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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이씨"(으)로 7개의 도서가 검색 되었습니다.
9791158667733

江陵 全州李氏 船橋莊 古文書(강릉 전주이씨 선교장 고문서) (강릉 전주이씨 선교장 고문서)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 한국학중앙연구원출판부
45,000원  | 20241120  | 9791158667733
강릉 전주이씨 선교장 고문서는 강원도 강릉시에 세거했던 전주이씨 선교장 가문에서 대대로 소장한 자료이다. 이 가문의 ‘선교장(船橋莊)’이라는 당호는 일반적인 조선시대 양반 가문의 당호와 다르다. 주로 조선시대 상류주택의 택호에는 당(堂), 헌(軒), 각(閣)이 붙지만, 선교장 당호에 ‘장(莊)’이 붙은 것은 장원(莊園)이라는 의미가 내포된 것이다. 즉, 당시 일반 상류 주택이 가족만을 위한 공간이었다면 선교장은 가족, 친족을 포함하여 손님을 위한 접객 공간, 집안일을 돌보는 이들이 거주하는 농막 등의 부속 공간까지 갖춘 대규모 장원을 형성했음을 의미한다. 선교장을 세운 자는 효령대군의 11대손인 이내번(李乃蕃)이다. 그는 본래 충주 법왕(法王)에 거주했으나 어려서 아버지를 잃은 뒤에 어머니 권씨를 모시고 외향(外鄕)인 강릉으로 왔다. 처음에 이내번은 외가인 강릉 오죽권씨의 둔포촌(遯浦村) 묘막에 의탁하여 거주했다. 그러나 이후 가업을 이룬 이내번은 1756년(영조 32) 6월에 선교장의 집터를 구입했고, 1762년(영조 38)에 선교장을 완성했다. 선교장이 있는 배다리골은 창녕조씨의 세거지로 이내번은 조하행(曺夏行)에게 집과 집터를 매득할 뿐 아니라 배다리골 근방의 전답을 집중적으로 구입했다. 이러한 선교장 터는 명당으로도 알려져, 초기에 터를 잡은 이후로 6대에 걸쳐 오랜 시간 증축과 확장을 통해 건물을 조성하고 운영했다. 이러한 이력은 높은 평가를 받아 일찍부터 전통 건축과 정원 양식 면에서 주목받았다. 또한 전주이씨 선교장은 강원도에서 보기 드문 만석꾼 집안으로 강릉을 대표하는 사족가문 가운데 하나였다. 전주이씨 선교장 가문의 고문서는 17세기 전반부터 시작하여 20세기까지 주로 강릉을 중심으로 선교장 인근뿐 아니라 북쪽으로는 주문진, 남쪽으로는 묵호 일대의 사회ㆍ경제적 활동을 파악할 수 있는 자료가 다수 존재한다. 이외에도 장계는 의주부윤과 평안도 관찰사가 작성한 문서로 19세기 평안도 일대의 현안을 확인할 수 있다. 특히, 이 가문의 경제적 활동을 살펴볼 수 있는 토지매매명문과 관련 패지, 불망기가 대량으로 잘 남아있다. 이외에도 1758년(영조 34)에 양인 초정(草正)이 이내번에게 의탁한 뒤에 스스로를 파는 자매(自賣)와 관련된 소지, 원정, 불망기, 명문도 주목된다. 이 문서에서 당시의 자매 배경에 대한 구체적인 사실 확인이 가능하고, 이를 통해 18세기의 흉년과 친족의 번포(番布)가 개인에게 미친 사회ㆍ경제적인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이번 『고문서집성』에는 1910년을 기준으로 하여 1910년 이전의 문서만 영인을 수록했으나, 교령류부터 명문ㆍ문기류에 해당하는 근현대 문서의 경우에는 목록에 기재했다. 강릉 전주이씨 선교장 가문의 문서는 이내번을 중심으로 한 개인 가문의 역사를 넘어 강릉을 중심으로 한 강원도 일대의 지역사까지 확장할 수 있는 좋은 자료이다.
9788970928197

전주이씨 탐릉군 이변 묘 출토복식 (1636-1731)

석주선기념박물관  | 단국대학교출판부
32,900원  | 20230515  | 9788970928197
탐릉군은 선조(宣祖, 1552~1608)의 증손(曾孫)으로 해안군(海安君, 1613~1655) 억(億)과 경주이씨 사이에서 2남으로 태어났다. 탐릉군은 높은 인재(人才)로 국가 대사(大事)에 자문을 하였다고 알려져 있는데, 현종부터 영조에 이르기까지 4대에 걸쳐 벼슬을 하였고, 도총부부총관(都摠府副摠管)을 끝으로 관직에서 물러나 96세로 사망하였다. 탐릉군은 탐계군(耽溪君) 이면(李冕)과 함께 어머니를 모시고 용인시 처인구 김량장동 오리골로 흩어져 자리를 잡음으로써 각기 집성촌을 이루었고, 탐릉군을 비롯한 일가의 묘소가 경기도 용인시 김량장동 별학원(別鶴原)에 자리하게 되었다. 탐릉군 묘 출토 복식은 1981년 6월 11일 탐릉군을 위시한 20여 기의 이씨 종중 묘를 이장하는 과정에서 확인되어 석주선 관장님에 의해 일괄 발굴 수습 조사되었다. 출토된 복식 유물은 1982년 석주선기념민속박물관 개관 1주년을 기념하는 제2회 수의 특별전에 일부를 공개하였으나, 당시에는 모든 유물의 보존처리가 이루어지지 않아 일부만 전시하는 데에 그쳤다. 그동안 석주선기념박물관은 유물의 보관뿐 아니라 보존처리와 복원 사업들을 진행하였고, 그 결과로 탐릉군 묘 출토 복식 전체를 40여 년 만에 공개하였다. 이 책은 “탐릉군의 생애와 탐릉군 묘 발굴과 복식 출토 경위”, “출토 복식 화보”, 복식의 이해를 돕기 위해 “도식화”를 수록하고 있다.
9791158666965

공주 전주이씨 숭선군파 고문서 (공주 전주이씨 숭선군파 고문서)

한국학중앙연구원  | 한국학중앙연구원출판부
36,000원  | 20221230  | 9791158666965
‘공주 전주이씨 숭선군파 고문서’는 교령류(敎領類)부터 서화류(書畵類)까지 다양한 문서군을 형성하고 있으며, 이 책에는 이 중 80종 401점을 선별하여 영인해 수록하였다.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에서는 공주 전주이씨 숭선군파 고문서를 조사 수집한 후 목록 정리 및 촬영을 마치고 보관 중이다. 숭선군파 고문서는 17세기부터 20세기까지 숭선군파 가문의 정치ㆍ경제ㆍ사회ㆍ문화 등을 살펴볼 수 있는 중요한 자료이다. 또한 조선 후기 왕자 가문에서 소장하고 있는 자료로 종친이나 궁방과 관련된 문서가 있어 기존에 양반 사대분 가문에서 소장하고 있는 고문서와 차이를 보인다. 공주 전주이씨 숭선군파 가문은 인조의 다섯 번째 왕자인 숭선군 이징(李澂)의 자손으로 가계가 이어졌다. 숭선군의 어머니는 귀인조씨(貴人趙氏)이고, 동복형제는 효명옹주(孝明翁主)와 낙선군(樂善君) 이숙(李潚)이 있다. 1648년(인조 26)에 숭선군은 영의정 신흠(申欽)의 손녀이자 도승지 신익전(申翊全)의 딸인 평산신씨와 혼인하였고, 1651년(효종 2) 8월에 출합하여 궁궐 밖에서 거주하였다. 1651년 김자점(金自點)의 옥사에 연루되어 1652년(효종 3) 1월에 동생 낙선군과 함께 강화 교동에 위리안치 되었다가, 1656년(효종 7) 윤5월에 풀려나서 도성으로 돌아왔고, 1659년(효종 10) 2월에 숭선군의 관작을 회복하였다. 숭선군은 1690년(숙종 16) 1월에 사망하였고, 숙종은 효경(孝敬)의 시호를 내려주었다. 이후 숭선군파 가문은 가계를 이어나가며 한성부 서부 황화방ㆍ반석방ㆍ반송방 등의 지역에 세거하다가, 1885년(고종 22) 이덕용이 작성한 시권에서 거주지를 공주로 기재한 것을 통해 숭선군파기 1885년 이전에 공주로 내려와서 세거한 것을 확인할 수 있다.
9791185482293

의안대군 이화

전주 이씨 의안대군파 종중  | 청어
0원  | 20141015  | 9791185482293
600여 년 만에 세상에 알려진 태조 이성계의 이복동생이자 고려 말 조선 초 최대의 공신 의안대군 이화의 생애와 업적을 다룬 책이다.
9791158661335

조선의 스페셜리스트 (전주이씨 장천군파 삼양부정 후손가)

한국학중앙연구원  | 한국학중앙연구원
36,000원  | 20160830  | 9791158661335
조선은 전주이씨 혈통의 왕이 왕권을 계승하는 왕정국가였다. 조선시대 전주이씨는 왕과 직계존비속, 또는 가까운 친척 관계이거나 커다란 범주에서 왕의 종친으로 존재하였다. 장천군 이보생은 조선 정종의 제13남으로서 정종과 숙의윤씨 사이에서 태어났다. 본 도록에서 다루는 장천군파 삼양부정 후손가는 장천군 이보생의 제4남 삼양부정 이석동의 후손을 지칭한다. 도록은 총 3부로 구성되어 있다. 제I부에서 제II부까지는 편년적 기술을 원칙으로 하되, 특히 장천군파 삼양부정 후손가의 혈연적 연원, 전문직 가문으로의 변모, 근대적 대응 양상에 초점을 맞췄다. 제I부는 장천군가의 연원과 역사적 전통을 검토했다. 조선을 개국한 전주이씨 왕가의 혈통을 개괄하고 나서 장천군 이보생의 혈연적 정체성을 살펴보았다. 그리고 생전에 대군이나 군의 칭호를 받지 못한 이보생이 고종 연간에 장천군이라는 군호를 받게 되는 과정을 상세히 소개했다. 제II부는 삼양부정 후손가의 존재 양상을 다루었다. 이들은 왕가의 혈통을 계승했지만 17세기 무렵부터 과거와 혼반을 통해 전문직 가문으로 변모했고 통역이나 의약, 천문 등의 분야에서 대대로 기술관을 배출했다. 특히 능숙한 외국어능력을 바탕으로 외교 현장에서 두각을 나타냈으며 당대 유력한 기술직 가문과 혼인 관계를 맺으면서 인적 네트워크를 구축했다. 제III부는 이희원의 삶에 주안점을 두었다. 19세기 후반기 급변하는 국내외 정세 속에서 이희원이라는 인물이 등장했다. 그는 역관으로 출신했으나 능력을 인정받아 수령에 제수되었고 학교 설립과 서적 간행, 흥사단 활동 등에 참여했다. 말년에는 고서화 매매에 종사하며 홀어머니를 극진히 모셨다. 특히 국제 정세에 밝았고 우국애민 의식이 투철했던 인물이다.
9788970927237

전주이씨 수도군파 5세 이헌충과 부인 안동김씨 묘 출토 복식

단국대학교석주선기념박물관  | 단국대학교출판부
28,200원  | 20190525  | 9788970927237
2009년 10월 8일 경기도 포천시 소흘읍 무림리에 소재한 전주이씨 수도군파(守道君派)의 선산에 있던 이헌충(李憲忠) 공과 부인 안동김씨 부부의 쌍분에서 출토된 유물 총 28점을 모은 도록이다. 이헌충은 조선 2대 임금 정종(定宗): (재위 1398~1400)의 7남男 인 수도군守道君의 고손자高孫子로 연산을 축 1505 년에 양곡부수 이은李?과 직장直長 하동정온河東鄭의 따님과의 사이에 장남으로 태어났다. 자字는 공보公輔로 조부는 곤산수昆山守 숙조淑祚 , 증조부는 어산정語山正 검儉 , 고조는 수도군守道君 덕생德生이다. 도록에 수록된 유물은 이헌충 공의 묘에서 출토된 유물은 총 20점과 안동 김씨의 묘에서 출토된 8점이다. 이헌충 공의 묘에서 출토된 유물의 종류는 명정 1점, 답호 2점, 철릭 4점, 액주름 1점, 바지 2점, 조대 2점, 이불 1점, 구의 1점, 관내의 조각, 멱목 1점, 소매겹 1쌍, 소매홑 1쌍, 옷감 조각 2점이다. 이 가운데 복식류는 모두 12점이며 나머지는 염습에 사용된 제구들과 짝을 알 수 없는 옷감 조각들이다. 이헌충 공의 부인 안동김씨 무덤에서 출토된 유물의 종류는 장저고리 2점, 저고리 1점, 적삼 1점, 치마 2점, 치마 조각 2점이다. 이들 중 ‘세가닥 바지’는 현대적인 패션 감각이 돋보이기에 16세기 선조들의 복식문화에 대한 이해와 창의성을 엿볼 수 있다.
9788959663699

의성김씨 김성일파 종택 전주 이씨 덕천군파 종택 한글 간찰

한국학중앙연구원  | 태학사
31,500원  | 20091205  | 9788959663699
한국학술진흥재단에서 추진하고 있는 기초학문육성사업이 하나로서 인문사회과학분야 단기과제 〈조선 후기 한글 간찰(언간)의 역주 연구〉를 수행한 성과를 엮은 것이다. 이 책은 의성김씨 김성일파 종택, 전주 이씨 덕천군파 종택에서 나온 한글 간찰에 대한 영인본으로, 조선후기 한글간찰 역주연구의 부록에 해당한다. 한글간찰의 자료 사진과 발신자와 수신자의 관계 등을 수록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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