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톰 키퍼와 파도의 전사들
캐서린 도일 | 비룡소
15,070원 | 20250901 | 9788949141770
스톰 키퍼_날씨를 기록하는 자
「스톰 키퍼」 시리즈(전 3권)가 비룡소에서 출간되었다. 오랜만에 만나는 장편 판타지로, 신비로운 기운이 가득한 섬마을과 바다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모험을 그렸다. ‘마법’ 그리고 ‘성장’이라는 익숙한 키워드에 ‘기억이 저장된 양초에 불을 붙여 시간의 층으로 이동한다’라는 유니크한 상상을 더해 설렘을 안겨 준다.
책의 두께도 내용도 가벼움을 선호하는 요즘, 300페이지를 훌쩍 넘는 책 세 권이 독자들에게 쉽지 않은 도전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어린이가 의자에서 엉덩이를 떼지 못하게 할 책.’이라 단언한 《텔레그래프》의 리뷰가 말해 주듯, 판타지를 좋아하는 독자라면 푹 빠져들어 손에서 놓지 않을 이야기이다. 판타지 팬이 아니더라도 ‘만나기만 하면 투닥거리는 현실 남매, 마리오 카트와 마인 크래프트가 일상인 아이들’이 이끌어 가는 이 이야기에 충분히 공감하며 함께할 수 있을 것이다.
여름 방학을 맞아 피온은 누나 타라와 함께 할아버지가 사는 애런모어섬에 간다. 피온이 할아버지를 만나는 건 이번이 처음이다. 피온이 태어나기 전 아빠가 애런모어 바다에서 목숨을 잃자, 슬픔을 이기지 못한 엄마는 타라와 뱃속의 피온을 데리고 육지로 떠난 뒤 지금껏 한 번도 귀향하지 않았다.
피온은 섬이 나타나기를 기다렸다. 피온이 지금보다 어릴 때 엄마가 촉촉해진 눈에 아련한 눈빛을 담고 말하던 섬. 그 섬은 아름다운 곳이었다. 하지만 오래전 바다에 빼앗긴 아빠에 대한 추억 말고는 아무것도 없는 슬프고 용서할 수 없는 곳이기도 했다. 확실한 것은 애런모어섬이 늘 엄마를 따라다닌다는 것이었다. 피온은 그것이 좋은 일인지 나쁜 일인지 가늠이 되지 않았다. 다만, 장소도 사람만큼이나 중요하다는 건 알고 있었다. 우리가 허용한다면 장소도 얼마든지 우리에게 힘을 미칠 수 있었다. _본문에서
할아버지의 집엔 구석구석 선반이 들어차 있고 선반마다 양초가 가득 들어차 있다. 양초 만드는 일을 하는 할아버지는 젊을 땐 구조선에서 일했다. 역시 구조대원이었던 아빠는 혼자 바다로 나갔다가 목숨을 잃었다.
갖가지 색깔과 모양의 양초에는 ‘가을 소나기’, ‘1982년 만조’, ‘2009년 8월 오렌지빛 석양’, 자유를 뜻하는 ‘시어셔’, ‘옛날 옛날에’를 뜻하는 ‘파도 파도’ 등 알 수 없는 이름이 붙어 있다. 할아버지가 만든 것도 있고, 아주 오래전부터 만들어진 것도 있다. 양초에는 섬의 기억, 그날의 날씨가 담겨 있다. 애런모어섬은 수많은 시간의 ‘층’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양초에 불을 켜면 그 기억이 담긴 층으로 갈 수 있다. (불을 끄면 현재로 돌아오되, 불을 끄기 직전에 있던 위치로 온다.)
“양초에 불을 붙이기만 하면 바람이 양초에 담긴 시간으로 데려가 준단다. 우린 그냥 따라가기만 하면 돼.” _본문에서
“미안하다, 피온. 네가 그 양초를 켤 줄은 몰랐어. 아무거나 하나는 켤지 모른다는 생각은 했지. 그런데 그걸 켤 줄이야. 대체 그걸 어디서 찾았는지, 원.”
(중략)
“어젯밤에 바닷가에서 할아버지를 봤어요. 그런데 할아버지는 집에 있었어요. 잠들어 계셨죠. 그리고 바다에서 엄마를 봤어요. 하지만 엄마는 더블린 집에 있잖아요.”
순간 할아버지의 눈이 반짝거렸다. 피온은 태양이 비쳐 반짝거리는 그 눈동자가 무얼 말하는지 알고 있었다. 그것은 경이로움이 었다.
“네 엄마가 언제나 거기 있는 건 아니야, 피온. 나도 늘 여기 있는 게 아니고.”
(중략)
“피온, 이 섬은 여러 층으로 이루어져 있단다. 앞서 흘러간 모든 시간들로 말이다. 어젯밤 그 양초를 켰을 때, 넌 다른 층을 선택해 들어간 거야. 그사이에 이쪽 층을 잃었던 거고.” (중략)
“아주 단순한 거야.”
“이제껏 들어 본 말 중에 가장 복잡한데요.” _본문에서
섬으로 오는 배에서 타라는 ‘애런모어는 비밀이 있는 신비로운 섬’이라고 했다. 고대 마법사 다그다가 남긴 마법으로 가득한 이곳에서는 ‘소원을 들어주는 동굴’에 대해 아무렇지 않게 이야기하고, 땅바닥에서 난데없이 꽃이 피어나는 걸 예사롭게 받아들인다. 그러니 시간을 이동할 수 있는 양초는 놀랄 일도 아니다. 이 섬, 애런모어는 살아 있고, 모든 걸 기억하며, 의지를 가진 섬이었다. 섬은 대대로 ‘스톰 키퍼’를 선택하고, 마법사 다그다가 물려준 힘으로 애런모어를 지키게 한다. 지금의 스톰 키퍼는 바로 피온의 할아버지 말라키 보일. 양초에 기억을 담는 것도 스톰 키퍼의 역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