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머스 미들턴 (지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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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80년 4월 18일 런던에서 출생했다. 미들턴은 당시의 소년들처럼 문법학교에서 라틴어를 비롯해 인문학을 공부하고 18세가 되던 1598년에 옥스퍼드 퀸스 칼리지에 입학해 고전 전통과 기독교 전통을 접하게 된다. 하지만 미들턴은 대학을 중퇴한 후 런던으로 돌아와 견습 작가로 극작을 시작하고 윌리엄 셰익스피어, 토머스 데커를 비롯한 선배 작가들과 같이 작품을 집필하게 된다. 주요 작품으로는 초기 토머스 데커와 공동 작업한 <인내심 많은 남자와 순결한 창녀>와 <왈가닥 여자>를 비롯해 윌리엄 로울리와 공동 작업한 <체인즐링>, 단독으로 쓴 <칩사이드의 순결한 처녀>, <여자여, 여자를 조심하라>, <인내심 체스 게임> 등이 있다. 극작가로서 성공을 거둔 미들턴은 1620년 런던 시의 역사가로도 임명된다. 가장 유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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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머스 데커 (지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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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커의 출생 기록은 확실치 않다. 학자들은 그가 1570년에서 1577년 사이에 런던에서 출생한 것으로 보고 있다. 1597년도에 극작가로서 활동을 시작했는데 초기 작품으로 ≪구두장이의 휴일(The Shoemaker’s Holiday)≫과 ≪늙은 포르투나투스의 희극(The Comedy of Old Fortunatus)≫이 있다. 1604년에 데커는 ≪정숙한 창녀(The Honest Whore)≫를 완성했는데 많은 비평가들은 이 작품을 데커의 걸작으로 뽑는다. 데커는 미들턴과 함께 이 작픔을 썼는데 미들턴은 작은 기여를 한 것으로 생각된다. 이후로 데커는 웹스터, 미들턴, 매신저, 포드 등과 작품을 같이 쓴다. 하지만 얼마 뒤인 1607년에 출판된 ≪바빌론의 창녀(The Whore of Babylon)≫는 그의 작품 중 졸작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데커는 셰익스피어처럼 당대 최고의 인기를 누린 왕정파 작가도 아니요 벤 존슨처럼 고전문학에 정통한 작가도 아니었다. 하지만 그는, 헨슬로의 일기에 의하면, 가장 다작을 한 작가 중 하나로 그가 단독이나 공동으로 쓴 작품만 해도 41편 기록되어 있다. 현재 41편 중 23편의 작품이 전해져 내려온다. 헨슬로는 데커에게 원고료로 100파운드를 지불했는데, 이는 당시로서는 최고 액수였다. 헨슬로가 일기에 열거한 극작가들의 총 작품 수는 220편인에 데커가 41개의 작품을 썼기 때문에 이를 기준으로 하면 그는 전체의 5퍼센트에 달하는 작품을 쓴 셈이 된다. 그가 언제 서거했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다. 당시의 많은 평민들이 그렇듯이 그에 대한 기록은 거의 없다. 19세기 비평가인 존 콜리어(John Collier, 1789∼1883)에 의하면 그는 1638년에서 1640년 사이에 사망한 것으로 추정된다(Shepherd 1: xliii). 그의 출생 연도와 사망 연도가 확실하지 않기 때문에 그가 사망한 나이를 확실하게 계산할 수는 없고 대략 61세에서 70세 사이에 생을 마감한 것으로 추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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