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근거리의 초저출산에 대한 영향과 정책적 함의 (연구보고서 2024-06)
김재훈 | 한국개발연구원
4,500원 | 20241231 | 9791159329524
저출산 현상에 관한 기존 연구는 주로 자녀 양육에 따른 비용 등 개별 가구가 당면한 제약의 증가를 중점적으로 살펴보았으나, 본 연구는 자녀 양육비용 상승의 근본 원인 중 하나로서 도시화를 지목한다. 대도시 집중화는 단순히 가구 입장에서의 자녀 양육비용을 높이는 변화를 넘어서는 구조적 변화를 초래할 수 있다. 구체적으로 거대도시화는 주거비용의 상승과 통근시간의 증가를 수반함으로써 주택 시장과 결혼 시장을 통해 젊은 세대의 주거, 혼인 그리고 출산 결정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본 연구는 이러한 메커니즘을 탐구함으로써 현재의 초저출산의 원인과 대응 방안에 대한 시사점을 제시하고자 한다.
국가별 합계출산율과 도시인구비율의 패널자료를 분석한 결과 도시인구비율과 국가별 합계출산율에 음의 상관관계가 있음을 확인하였다. 국가의 발전 정도나 연방제와 같은 국가구성의 제도와 무관하게 대도시화가 출산율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분석되었으며, 이 관계는 동아시아 유교문화권에서 더 두드러지지도 않아 혼외출산과도 상관이 없었다. 따라서 거대도시화가 저출산의 근본 원인 중 하나라는 것을 확인하였다. 세계의 거의 모든 국가는 지난 수십 년간 메갈로폴리스와 메가시티라는 이름으로 기존 도시를 거대화하면서 일자리는 수직적으로 집적하고 주거지역은 수평적으로 확대하였는데, 이로 인해 발생한 혼잡으로 통근거리와 통근시간이 증가하여 혼인율과 출산율이 감소하였을 가능성이 있음을 알 수 있다.
기존의 도시구조는 주택자산의 가치변화를 통해 세대 간 형평성과 세대 내 형평성에 부정적 영향을 미치며, 세대 간 및 세대 내 인적자원의 비효율적 배분을 초래할 가능성이 클 뿐만 아니라 장시간 통근으로 인적자원이 최대의 효율을 발휘하기 어려운 환경을 제공하고 있다. 따라서 도시구조를 변화시켜 인적자원이 최대의 효율을 발휘하여 국민소득이 증가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여야 한다. 더 나아가 기존의 도시구조하에서는 가임기 세대가 혼인을 포기하거나 혼인을 하더라도 출산을 포기할 것이기 때문에 도시구조의 변화 없이는 저출산의 늪에서 벗어나기 어렵다는 점을 시사한다.
출산휴직, 육아휴직, 그리고 영유아보육과 같은 일-가정양립 정책(family friendly policy)은 선진국에서 출산율 제고를 위해 도입하여 추진해 왔다. Olivetti and Petrongolo(2017)의 데이터를 이용해 이들은 고려하지 않은 도시화와 1인당 국민소득을 통제했을 때 일-가정양립 정책이 출산율에 미치는 효과가 없거나 예상과 반대로 나타나는 것으로 분석되었다. 공무원조직, 공공기관, 대기업 등에서는 출산휴직이나 육아휴직의 출산율 제고 효과가 있을 것이다. 하지만 고용의 대부분을 담당하고 있는 중소규모 사업장의 고용주는 대부분 대체가 용이한 인력을 고용하기 때문에 출산휴직이나 육아휴직을 신청하는 인력을 해고하거나 미혼여성이나 무자녀 기혼여성의 고용을 기피할 가능성이 큰데, 이는 정책 재설계로 해소하기 쉽지 않다. 또한 이러한 일-가정양립 정책은 이미 결혼한 부부를 대상으로 한다는 점에서 혼인 여부가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주택과 같은 자산 요인에 의해 결정된다면 자산과 소득이 높은 부부만 그 혜택을 받을 가능성이 크다는 점에서 형평성을 훼손할 수 있음에 유의할 필요가 있다.
일-가정양립 정책이 제대로 효과를 나타내기 위해서는 그 전제가 되는 가정(household)이 형성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어야 하고, 이를 위해서는 가정 형성에 장애가 되고 있는 거대도시화의 문제 해소가 우선적인 정책목표가 되어야 할 것이다. 먼저 대도시로 인구가 집중되게 하는 요인을 지방으로 분산해야 한다. 가임기 세대가 대도시로 집중되는 가장 큰 요인은 대학 진학과 취업이다. 따라서 대학과 기업을 대도시로부터 떨어진 곳으로 분산 이전해야 할 것이다. 다음으로 도시개발이나 도시구조의 혁신을 통해 도심에 수직적으로 집적된 일자리를 분산하여 가임기 세대가 혼인과 출산을 통해 가정을 수월하게 형성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노력이 우선되어야 할 것이다.
이론적으로는 도시 확대와 혼인율, 출산율의 관계는 다음과 같다. 취업이나 대학 진학을 위해 계속된 도시로의 인구 유입과 도시인구의 자녀 세대 사회진출로 인해 기존 도심의 과밀과 주택가격 상승으로 신도시가 개발되면 여성의 사회진출이 많지 않았을 때는 미혼여성이 독신을 결정할 수 있는 경제적 독립이 불가능하여 혼인율에 큰 영향을 받지 않는다. 하지만 여성의 사회진출 증가로 미혼여성 소득이 증가한 상태에서는 신도시 개발로 결혼 후 통근의 불편이나 경력 단절의 우려로 독신을 선호하는 고소득 미혼여성이 증가하여 혼인율의 하락과 그로 인한 출산율의 하락을 경험하게 된다. 이러한 혼인율과 출산율 변화는 한국의 수도권이 강남 개발과 1기, 2기 신도시 개발 과정에서 경험한 것이다.
도시 확대와 혼인율, 출산율 감소의 관계를 확인하기 위해 2기 신도시까지 마무리된 2017년부터 2022년까지의 한국의 수도권 시군구 자료와 통근시간별 통행량을 사용하여 실증분석을 하였다. 그 결과, 수도권 시군구에서 전기의 근거리 통행량(편도 통근시간이 60분 이하인 통행량)이 증가하면 출산율이 상승하고 전기의 원거리 통행량(편도 통근시간이 60분 초과인 통행량)이 증가하면 출산율이 하락함을 발견하였다. 혼인율은 출산율과 반대로 나타나는데, 전기의 근거리 통행량이 증가하면 혼인율이 감소하고 전기의 원거리 통행량이 증가하면 혼인율이 증가하는 것으로 분석되었다. 1인 가구 비중의 경우, 전기의 근거리 통행량이 증가하면 1인 가구 비중이 증가하고 전기의 원거리 통행량이 증가하면 1인 가구 비중은 감소할 것으로 가설을 설정하였으나, 회귀분석 결과 가설과는 다른 패턴을 보였다.
분석 결과는 젊은 층, 특히 미혼여성이 직장 가까이 이주하지만 높은 주거비용으로 결혼을 미루거나 포기하고 있고, 혼인을 결정할 경우 주거비용 절약을 위해 통근시간이 긴 곳으로 이주할 수밖에 없음을 시사한다. 통근시간의 출산율, 1인 가구 비중, 혼인율에 대한 영향을 종합하면, 수도권의 시군구에서 근거리 통근 인구가 증가하더라도 높은 주거비용을 감당할 수 있는 소수만 혼인과 출산을 할 수 있고, 그렇지 못한 대부분은 결혼을 미루거나, 하더라도 원거리로 이주하여 시간 제약으로 인해 출산에 제한을 받게 됨을 시사한다.
서울 지역의 통근시간의 출산율에 대한 영향을 분석한 결과를 보면, 통행량 변화(경제활동)가 출산율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는 측면에서 도시 전체가 도심(business district)이라고 볼 수 있다. 반면, 경기, 인천의 경우에는 원거리 통근 인구가 감소하거나 근거리 통근 인구가 증가하면 출산율이 상승한다. 혼인율의 경우, 서울 자치구의 근거리 통행량 증가가 혼인율 감소와 1인 가구 증가로 연결되는데 젊은 층, 특히 고소득 전문직 미혼여성이 직장 가까운 곳에 거주하기 위해 서울에 거주하더라도 결혼할 경우 장시간 통근이나 경력 단절을 우려하여 결혼을 미루거나 포기하고 있음을 시사한다. 서울 및 경기, 인천 지역으로 나누어 살펴본 통근시간의 1인 가구 비중, 혼인율과 출산율에 대한 영향을 종합하면, 서울의 경우 근거리 통근 인구 증가는 1인 가구 비중의 상승으로 연결되고 반대로 혼인율의 감소와 연결되어 출산율과는 무관한 것으로 분석되었다. 경기, 인천의 경우에는 근거리 통근 인구 증가는 출산율 상승으로, 원거리 통근 인구의 증가는 1인 가구 비중의 상승과 출산율 하락으로 연결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마지막으로 이러한 분석 결과와 한국의 상황을 바탕으로 저출산 대응을 위해서는 재택근무, 도심 주택공급 확대, 이민 확대보다는 수도권 대학과 기업을 지방으로 이전하는 방안을 제시한다. 수도권 대학이 지방으로 이전하게 되면 지방에 대학병원도 새로 개원할 수 있기 때문에 지역 간 의료격차 문제를 완화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또한 수도권 대학의 지방 이전 유도를 위해 의과대학을 갖고 있지 않은 대학에 의과대학 신설을 허용할 수 있으므로 의료인력 증원 문제도 해결할 수 있는 여지를 갖게 된다. 만약 수도권 대학이 이전하면, 입지 우위 없이 지방대학과의 무한 경쟁에 노출되기 때문에 학생 취업이나 연구예산 확보를 위해 산학연계나 산학협력에 더욱 노력하게 될 것이다. 교육부가 대학에 여러 명목으로 배분하던 예산은 국가장학금이나 다양한 연구개발예산으로 좀 더 생산적인 목적으로 사용할 수 있을 것이다.
기업의 지방 이전은 자족적 도시를 형성하기 위해 대학의 지방 이전과 함께 반드시 이루어져야 한다. 대학과는 달리 모든 기업이 지방으로 이전할 필요는 없더라도 충분한 인력을 흡수할 정도의 기업이 지방으로 이전할 필요가 있다. 이를 통해 지방에서 대학을 나온 인재가 지방에서 취업하고 주거를 마련하고 결혼하여 아이 낳고 생활의 불편함 없이 정주할 수 있다는 믿음을 줄 수 있어야 한다. 따라서 단순히 생산시설이나 창고시설만을 이전하는 것이 아니라 기업 본사의 이전이 있어야 할 것이다. 지방으로 이전하는 기업에 대해서는 상속세나 법인세 등의 감면을 줄 수 있을 것이다. 지속적인 경제성장을 위한 산업정책적 고려도 필요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