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이 인간을 죽일 때(큰글자책) (인간이 어떻게 인간에게 그럴 수 있었는가)
김요섭 | 바다출판사
35,100원 | 20251029 | 9791166893797
“인간이 어떻게 인간에게 그럴 수 있습니까?”
인간의 가장 어두운 심연을
들여다볼 수 있는 존재도 인간뿐이다
저자 김요섭 문학평론가는 그가 ‘제노사이드 문학’이라고 이름 붙인 소설을 연구하고, 그 이야기들이 품은 질문들에 대해 지난 십여 년간 글을 써왔다. 그는 이 책에서 가장 번영한 시대지만 가장 잔인한 시대였던 20세기를 소설과 영화, 회고록을 통해 돌아본다.
국가와 인종, 지역, 그리고 가족 간에 벌어진 폭력에 사람들은 자신도 이해할 수 없는 방식으로 피해자와 가해자로 나뉘었다. 하지만 이들은 가해자나 피해자가 아닌 인간으로 남고자 했다. 이 책은 그들이 남긴 증언, 회고, 기록을 통해 인간으로 남는 데 실패한 자들과, 극단적 상황 속에서도 인간으로 남게 된 자들의 삶을 들여다본다.
저자가 “속삭일지언정 침묵하지 않는”다고 말한 이들의 이야기는 결국 우리에게 돌아와 비극적 상황에 가려진 ‘인간의 조건’에 대해 묻는다.
아우슈비츠, 제주 4.3, 한국전쟁…
20세기 국가 폭력에 관한
끝나지 않은 기억을 읽다
인간이 인간에게 할 수 있는 가장 끔찍한 일은 무엇인가? 바로 생명을 빼앗는 일이다. 그러나 이 일은 역사 속에서 수없이 반복됐으며, 그 방법은 기계화, 문명화, 현대화와 함께 발전하고 있다. 이 책을 여는 질문, ‘인간이 어떻게 같은 인간에게 그럴 수 있었습니까?’는 국가 폭력에서 살아남은 피해자가 자신의 동료 1명을 죽이고, 7명을 고문한 경찰 가해자에게 한 질문이다. 이 질문은 끔찍한 일을 저지른 자를 규탄하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이 책은 가해자들이 가졌던 지위에 대한 책임감, 최악 대신 차악을 선택한다는 합리화, 규칙과 법에 대한 믿음을 세밀하게 들여다보는데, 이에 공감하는 우리도 그들과 같은 일을 저지를 수 있다는 두려움을 일깨운다. 이와 반대로 가해자들이 죽음에 대한 공포, 한 사람을 둘러싼 관계, 삶을 계획하는 능력을 ‘같은 인간’으로서 공감했다면 벌이지 않았을 일에 대한 안타까움을 자아낸다.
아마 우리는 한 권의 책에서 읽기 어려울 정도의 수많은 학살자와 끔찍한 사건을 만나게 될 것이다. 인도네시아 군부 쿠데타의 암살단 간부 안와르 콩고, 나치 101경찰예비대대의 대대장 빌헬름 트라프, 남아공 아파르트헤이트 정권의 경찰 테오도르 벤지엔을 만나고, 아우슈비츠, 6.25 한국전쟁, 제주 4.3, 그리고 신천 사건을 목격하게 될 것이다. 인간의 가장 어두운 심연을 읽는 일은 버겁고 불쾌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들이 끔찍한 일을 선택했던 것처럼, 반대로 그 일을 저지르지 않는 선택을 할 수 있었다는 것을 이해해야 한다. 그때 무엇이 인간으로 하여금 다른 삶을 살게 하는지 찾아내고, 서로의 사유와 행위에 책임지며 불안한 미래에 맞설 수 있을 것이다.
“그는 좋은 사람이 될 수도 있었어요”
당신이 가해자에게 공감하는 순간
1965년 인도네시아 정권을 잡은 국민당은 ‘반공’을 이유로 학살을 자행한다. 정부는 자신들을 대신해서 사람들을 죽일 조직이 필요했고, 이때 모집된 갱단과 준군사 조직 중 한 명이 안와르 콩고이다. 그는 당시 약 1000명을 죽였지만 어떤 처벌이나 반성 없이 평온한 삶을 살았다. 그러던 중 인도네시아 군부 쿠데타를 주제로 영화를 기획한 영화감독 조슈아 오펜하이머를 만나 영화의 주인공이 될 기회를 맞는다. 안와르는 카메라 앞에서 자신이 어떤 도구로 어떻게 사람을 죽였는지 영웅담을 늘어놓듯 자랑스럽게 이야기하고, 당시 상황을 재연한다.
하지만 그가 피해자의 역할을 맡아 연기할 때 그의 오래된 믿음은 깨진다. 피해자들의 서 있던 자리에서, 피해자들의 입장이 되어 본 그는 재연을 멈추고 헛구역질을 참으며 자리를 떠난다. 저자 김요섭 평론가는 자신도 이 장면에서 구토감을 참지 못했다고 전한다. 하지만 김요섭 평론가는 안와르를 향한 분노 때문에 구토감을 느낀 게 아니라는 것을 고백한다.
“나는 가해자가 자신이 행한 일의 대가를 겪기를 바란다. 하지만 한편으로 그들이 느끼는 고통과 슬픔에 공감한다. 그리고 그런 아픔이 없었기를 바라기도 한다. 그들이 우리, 아니 나와 그리 다르지 않은 인간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비통하게도.”(25~26쪽)
영화감독 조슈아 오펜하이머는 안와르 콩고가 피해자 역할을 할 때 매우 힘겨웠다면서 눈물을 보이자 “당신은 그 순간이 영화 촬영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지만, 그 일을 겪은 사람들에게는 현실이었다”(15쪽)고 그를 비난한다. 그리고 어느 날 안와르는 자신이 정말 죄를 지은 거냐고 묻는다. 조슈아는 그가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울음을 터트린다. 그것은 용서나 이해의 눈물이 아니다. “그가 좋은 사람이 될 수 있었”(61쪽)기 때문에 울음을 터트린 것이다.
기록으로 저항하며
인간으로 남고자 한 자들
이 책은 잔혹한 가해자들만 조명하지 않는다. 저자는 폭력에 가려진 도시와 피해자들의 이름을 되찾는다. 폴란드의 도시 오시비엥침은 낯선 이름이지만, 우리는 이 도시를 잘 알고 있다. 독일어 발음으로 더 유명해진 아우슈비츠로 말이다. 그러나 “아우슈비츠를 둘러싼 마을의 존재를 기억할 때, 수용소의 풍경은 다르게 보이기 시작한다.”(69쪽) 아우슈비츠수용소를 둘러싼 주변 마을과 공동체가 눈에 들어오는 것이다. 그동안 가해자의 막강한 힘에만 집중했다면 이제는 수용소의 수감자들과 관계를 맺고, 또 수용소 내부에도 그들만의 사회가 존재했다는 사실에 집중해야 한다. 이 책은 피해자가 증언과 기록을 통해 저항하며 인간으로 남고자 한 자들을 조명한다.
존더 코만도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유대인 수용소의 노동자로서, 같은 유대인이지만 수감자들의 시체를 처리하는 일을 맡았다. 이들은 독일군의 트라우마를 줄이기 위해, 그리고 철저하게 노동력으로 계산되어 나치군의 업무에 투입된다. 하지만 존더 코만도 역시 증거 인멸을 위해 자신들이 처리한 시체와 마찬가지로 살해당했다. 이런 복잡한 상황 속에서 이들은 욕망이나 사고가 제어된 무기력한 자들로 오랜 시간 인식되었다. 하지만 수용소를 둘러싼 마을이라는 공동체와 수용소 지하에 형성된 수감자들의 사회에 의해 몰래 사진기를 가지게 된 존더 코만도는 죽음을 무릅쓰고 나치군이 자행한 학살의 순간들을 네 장의 사진으로 남긴다. 이는 무기력한 상황 속에서도 이들에게 인간으로서 저항할 능력이 있었음을 시사한다.
지나간 삶은 돌아오지 않는다. 하지만 그들의 이야기는 여전히 다양한 방식으로 쓰이고 있으며, 우리는 그 기록들을 언제고 다시 읽음으로써 폭력에 굴복하지 않을 인간의 가능성을 발견할 수 있다. 저자 김요섭 문학평론가는 “기록이 존재를 대신할 수는 없다”라고 하면서도, “다른 사람 앞에 선 사람이 괴물이 되지 않도록 할 방법이 그곳에 있”(9쪽)다고 말한다. 이 말은 살아남은 자들과 죽은 자들의 기록을 우리가 읽어야 할 이유이며, 이 책이 바라는 단 한 가지라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