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보 사피엔스 재패니쿠스 (휴머노이드 로봇은 시급한 사회 문제를 해결하고 인류를 돌볼 수 있을까?)
제니퍼 로버트슨 | 눌민
26,784원 | 20251212 | 9791187750819
로봇을 통해 일본을 읽는다,
독창적이고 탁월한 방식으로 풀어내는 일본 이야기!
일본의 로봇공학,
그리고 그 속에 숨겨진 정치적, 사회적, 문화적 진실을 탐구하다!
일본인이 인간형 로봇이 당면한 사회 문제를 해결하고 그들의 근심 걱정을 멈추게 할 수 있다고 믿는 이유는?
국제로봇연맹IFR에 따르면 2025년 현재 전 세계에서 로봇 밀도Robot Density가 가장 높은 국가는 한국으로 노동자 1만 명당 로봇 1,012대를 기록했다고 한다. 한국은 세계 최초로 로봇 밀도 1,000대를 넘긴 국가로 730대를 기록한 2위 싱가포르와 415대를 기록한 3위 독일과 현격한 차이를 보이며 로봇 자동화의 글로벌 리더로 자리매김되고 있다.
그런데 일본이 397대를 기록하여 4위에 랭크되었다고는 하지만 그렇다고 로봇 자동화 분야에서 뒤처진 국가로 여기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비록 중국의 거센 추격을 당면하고 있지만 일본은 핵심 부품 설계 및 제조, 공급에서 자타 공인 세계 최고, 최강의 기술을 자랑하는 절대 강자이기 때문이다. 한국 또한 핵심 부품을 일본에 대부분 의존하고 있는 실정이라 로봇이 많아질수록 대일 의존도 또한 더욱 높아지는 것도 사실이다.
재밌는 것은, 위에서 언급된 로봇의 대부분은 산업용 비인간형 로봇이고 이에 대해선 일본이 최첨단의 기술을 자랑하고 있지만 왠지 일본에선 이족보행을 하고 언어를 사용하여 커뮤니케이션을 하는 인간을 닮고 인간의 일상생활에 도움을 주는, 특히 성별이 드러나는 인간형 로봇(휴머노이드 로봇)에 더 관심을 보인다는 것이다.
“철완 아톰”과 “철인 28호” 등을 비롯하여 “아시모”와 “할”에 이르기까지, 이 인간형 로봇은 일본에서 처음 등장하고 진화를 계속하고 있다. 인류 조상의 최초 유골이 탄자니아 올두바이 협곡에서 발견된 것을 빗대어 일본을 로보 사피엔스의 “사이버 올두바이 협곡”이라 불러도 무방할 듯하다. 그런데 어째서 일본에선 이 여전히 서툴고 느리고, 가끔가단 실망스럽기까지 한 인간형 로봇이 (대부분 일본 정부와 정치가들에 의해) 당면한 사회 문제를 해결해줄 것처럼 강조되고 로봇공학의 과거이자 현재이며 미래로 불리는 까닭은 무엇일까?
가부장적 가족 중심주의, 민족주의, 애국주의, 성차별주의의 로봇공학
일본의 로봇공학은 전자공학뿐만이 아니라 정치공학, 경영학, 아동 발달 연구 등과 같이 많은 학문을 아우르는 연구의 혼합물로 엄청나게 복잡한 겹겹의 체계로 이루어져 있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이 책 『로보 사피엔스 재패니쿠스』는 방대한 문헌 자료와 현장 조사 및 체험을 바탕으로 인류학, 정치학, 문헌학, 일본 근현대사, 미학, 문화비평, 페미니즘을 넘나들며 이 복잡하고 접근하기 어려운 일본 로봇공학의 정치, 사회, 문화적 함의를 어렵지 않은 문체로 풀어내는 데에 성공한다. 한마디로 말해, 이 책은 로봇 기술 분야를 젠더, 민족주의, 대중문화, 비장애인 중심주의, 가부장 담론 등에 대한 사회과학적 연구와 연결하여 새로운 지평을 연 책이다.
저자 제니퍼 로버트슨Jennifer Robertson은 인류학자이자 미술사학자, 예술가로 코넬대학교에서 인류학 박사학위를 취득하고 코넬대학교, 캘리포니아대학교 샌디에이고, 윌리엄스대학을 거쳐 미시간대학교 인류학과와 미술사학과 교수를 역임했다. 유년 시절의 일본 체류 체험을 바탕으로 일본학, 여성학, 역사학, 미술디자인, 로봇공학, 여성과 젠더, 식민주의와 제국주의, 일본 현대 미술과 대중문화, 시각인류학 등 폭넓은 영역에 걸쳐 일본을 연구해왔다.
저자는 이 책에서 로봇공학에서 나타나는 일본 주류 사회의 지배적인 담론, 특히 지난 아베 정부를 비롯한 정부와 보수 정치가들이 인간형 로봇을 통해서 유포하는 프로파간다의 연원을 폭로한다. 지난 아베 정부는 이노베이션 25의 허구적 만화 가족인 “이노베 가족”을 통해 인간형 로봇이야말로 현재 일본이 당면한 사회 문제, 즉 출생률 감소, 노동력 부족, 급속한 노령화 문제를 기술적으로 해결할 수 있다고 선전했지만, 이 만화에서는 가부장적 가족 중심주의, 민족주의, 애국주의, 성차별주의가 드러나 있다 (또는 강요된다). 이를테면 여성들은 (이노베 군으로 상징되는) 인간형 로봇의 노동으로 가사노동에 해방되어 자녀 생산에 전념할 수 있다는 식이다. 이 강요된 민족주의와 애국주의는 2차 대전 시기 일본 제국주의를 지지하는 모임인 대정익찬회大政翼賛会 후원으로 제작된 만화 “야마토 가족”에 뿌리를 두고 있다. (극우로 비난을 받고 있는 현 일본 수상 다카이치 사나에는 이베 정부에서 이노베이션 25 전략위원회 장관, 1기 2기 내무부 장관 등을 역임했다.)
또한 일본의 공학자들은 인간형 로봇 개발의 첫 주자가 되는 명예를 차지했지만, 로봇의 성별에 대해선 무관심하며, 오히려 성병화된 차이들을 자연적이자 보편적인 것으로 간주하기까지 한다는 것을 저자는 날카롭게 지적한다. 로봇공학은 결코 중립적이지 않으며, 유용함과 편리함을 넘어서는 가치들이 가득 담겨 있는 분야다. 로봇과 같이 거대한 산업에선 국가와 기업의 이념과 우선 과제가 우선적으로 반영되고 구현된다. 저자는, 로봇의 성별이 로봇과 인간들 사이에서 성별화된 노동의 성차별적 구분을 효과적으로 재생산한다는 점을 지적한다.
일본 사회는 대체로 인간과 로봇의 상호 의존을 추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고, 일본 만화와 애니메이션 문화에선 “로봇권”이 친숙한 개념으로 자리하고 있다. 일본에선, 특히 아베 정부는 “일본에서 태어난” 로봇들은 (가정으로 입양되어) 가부장적 확대가족의 보존과 안정화에 핵심 역할을 하고 국적, 민족성, 성별 역할, 가족 구조를 지지하며 민족적 동질성을 보존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므로 이 “가족 동반자”로서의 로봇들은 일본의 호적 제도를 지탱하는 큰 힘이 되는 동시에 이민을 거부할 구실을 마련해준다. 제국주의와 전체주의로 되돌리고 싶어하는 보수 극우 세력의 구미에 맞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