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방정국, 분리와 통합의 정치: 한국과 오스트리아 (한국과 오스트리아)
김미경, 김용복, 구춘권, 김학노 | 백산서당
36,000원 | 20250910 | 9788973278664
이 책은 오스트리아와 한반도의 해방정국을 ‘분리-통합’의 관점에서 비교 분석한다. 분리-통합의 관점은 한반도 문제를 ‘분단-통일’이라는 개념 대신에 ‘분리-통합’의 개념으로 접근한다. ‘분단-통일’ 개념과 ‘분리-통합’ 개념은 크게 두 가지 점에서 차이가 있다. 첫째, 분단-통일과 달리 분리-통합은 가치중립적 개념이다. 분단-통일 개념은 ‘분단=비정상’, ‘통일=정상’이라는 전제를 바탕으로, 비정상에서 정상으로 가야 한다는 규범적 당위성을 가지고 있다. 반면에 분리-통합 개념은 ‘우리’ 외연의 축소와 확대를 각각 분리와 통합으로 볼 뿐, 어느 것이 더 좋다는 가치 판단을 배제한다. 둘째, 분단-통일과 달리 분리-통합은 일반론적 개념이다. ‘분단’을 어떻게 정의하든 분단국가는 특수사례다. 분단-통일 개념은 남북한 문제를 특수사례인 분단국가 문제로 본다. 반면에 분리-통합은 남북한 관계를 분단국에 국한된 특수한 문제로 보지 않고, 일반적인 분리와 통합의 사례로 본다. 분리-통합의 관점에서 볼 때 모든 나라와 집단의 역사는 분리와 통합을 반복하는 분합(分合)의 역사다(분리통합연구회 2014).
우리가 한반도와 오스트리아의 해방정국을 비교 분석하는 이유는 두 사례가 비슷한 상태에서 사뭇 상이한 경로로 나아갔기 때문이다. 1945년 해방 이후 한반도와 오스트리아 및 독일은 연합국에 의해서 분할점령된 점에서 비슷한 상황에 처했다. 독일과 한국이 각각 동과 서 및 남과 북으로 분단된 반면, 오스트리아는 하나의 통합된 국가를 수립했다. 분단-통일의 관점에서 그 동안 한반도와 독일의 비교 연구가 많이 수행되었다. 특히 분단의 원인과 과정의 문제보다 통일 과정과 방식에 대한 연구가 많았다. 반면 우리 학계에서 오스트리아에 대한 관심은 그리 많지 않았다. 다른 이유들도 있겠지만, 아마도 분단-통일이라는 특수론적 관점에서 볼 때 오스트리아가 분단국가라는 특수사례에 포함되지 않는 것이 한 가지 중요한 이유일 것이다. 이 책의 필자들은 연합국에 의한 분할점령이라는 비슷한 상황에서 한반도가 남북으로 분리된 반면 오스트리아는 분리되지 않고 통합을 유지하여 하나의 단일 국가를 수립한 이유와 과정을 알고 싶었다.
아울러 해방 후 한반도에는 남과 북 사이에 그리고 좌익과 우익 사이에 적대적 갈등이 극심했던 반면, 전간기(1차대전과 2차대전 사이) 좌우 사이의 적대적 대립이 극렬했던 오스트리아에서는 2차대전 이후 해방정국에서 좌우 정치세력이 서로 인정하고 공존하면서 타협과 협력의 정치를 전개했다. 한반도가 남북으로 적대적 분리가 되었다면, 오스트리아는 해방 후 좌우 정치세력 사이에 우호적 통합을 이루었다. 이 책에서 사용하는 용어로 표현하자면(1장 분석틀 참조), 한반도에서 남과 북으로 ‘홀로주체적 분리’가 일어난 반면, 오스트리아는 ‘서로주체적 통합’을 이루었다. 왜 비슷한 상황(연합국에 의한 분할점령)에서 상이한 결과(홀로주체적 분리 vs. 서로주체적 통합)가 나왔는가? 2차 대전 종전 후 연합국에 의해 분할점령된 점에서 오스트리아나 한국과 유사한 처지에 처했던 독일은 한국과 마찬가지로 분단되었다. 유사한 상황에서 독일과 한국이 ‘홀로주체적 분리’로 귀결된 반면, 오스트리아만이 ‘서로주체적 통합’으로 귀결되었다. 이 점에서 오스트리아는 대단히 흥미로운 사례다.
양동안(2007)은 한반도 분단의 ‘원인’으로 소련의 정책을 지목한다. 그에 따르면, 분단의 원인으로 제시되었던 많은 것들(ex., 국내외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했다고 보는 복합론, 미국책임론, 미소공동책임론 등)이 모두 정확한 원인이 아니다. 그는 ‘한반도 분단의 원인’을 “한반도라는 영토 위에서 장기간 단일한 통치체에 의해 통치되던 정치단위가 두 개의 주권적 정치단위로 분열되고 그들이 한반도를 분할 지배하게 되는 사태를 초래하는 데 필연적・우선적 작용을 했던 요인(들)”로 정의한다(양동안 2007, 144). 그는 마치 법의학에서 ‘사인(死因)’을 밝히듯이 분단의 원인을 구명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누군가 죽었을 때 죽음이라는 “결과에 대해 충분조건이 되면서, 동시에 우선적으로 작용한 요인”만을 사인으로 보듯이(양동안 2007, 142), 남북한이 갈라지게끔 되는 데 “치명적인 작용”을 한 결정적인 요인을 분단의 원인으로 봐야 한다는 주장이다.
과연 무엇이 한반도 분단의 결정적 요인인지에 대한 (각자의 관점에 따라) 상이한 판단은 차치하고, 이 책의 필자들은 일어난 것 못지않게 일어나지 않은 것도 중요한 원인일 수 있다고 본다. 다르게 표현하면, 누군가가 한 행동 못지않게 ‘하지 않은’ 일이 중요한 원인일 수도 있다는 것이다(김학노 2018, 444-449). 양동안의 ‘사인’ 비유에 빗대어 말하자면, 어떤 질병이나 장애가 결정적 사인이라면 그것을 치료하지 않고 방치한 것도 죽음에 이르게 한 주요 요인이 될 수 있다. 미국과 소련, 군정 등 다양한 정치세력들이 행한 일이 분단의 원인일 수 있지만, 그것을 적극적으로 막거나 극복하려는 행동을 하지 않은 것이 또 다른 중요한 원인일 수 있다.
그러나, 하지 않은 것이 중요할 수 있지만, ‘하지 않은 것’은 무한히 많다. 우리가 하지 않은 것들을 모두 생각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우리가 하지 않은 무수히 많은 것들 중에서 어떤 것이 중요한 것인지 알 수 있는 방법이 있을까? 한 가지 방법은 유사사례의 비교분석이다. 유사하지만 중요한 차이가 있는 사례와의 비교를 통해서 우리가 하지 않은 것 중에서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포착할 수 있다.
오스트리아와의 비교를 통해 이 글은 해방정국 한국에서 필요했지만 가지 않은 길, 혹은 가지 못한 길, 그래서 한반도의 분단을 막지 못한 주된 요인으로 통일된 단일 임시정부 수립 문제에 주목한다. 이는 오스트리아를 ‘중립화 통일’의 모델로 보았던 우리 학계의 기존 시각과 차이가 있다. 오스트리아는 해방정국 초기에 단일 임시정부를 수립하고 이를 바탕으로 조속한 총선거를 실시하여 통합된 국가를 수립하였다. 반면에 한반도에서는 해방정국 초기에 단일한 임시정부를 수립하는 데 실패했다. 오스트리아에서 하나의 정치적 구심점을 형성한 반면 한반도에서는 단일한 정치적 구심점을 구축하는 데 실패한 것이다. 단일 임시정부의 수립 문제야말로 오스트리아와 한반도의 경로를 나누는 가름목이었다. 이 시각에서 볼 때 중립화는 오스트리아 통일의 원인이기보다는 오히려 결과에 해당한다. 이 같은 문제의식에서 이 책은 임시정부 수립 문제에 초점을 두고 오스트리아와 한반도의 해방정국을 비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