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은 그렇게 바뀌었다
류쭝쿤, 강초아 | 들녘
19,800원 | 20251230 | 9791159258039
법과 정의, 그리고 용기에 관한 위대한 기록
이 책에는 법이 아니라 사람이 있다. 정확히 말하면 부당한 법 앞에서 무너졌던 사람들, 그리고 그 법을 바꾸기 위해 일어선 사람들의 이야기가 있다. 정체성을 찾기 위해 도망쳤던 노예 소녀,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살고 싶다’는 이유로 범죄자가 되었던 러빙 부부, 임신 중절을 선택할 권리가 없어 절망한 수많은 여성, 9분 29초 동안 백인 경찰의 무릎에 눌려 목숨을 잃은 조지 플로이드, 그리고 그들을 위해 당대의 편견과 가치 이익에 맞섰던 법조인들의 기록이 바로 그것이다.
저자는 ‘자유롭고 평등하게 살며 이상을 좇아 꿈을 실현하는 나라’라고 믿어온 미국이 실은 허점투성이인 나라였다고 지적한다. 독립선언문의 이념과 다르게 헌법은 중립적이지 않았다. 노예제를 ‘적극적인 선’이라 칭하고, 인종 분리를 ‘남부의 생활 방식’이라 포장하고, 사랑할 권리마저 빼앗았던 법은 그저 권력의 편에 서서 불평등을 정당화하던 도구였을 뿐이라고. 그러나 이 책은 그 실체를 추상적인 법리 논쟁으로 보여주지 않는다. 구체적인 사람들이 법정 안팎에서 경험한 치열한 투쟁의 기록을 통해 독자에게 되묻는 방식을 택한다. “법은 누구를 위한 것인가? 공정함이란 무엇인가?”
또한 류쭝쿤 박사는 이 오랜 변화의 과정을 ‘승리의 서사’로만 그리지 않는다. 흑백 분리를 위헌으로 판결한 이후에도 수십 년간 지속된 남부의 저항이라든지, 2022년 폐기된 로 판결(여성의 자기 결정권 승소) 등을 실례로 들면서 법은 진보할 수 있지만 불완전하고, 언제든 후퇴할 수도 있음을 솔직하게 밝힌다. 왜냐하면 정의는 한 번의 판결로 완성되지 않으며, 매 세대가 다시 싸워야 비로소 한 발 앞으로 나아가기 때문이다. “당신이 옳다고 믿는 일을 하고 법률이 뒤따르게 하라.”고 한 최초의 흑인 대법관 서굿 마셜의 말은 법을 바꾸는 일은 법률가만의 몫이 아니라는 것을 일깨워준다. 부당함 앞에서 침묵하지 않는 시민, 불의를 기록하는 목격자, 변화를 믿고 법정에 서는 평범한 사람들… 이들이야말로 법을 움직이는 진정한 힘이 아닐까?
이 책은 우선 법조계 종사자에게 법률가로서의 책무를 묻는다. 법은 기술이 아니라 선택이다. 기존 질서를 지킬 것인가, 정의를 향해 균열을 낼 것인가. 머레이 사건에서 브라운 판결로, 러빙 판결과 로 판결로 이어진 전략적 소송의 역사는 한 명의 변호사가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한다. 더불어 일반 독자에게 이 책은 미국의 인종 갈등, 총기 규제, 낙태권 논쟁이 왜 그토록 뜨거운지 그 고통의 역사를 톺아보면서 지금 우리가 직면한 현실을 대입하여 바라보게 해준다. 차별금지법을 둘러싼 갈등, 교육 불평등, 약자를 향한 혐오… 우리 사회의 과제도 결국 같은 질문 앞에 서 있는 탓이다.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이 책이 우리에게 던진 질문에 스스로 답을 찾는 일이다. “부당한 법 앞에서 당신은 무엇을 할 것인가. 누군가의 고통을 목격했을 때 당신은 기록할 것인가 외면할 것인가. 변화가 더디고 좌절할 때 그래도 계속 싸울 것인가?” 법은 완성된 것이 아니라 계속 써나가는 것이다. 그리고 그 펜을 쥔 사람은 법정에 선 우리, 법정에 서게 될 우리, 바로 당신과 나다. 법과 정의, 그리고 용기에 관한 이 위대한 기록을 모든 이에게 권한다.
‘법률 질서’ 안에서 평등할 권리를 추구해온 여정
『법은 그렇게 바뀌었다』는 미국 법체계 안에서 ‘행복’을 찾아 나선 이름 없는 평범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따라가며, 법이 어떻게 개인의 삶을 바꾸었는지를 보여주는 책이다. 미국 「독립선언문」은 건국 당시 생명, 자유와 함께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박탈할 수 없는 권리라고 선언했지만, 실제 역사에서 법은 언제나 약자의 편에 서 있지 않았다. 이 책은 그 간극을 추상적인 법리 논쟁이 아니라 법정에 선 사람들의 얼굴과 목소리로 메꾼다. 노예 신분의 굴레에서 벗어나고 싶었던 혼혈 소녀 모리슨, 남들처럼 학교에 다닐 권리를 요구한 중국계 린 자매, 사랑하는 사람과 결혼할 권리를 지키려 했던 러빙 부부, 자신의 몸에 대한 결정권을 되찾고자 했던 제인 로 등 미국 법체계 안에서 행복을 찾는 여러 사람의 이야기다. 시시콜콜한 보통 사람의 이야기가 뭐 그리 대단하냐고 반문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이들의 삶이 미국의 인권 운동사와 깊이 맞물려 있다는 점은 부인할 수 없다. 투표권, 혼인권, 낙태권, 교육권 등의 권리가 개인에게 확산되면서 허울뿐인 정치적 유토피아가 아니라 「독립선언문」에서 약속한 말이 현실 세계에 실현되었기 때문이다. 법적으로 보장된 기본권은 현대문명의 주춧돌을 쌓았으나, 이와 같은 입법을 가능하게 한 원동력은 개인의 행복 추구와 자유민으로 살고자 하는 부단한 의지에서 비롯된다.
노예제에서 BLM(Black Lives Matter)까지, 판례 속에 새겨진 사람들의 싸움
류쭝쿤 박사는 수많은 법원 판결문과 기록 보관소의 자료를 바탕으로, 미국 연방대법원의 핵심 판례와 법조계의 주목을 받은 재판들을 하나의 서사로 엮어낸다. 판사가 왜 그런 결단을 내렸는지, 변호사는 왜 위험을 감수하며 소송을 택했는지, 원고와 피고 사이의 ‘양자얽힘’ 같은 관계는 무엇이었는지를 촘촘히 추적한다. 드레드 스콧 판결이 “흑인은 시민이 아니다”라고 못 박았던 시대부터, 브라운 v. 교육위원회(공립학교 인종 분리 위헌), 러빙 v. 버지니아(인종 간 결혼 전면 합법화), 로 v. 웨이드(낙태 금지법 위헌), 파일러 v. 도(미등록 이주민 아동의 공교육 권리 인정)에 이르기까지, 책은 현대사를 바꾼 판결을 “위대한 판사”가 아니라 그 앞에 서야 했던 평범한 사람들의 이야기로 다시 들려준다. 학교에서 쫓겨난 아이, 원치 않는 임신 앞에서 절망했던 여성들, 신분 때문에 수업료를 몇 배로 내야 할 위기에 처한 미등록 이주민 자녀들. 9분 29초 동안 백인 경찰의 무릎에 목이 눌려 숨진 조지 플로이드와 그를 둘러싼 시위, “흑인의 목숨도 소중하다”라는 구호에 맞서 “푸른 목숨도 소중하다”, “백인의 목숨도 소중하다”라는 구호가 만들어낸 첨예한 갈등, 10대 소년이 총을 들고 거리로 나가 살인을 저지른 사건 등 가가각의 이야기들은 법정 공방을 넘어 인종·계급·젠더·총기 이슈의 균열을 드러내는 하나의 거울이 된다.
법은 진보하지만, 언제든 후퇴할 수도 있다
연방대법원이 인종 분리 정책을 철폐하는 방향으로 돌아서는 데에는 60년 가까운 세월이 필요했다. 인종 간 결혼이 미국 전역에서 합법이 되기까지는 84년이 걸렸다. 겨우 쟁취한 권리도 늘 안전하지 않았다. 1973년 텍사스의 낙태 금지법을 위헌이라 판결했던 로 v. 웨이드의 경우 2022년, 같은 연방대법원에 의해 뒤집혔다. 같은 해 미국은 총기 규제 법안을 통과시키면서도, 동시에 소수 인종을 위한 적극적 우대정책(affirmative action)을 후퇴시키는 판결을 내렸다. 이는 한 세대가 피 흘려 확장시킨 ‘행복의 영역’이 다음 세대에서 얼마든지 축소될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이 책의 인물들은 그래서 승리의 순간에도 안심하지 못한다. 학교로 돌아간 아이들, 결혼을 인정받은 부부, 병원 문을 나서는 여성들 곁에 언제나 “다시 원점으로 돌리려는 힘”이 동시에 움직이고 있는 탓이다. 저자는 각 장에 걸쳐 ‘앞으로 나아간 한 걸음’과 ‘뒤로 끌어당기는 힘’을 함께 보여줌으로써 법의 역사가 직선이 아니라 전진과 후퇴, 희망과 좌절이 맞물린 톱니바퀴 같다는 사실을 드러낸다. 법은 진보할 수 있지만, 결코 완성형의 정의가 아니라고. 판례 한 번으로 세상이 바뀌지 않는다고. 그러니 각 세대는 당면한 문제와 맞서 다시 일어나 싸우고 다시 질문해야 한다고, 그래야 비로소 한 걸음 나아갈 수 있다고.
법은 완성형이 아니다, 우리가 함께 써나가야 할 진행형이다
『법은 그렇게 바뀌었다』는 법조계 종사자에게는 “법률가의 책무”를, 일반 독자에게는 “부당한 법과 마주했을 때 무엇을 할 것인가”라는 질문을 건넨다. 법은 기술이 아니라 선택이며, 기존 질서를 지키느냐, 정의를 향해 균열을 내느냐는 결국 한 사람 한 사람의 결단 위에 놓여 있다는 것이다. 차별금지법을 둘러싼 공방, 교육 불평등, 약자를 향한 혐오, 안전과 인권을 둘러싼 끝없는 논쟁까지… 오늘 한국 사회의 많은 갈등 역시 “법의 문제이자 동시에 행복의 문제”라는 점을 이 책은 환기시킨다. 대만 정치철학자 첸융샹은 이 책을 “법률서의 따분함 대신 인간적인 애환으로 가득 찬, 뛰어난 역사 저작이자 소설을 읽는 것 같은 책”이라고 평한다. 독자는 소송의 승패에 울고 웃다가, 결국 이런 싸움들이 측정 가능한 사회적 진보를 이뤄냈다는 사실을 확인하게 된다. 그리고 마지막 페이지를 덮을 때, 이렇게 자문하게 될 것이다. “부당한 법 앞에서 나는 무엇을 할 것인가. 누군가의 고통을 목격했을 때, 나는 기록할 것인가, 외면할 것인가. 변화가 더디어서 좌절할 때 그래도 계속 싸울 것인가.” 법은 이미 쓰인 문장이 아니라, 우리가 지금도 함께 써 내려가는 문장이다. 『법은 그렇게 바뀌었다』는 그 문장을 다시 써야 할 때마다, 가장 먼저 펼쳐 볼 수 있는 “법과 정의, 그리고 용기에 관한 위대한 기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