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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입] 베스트 오브 바바라 보니](/img_thumb2/706301147023.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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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제목 : [수입] 베스트 오브 바바라 보니 
· 분류 : 음반 > 클래식 > 성악/오페라
· ISBN : 706301147023
· 출판일 : 2004-02-09
· 분류 : 음반 > 클래식 > 성악/오페라
· ISBN : 706301147023
· 출판일 : 2004-02-09
저자소개
모차르트 (Wolfgang Amadeus Mozart) (작곡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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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 고전주의 음악의 완성자이자 현재까지도 전 세계에서 가장 사랑받는 음악가. 35년의 생애 동안 교향곡, 협주곡, 소나타, 오페라, 실내악, 미사곡 등 600개가 넘는 작품을 남겼으며 많은 작품이 각 장르의 정점에 있다고 평가받고 있다.
다섯 살 때 첫 작곡을 했으며 열네 살 때 이탈리아 여행 중에 오페라 '폰투스의 왕 미트라다테스'를 무대에 올려 대성공을 거두었다. 좋은 일자리를 얻기 위해 몇 차례에 걸쳐 유럽 전역을 여행했으나 경이적인 음악의 신동이라는 평판과 작품들의 대성공에도 불구하고 결국은 그것을 얻는 데 실패했다. 고향인 잘츠부르크로 돌아와 궁정 오르가니스트로 잠깐 동안 일했으나 대주교와의 불화로 해고되고 이후 빈으로 거처를 옮겨 작곡과 연주에 전념했다.
피아니스트, 작곡가로서의 높은 명성과 '피가로의 결혼', '돈 조반니' 등 오페라의 성공에도 불구하고 당시 그것에 대한 보수는 그의 형편없는 경제관념과 낭비벽을 감당하기에는 충분치 않았다. 안정적인 예술 활동을 위해서는 궁정이나 귀족으로부터의 후원이 필수적이었던 시대에 높은 급료를 안정적으로 지급받을 수 있는 일자리를 죽을 때까지 얻지 못했던 모차르트는 짧은 생애 동안 주로 생계를 위해 곡들을 썼고, 만년에는 닥치는 대로 주위 사람들에게 돈을 빌려 달라는 편지를 보냈다. 그런 불안정한 생활 속에서도 모차르트의 창작열은 죽기 직전까지 조금도 식지 않아 음악사에 영원히 남을 수많은 작품들을 썼다.
모차르트의 천재성에 관한 일화는 무수히 많은데 바티칸에서 외부에 그 악보를 공개하지 않고 있던 비곡 알레그리의 '미제레레'를 처음 듣고 거의 완벽하게 채보했고 이틀 뒤 두 번째에는 몇 개의 소소한 것들을 수정해 악보를 완성했다. 모차르트에 의해 처음으로 '미제레레'는 일반에 악보가 공개되었다. '교향곡 36번'을 사흘 만에 작곡했고 그의 3대 교향곡으로 평가받는 '교향곡 39번'부터 '교향곡 41번'까지를 6주 만에 완성했다. 모차르트 스스로 자신은 음악에 대한 천재를 타고났다고 자부했으나 작곡을 위해서 자신보다도 많은 시간을 생각하고 거장들의 작품을 연구한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다고 단언했을 정도로 그는 음악에 전념한 천재이기도 했다.
모차르트의 작품은 가볍고 경쾌한 장조의 작품이 대부분인데 만년에 접어들어서는 장조의 작품이라도 비장함과 애수에 넘치는 작품이 늘었고, 그런 작품들은 ‘천상의 음악’이라고 형용되었다. 죽기 두 달 전 건강이 이미 안 좋은 상황에서도 '마적'을 작곡해 초연하는 등 정력적으로 곡들을 썼으나 미완의 걸작 '레퀴엠'을 쓰던 도중 쓰러져 불과 2주 뒤에 35년 10개월의 젊은 나이로 빈에서 사망했다. 모차르트의 '레퀴엠'은 하이든, 베버, 베토벤, 슈베르트, 쇼팽, 로시니, 베를리오즈 같은 음악가들뿐 아니라, 실러, 괴테, 나폴레옹을 비롯해 많은 저명인사와 유럽 왕족들의 장례식에서 연주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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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흐 (Johann Sebastian Bach) (지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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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 음악의 아버지라고 일컫는 바흐의 가문에서는 약 200년 동안에 걸쳐 저명한 음악가가 많이 나왔다. 바흐는 그의 가문의 풍습에 따라 어려서부터 바이올린을 배우기 시작했으며 10세때 부모님을 잃은 그는 오르가니스트인 형의 집에서 지내면서 클라비어를 배웠다.
그가 활약한 시기는 바이마르 궁정의 약 10년간이며 괴텐 궁정 악장으로서 실내악과 오케스트라를 위한 곡, 독주곡등을 썼다. 이후 1723년부터 27년간의 라이프치히 시대를 거치게 되는데 이 시기는 매우 활발한 창작의 시기였다. 칸타타, 오라토리오, 파시온 등의 대작과 여러 오르간 곡들을 쓴 시기였다. 바흐는 프로테스탄트이며 독실한 신자였는데 음악으로서 신에게 봉사하는 데 생애를 바쳤다고 할 수 있다.
그의 작품에서는 풍부한 멜로디와 절묘한 대위법의 취급에 의해 한없는 아름다움이 나타나고 있으며 그 기교의 밑바닥에는 종교적 신념이 깃들어 있었다. 대위법의 작법에 기반을 두고 있으면서도 화성적 수법을 가미시켜 이후 많은 작곡가들에게 영향을 주었다. 바흐는 음악 역사상 높은 가치를 지니고 있다고 평가받는 28곡의 평균을 클라비어 곡집을 비롯하여 대 미사곡, 마태 수난곡, 토카타 d단조 오르간곡, 기악 독주곡, 중주곡, 합주곡, 협주곡 등 여러 방면에 많은 작품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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멘델스존 (Felix Mendelssohn) (지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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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의 작곡가, 지휘자, 피아니스트로서 초기 낭만파 시대의 음악가입니다. 서양 음악 역사상 최고의 신동 중 한명으로 꼽히며, 만 38세에 일찍 숨을 거둔 점만 제외하고, 그는 음악과 삶 모든 면에서 부와 명예를 얻은 작곡가였습니다. 작곡가이자 동시에 지휘자로서도 왕성한 활동으로, 자신의 작품 및 다른 작곡가의 작품도 모두 지휘하였습니다. 그의 천재성은 음악을 작곡하는 것보다는 독일의 음악적 위상을 높이는 것에 더 많이 쓰였다는 평도 있습니다.
라이프치히 음악 학교의 이름이 라이프치히 “펠릭스 멘델스존 바르톨디” 예술대학이라는 것을 보면 알 수 있듯이 독일에서 가장 오래된 음악학교의 설립자이자 교수였고, 슈만 등과 함께 경제적으로 어려운 음악가들에게 기회를 주고자 많은 노력을 기울이는 등 수 많은 일을 했으며, 그러한 노력의 성과 중 하나로 독일의 음악적 위상은 높아졌습니다. 당대 트로이카 중 한 명이던 쇼팽에게도 높은 금액의 공연료를 주면서 연주할 기회를 주기도 했습니다.
행복한 환경 때문인지, 인생을 사랑하며 사람 친화적인 그의 성격 탓인지, 그는 밝고 아름다운 음악을 많이 작곡했으며, 그의 작품은 선율, 리듬, 화성에서는 고전파 양식을 따랐으나 내용면에서는 표제적이고 묘사적이라는 낭만파의 특징을 띠면서 대표적 낭만주의 작곡가로 자리매김하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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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농쿠르 (Nikolaus Harnoncourt) (지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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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스트리아의 지휘자이며 첼리스트인 아르농쿠르는 그뤼머에게 첼로를 배우다가 1948년부터는 빈 아카데미에서 배운 뒤 1952년부터 1969년까지 빈 교향악단의 단원으로 일했다. 르네상스 시대 및 바로크 시대의 연주 양식과 고대 악기의 연주법에 관해 연구하였고 [무지카 안티콰], [오스트리아 음악시평], [음악] 과 같은 곳에 기사를 쓰기도 하였다. 그는 특히 몬테베르디아 J.S. 바흐에 연구를 집중하였고 1953년에는 [빈 콘첸투스 무지쿠스]를 결성하였는데 거기서 단원들은 역사적인 악기를, 그것이 없으면 그 충실한 복제품이라도 가지고 연주하였다.
2016년 3월 5일, 86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작품에 자연의 색조를 남기려는 진실성에 대한 배려에서 아르농쿠르는 많은 모범적인 레코드를 남겼으며 중요한 것으로는 바흐의 [수난곡], [미사 b단조], 몬테베르디의 3개의 오페라, 라모의 [카스토르와 폴룩스], 모차르트의 [크레타의 왕 이도메네오]를 들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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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얄 콘세르트허바우 오케스트라 (Royal Concertgebouw Orchestra)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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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얄 콘세르트허바우 오케스트라 (Royal Concertgebouw Orchestra Of Amsterdam, RCO)
암스테르담에 본거지를 둔 네덜란드의 대표적인 관현악단. 1988년 네덜란드 여왕인 베아트릭스로부터 왕립 칭호를 하사받기 전까지는 암스테르담 콘세르트헤바우 관현악단(Concertgebouworkest Amsterdam)이라는 명칭으로 불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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