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역정의 제1권
| 퍼플
5,500원 | 20221222 | 9788924104073
주역정의십권(周易正義十卷, 주역정의 10권)
1. 왕필(王弼) 한강백(韓康伯) 공영달(孔穎達)
위(魏)나라 왕필(王弼)과 진(晉)나라 한강백(韓康伯)이 주석(注釋)하고, 당(唐)나라 공영달(孔穎達)이 이를 풀이하여 소(疏)를 냈다.
魏王弼晉韓康伯注, 唐孔穎達疏.
2. 주역(周易)은 점서(占書)여서 그 말류(末流)가 타락(墮落)했다
역(易)은 본래(本來) 점(占)을 치며 복서(卜筮)하던 책(冊)이다.
易本卜筮之書.
그러다보니 그 말류(末流)가 점점(漸漸) 참위설(讖緯說) 혹(或)은 도참설(圖讖說)로 흘렀다.
故末派寖流於讖緯.
3. 그러한 주역(周易)의 타락(墮落)을 왕필(王弼)이 공격(攻擊)했다
그런데 왕필(王弼)이 그 지극(至極)한 병폐(病弊)를 틈타 공격(攻擊)하여, 마침내 한(漢)나라 학자(學者)들을 배격(排擊)하고, 스스로 새로운 주역철학(周易哲學)을 표출(表出)해내었다.
王弼乘其極敝而攻之, 遂能排擊漢儒, 自標新學.
4. 왕필(王弼) 당시(當時)에 이미 견해(見解)의 이동(異同)이 있었다
수서(隋書) 경적지(經籍志)에, 진(晉)나라 양주자사(楊州刺史) 고이(顧夷) 등(等)이 지은, 주역난왕보사의(周易難王輔嗣義) 1권이 있다고 기재(記載)하였다.
然隋書經籍志, 載晉揚州刺史顧夷等, 有周易難王輔嗣義一卷.
책부원귀(冊府元龜)에는, 또한 고열지(顧悅之)가, 열지(悅之)는 고이(顧夷)의 자(字)인데, 왕필(王弼)의 역의(易義)를 힐난(詰難)한 40여 조항(條項)이 있다.
冊府元龜, 又載顧悅之, 案悅之卽顧夷之字, 難王弼易義四十餘條.
그런데 경강(京江) 주변(周邊) 경구(京口)의 민(閔) 관강지(關康之)는, 또한 왕필(王弼)을 해명(解明)하고 고열지(顧悅之)를 힐난(詰難)했다고 기재(記載)하였으니, 이는 당시(當時)에 이미 견해(見解)의 이동(異同)이 있었던 것이다.
京口閔關康之, 又申王難顧, 是在當日已有異同.
5. 공영달(孔穎達)이 조칙(詔勅)을 받들어, 왕필(王弼)의 주석(注釋)을 중심(中心)으로 각(各) 학설(學說)을 정돈(整頓)하였다
왕검(王儉)과 안연년(顔延年) 이후(以後)로, 이것을 드날리고 저것을 억누르며, 서로 힐난(詰難)하기를 그치지 않다가, 공영달(孔穎達) 등(等)이 조칙(詔勅)을 받들어 소(疏)를 지으면서, 처음으로 오로지 왕필(王弼)의 주석(注釋)만을 높임으로 인(因)해, 여러 학설(學說)이 모두 폐지(廢止)되었다.
王儉顔延年以後, 此揚彼抑, 互詰不休, 至穎達等奉詔作疏, 始專崇王注, 而衆說皆廢.
이 때문에 수서(隋書) 경적지(經籍志)의 역류(易類)에, 정현(鄭玄)의 학설(學說)이 점점(漸漸) 쇠미(衰微)해져서, 지금(只今)에는 거의 끊겼다고 말하였으니, 장손무기(長孫無忌) 등(等)이 수서(隋書) 경적지(經籍志)를 지은 시기(時期)에는, 주역정의(周易正義)가 이미 통행(通行)된 후(後)였던 것이다.
故隋志易類, 稱鄭學寖微, 今殆絶矣, 蓋長孫無忌等作志之時, 在正義旣行之後也.
-하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