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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8년"(으)로 9개의 도서가 검색 되었습니다.
9791168873179

조선미술전람회도록 17: 1938년 (1938년)

조선총독부  | 한국학자료원
90,000원  | 20230515  | 9791168873179
일제 강점기에 조선총독부가 개최한 미술 작품 공모전. 조선미술전람회를 통하여 성장한 작가들은 광복 이후 우리나라 미술계의 지도적 인물이 되어 한국 현대 미술의 전개에 중추적 구실을 하였다. 따라서 조선미술전람회는 비록 우리나라 근대 미술의 자율적 성장을 위축시켰다고 하더라도 작가 활동의 기반 조성에 따른 화단의 활성화에 기여한 점은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약칭으로 ‘선전(鮮展)’ 또는 '조선미전(朝鮮美展)'이라 부른다. 1922년부터 1944년까지 23회를 거듭하였다. 관전(官展)주1 형식의 권위 주위로 한국 근대 미술 전개에 매우 큰 영향을 미쳤다. 조선총독부의 이른바 문치 정책의 하나로 창설되어 많은 미술가들을 배출, 성장하게 하는 등 작가 활동의 기반 조성에 기여한 바도 있다. 하지만 한국 근대 미술의 일본화에 촉진적 구실을 함으로써 화단을 일본화(日本畵)의 영향으로 물들게 하였다. 전람회의 창설은 1921년 10월 28일 개최 취지를 발표한데 이어 같은 해 12월 27일 당시 김돈희(金敦熙), 정대유(丁大有), 이도영(李道榮), 김규진(金圭鎭) 등의 서화계 인사를 총독부로 초청하여 이에 관한 의견 교환회를 가짐으로써 구체화되었다. 여기서 전람회의 명칭이 조선미술전람회로 정해졌다. 공모 부문은 제1부 동양화, 제2부 서양화 및 조각, 제3부 서예의 3개의 부로, 제1회 전람회를 1922년 봄에 열기로 하는 등의 시안이 마련되었다. 공모 부문에 있어서 서양화 및 조각을 독립되게 설정한 것은 우리나라 미술의 근대화에 뜻깊은 의의를 지닌다. 하지만 전통 회화를 동양화로 명명한 것은 한국 전통 회화의 타율적 전개를 반영하는 불투명한 용어로서 오늘날까지 사용하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전람회의 운영 제도는 그 당시 일본의 가장 큰 관전이었던 제전(帝展)으로 약칭되는 제국미술원전람회(帝國美術院展覽會展)의 체제를 따라 공모 심사의 입선 · 낙선제 및 시상제를 채택하였다. ‘조선미술전람회규정’에 의하면, 조선의 미술을 장려, 발전시키기 위한다는 취지하에 ① 매년 한 번씩의 개최 횟수와 공모 부문, 출품 및 무감사(無監査)의 한계, 그리고 출품시의 운송비와 보관상의 책임 소재, 출품된 작품에 대한 투영 묘사 등의 규제, ② 출품에 관한 사항을 10개 조항으로 나누어 1인당 2점 이내의 출품 작품수의 제한과 작품의 크기, 출품할 수 없는 작품의 한계와 출품과 반출상의 주의할 점 등의 규정, ③ 감사 및 심사에 관한 사항으로, 각각 위원의 과반수 출석과 출석 위원 과반수의 동의에 의하여 제반 사항을 결정하되 심사의 등급을 1∼4등으로 나누어 결정, ④ 포상에 관한 규정, ⑤ 출품작에 대한 매매시의 계약 방법과 대금 지불 방법, 폐회 후의 반출 방법의 명시, ⑥ 관람 시간과 관람시의 주의 사항 등이 명시되어 있다. 이와 같은 규정은 전람회가 1944년 제23회로 막을 내릴 때까지 6차의 부분적인 운영 제도에 대한 개정이 있었다. 1924년 제3회 전람회의 개막 전에 첫 번째의 부분적인 개정이 있었는데, 제1부의 동양화부에 속해 있던 사군자(四君子)주2를 제3부인 서예부로 옮겼다. 1926년의 제5회 전람회에서는 1등에서 4등까지 등급으로 나누어졌던 시상 제도를 특선제로 바꾸었고, 특선자의 무감사 폭을 넓혀 놓았다. 그리고 평의원주3의 자격이 조선총독부 관리로 한정되어 있던 것을 조선 미술에 공이 있는 자로 바꾸었다. 조선미술전람회에서 여러 번 특선한 사람 중에서 총독이 위촉하는 참여 제도의 항목이 추가되었다. 제7회 전람회가 열렸던 1928년에는 출품 자격에 관하여 부분적인 개정이 있었다. 한국에 본적이 있는 자 또는 전람회 개회 때까지 6개월 이상 거주한 자로 출품 자격이 제한되었다. 단, 계속해서 3회 이상 입상 또는 특선한 자는 이 제한을 받지 않게 하였다. 1932년의 제11회 전람회부터는 서예 부분을 없애고 사군자는 동양화부로 합치게 함으로써 전통서화 부문을 축소시켰다. 그 대신 공예부를 신설하였다. 1936년 제15회 전람회에서는 추천 제도가 신설되었다. 이 제도에 의하여 추천 작가는 전람회 초기부터 출품하여 특선을 계속한 사람으로 동양화부와 서양화부에 각각 5명씩, 그리고 공예부에 3명을 두되, 심사 위원장의 추천에 의하여 계속 무감사 진열의 특혜를 받게 하였다. 이 때 한국인으로서 추천된 자는 동양화부에 제4회 전람회(1925년) 이후 연속 특선의 기록을 세운 이상범(李象範)과 역시 특선을 거듭한 이영일(李英一) 두 사람이었다. 1937년의 제16회 전람회부터는 다시 참여 작가 제도가 실행되었다. 그에 따라 한국인으로는 김은호(金殷鎬)가 맨 먼저 참여 작가에 오르고, 다음 해에는 이상범이 두 번째로 참여 작가가 되었다. 이와 같은 조선미술전람회의 체제와 규정은 광복 이후 창설된 대한민국미술전람회(약칭 국전)에서도 그대로 답습되었다. 조선미술전람회가 23회를 거듭하는 동안에 많은 작가들이 이 전람회를 통하여 배출되고 성장하였다. 특선 이상의 대표적 작가들의 면모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우선 동양화부를 보면, 1922년 제1회전 때 허백련(許百鍊, 추경산수도, 2등상), 김은호(미인승무도, 4등상), 이용우(李用雨, 고성춘심도, 4등상), 김용진(金容鎭, 묵란, 4등상) 등이 입상하였다. 제2회전(1923)에서는 노수현(盧壽鉉)의 「귀초(歸樵)」와 허백련의 「추산모애(秋山暮靄)」가 각각 3등상을 받았으며, 제3회전(1924) 때는 이한복(李漢福, 엉겅퀴, 2등상), 김은호(부활후, 3등상), 변관식(卞寬植, 가을, 4등상)이 각각 입상하였다. 제4회전(1925)에서는 이상범, 이영일이 3등상을, 변관식이 「추산모연도(秋山暮煙圖)」로 4등상을 받았다. 그리고 제5회전(1926)에서 제8회전(1929)까지는 이상범이 계속 특선을 하였고, 노수현(5회전), 이영일(6 · 7회전), 김은호(6 · 7회전), 허백련(6회전), 변관식(8회전), 최우석(崔禹錫, 6회전)도 특선을 하였다. 제9회전(1930)에서 박승무(朴勝武)의 「만추도(晩秋圖)」가 처음 특선되었고, 이상범, 이영일, 최우석이 연속 특선을 하였다. 제10회전(1931) 때 이응노(李應魯)가 「청죽(晴竹)」으로 처음 특선하였고, 이상범의 「한교도(閑郊圖)」와 「귀초도」 두 점이 특선되기도 하였다. 제11회전(1932)에서는 이상범과 백윤문(白潤文)이, 제12회전 때는 이상범과 이용우가, 제13회전(1934)에는 이상범과 백윤문이 특선하였다. 이상범은 연속 특선으로 제14회전(1935)부터는 추천 작가가 되었다. 제14회전부터는 신진 작가들의 진출이 더욱 두드러지게 나타나기 시작하였다. 정찬영(鄭燦英)이 「소녀」로 특선하였다. 제15회전(1936)에서는 김중현(金重鉉)이 「춘양도(春陽圖)」로 특선하였고, 이 때 백윤문도 같이 특선하였다. 제16회전(1937)부터는 김은호가 추천되어 참여 작가가 되었으며, 이 때 김기창(金基昶)이 「고담(古談)」으로, 박원수(朴元壽)가 「만추(晩秋)」로 처음 특선하였다. 제17회전(1938)에서 김기창이 「하일(夏日)」로, 심은택(沈銀澤)이 「정교(靜郊)」로, 그리고 제18회전(1939)에서는 김기창이 「고완(古翫)」으로, 이응노가 「황량(荒凉)」으로, 이용우가 「하정(夏汀)」으로 각각 특선하였다. 1940년의 제19회전에서는 김기창이 「여일(麗日)」로, 최근배(崔根培)가 「봉선화」로, 정종여(鄭鍾汝)가 「석굴암의 아침」으로, 1941년의 제20회전(1941)에서는 김기창이 연속 특선으로 추천 작가가 되었다. 장우성(張遇聖)과 정말조(鄭末朝)가 「푸른 전승」과 「여(旅)」로 처음 특선을 하였다. 제21회전(1942) 때는 장우성, 정말조, 조중현(趙重顯)이, 제22회전(1943)에는 장우성, 정말조, 박내현(朴崍賢)이, 그리고 마지막회인 23회전(1944)에서는 장우성, 이유태(李惟台), 정말조, 조중현, 허건(許楗)이 특선을 하였다. 이밖에도 1935년경부터 진출하기 시작한 신진 작가로 배렴(裵濂), 박생광(朴生光), 김영기(金永基), 천경자(千鏡子) 등을 들 수 있다. 이들은 대부분이 김은호와 이상범의 제자들로서 조선미술전람회를 통하여 배출되고 성장하여 한국 현대 화단의 전통 회화를 주도하는 대표적인 작가들이 되었다. 서양화 부문에서도 박수근(朴壽根), 박영선(朴泳善), 이마동(李馬銅), 이봉상(李鳳商), 이인성(李仁星), 김인승(金仁承), 심형구(沈亨求) 등이 이 전람회를 통하여 성장하면서 한국 서양화단의 선구를 이루었다. 조각 부문은 제4회전(1925) 때 처음 신설되어 김복진(金復鎭)이 3등으로 입상하였고, 제5회전 때 역시 김복진이 특선하였으며, 제6회전 때는 구본웅(具本雄)이 「목의 습작」으로 특선하였다. 제16회전에서 김복진이 「나부」로 다시 특선하였고, 제17회전 때 김복진은 무감사로 출품하였다. 제22회전 때 김경승(金景承)이 추천 작가가 되었고, 조규봉(曺圭奉)과 윤효중(尹孝重)도 특선을 하였다. 그리고 이 밖에 윤승욱(尹承旭), 이국전(李國銓)도 이 전람회를 통하여 성장하였다. 1932년(제11회)에 신설된 공예부에서는 응모수 95점에 입선수가 56점이었는데, 그 중 한국인의 작품은 6점이었다. 이 때 이남이(李男伊)가 우리나라의 전통적인 촛대 형식에 촛불 대신 전기를 켤 수 있는 「플로아 스탠드」로 특선하였다. 제12회전 때는 강창규(姜昌奎)가 동경에서 공예를 전공한 후 귀국하여 처음 특선한 이래 제13 · 16 · 17 · 18 · 19회전에서 특선하여 우리나라 공예계의 대표적인 작가가 되었다. 그리고 이 밖에 장기명(張基命) 등도 이 전람회를 통하여 작가로서의 발판을 굳혔다. 출처: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9788981204143

이선휘 회고록 (대한민국 1938년생)

이선휘  | 새로운사람들
10,800원  | 20091127  | 9788981204143
격동의 한국 근현대사를 살아간 한 사람의 일대기 1938년, 당시 한국은 일본의 식민지로써 일본의 병참기지 역할을 했다. 한창 일본이 대륙 진출의 야욕을 드러내며 제국으로 변모를 꾀하던 때였다. 이후 한국은 일본제국주의로부터 해방이 되었지만 곧 한국전쟁을 겪었고 4·19, 5·16 등 굴직한 역사적 사건이 일어났다. 오랜 군사정권과 이후의 절차적 민주화 등 한국의 근현대사는 굴곡의 연속이었다. 『이선휘 회고록』은 이러한 한국 근현대사를 살아간 한 사람이 써 내려간 회고록이다.
9791168879225

그리스도 중심의 신앙생활 1937년~1938년

신앙생활사  | 한국학자료원
180,000원  | 20250110  | 9791168879225
1931년에, 신앙생활사에서 김인서가 복음 신앙, 영화 운동, 인화주의의 3대 강령을 문서로 전하기 위하여 발행한 개신교 월간 잡지. 김인서(金麟瑞)가 개인적으로 발행한 종교지이다. 1931년 11월 평양에서 창간하여, 1941년 5월에 정간, 그 뒤 1951년부산에서 속간, 발행하다가 1956년에 폐간되었다. 국판 40면 내외의 월간으로, 2개월 합병호의 경우가 많았지만, 개인잡지로서는 가장 오래된 간행물로, 전부 합쳐 129권이 되는데, 1973년에 정인영(鄭寅暎)이 전 6권으로 묶어 『김인서저작전집(金麟瑞著作全集)』으로 다시 간행하였다. 발간목적은 복음신앙·영화운동(靈化運動)·인화주의(人和主義)의 3대강령을 문서로써 전하려 함이라 하였고, 형식주의의 초월, 그리스도의 실체(實體)에의 직속(直屬), 성령의 지시와의 직접(直接), 십자가 아래 정립(正立)한 신앙의 사실에 충실할 것을 편집지침으로 하였다. 편집체재는 대개 권두언에 이어 밀실의 영음(靈音)이라 하여 기도문이 있고, 다음에 논설과 성서주석 및 연구, 설교, 사기(史記), 그리고 강단예화(講壇例話), 마지막에 후기(後記)와 같은 형식으로 평양지편언(平壤之片言)과 같은 시보(時報)가 실려 있는데, 이 시보는 특히 사료로서의 가치가 있는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이 잡지의 특징은 교권주의에 대한 저지운동, 종파주의에 대한 반발, 신령 주의적 분파운동, 분파적 교회분열에 대한 예리한 분석 비판을 가하면서, 그리스도 중심의 일치론을 교회론의 기반에서 주장하고, 아울러 민족단합의 동력과 그 이상으로서의 교회의 민족 복음화적 사명을 강조함으로써, 민족주의적 교회론이 이 간행물의 주류를 이루었다는 평을 듣고 있다.
9791168871441

삼천리문학 (1938년 1월 1일자로 창간된 순문예지 영인본)

김동환  | 한국학자료원
108,000원  | 20220812  | 9791168871441
1938년에 창간되었던 격월간문예잡지. 《삼천리문학(三千里文學)》은 1938년 1월 1일자로 창간된 순문예지인데, 그해 4월 제2호를 발행하고는 더 속간되지 못했다. 판권장을 보면, 편집 겸 발행인 김동환(金東煥), 인쇄인 김현도(金顯道), 인쇄소 대동(大東)인쇄소, 발행소 삼천리사(서울·종로 2가 91), A5판 262면, 정가 50전이다. 일제하의 대중잡지 중에서 가장 성공한 잡지로는 누구나 《삼천리》를 꼽는다. 그 《삼천리》가 나온 지 10주년을 기념하여, 그때까지는 보기 드문 260면이 넘는 순문예지 《삼천리문학》을 내놓았다. 발행인 김동환은 〈소설과 시의 길〉이라는 창간사를 띄웠다. 이 잡지는 아직 30에 닿지 아니한 젊은 두 여류, 즉 시인 모윤숙(毛允淑 1910~1990, 호 영운(嶺雲))과 소설가 최정희(崔貞熙 1912~1990, 호 담인(淡人))의 솜씨로 편집되었다. 그러면서 최정희는 소설 〈정적기(靜寂記)〉를 발표했고, 모윤숙은 산문시 〈미인송(美人頌)〉을 내놓았다.
9788941295280

셩경개역(1938년)(H83S)(영인본) (120주년 기념한정판)

대한성서공회  | 대한성서공회
21,420원  | 20151124  | 9788941295280
『셩경개역(1938년)(H83S)(영인본)』는 대한성서공회 창립 120주년을 기념하여, 1938년 9월 3일 경성에서 출판된 본 공회 소장본 [셩경 개역]을 영인하였습니다. 다만 본 공회 소장본 에는 속 표제지가 없고 책 등의 표제가 분명하지 않아서 그 후에 제작된 1938년판 다른 책에서 속 표제지 와 책 등의 표제를 확인하여 복구하여 제작하였습니다. ▶ 도서 내지에 표기된 견본(Sample)문구는 파본이 아님을 알려드립니다.
6000461444

1935년 조선 직할하천 공사 연보 (1938년)

조선총독부  | 국토해양부
0원  | 20101217  | 6000461444
9788957868706

조선 신극의 기치 극예술연구회 2-2 (1930년대 후반기 극예술연구회 공연사와 공연 미학 (1936년 7월~1938년 3월))

김남석  | 연극과인간
22,500원  | 20231231  | 9788957868706
이 책은 조선시대 극 예술연구회의 역사에 대해 담고 있다.
9791168872943

박문 (1938년 최영주가 문인을 비롯한 각계 인사의 수필지로서 창간한 잡지)

최영주  | 한국학자료원
270,000원  | 20230505  | 9791168872943
1938년 최영주가 문인을 비롯한 각계 인사의 수필지로서 창간한 잡지. 수필잡지·월간지. 1938년 10월 창간하여 1941년 1월 통권 제23호로 종간된 우리나라 최초의 수필지이다. 편집 겸 발행인은 최영주(崔泳柱)이다. A5판 30면에서 50면 내외로 박문서관(博文書館)에서 발행하였다. 발간사에 “『박문』은 조고만 잡지이나, 이 잡지는 박문서관 기관지인 동시에 각계 인사의 수필지로서 탄생된 것이다. 이 잡지의 사명이 점점 커지는 때에는 이 잡지 자신도 점점 자라갈 것입니다. 우리는 이 조고만 책이 점점 자라나서 반도(半島) 출판계에 큰 자리를 차지할 때가 속히 오기를 기다립니다. 그리고 앞으로 더욱 이 지면을 광채 있게 꾸며갈 것을 여러분께 약속합니다.”라고 쓰여 있듯이 상업 기관지면서 순수한 수필지였다. 집필진은 문인을 비롯 화가·음악가·종교가·학자·의사 등 다양하며, 자기 출판 광고가 특징적이다. 수록된 작품으로는 이태준(李泰俊)의 「작품애(作品愛)」, 김남천(金南天)의 「독서」, 이희승(李熙昇)의 「청추수제(淸秋數題)」(이상 제1호), 김안서(金岸曙)의 「신변잡화(身邊雜話)」, 김동인(金東仁)의 「춘원(春園)과 사랑」, 이효석(李孝石)의 「낙랑다방기(樂浪茶房記)」(이상 제2호) 등이 실려 있다. 그리고 노천명(盧天命)의 「눈오는 밤」, 양주동(梁柱東)의 「나의 서재(書齋)」, 이희승의 「‘소설(小說)’과 ‘얘기책’」(이상 제5호), 손진태(孫晋泰)의 「지게」, 김광섭(金珖燮)의 「감상(感想)」 (이상 제6호), 한설야(韓雪野)의 「평가(評家)와 여인(女人)」, 박태원(朴泰遠)의 「항간잡필(巷間雜筆)」(이상 제11호), 김남천의 「무전여행(無錢旅行)」, 송영(宋影)의 「아동(兒童)」(이상 제15호), 최정희(崔貞熙)의 「춘소(春宵)」(제17호) 등이 실려 있다. 또한 김동석(金東錫)의 「녹음송(綠陰頌)」(제20호) 등의 수필과, 논문으로 조윤제(趙潤濟)의 「조선문학(朝鮮文學)의 고전」(제20·21호), 이병도(李丙燾)의 「삼국사기해설」(제22·23호) 등이 있다. 그 밖에도 홍명희(洪命熹)·김기진(金基鎭)·유치진(柳致眞)·이광수(李光洙)·임화(林和)·최재서(崔載瑞)·홍난파(洪蘭坡)·마해송(馬海松)·유진오(兪鎭午)·조풍연(趙豊衍) 등 문예계의 대표적인 인물들이 거의 망라되어 있다고 볼 수 있다. 출처: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9791185082417

현해탄(초판본)(1938년 동광당판 초판본 오리지널 디자인) (임화 시집)

임화  | 그여름
9,900원  | 20161025  | 9791185082417
[현해탄(초판본)]은 프로문학과 좌익문학을 이야기할 때 빼놓아선 안 될 대표적인 시인이자 문학평론가인 임화의 시집을 엮은 것이다. 이 책은 1938년 동광당판 초판본의 내용과 표기는 물론 활자까지 그대로 복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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