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방 최흥종 연구 (생애․신앙․참여)
최협, 한인수, 한규무, 차종순, 김경재, 정경운, 조용준, 양회석 | 태학사
19,800원 | 20220408 | 9791168100558
‘호남 교회사의 등불’ 최흥종 선생,
그의 생애, 신앙, 사회 참여의 발자취를 조명하다
이 책은, 오방기념사업회가 그동안 몇 차례에 걸쳐 오방 최흥종 목사의 삶과 실천에 대한 기록을 정리해 온 작업의 연장선상에서, 그동안 발표되었던 최흥종 목사에 관한 학자나 전문가들에 의한 전문성이 확보된 학술논문을 한데 묶은 것이다. 이로써 최흥종 목사에 관한 자료를 후속 연구자들이 쉽게 활용하고, 이러한 학술적 연구 작업이 더욱 활성화되는 계기로 삼는 데 출간의 의의가 있다.
오방(五放) 최흥종(崔興宗, 1880~1966) 목사는 민족운동, 사회·노동운동, 빈민 선교에 헌신한 호남 교회사의 등불 같은 존재였다. 그는 1912년 나환자촌 건립을 위해 광주 봉선리 땅 1000평을 무상으로 기증하여 한국 최초의 나환자 수용시설인 광주나병원 설립에 기여했으며, 1932년 한국나환자근절협회를 창설하고, 이듬해 500여 명의 나환자들을 이끌고 광주에서 경성 조선총독부까지 ‘구라(救癩) 행진’을 벌여 일본 총독으로부터 소록도 재활시설 확장에 대한 확답을 받아냈다. 또한 농촌 지도자 양성을 위한 삼애학원(1948), 음성 나환자 갱생을 위한 호혜원(1956), 폐결핵 환자 요양을 위한 송등원(1958) 등을 설립하는 등 평생 ‘낮은 자와 함께하는 정신’을 일관되게 실천했다. 한편, 1919년 3·1운동에 참여하여 1년 4개월 동안 옥고를 치렀고, 1927년 신간회 광주 지회장을 맡아 활약했으며, 1935년 교계의 신사참배 결의에 절망해 스스로 ‘사망통지서’를 돌리고 세상을 등진 뒤 무등산에 은거한 민족운동가이기도 했다. 1920년 광주 YMCA 창설에 중심적 역할을 담당한 그는, 일제에게 농토를 빼앗겨 유랑하는 동포들을 위하여 1922년과 1927년 두 차례에 걸쳐 시베리아로 선교 활동을 다녀왔으며, 1945년 조선건국준비위원회 전남 지회장에 추대되기도 했다.
이 책에 수록된 8편의 논문은 최흥종 목사의 생애, 그리고 신앙과 사회 참여 활동에 대한 학술적 연구 성과인데, 그의 행동과 실천이 참으로 광범위한 영역에 걸쳐져 있어 한마디로 그의 삶을 표현하기는 어렵다. 그래서 혹자는 그를 가리켜 ‘성자요, 독립투사요, 기독교 전도자요, 사회운동가였다.’라고 말한다. 이렇게 다양한 영역에 걸쳐 발자취를 남겼지만 그 밑바탕에는 일관된 정신이 깔려 있었으니, 그것은 곧 ‘낮은 자와 함께하는 정신’이었다. 최흥종 목사는 1909년 모든 것을 내려놓고 예수와 동행하는 길을 나선 후 다시는 뒤를 돌아보지 않았다. 그 후 그가 걸어간 삶의 여정은 한센병 환자처럼 낮은 자들을 형제로 삼아 일생을 통해 한 번도 그들 곁을 떠나지 않는 것이었다. 아마 그가 말한 ‘충만한 삶’은 바로 이러한 길고도 힘든 동행의 여정에서 느낀 보람일는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