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봉유고 7 (충남대학교 한자문화연구소)
강백년 | 문진
27,600원 | 20211230 | 9791187638735
강백년(姜栢年, 1603?1681)은 17세기의 인물이다. 그의 문집 《설봉유고》에 대해서는 이전의 해제 내용이 상세하다. 최근 몇 년 사이에는 강백년의 문학에 대한 학계의 관심도 높아져 그의 삶과 시세계가 연구되고, 청백리로서의 삶도 조명되었다. 강백년 개인을 넘어 가문의 학문 정신과 가깝게 교유했던 인물들의 작품세계도 자세하게 다루어졌다.
《설봉유고》는 전체 30권 8책으로 구성되었다. 책의 간행 배경을 알 수 있는 서문(序文)이나 발문(跋文)이 없기 때문에 이 책의 간행 시기는 고증하기 어렵다. 책의 앞부분에 목록이 있지만 그 내용 역시 개별 작품의 제목은 기록하지 않고 각 권의 별칭(別稱)과 문체만을 나열하였다. 권1부터 21까지는 모두 시(詩)이고, 권22부터 29까지는 문(文), 권30은 부록이다. 각 권의 문체와 작품 수를 정리하면, 권1_한계록(閑溪錄)_시79제, 권2_환성록(歡城錄)_시88제, 권3_해서록(海西錄)_시27제?오주록(吳州錄)_시20제, 권4_관동록(關東錄)_시71제, 권5_정관록(靜觀錄)_시61제, 권6_임영록(臨瀛錄)_시44제, 권7_한계후록(閑溪後錄)_시57제, 권8_응청록(凝淸錄)_시152제, 권9_정관후록(靜觀後錄)_시36제, 권10_금영록(錦營錄)_시63제, 권11_수성록(愁城錄)_시127제, 권12_관영록(關營錄)_시56제, 권13_낙동록(駱東錄)_시101제, 권14_연경록(燕京錄)?해영록(海營錄) 51제?15제, 권15_여강록(驪江錄)_시60제, 권16~21_성남록(城南錄)_시494제, 권22_교명문(敎命文)1?책문(冊文)3?표전(表箋)10?조고제(詔誥制)3?유교서(諭敎書)7?비답(批答)5?상량문(上樑文)4?권선문(勸善文)1?부(賦)4_총38편, 권23_서(序)9?발(跋)1?설(說)7?기(記)5?논(論)1?잠(箴)1?명(銘)1?전(傳)1_총26편, 권24_제문(祭文)23?책제(策題)5_총28편, 권25_소(疏) 30편, 권26_차(箚)3?계사(啓辭)1_총4편, 권27_묘갈명(墓碣銘) 19편, 권28_묘지명(墓誌銘) 6편, 29권_묘표(墓表)2?신도비명(神道碑銘)2?시장(諡狀)1_총5편, 권30_부록이다.
권21까지의 시는 창작 시기에 따라 수록되었다. 각 권의 별칭은 강백년이 거주했던 지역, 또는 지방관을 지냈던 지역과 관계된 경우가 보인다. 권2의 환성(歡城)은 충남 천안, 권6의 임영(臨瀛)은 강원도 강릉, 권15의 여강(驪江)은 경기도 여주이다. 권14의 연경록은 강백년이 청나라에 다녀올 때 지은 시를 모은 것이다. 경기도 파주(坡州)로 가면서 지은 시를 시작으로 연행 도중의 감회와 여정의 어려움을 읊거나 당시 정사(正使) 정치화(鄭致和), 서장관(書狀官) 권격(權格)의 시를 차운한 작품 등이 보인다. “옥하관에 머문 사흘, 10년을 보낸 듯하네.[三日玉河館, 已如經十年.]”라는 내용에서 사신으로서의 부담감과 이역에서의 괴로움이 느껴진다. 권16 이후의 성남록에는 만시(挽詩)가 대부분의 분량을 차지한다. 강백년의 시 가운데 38%가 만시라는 통계가 있을 정도로 《설봉유고》에는 만시가 많은데, 특히 성남록에 집중되었고, 친분이 강할수록 장편화 경향을 보인다. 강백년과 함께 소북팔문장으로 지칭되는 박수현(朴守玄)과 신유(申濡)의 어머니에 대한 만사도 수록되었다.
권22에는 세자 시절 숙종(肅宗)의 관례 때 지은 교명문과 왕세자빈 김씨를 맞아들일 때 지은 책문, 인선왕후(仁宣王后)와 현종(顯宗)의 시책문(諡冊文) 등 왕실에 관련된 글들이 다수 수록되었다. 국가적으로 중요한 이러한 글을 강백년이 지었다는 것은 그의 문장이 당시에 인정받았음을 보여주는 예라 하겠다.
권23은 태계(台溪) 하진(河?)과 후천(朽賤) 황종해(黃宗海)의 문집 서문을 비롯하여 여러 문체의 글을 수록하였다. 강백년은 《장자(莊子)》의 영향을 받은 인물로 언급되는데 소요유(逍遙遊)를 분석한 〈소요유설(逍遙遊說)〉은 그의 《장자》에 대한 이해를 보여주는 글이다.
권24은 대부분 제문(祭文)이다. 치제문(致祭文)도 다수 수록되었는데 그 대상 인물은 신경진(申景?), 심열(沈悅), 이목(李?), 심연(沈演), 이후원(李厚源), 유정량(柳廷亮), 여이재(呂爾載), 이만(李曼), 정효준(鄭孝俊) 등이다.
권25의 소장 30편은 대부분 사직소(辭職疏)이다. 사직의 이유로는 여타 사직소에서도 자주 소재로 등장하는 신병(身病)과 연로한 부모님을 들었다. 첫 번째 소장인 〈부교리 때에 숙직하며 올린 소장[副校理時在直廬疏]〉를 올리면서는 〈생을 기르고 마음을 기르는 법은 같은 법이라는 잠[養生養心同一法箴]〉을 함께 바쳤다. 1672년에 올린 〈대사간을 사직하며 소회를 진달한 소장[辭大司諫仍陳所懷疏]〉에서는 칠정(七情) 가운데 특히 분노[怒]가 다스리기 어렵다는 점을 전제하고 숙종이 음성과 안색에 노여움을 표출하여 화평(和平)이 부족하다는 점을 과감하게 지적하였다.
권27에는 강복성(康復誠), 조직(趙稷) 등의 묘갈명이, 권28에는 정효준(鄭孝俊), 여이량(呂爾亮) 등의 묘지명이, 권29에는 김탁(金琢), 맹세형(孟世衡)의 묘표(墓表)와 배흥립(裵興立), 정효준(鄭孝俊)의 신도비명, 윤경(尹絅)의 시장이 수록되었다.
권30 부록(附錄)에는 임상원(任相元)이 지은 강백년의 행장(行狀)과 묘갈명(墓碣銘)이 수록되어 강백년의 생애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정보를 제공한다. 교서(敎書)는 강백년이 충청?강원?황해?경기 감사에 임명될 때 내린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