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파식 낭만의 종말 (기득권이 된 해방자들에 대하여)
시미즈 다이치 | 부크크(bookk)
10,000원 | 20250414 | 9791141936105
좌파의 도덕성은 한때 대중에게 강력한 신뢰의 근거였다. “정의를 말하는 사람들”이라는 이미지가, 기성 질서의 부정의(不正義)를 비추는 거울처럼 작동했다. 그러나 현실 정치의 온갖 타협과 부패 속에서, 그 거울은 금이 가 버렸다. 좌파가 지녔던 윤리적 우위는, 구호만큼이나 현실에서도 구현되어야 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드러난 이중성은, “아니, 너희도 결국 다르지 않지 않은가”라는 냉소를 자초했다.
대중이 느끼는 배신감은 주로 사소한 삶의 장면에서 증폭된다. 세금과 교육, 주거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부패 스캔들에 이름이 오르는 순간, 좌파의 ‘도덕성’은 오히려 부정의 언어로 되돌아온다. 이념의 숭고함은 구체적 통치 기술이나 결과로 연결되지 않으면 공허하다. 그 공허를 메우지 못한 채, 낭만적 해방만을 외칠 때, 사람들은 등을 돌린다.
현대 자본주의는 도덕을 상품처럼 다룬다. 윤리나 정의를 외치는 목소리도, 시장의 광고판에 걸려 팔려나간다. 좌파의 도덕성이 더 이상 힘을 못 쓰는 것은, 이 낡은 기제가 이미 상품화되었다는 사실에 대한 자각 때문이다. 도덕을 말하면 말할수록, 오히려 그 발화가 ‘브랜딩’처럼 들린다. 소비자(대중)는 그 ‘브랜드’가 이미 신뢰를 상실했다고 판단한다.
또한, 도덕적 언어는 점점 더 복잡해진 세계와 충돌한다. 기술과 자본이 얽히는 AI·플랫폼 시대에, “무엇이 옳고 그른가”에 대한 질문은 훨씬 다층적이다. 좌파가 말하는 도덕이 예전처럼 단순히 권력 대 민중의 구도로 환원되지 않는다. 혼란스러운 지형에서, 도덕적 당위를 내세우는 일은 설명이 길어질 수밖에 없다. 대중은 그 길고 복잡한 이야기에 흥미를 잃는다.
한편, 극우나 포퓰리즘의 언어는 도덕 대신 분노와 적대를 앞세운다. 그 방식은 단순하고 빠르다. 좌파가 아직 “올바른” 해법을 찾겠다고 고민하는 사이, 극우는 “책임질 주범”을 지목하고 맹렬히 공격한다. 도덕이 아니라 감정이 몰려드는 대중정치에서는, 윤리적 우위가 의외로 무기력해진다.
결국, 좌파의 도덕성은 다시 태어날 필요가 있다. 그저 “우리는 정당하다”는 선언에 머물지 않고, 누가 보더라도 투명한 과정을 보여 줘야 한다. 강고한 자본과 권력의 내부를 해부하는 동시에, 대중이 겪는 일상의 모순을 즉각 해결하려는 실천이 필요하다. 거기서 실패하면, 도덕이라는 말은 다시 허망한 구호로 돌아간다. 그리고 대중은 또 한 번, 낭만과 도덕이 아니라 강인한 목소리를 찾아 떠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