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여행기 2: 한탄강 설악산 화진포 오대산 낙산사> 물길 따라 구름따라 (우리나라 여행기 3 : 한탄강, 설악산, 화진포, 오대산, 낙산사)
송근원 | 부크크(bookk)
15,700원 | 20240615 | 9791141088217
언제든지 가 보면 좋은 산과 계곡이 있는 곳, 바로 우리나라의 산과 계곡이다.
산이 아름다우려면 우선 나무가 울창한 숲이 있어야 하고, 골짜기로는 맑은 물이 흐르는 못과 폭포가 있어야 하며, 우뚝한 산에는 기기묘묘한 바위들이 숲과 어우러져야 한다. 숲, 계곡, 바위, 적어도 이 셋이 어울려야만 아름다운 산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쓴 이는 세계 곳곳을 돌아보았지만, 이 세 가지 조건을 제대로 갖춘 산은 그렇게 많지 않다.
많은 세계의 산들은 높이만 솟았지 숲이 없는 민둥산이 많다. 또한 숲이 있다고 해도 계곡의 물이 맑지 않아 탁하고, 산에 바위가 없어 그저 숲바다를 이루고 있는 산들도 있다. 설령 바위가 있다 하더라도 우리나라의 화강암 바위처럼 그 색깔이 아름답지 않고 칙칙한 것들이 많다.
여기에 산 자체가 보여주는 신비로움이 있으면 금상첨화다. 기기묘묘한 형태의 봉우리들이나 바위들이 모여 있어 볼거리를 제공해주면 더욱 좋다.
물론 우리나라에선 어디에서든지 2시간만 가면, 앞에 말한 아름다운 산의 세 가지 조건을 갖추고 있는 산들이 곳곳에 널려 있다.
그래서 전국 어디에서든지 간에 걷든지 타든지 2시간만 가면 계곡에 발 담그고 풍치를 즐기며 소주 마실 곳이 있다.
이 어찌 신의 축복이라 말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우리나라는 참으로 축복받은 나라이다.
우리 가까이에 있는 아름다운 산들, 허나 우리는 그것을 제대로 못 느끼고 그러려니 하면서 산다.
그러다가 너무 무료하거나, 삶에 지쳐 찌들면 산을 찾는다.
산은 언제나 제자리에 있다. 물론 세월이 흐름에 따라 조금씩 변하기도 하지만, 언제나 그 자리에서 우릴 맞아 준다.
여기에서 소개하고자 하는 곳은 한탄강과 설악산, 그리고 설악의 아래위에 있는 들를 만한 곳들, 곧 고성, 화진포, 낙산사, 오대산 등이다. 한마디로 휴전선 근방의 아름다운 곳들을 자동차를 타고 즐기면서 며칠 동안 여행할 수 있는 곳들이다.
한탄강은 연천, 포천, 철원에 걸쳐 아름다운 협곡을 보여준다. 여기에 잔도를 놓아 주상절리의 잔도를 따라 걸으면서 협곡의 경치를 볼 수도 있고, 옛날 임꺽정이 활약했다는 고석정의 아름다운 경치도 즐길 수 있으며, 우리 군 부대와 장갑차 등이 다니는 길 위에서 남북간의 긴장 상태도 느낄 수 있다.
한편, 설악의 아름다운 경치는 말할 나위도 없다.
아름다운 산으로 둘러싸인 우리나라에서 설악은 단연 압권이다.
설악은 아름다운 산의 세 가지 조건은 물론 기기묘묘한 봉우리들과 바위들이 신비로움과 함께 거룩함까지 갖추고 있는 세계에서 유래를 찾아볼 수 없는 산이다.
설악은 고등학교 2학년 때인가 졸업여행을 간 이후로, 몇 번을 찾아간 적이 있다. 아마 열 번은 안 될 거고 다섯 번은 훨씬 넘었을 거다.
그렇지만 언제 가도, 언제 봐도 아름답고 거룩한 산이다. 그리고 갈 때마다 똑같은 것을 봐도 언제나 새로움을 느낀다.
산도 조금씩 변하고 내 마음도 변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지만 설악만 가기는 좀 밋밋하다 생각하여 더 북쪽 휴전선 끝까지 가 보기로 했다. 그곳이 곧 고성이다.
고성의 통일전망대 너머로 보이는 금강산엔 직접 갈 수가 없으나, 그곳에 서려 있는 통일의 염원만큼은 잊을 수 없다. 또한 화진포의 아름다운 풍경 역시 우리의 아픈 역사와 함께 하고 있다.
비록 옛 생각이, 많은 부분은 잊어버렸지만, 한탄강과 설악을 가며 오며 느꼈던 옛 생각이 새록새록 생각난다.
설악산엘 가다 보면 들르게 되는 곳이 오대산 월정사와 낙산사이다.
이렇게 한탄강과 설악, 그리고 오대산, 낙산사 등을 엮은 이유는 국내 여행 시 볼 만한 곳들의 동선을 고려했기 때문이다.
이에, 물론 그 당시 느낌에서 벗어난 것일지는 모르겠지만, 물길 따라 구름 따라 이들을 보고 새롭게 느낀 점을 못 쓰는 글로나마 사진과 함께 편집하여 이 책을 낸다.
이럴 줄 알았으면, 그때그때 글을 좀 써 놓을 것을!
짧은 글과 어쭙잖은 사진들이지만 읽고 보시고 감상해주시면 고맙겠다. 더욱이 이 글과 사진들이 국내 여행 시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었으면 더욱 좋겠다.
여기에 본문 가운데 일부를 올려 놓는다.
---전략---
우리나라는 정말 아름다운 곳이다. 아름다운 계곡도 많고 아름다운 산도 많다.
드디어 절에 도착한다.
백담사는 만해 한용운 선사께서 오랫동안 수행하며 득도했던 곳으로서 만해기념관이 있다.
만해 선생은 <조선불교유신론>을 지어 불교의 혁신을 주장하신 분으로서 그리고 독립운동가이자 시인으로서 워낙 유명한 분이지만, 이 절에서 오랫동안 기거하셨다는 것, 그리고 시집 <님의 침묵>을 이곳에서 탈고하셨다는 건 이제 처음 알았다.
이렇게 훌륭한 분이 기거했던 백담사가 이제는 독재자 전두환이 권좌에서 쫓겨나 유배당한 곳으로 유명하게 되어 버렸다.
전두환의 호가 일해(日海)라 하니, 만해와 같은 해(海)자 돌림이라 그러한가?
더욱이 만해가 기거했던 화엄실에 전두환이 기거했고, 지금은 그곳에 그가 쓰던 물품들을 전시하고 있다 하니, 마치 성지를 더럽혀 놓은 것 같아 기분이 별로다. 에이~.
나쁜 짓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이런 경치 좋은 곳, 이 거룩한 곳에 기거하였다니, 참 하늘도 무심하다. 전두환은 천상 복을 타고난 사람인 모양이다.
허긴 더럽고 깨끗한 것, 훌륭한 것과 나쁜 것은 사람의 구분일 뿐 본디 돌아가는 곳은 공(空)일진대, 따져서 무얼 할까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백담사는 마치 전두환이 머무른 자취를 자랑으로 생각하는 듯하니, 이것만은 참으로 수치스럽지 아니한가!
어디선가 “개 눈에는 똥만 보고, 부처 눈에는 부처가 보이나니······”라는 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퇴물 권력자가 쓰던 물품들을 자랑삼아 전시하고 있는 이곳 스님들에게 되돌려주고 싶은 말이다.
수치를 모르고 수치를 떠나 도에 이른 척 한다고 부처가 되는 것은 아닐 텐데······.
망우리에 계신 만해 선생이 무덤에서 벌떡 일어나 달려올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