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서 C. 클라크 (지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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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작 아시모프, 로버트 A. 하인라인과 함께 SF의 3대 거장으로 꼽히는 아서 C. 클라크는 1917년 12월 16일 영국 남부 서머싯 주 마인헤드의 한 농가에서 태어났다. 별 관측과 SF잡지 읽는 것을 좋아하던 소년기를 통해 우주에 대한 열정을 싹틔웠고, 1936년 런던으로 이주한 후 영국항성간협회에 들어가, 협회회보에 글을 기고하면서 SF 집필에 첫발을 디디기 시작했다.
1939년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영국 공군에 입대, 착륙 유도 관제 시스템을 위한 레이더 개발에 참여했다. 아서 클라크의 유일한 비SF 소설인 《글라이드 패스》는 이 시기의 경험을 바탕으로 한 것이다. 전쟁이 끝난 후에는 런던 킹스 칼리지에서 물리학과 수학을 전공하며 영국행성간협회 회장직을 역임했다.
1951년 전업 저술가가 되기로 결심하고 본격적인 집필 활동을 시작하여 1999년까지 100편이 넘는 작품들을 발표했고, 독자적인 작업 외에도 《라이프》 편집진들과 함께 <인간과 우주>를, 스탠리 큐브릭 감독과 함께한 소설이자 영화 대본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 등을 통해 다방면에서 큰 족적을 남겼다. 미국 우주계획과 밀접한 관련을 가져 NASA의 자문을 맡기도 한 그는 통신위성과 인터넷, 우주 정거장 등 현대 과학에 절대적인 영향을 끼친 미래학자로도 널리 알려져 있다. 1977년에는 과학을 대중에게 이해시킨 데 대한 탁월한 공로로 브래드포드 워시번상을 받았다.
1956년 스리랑카로 이주한 이후 2008년 3월 19일 90세의 나이로 타계할 때까지 스리랑카에 머물며 별을 관측하고 바다 속을 탐험하며 집필 활동을 계속했다. 휴고상, 네뷸러상, 로커스상, 성운상을 포함하여 SF 분야의 모든 상을 석권한 전무후무의 대표작인 《라마와의 랑데부》 외에도, 작가에게 다시 한 번 휴고상과 네뷸러상을 품에 안긴 《낙원의 샘》 등 숱한 걸작을 남겼고 1986년 미국 SF작가협회로부터 그랜드 마스터로 추대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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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탠리 큐브릭 (지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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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8년 뉴욕 브롱크스에서 태어났다. 고등학교 졸업 후 [룩] 매거진 소속 사진작가로 일하던 중, 단편 다큐멘터리 [시합날](1950)을 만들면서 영화 연출을 시작했다. 두 번째 단편 [비행하는 신부](1952)에 이어 내놓은 첫 장편 [공포와 욕망](1953)이 아트하우스 배급망을 탔다. 처음부터 연출은 물론 촬영, 사운드, 편집 등 영화 제작의 모든 과정을 도맡아 한 그는 [킬러스 키스](1955)가 메이저 스튜디오인 유나이티드 아티스츠의 배급을 받으면서 더 넓은 시장으로 발돋움했다. 1955년, 제임스 해리스와 손잡고 [킬링](1956)과 [영광의 길](1957), [로리타](1962)를 만들었다. 첫 흥행작 [스파르타쿠스](1960) 다음 작품인 [로리타]부터는 모든 영화의 본거지를 영국으로 삼았다.
[로리타]에서 운을 뗀 블랙 코미디 성향은 핵전쟁을 다룬 풍자극 [닥터 스트레인지러브](1964)에서 본격화한다. 기계의 오류 앞에 선 인간의 나약함과 부조리에 관한 문제의식을 보여주었고, 이는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1968)에 이르러 깊이를 더한다. SF영화사에 획을 그은 걸작으로 남은 이 영화는 개봉 초기엔 비평가들의 혹평을 받았으나 관객의 대대적인 호응을 불러왔으며, 아카데미 시각효과상을 안겼다. [시계태엽 오렌지](1971)는 도덕적인 면에서 뜨거운 논란을 일으켰다. 모방범죄를 조장한다는 이유로 특히 영국의 보수주의자들에게 집중 포화를 맞았고 결국 1974년, 큐브릭은 영국에서의 배급을 중단했다.
장대한 사극인 [배리 린든](1975)으로 영국아카데미 감독상을 받았고 스티븐 킹의 공포소설을 영화화한 [샤이닝](1980)과 베트남전영화 [풀 메탈 자켓](1987)을 내놓았다. 1997년, 미국감독조합이 수여하는 D. W. 그리피스 상과, 베니스영화제 평생공로상을 받았다.
1999년, 큐브릭은 [아이즈 와이드 셧]의 최종 편집본을 워너 브러더스에 넘겨주고 나흘 뒤인 3월 7일에 세상을 떠났다. 2000년에 [시계태엽 오렌지]가 영국에서 재개봉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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