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자 잡편 (철인의 성장과 완성)
장자 | 전남대학교출판부
27,000원 | 20240228 | 9791193707234
이 책은 11편, 〈경상초〉 〈서무귀〉 〈칙양〉 〈외물〉 〈우언〉 〈양왕〉 〈설검〉 〈도척〉 〈어부〉 〈열어구〉 〈천하〉로 이루어져 있다. 이 중 7편은 외편과 마찬가지로 각 편의 첫 문구를 따와 편명으로 삼고 있다. 이와 달리 〈양왕〉 〈설검〉 〈도척〉 〈어부〉 4편은 내편처럼 별도의 제목을 내걸고 일관된 주제를 다루고 있어, 잡편 나머지 7편과 사뭇 다른 체제를 보여준다. 그뿐만 아니라, 내용이 다소 과격하고 문체가 직설적인 점은 《장자》 전체에서 매우 이질적이어서, 진위논란의 대상이 되어 왔다.
송나라 시기의 대문호인 소식(蘇軾)이 〈장자사당기(莊子祠堂記)〉에서 〈양왕〉 등 4편을 위작이라고 지적한 이래, 많은 학자가 이에 동조하고 있다. 예컨대 청나라 초기 문인인 선영宣穎은 자신의 저서 《장자남화경해(莊子南華經解)》에서 상기 4편을 한데 묶어 책 마지막에 배치하여, 사족으로 취급하고 있다. 또 저명 학자 나근택(羅根澤)(1900~1960)은 〈양왕〉과 〈어부〉는 서한(西漢) 초엽 은일파(隱逸派)의 작이고, 〈설검〉은 전국戰國 말엽 종횡가(縱橫家)의 작이며, 〈도척〉은 전국 말엽 도가의 작이라고 구체적으로 규정하고 있다(〈莊子外雜篇探源〉). 한 마디로 ‘위작’으로 단정하는 것이다. 현재 학계에서는 이러한 위작설이 거의 정설로 받아들여지고 있으나, 필자는 동의하지 않는다.
장자에 가장 중요한 주석을 달고 있는 성현영(成玄英)은 장자의 세 편(내편 외편 잡편)이 모두 장자의 저작이라고 전제한 다음, “내편은 이치의 근본을 밝히고, 외편은 일의 자취를 이야기하며, 잡편은 이치와 일을 섞어 밝히고 있다(內篇明於理本, 外篇語其事迹, 雜篇雜明於理事. 〈莊子序〉)”. 라고 하였다. 성현영은 당나라 시기의 문인이다. 또한 서한西漢의 사마천司馬遷도 《사기史記》 〈노자한비열전(老子韓非列傳)〉에서 장자의 저술을 소개하면서 〈어부〉 〈도척〉을 특정하여 거론하고 있다. 이렇듯 송나라 이전의 경우, 잡편의 진위를 문제 삼지 않았던 듯하다. 당나라의 성현영과 서한 시기의 사마천을 무시하고 송나라 소식의 주장을 굳이 믿어야 할 이유가 있을까?
〈양왕〉 등 4편은 분명 이질적이다. 그러나 그것의 다소 거친 내용과 직설적인 문체가 곧 위작의 증거가 될 수 없다고 필자는 판단한다. 우선 이질적인 요소에도 불구하고 전체적인 장자의 사유와 통하고 있으며(3에서 후술함), 또 장자 당시 ‘저술’은 오늘날 그것과 사뭇 다르기 때문이다. 바로 《장자》라는 책은 긴 시간과 다양한 공간에서 전개된 장자의 언행을 누군가가 ‘기술’한 것이다(졸저 《장자 외편》서문 참조). 분명 〈양왕〉 등 4편은 나머지 7편과 사뭇 다르지만, 이는 그것이 다른 시공간에서 나왔음을 의미할 뿐이지, 위작이라고 단정할 증거가 될 수 없다. 거친 내용과 직설적인 문체는 바로 젊은 패기의 산물이라고 필자는 상정하기 때문이다. 요컨대 가장 젊을 때의 언행이 기술되어 있다고 보는 것이다.
한편 나머지 7편은 전혀 다른 시기의 산물로 보인다. 〈서무귀〉 제5장 〈혜자, 그대가 없으니〉에서 이미 고인이 된 절친 혜자를 추억하고 있고, 〈열어구〉 제13장 〈장자의 장례〉에서 자신의 삶을 마무리하는 순간을 기록하고 있으므로, 대체로 만년의 작으로 보아도 무방하다. 다만 한 가지 의문이 남는다. 〈열어구〉와 〈천하〉 2편이 왜 앞 5편과 분리되어 뒤에 따로 실려 있느냐 하는 점이다. 〈열어구〉는 장자의 청빈한 삶과 죽음 같은 생애에 관한 자료를 담고 있다. 〈천하〉는 장자의 학술과 관련된 당시 학파와 학자에 관한 자료를 담고 있다. 다시 말해 자료적인 성격이 강하기 때문에, 독립시킨 것으로 판단된다.
조잡粗雜, 번잡煩雜, 잡물雜物, 잡다雜多 등, ‘잡’이란 글자는 부정적인 느낌이 강하지만, 본래는 중성적이거나 오히려 긍정적인 의미가 강했다. 예컨대 중국 최초의 한자 자전인 《설문해자說文解字》는 “오색을 모은 것(五采之合)”이라 풀이하고 있다. 따라서 우리는 잡편의 ‘잡’을 다채롭다는 뜻으로 받아들여도 좋을 것이다. 실제로 잡편은 다양한 내용을 담고 있다. 특히 〈우언〉은 장자 특유의 화법에 대해 해명하고 있고, 〈천하〉는 장자 학술의 본질과 그 연원을 기술하고 있어서, 장자의 이해에 필수적인 자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