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 없는 그 자리 (화두 물음시)
성운 | 부크크(bookk)
15,400원 | 20250915 | 9791112054609
《말 없는 그 자리》는 우리가 흔히 지나쳐 버린 순간들 속에서, 말보다 먼저 깨어나는 감각과 고요를 다시 불러내는 책이다. 언어로 설명하려 하면 본질에 닿지 못하고 미끄러져 버리는 것들―시간의 흐름, 존재의 떨림, 고요의 깊이―을 붙잡아, 깊은 사유를 통해 그것의 본질을 풀어내고자 한다. 이 책은 독자에게 해답보다는 질문을 건넨다. “시간은 흐르는가, 흐르지 않는가”, “고요는 멈춤인가, 흐름인가”와 같은 물음은 단순한 철학적 사유가 아니라, 우리가 놓쳤던 감각과 마주하게 만드는 화두이다. 말이 다다르지 못하는 곳에서 오히려 더 선명히 들려오는 울림, 언어가 사라진 자리에서 피어나는 진심을 경험할 수 있다. 이 책을 경험하는 것은 독서라기보다는 명상에 가깝다. 고요는 정지가 아니라 새로운 생명이 태어나는 자리임을, 말 없는 순간이야말로 우리 안의 감각을 가장 깊이 흔드는 순간임을 깨닫게 된다. 바쁜 일상에 잠시 멈춤을 선물하고, 우리 각자 안에 숨어 있던 고요와 울림의 가치를 다시 깨우치는 여정이다.
<서평>
《말 없는 그 자리》는 언어로 온전히 담을 수 없는 세계, 즉 말 이전의 감각과 떨림을 기록하려는 화두 시집이라고 할 수 있다. 책장을 펼치면 ‘시간은 흐르는가, 흐르지 않는가?’, ‘고요는 멈춤인가, 흐름인가?’ 같은 질문들이 이어진다. 이들은 고요한 파문처럼 일렁이며 존재의 진면목을 탐구하도록 독자의 마음을 이끈다.
결코 쉽게 읽히지 않고, 다소 추상적인 문장들이지만 곱씹을수록 마치 명상에 잠긴 듯, 말이 닿지 않는 깊은 울림이 뇌리에 스미는 경험을 하게 된다. 난해한 첫인상과 달리, 어느 순간 시구들이 내 안에서 묘하게 살아 움직여 시나브로 매료되었다.
이 책이 주로 탐구하고자 하는 것은 ‘말 이전의 진실’이다. 저자는 언어로 규정되기 전의 떨림, 즉 감각과 고요에서 비롯되는 생명의 리듬을 포착하려 한다. 시편에서는 반복과 대구, 짧은 문장과 여백을 활용해 마치 화두를 읊듯 리듬감을 만든다. 산문 부분의 초점은 대상과 현상에 대한 ‘설명’이 아닌 ‘느낌’을 전하려는 데 초점이 있다. 독자가 해답을 찾기보다는 스스로 질문이 되도록 유도한다는 점에서 전작(前作)인 간화선의 핵심과도 연결되어 있다.
말과 언어에 대한 무모한 신뢰를 내려놓고, 고요와 침묵의 가치를 재발견하고자 하는 이 책의 시도는 오늘날의 소음 가득한 시대와 맞닿아 있다. 수많은 정보와 언어가 쏟아지는 시대에, 오히려 말 없는 자리에서 더 진실한 만남과 울림이 가능하다는 메시지는 현대 사회에 대한 비판적 성찰을 품고 있다. 또한 간화선과 불교적 전통을 바탕으로 하면서도, 뇌 과학이나 우주론적 은유를 끌어와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점에서도 이 책은 전통과 현대, 인문학과 과학의 영역을 넘나든다.
이 책의 가장 큰 매력은 ‘말 없는 자리’를 탐구하는 방식이다. 저자는 설명하려 들지 않고, 오히려 설명이 불가능한 자리를 붙잡으려 한다. 읽는 동안 나는 자꾸만 ‘이건 무슨 뜻일까?’ 하고 머리로 해석하려다가, 곧 ‘굳이 이해할 필요가 없구나’ 하고 멈추기로 했다. 마치 깊은 산길을 걷다 발걸음을 멈추고 바람을 온전히 느끼는 순간처럼, 책을 이해하기보다는 느껴 보려 노력했다.
본문은 15개의 장으로 나뉘어, 시간, 고요, 언어, 존재, 감각, 기억, 우주라는 키워드를 중심으로 시편과 산문을 오가며 독자에게 질문을 던진다. 각 장은 “최초의 시간은 어디에서 왔는가?”, “침묵은 우주의 첫 번째 언어인가?”처럼 화두와도 같은 물음으로 시작한다. 독자는 저자의 사유를 따라가며, 설명되지 않는 세계를 함께 느끼게 된다.
이 책은 끊임없이 ‘말 이전의 세계’를 상기시킨다. 언어로 정의하고 설명하는 데 익숙한 우리에게, 말이 끝난 자리에서 더 진실한 울림이 들린다고 일깨운다. 실제로 나는 ‘말하지 않아도 전해지는 진심’이라는 구절을 읽으며, 누군가와 나눈 눈빛이나 침묵 속의 온기를 떠올렸다. 말이 사라진 자리에서 오히려 더 깊이 이어지는 관계는 누구나 경험해 보았음 직하다.
무엇보다 인상 깊었던 건, 저자가 보여 는 ‘고요의 다채로운 얼굴’이다. 흔히 고요라 하면 멈춤이나 정적을 떠올리지만, 여기서의 고요는 가장 깊은 움직임이 깃든 자리다. 바람이 멎었는데 나뭇잎이 떨리고, 소리가 사라진 순간 오히려 더 큰 울림이 들린다고 말할 때, 나는 그 문장의 의미를 감각해 보고자 했다. 고요가 단순한 정적이 아니라 새로운 생명의 시작이라는 발상은 마음속에 가장 또렷이 새겨졌다.
결국 《말 없는 그 자리》는 해답을 주는 책이 아니다. 대신 수많은 질문을 던지며 독자가 스스로 흔들리고 깨어나도록 만든다. 이 책은 읽는다는 느낌보다는 생각의 고리를 끊임없이 제시해 주는 끝 없는 사유의 길과도 같았다. 이 독특한 감각이야말로 이 책의 본질이자 가장 큰 매력이라고 생각한다.
이 책은 쉽지 않다. 무언가 분명히 잡히지도 않는다. 그러므로 직설적인 메시지나 속 시원한 해답을 기대하며 읽기에 안성맞춤은 아닐 수도 있다. 하지만 천천히 호흡하며 읽다 보면, 오히려 그 모호함과 여백이 매력적이다. 나는 특히 “말하지 않아도 전해지는 진심”, “비워야만 들어오는 충만한 숨결” 같은 구절에서 오래 머물렀다. 이 책은 내게 ‘말’보다 ‘느낌’ 그리고 ‘감각’이 먼저임을 일깨워 주었다.
시구는 밤에 조용히 불 끄고 몇 장씩 읽을 때 가장 잘 와닿았다. 언어로 다 담아내지 못한 내 감각과도 연결되며, 마치 나 스스로가 하나의 물음으로 가득 차오르는 듯했다. 시구를 곱씹고 음미하며 문장의 진면목이 우러나올 때까지 따라가다 보면 ‘우주적 고요 속에서 나 자신을 만나는 경험’을 선사한다.
결국 이 책은 단순히 시집이 아니라, 내 안의 감각을 깨우는 일종의 수행의 기록이었다. 그리고 그 수행은 ‘말 없는 그 자리’에서, 이미 우리 안에 조용히 살아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게 만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