 확산을 멈추지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