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수초 (문경시 광부의 이야기)
전정희 | 작가
15,300원 | 20251117 | 9791194366942
검은 땅에서 피어난 희망의 빛, 문경시 광부 이야기
- 전정희 장편소설 『복수초』 -
문경 탄광촌을 배경으로 대한민국 근현대사를 담은 전정희 작가가 새 장편 『복수초』(도서출판 작가)가 출간되었다. 이 소설은 1960년대 은성탄광 광부였던 이태열과 전통 양조장의 가업을 이어받은 김성수를 중심으로 전개된다. 세대를 잇는 두 가족의 삶과 사랑, 그리고 문경의 전통을 지켜온 장인들의 숭고한 정신을 그려낸 대하 서사극이다.
문경을 알고 이해하자면 꼭 읽어야 할 소설의 결정판
전정희는 ‘복수초’란 꽃의 이름을 이 소설의 제목으로 선택했다. 이 꽃은 원래 복(福)과 장수(長壽) 그리고 부유를 상징하는 꽃말의 의미를 가졌다. 이른 봄 산지에서 눈과 얼음 사이를 헤치고 꽃이 핀다고 하여, 얼음새꽃 또는 눈새기꽃이라고 부른다. 중부지방에서는 복풀이라고도 하고, 새해 들어 가장 먼저 꽃이 핀다고 하여 원일초(元日草)란 별호도 쓴다. 그러나 이 모든 세설(細說)에도 불구하고, 이 꽃은 엄혹한 고난 가운데서 희망을 잃지 않고 새 생명의 약동을 일깨우는 강력한 암시를 동반한다. 작가가 경북 문경을 소설의 무대로 설정하고, 이 고장에서 사람들이 살아온 이야기를 소재로 선택했을 때는 이미 확고한 방향성이 있다. 거기에는 문경의 척박한 환경 가운데서 새로운 미래의 꿈을 발굴한다는 의도가 전제되어 있다.
전정희는 소설가이자 방송인이다. 그는 강원도 동해 출생으로, 자연경관이 풍성하고 아름다운 고장에서 감수성이 충일한 어린 시절을 보냈다. 그 영향인지는 모르나 성장한 이후에 소설가로 또 방송 진행자로 일하면서, 다양하고 활달한 여러 면모를 보여주었다. 이제껏 그가 펴낸 작품은 장편소설 『하얀 민들레』, 『두메꽃』, 『가시나무 꽃이 필 때』, 창작집 『묵호댁』이 있다. 그러니 이번 책은 단행본으로 다섯 번째 소설이 되는 셈이다. 방송인으로서는 채널 A와 MBN을 비롯한 여러 곳의 프로그램을 맡았고, 경북 문경시, 동해시 대외협력관, 경북 영덕군, 강원도 화천군, 경기 양평군, 강화군을 비롯하여 여러 지자체의 홍보대사를 맡고 있기도 하다. 그런가 하면 10년 세월의 적공(積功)으로 여러 차례 문학상을 수상한 경력이 있다.
소설 속에는 경상북도의 오지라 여겨져 온 문경의 생활 환경과 탄광, 양조장, 도예, 한지 등 전통적인 산업 및 예술이 중심 소재로 등장한다. 그리고 이를 추동하는 등장인물들의 좌절과 희망, 시련과 극복, 공감과 감동, 전통과 계승 등의 파노라마가 소설 전편을 수놓고 있다. 문경을 알고 이해하자면 꼭 읽어야 할 소설의 결정판이라 할 만하다.
1세대: 탄광의 비극과 술도가의 시련, 막장을 넘어서는 인간애
이 소설의 서두는 1960년대 서울에서 밤 기차를 타고 문경 은성탄광으로 흘러든 광부 이태열과 그 아내 지연의 이야기로 시작된다. 두 사람은 점촌으로 흘러 들어가 터를 잡는다. 문경시의 옛 도심이 점촌이다. 이곳에서 태열은 은성탄광의 광부로 일하게 되고, 지연은 미싱으로 옷 수선 일을 한다. 문경의 1호 탄광이 있는 곳인 만큼 기록될 만한 사건도 많다.
광부의 숙명과도 같은 진폐증, 탄광촌의 금기사항, 대형 갱내 매몰 사고에서의 기적적인 생환, 연탄 파동 등 1960년대에서 70년대에 걸친 현장 상황과 당시 광부들의 애환을 생생하게 전달한다.
막장은 광부들에게 ‘숭고한 의미’를 지니고 있기도 했다. 작가는 이를 다음과 같은 매우 강력한 언표(言表)로 표현했다. “그들은 지상의 하늘과 막장의 하늘, 두 개의 하늘을 이고 살아갔다.” 이러한 인식 속에는 막장의 광부들을 향한 작가의 인본주의적 눈길이 따뜻하게 개재(介在)해 있다.
한편, 서울법대 출신으로 수재였으나 고시 실패 후 귀향하여 아버지의 황진양조장을 물려받은 김성수는 IMF 등 시대적 시련 속에서 가업을 지키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이태열이 광산에서 나와 사과 농장에 도전하고, 김성수가 동생 김철수와 양조장을 일으키는 과정은 1세대 개척자들의 끈질긴 생명력을 보여준다. 두 가족은 깊은 우정을 나누며 팍팍한 삶 속에서도 소박한 행복과 동료애를 나눈다.
전통문화의 재발견
『복수초』는 문경의 상징적 전통인 도자기 장인과 한지 장인의 예술혼도 보여준다. 문경에는 옛 지명 점촌의 빛나던 시간을 이어가는 도예 벽화거리가 있다. 이곳은 문경의 도예산업과 그 문화적 유산의 가치를 널리 알리고, 방문객에게는 생동감 있는 시각적 경험을 공여한다. 문경은 예로부터 자연 자원과 전통 기법의 결합으로 양질의 도예작품이 생산되어 왔다. 더불어 문경 여행 중에 도자기 체험을 할 수 있는 전통 창작 가마들도 여러 곳에 있다. 문경에서는 매해 봄이 되면 ‘찻사발 축제’를 연다. 그런가 하면 문경의 전통 한지는 2024년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 대표 목록 지정신청이 이루어졌고, 아마도 2026년에는 한지가 세계유산으로 지정될 전망이다. 문경 전통 한지는 2017년 프랑스 루브르박물관에서 ‘내일을 위한 과거 종이, 수록지’라는 주제로 국제학술회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이러한 현상을 두고 보면, 한지가 문경의 대표적인 특산이자 예술품임을 확인할 수 있다.
‘조선요’ 도예가 장인과 ‘한지나라’ 남상욱 한지 장인이 등장하여 최고의 경지에 이르기 위한 장인의 삶과 예술혼을 펼쳐 보인다. 특히 윤정(도자기 장인)과 남찬호(한지 장인) 등 젊은 세대가 이 전통을 현대적인 감각으로 계승하는 과정은 소설의 중요한 축을 이룬다.
작가는 여기에 ‘천년만년 가는 한지’라는 강력한 레토릭을 부여했다. 이러한 이야기들은 광산에서의 어둠에 대비되어, 문경 고유의 전통이 어떻게 다음 세대로 전승되는가를 보여주는 사뭇 의욕적인 서사 구성이다. 특히 다음 세대에의 전파를 공들여 이야기하는 작가는, 거기에 소중하고 귀한 문경의 얼이 담겨 있다고 주장하는 셈이다.
폐광 이후, 새로운 문경을 향한 차세대의 귀환
은성광업소 폐광이라는 역사적 사건은 소설의 전환점이다. 사실관계에 있어서는 1989년부터의 일이다. 에너지 유형의 변화에 비추어 보면, 석탄이 유일 산업이던 탄광촌의 폐허화는 불을 보듯 밝은 일이었다. 탄광의 폐광과 태열 및 그 아들 진우에게로 이어지는 사과밭의 생기(生氣)는 명징한 대조를 이루면서, 한 지역사회가 변모해 가는 내면의 실상을 드러낸다. 문경에서 가을의 사과 축제를 여는 것은 당연한 수순手順이 되었다. 오랜 세월의 족적(足跡)을 끌어안은 채 ‘문경에 불어오는 변화의 바람’은, 이제 지역사회가 시대의 흐름을 수용하면서 새로운 미래를 개척해 나가는 구체적 실상이 된다.
1세대의 희생 위에 성장한 2, 3세대 인물들은 자신의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낸다. 소설가가 된 이진희, 변호사 김민수, 사과 농장을 잇는 이진우, 양조장을 현대화하는 김민우 등 2세대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문경으로 귀환한다.
이들은 쇠락한 광산의 유산을 발판 삼아 감홍 사과밭의 혁신, 막걸리에서 와인까지 전통 양조업의 현대화, 흙과 불의 유산인 도예 및 한지 기술의 재해석을 시도하며 문경의 새로운 미래를 그려나간다. 이 소설의 담화를 통해 알 수 있듯이, 이 지점까지 오기에 숱한 어려움과 힘겨운 경로를 거쳐와야 했다. 그중에서도 태열의 딸 진희가 소설가, 곧 기록자가 되었다는 것은 자못 의미심장하다.
이처럼 『복수초』는 세대 간 갈등과 화해, 개인적 야망과 더불어 한국 전통 마을의 문화적 유산이 얽힌 입체적인 서사 소설이다. 탄광의 어둠 속에서도 피어난 희망의 꽃 복수초처럼, 소설은 과거를 기억하고 감사하며 미래를 향해 나아가는 문경 사람들의 숭고한 정신을 담아내고 있다. 문경의 아름다운 사계와 함께 대한민국 근현대사의 애환, 그리고 세대를 이어 전통을 지켜나가는 사람들의 따뜻하고 강인한 이야기를 담은 『복수초』는 전정희 작가의 수작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복수초』, ‘광부 100주년’ 기념, 특집 2부작 드라마로 방영
대한민국 광부 100주년을 맞이하는 2026년, 문경의 깊은 역사와 아름다운 자연을 담아낸 장편소설 『복수초』가 특집 2부작 드라마로 시청자들을 찾아간다.
광부의 땀과 문경의 사계를 배경으로, 2026년 특집 드라마로 제작된다. 드라마는 ‘검은 땅’이었던 탄광촌의 삶과 대비되는 문경의 수려한 자연과 사계를 아름다운 영상미로 담아내며, 시청자들에게 힐링과 역사의식을 동시에 전달할 것으로 기대를 모으고 있다.
‘지역 스토리텔러’로 작가로 활약하고 있는 소설가 전정희는 채널 A에서 전국 고장을 소개하는 프로그램의 진행자로 활발히 활동하고 있다. 그는 앞으로 전국 각지의 특색 있는 지역 스토리를 소설로 집필하고 이를 지상파 방송에서 특집 드라마로 제작하여 시청자들에게 소개할 계획이다.
김종회 문학평론가는 해설에서 “전정희의 장편소설 『복수초』는, 경북 문경이라는 한 지역사회의 특징적 성격과 그 문물, 그리고 값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펼쳐 보였다. 한 지역을 기반으로 하고 있기에 서사의 범주가 한정된 감이 없지 않으나, 그러하기에 오히려 해당 공간에서의 삶과 애환을 한껏 설득력 있게 그려낼 수 있었다고 할 수 있다. 문경의 아름다운 사계절과 방점을 두어야 할 풍물, 그로 인한 간접 경험의 다채로운 형상들이 이 소설을 가치 있는 작품으로 받아들이게 한다. 이는 또한 지역사회의 여러 어려움에 침윤하지 않고 그 난관을 돌파하는, 건실한 삶의 의지를 동반한 하나의 모범”이라고 평한다.
문경을 알고 이해하자면 꼭 읽어야 할 한국 소설의 결정판 『복수초』가 좋은 K-콘텐츠로 만들어져 국내는 물론 세계의 많은 독자들의 관심과 사랑을 받길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