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난 시대의 언어와 담론
강희숙 | 역락
35,100원 | 20230224 | 9791167425201
지난 2019년 12월 말, 중국의 우한 지역에서 첫 환자가 발생한 후, 이듬해인 2020년 3월 11일 세계보건기구가 감염병의 세계적 대유행을 뜻하는 사상 세 번째 팬데믹을 선언하였을 때만 해도 우리는 코로나19가 이토록 오랫동안 우리의 삶을 뒤흔들어 놓을 수 있으리라고는 감히 상상도 하지 못했던 듯싶다. 사실, 당시만 하더라도 인류는 다소 성급한 판단을 했다고 봐야 한다. 마치 한바탕 폭풍우가 지나가듯 금방 지나갈 수 있으리라는 판단하에 포스트 코로나를 진단하고 예측하는 일이 너무 쉽게 이루어졌다고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3년의 세월이 훨씬 지난 지금까지도 코로나19는 여전히 우리 곁에서 머뭇거리고 있고, 거듭되는 백신 개발과 접종에도 불구하고 그 변이종의 위세가 여전한 가운데 우리는 마스크를 벗어 던지는 데 두려움을 느끼고 있다.
문제는 인류가 직면하고 있는 재난이 코로나19 팬데믹이라는 감염병 재난만은 아니라는 것이다. 누군가의 매우 적절한 비유가 말하여 주듯, 코로나19는 고작 수류탄급 크기의 재난에 지나지 않는다고 한다면, 이보다 훨씬 큰 핵폭탄급 위기가 전 인류를 공격하고 있기 때문이다. 자연적 순환의 질서를 파괴한 채 수시로 찾아드는 폭염과 한파, 태풍, 가뭄과 홍수 등등의 자연재해와 함께 수많은 생명체의 멸종을 부르고 있는 생태계 파괴와 환경오염 등등 손으로 꼽기도 어려울 정도의 다양한 재난이 우리의 일상을 위협하고 있으니 인류는 바야흐로 재난의 시대를 살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본서의 내용은 2020년부터 2022년까지 최근 3년간 간행 또는 발표된 총 16편의 논문을 크게 네 가지 주제로 묶어 구성하였다.
제1부는 ‘재난 관련 어휘의 사용 양상과 개념화’를 주제로 하는 강희숙(2021), 송현주(2020), 이정애(2022), 축일남ㆍ김성주(2021) 등으로 이루어졌다. 코로나19 신어를 통해 보는 새로운 일상에 대한 분석에서부터 코로나19 감염병의 개념화 양상 및 개인적 재난과 관련한 한국 문화의 핵심어 ‘팔자’와 운명관에 대한 분석, 코로나19에 관한 한국어와 중국어의 언어 표현을 확장 개념적 은유 이론으로 분석한 것이 주된 내용이다.
제2부는 ‘재난 시대의 매체 언어와 담론’을 주제로 한 네 편의 논문 강희숙(2020), 강희숙ㆍ신유리(2021), 손달임(2020), 신문적ㆍ왕림ㆍ김진해(2020) 등으로 구성하였다. 빅카인즈(BIGKinds)의 자료와 신문 기사 및 사설, 뉴스 보도 등의 대중 매체의 언어를 대상으로 ‘재난 약자’와 ‘K-방역’, ‘헤드라인에 반영된 공포와 혐오’, ‘코로나19’ 담론의 전개 양상에 대한 분석이 다양하게 이루어졌다.
제3부는 ‘재난 시대의 정치ㆍ종교 언어와 담론’을 주제로 하는 박서희(2021), 신진원(2022), 안희연(2021), 양명희(2022)로 구성되어 있다. 코로나19와 관련하여 이루어진 정치 지도자들의 연설과 담화문에 대한 비평적 담화 분석과 함께 종교 지도자의 담화문에 대한 분석, 신문 사설 헤드라인을 통해 코로나19로 확대된 반중, 반미, 반일 정서를 살펴볼 수 있음이 그 특징이다.
마지막으로 제4부는 ‘재난 시대의 리터리시와 교육 담론’을 주제로 하는 강희숙(2022), 공나형(2022), 공나형ㆍ박소연ㆍ윤영(2022), 심선향(2021) 등으로 이루어졌다. 이 연구들에서는 교육적 관점에서 재난과 관련한 리터러시 함양을 위한 목표와 내용을 살피고 언어 교육의 현재를 비판적으로 검토함으로써 발전 방향을 모색하였다. 또한 언어적 공공성 측면에서 재난 관련 매체 언어를 비판적으로 검토함으로써 언어적 소수자를 고려한 재난 언어 교육 및 재난 언어 사용의 중요성을 강조하였다.
이상에서 소개한 논문들은 코로나19 팬데믹이라는 재난 상황 속에서 이루어진 언어 사용과 담론의 양상에 대한 언어학적 분석이 주를 이루지만 이른바 ‘재난인문학’의 정립을 목표로 하는, 본 사업단 연구 아젠다의 발전을 위해 함께 참여하고 있는 집단연구회(cluster)의 성과물도 여러 편 포함되었다는 점에서 그 의의가 적지 않다고 본다. 언어학의 연구주제를 ‘재난’이라는 대상으로 확장함으로써 결과적으로는 ‘재난인문학’이라는 학문 분야의 또 다른 영역으로 자리매김될 수 있으리라는 기대를 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