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화동에 살고 있습니다 (중화2동 노인 8인의 구술생애사)
중랑구술생애사기록팀 | 무늬
13,500원 | 20221215 | 9791198039712
나이듦, 그 행복한 시간을 위해
우리나라는 올해 65세 이상 고령인구가 17.5%이며 노인 다섯 명 중 한 명이 혼자 살고 있다. 3년 뒤에는 초고령사회에 접어들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이런 추세는 세계에서 가장 빠른 속도라고 한다. 우려되는 것은 66세 이상 은퇴 연령층의 상대적 빈곤율(중위소득 50% 이하)이 43.2%로, OECD 가입국 중 가장 높고 노인자살률도 세계 1위라는 점이다. 2020년 전체 고령자의 53.1%가 공적연금을 받지만 여성노인은 38.2%로, 남자노인 72.6%의 절반에 불과하다. 노인세대 내의 차이와 불평등이 커지는 상황이다.
그러나 고령사회가 우리에게 암울하기만 한 것일까. 장수는 인류의 오랜 꿈이고 기쁜 일이다. 차별과 불평등을 줄일 수 있다면 초고령사회는 오히려 성숙한 사회를 가져올 수 있다. 개발과 성장 중심의 근대적 사고를 벗어나 돌봄과 문화의 시대, 자연과 지역을 보살피는 새로운 사회로의 전환을 촉진할 수도 있다. 나이듦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돌봄을 가장 중요한 가치로 생각하는 고령사회는 우리에게 새로운 기회이자 미래가 될 것이다. 나이듦은 충분히 행복한 시간이 될 것이다.
중랑구술생애사기록팀은 중화2동에서 혼자 사는 여성 5명, 남성 3명을 섭외하였고 무더운 7월과 8월에 두세 차례에 걸쳐 방문하여 이야기를 들었다. 여성 5명 중 2명은 봉제노동을 했고, 남성 3명은 모두 건설 분야에서 일했다. 연령은 만68세부터 89세까지 20여 년의 차이가 났고 태어난 곳도 순천, 대전, 영동, 교토, 안성, 인천 등 다양했다. 노인 세대 내부의 차이도 상당히 컸다. ‘기록팀’은 이들과의 만남을 통해 기초수급자와 독거라는 시선으로 한 인간을 본다는 것이 얼마나 폭력적인지 알 수 있었다. 혼자 사는 모습도 다양하고 과거에 대한 기억과 미래에 대한 기대, 그것으로 인한 삶의 결이 모두 달랐기 때문이다.
철탑노동을 했던 건설노동자이자 현재는 하루종일 수십킬로미터를 걸어서 운동하고 있는 이서종 님, 베이비 부머 초기 세대의 여성노동자의 생애를 보여주며 작업과정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는 박미숙 님, 젊은 시절 미니스커트를 입었을 만큼 유행에 민감했고, 이후 사이클을 타면서 속도를 즐겼으며 건강을 위해 지금도 꾸준히 걷고 있는 김해숙 님, 평화시장에서 봉제기술자로 서울 생활을 시작했고 상처 끝에 지금은 반려견과 살고 있는 송순례 님, 비혼여성의 삶을 살면서 사회적 약자는 누구나 될 수 있다고 당당하게 말하는 김애자 님, 주변 사람들이 모두 떠나는 나이듦에 대한 생생한 구술을 들려준 김용순 님, 30년 넘게 건설현장에서 미장일을 했으나 지금은 막걸리와 담배에 의지하는 노년의 쓸쓸함을 보여준 박용식 님, 그리고 열몇 살에 자다가 군대에 끌려갔고 자신의 세대가 이 나라를 만들었다는 자부심이 가득한 나철균 님. 이들의 공통점이라면 지금 주변 사람들이 하나둘 세상을 떠나고 혼자 되었다는 것이다.
한 사람 한 사람의 이야기들을 통해 ‘기록팀’은 많은 것을 알게 되었다. 치아관리와 빈곤의 관계라든지, 입원할 때 가족과도 같은 반려견은 집에 혼자 있어야 한다는 것, 장애가 있는 노인을 사회가 어떻게 대하는지, 장애여성노인은 얼마나 더 취약한지, 코로나19가 노인들에게 미친 영향이 얼마나 컸는지도 느낄 수 있었다. 코로나19가 확산되면서 가족을 만나지 못하고 이별하거나 그나마도 적은 사회활동도 단절되었다. 정보에도 취약해 갑자기 수급비가 줄거나 배달되던 반찬이 뚝 끊길 때 누구에게 어떻게 물어보아야 하는지 잘 모르는 경우가 많았다. 평생 남에게 빚지지 않고 살았으나 지금은 누군가의 선의에 의지해 살아야 하는 상황에 놓인 것이다. 앞으로 시간이 지날수록 이들은 더 취약해질 것이다.
그럼에도 많은 분들이 기록팀의 방문과 경청에 힘이 나고 반갑다고 하여 기뻤다. 둘씩 짝을 이룬 기록팀은 노인 한 분을 만나기 위해 몇 번씩 전화를 해야 했다. 집 앞에서 기다리다 바람맞기도 하고, 여름 장마로 집에 물이 차서 만남을 연기하기를 반복했다. 몇 차례의 녹취를 푸는 것 역시 정말 고된 작업이었다. 녹취 후 정리를 거듭하면서 보충 인터뷰를 한 경우도 있다. 힘들었지만 기록팀 모두에게 의미 있는 시간이었다. 제도가 할 일과 이웃이 할 일, 의료와 복지가 할 일을 한자리에서 논의하는 자리는 얼마나 뜻깊은가. 지역에서 함께 돌보는 공동체는 어떻게 가능한지 이제부터 우리 모두가 머리를 맞대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