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설 열국지 (9) (제9권 장강은 흐른다)
유재주 | 퍼플
16,000원 | 20230515 | 9788924109283
고등학교 시절 막연히 이런 생각을 해본 적이 있다.
―20대에 소설가가 되고, 30대에 중·단편을 쓰고, 40대가 되면 장편소설에 전념하자.
지금 생각해보면 황당하리만큼 철모르던 시절의 꿈이었다. 그런데 운 좋게도 그 황당한 꿈이 모두 실제로 그렇게 이루어졌다.
이번에 독자들에게 선 보이게 된 는 나의 네 번째 장편소설이다. 고대중국을 무대로 한 역사소설로는 에 이어 두 번째다.
내가 를 처음 알게 된 것은 대학 시절이었다. 김구용 선생께서 번역한 가 바로 그것이다. 이 책을 접하기 전까지 가 춘추전국시대를 다룬 책이라는 것을 전혀 알지 못했다.
그 당시 나는 와 외에는 중국의 고사(古史)에 대해 거의 알지 못했고, 또 별다른 흥미를 느끼지 못하고 있었다. 그런 탓인지 를 읽고 나서도 큰 감흥은 없었다.
그런데 그 뒤 서너 차례 더 를 읽으면서 나는 묘한 매력에 빠져들었고, 마침내는 그 어떤 문학작품에서보다 사람의 삶과 모습을 투시해 볼 수 있는 대감동을 얻게 되었다. 동시에 한 가지 의문에 빠졌다.
―어째서 의 감흥이 이리 더딜까? 그리고 어째서 많은 사람에게 알려지지 않았을까?
이때부터 나는 다시 의 세계에 탐닉하기 시작했다. 고대중국 역사에 대한 무지가 나의 의문을 해소하는 데 오히려 도움이 되었다. 수없이 많은 갖가지 에피소드로 이어져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것들이 하나의 줄기로 다가오지 않는 것―이것이 일반 독자들이 의 세계로 빨려들지 못하는 가장 큰 요인이라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비유하자면, 는 무성한 이파리에 가려 가지와 줄기의 형체를 볼 수 없는 나무였다.
옆에 와 , ,, 등의 서적을 어지러이 펼쳐놓고 이파리와 가지를 솎아내는 작업에 들어갔다.
끊임없이 떠오르는 수많은 의문들. 어떤 때는 별 중요하지도 않은 의문점 하나를 해소하기 위해 열흘을 소모한 적도 있었다. 내 나름의 지도와 연표도 새로이 만들었다.
가장 어려웠던 점은 신화나 전설이나 민담 같은 형태의 이야기를 어떻게 풀어내느냐 하는 것이었다. 단순히 소설이라는 허구의 전제 속에 포함시키면 그만이겠지만, 그랬다가는 또 하나의 형체를 알 수 없는 만을 탄생시킬 뿐이다. 그래서 생각해낸 것이 ‘기록자’의 입장으로 돌아가 보자는 것이었다.
―내가 만약 지금의 일들을 기록한다면?
검증되지 않은 소문들로부터 사실이라 하더라도 기록자의 시각과 처지, 생각 등에 따라 달라질 수밖에 없는 것이 ‘기록’이 아니겠는가.
이런 식으로 작업하다 보니 마침내 나의 머릿속에 새로운 의 형체가 그려지기 시작했다.
붓을 들어 그것을 적어 내려간 것이 다.
*
‘평설(評說)’이란 비평하여 설명한다는 뜻이다. 그러나 나는 꼭 이러한 사전적 의미로 ‘평설’이라는 말을 붙인 것은 아니다. ‘해설을 곁들인 소설’이라는 작의적인 의미에서 ‘평설’이라는 말을 앞에 붙였다.
원래 군더더기 해설이 필요 없는 것이 소설이다. 그것은 독자의 몫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평설’이라는 말을 붙여 이 소설을 내보이는 것은 독자의 몫을 빼앗기 위해서가 아니다. 오히려 독자의 몫을 더 많이 남겨놓기 위해서이다.
청(淸)나라 때 쓰여진 것이라고 여겨지는 는 당연히 중국 사람에 의해 쓰여졌고, 그 대상 역시 중국인들이었으리라. 중국인들은 수없이 많은 이파리만 보아도 그 형체를 알 수 있을지 모르겠으나, 사상과 관습과 역사가 다른 우리로서는 그러하지 못함은 당연하다.
또 시대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변했다. 현실 감각에 맞는, 좀 더 친절하고 세세한 안내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나는 그 안내 작업에 역점을 두었다.
―아는 만큼 안다.
소설의 재미는 상상이다. 그런데 알지 못하면 상상하고 싶어도 상상할 수가 없다. 그 기본적인 지식의 안내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 바로 ‘평설(評說)’인 것이다.
그렇다고 가 해설로 일관하는 것은 아니다. 이것은 분명히 소설이다. 가능한 한 현대인의 감각에 맞게 문체를 쉽고 간결히 하되, 동양 고전의 흥취를 깨지 않기 위해 한자어를 적절히 섞었다. 구성과 전개 또한 입체적이면서도 속도감 있게 하려고 애썼다. 충분히 소설적 상상력을 즐길 수 있으리라 본다.
는 모두 3부로 되어 있다. 제1부는 ‘황하의 영웅들’, 제2부는 ‘장강의 영웅들’, 제3부는 ‘일통천하(一統天下)’다.
제1부 ‘황하의 영웅들’에서는 중국이 어지러운 난세로 접어드는 과정과 그에 편승하여 자신의 야망을 이루려는 영웅들의 이야기를 담았다. 주로 정장공, 제환공, 진문공에 초점을 맞추었다. 소위 춘추시대 초·중반기까지에 해당한다.
제2부 ‘장강의 영웅들’에서는 어지러운 시대의 소용돌이 속에서 파생된 새로운 영웅들의 가치관과 활약을 그렸다. 장강을 근거지로 한 나라들이 주를 이룬다. 초장왕과 꿈처럼 나타났다가 사라져간 오(吳), 월(越)나라의 흥망이 펼쳐진다. 춘추시대 중·후반기에 해당한다.
제3부 ‘일통천하’는 전국시대(戰國時代) 이야기다. 사람들은 오랫동안의 난세에 지칠 대로 지쳤다. 도덕과 양심과 정의는 이미 사라졌다. 그 난세를 종식시켜줄 절대적 영웅의 출현을 꿈꿀 수밖에 없다. 그리하여 등장하는 것이 진시황(秦始皇).
역사소설은 확실히 일반소설과 다르다. 있을 수 있는 일을 쓰는 것이 아니라, 있었던 일을 쓰는 것이다.
지나치게 사실에 충실하다 보면 독자는 딱딱함과 지루함에 견디지 못한다. 반면, 지나치게 상상에 의존하면, “뭐야, 이건?” 하고 웃음거리밖에 되지 않는다.
사실(史實)과 상상의 적절한 조화와 균형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이 역사소설이다.
그러나 뭐니뭐니해도 역사소설의 가장 어려운 점은 아이러니하게도 역사와 소설의 명확치 않은 구분이다. 역사소설은 분명 ‘역사’는 아니다. 그렇다고 ‘역사’가 아닌 것도 아니다.
재능이 부족한 탓에 늘 이 부분에서 혼란을 느끼고 망설일 때가 많다. 앞으로 좀 더 숙고하여 독자들에게 역사소설의 진수를 보여드렸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보는 것은 지나친 욕심일까.
한문(漢文)이 짧은 나로서는 참고 사서(史書)를 모두 번역서에 의존했다. 동양 경서(經書)를 번역하신 분들께 재삼 감사를 드리며, 또한 돋보기안경을 쓰시고 일일이 초고(草稿)를 검토하여 내가 미처 생각지 못했던 부분을 지적해주신 나의 검도 스승 이종림 선생님과, 힘들 때마다 용기를 주신 신봉승 선생님께 감사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